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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데스퀴즈

by 백랑단풍 posted May 08, 2017 (23시 47분 11초) Replies 0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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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1.

 

“…저, 손님?”

 

당황한 여점원이 우왕좌왕하며 내가 앉은 테이블을 맴돌았다.

나는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걸 계속 했다.

 

해골 마크가 그려진 병에 담긴 형광빛 액체를 아낌없이 스프에 쏟아 부었다. 뭔가 반응이 일어났는지 스프는 점점 굳어가더니 젤리처럼 되어버렸다.

그 젤리 스프를 한 숟가락 떠서 입 안에 넣는다.

 

단 맛이 났다.

 

뭐야 이거. 단 맛? 미쳤나.

 

아무튼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걸 보아 이 독은 효과가 없다. 이 독이 정답이었다면 난 당장 발작을 일으키고 죽었어야 했다. 민트초코처럼 오묘한 맛이 나는 스프를 다 먹은 뒤, 난 머리를 쥐어뜯고 말았다.

 

이렇게 내 1374번째 자살 시도는 실패했다.

 

 


2.

 

“앗, 하늘에서 쓰레기가 떨어졌다.”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뺨에 느껴지는 푹신한 감각, 멀쩡하게 붙어있는 팔다리, 전혀 느껴지지 않는 통증. 이 모두가 이번 자살 시도도 실패했음을 알려주었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가장 높은 첨탑. 그 위에서 떨어졌건만 정말 우연히도 솜이불을 가득 실은 마차가 첨탑 아래를 지나가고 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도 난 그 마차 짐칸 위로 떨어졌다.

게다가 정말 우연히도 그녀 또한 이 마차 짐칸에 타고 있었다.

 

“뛰어내린다니. 고전적이고 좋은 시도였지만, 아쉽게도 실패네.”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짓는 한 여자. 익숙하면서도 구역질이 나는 얼굴이었다. 새하얀 피부색, 옅은 하늘색의 긴 머리칼. 언밸런스하지만 왠지 어울리는 새까만 눈동자. 아름답다고 하면 아름답지만, 나에게만큼은 최악의 얼굴이다. 저 웃는 면상을 한 대만이라도 갈겨 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

이 여자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사이코패스, 미친년, 또라이 정도가 있다.

 

“지금 속으로 내 욕 하고 있는 거 다 알아. 그럴 타이밍이거든.”

 

난 대꾸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에서 내렸다. 이걸로 오늘만 해도 그녀를 세 번 본 게 되니, 아마 내 다크서클도 삼 센티 더 늘었겠지. 이젠 거울을 보면 좀비인 줄 알고 내가 놀랄 정도다.

 

“뭐야? 삐졌어? 소심하기는. 대꾸 안 해?”

 

그녀는 내 팔을 잡아당겨보기도 하고, 뒤에서 껴안아보기도 하고, 목덜미에 팔을 얹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반응이 없자 이내 포기한 듯 더 이상 날 건드리지 않았다.

뒤돌아봤을 땐, 어느 세인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뒤였다.

 

여자의 이름은 서리. 방금처럼 멋대로 왔다가 멋대로 사라져버리는 작자다.
내 인생은 이 여자 때문에 꼬일 만큼 꼬여버려서, 더 이상 풀 수 없게 됐다. 단 한 가지 방법을 남겨놓고.

그녀가 나에게 낸 퀴즈, 내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방법을 알아내 죽기 전까지, 난 이 망할 세계에서 탈출할 수 없다.

 


3.

 

이 좆같은 세상은 참 친절하다.

 

“지금부터 이 범죄자의 처형식을 시작한다.”

 

여장관이 깃발을 올렸다. 오늘은 내 처형식이다.
언제부터 처형이 정해졌냐 하면, 어제 정해졌다. 자살 시도는 더 이상 무리라고 보고 사형당하는 편을 선택했다. 혼자 하는 것보다 남의 도움을 받는 게 더 낫다는 말도 있고.

그 날로 당장 왕궁에 쳐들어가 이 나라 왕 욕을 한 사발 했다. 처음엔 왕궁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날 쳐다보기만 했다. 뒤이어 내가 왕의 딸을 욕하자,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날 붙잡더라.

 

“왕국을 모욕한 범죄자에겐 최후의 발언도 용납하지 않는다. 바로 개시하지.”

 

여장관은 들고 있던 깃발을 다시 내렸다.

거 단두대 칼날 참 번쩍번쩍 잘 닦아두셨습니다 그려. 뎅겅 소리도 나지 않겠는 걸. 치즈 슬라이스마냥 목이 부드럽게 잘릴 것 같다.

저걸 원했는데. 왜 좋은 처형기구 놔두고 이런 방법을 쓰는 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자. 잡아당겨라.”

 

내 양팔 양다리에 묶인 밧줄.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줄다리기 하는 것처럼 그 밧줄들을 잡고 있다.

이대로 잡아당겨 사지를 찢는 형벌인 것 같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존나 아프다.

 

“끄아아아악!!”

 

그년이 내 꼴사나운 비명을 듣는 건 죽는 것보다 싫어서 어떻게든 참으려 했지만, 고통 앞에 장사 없다. 대체 누가 너무 아프면 비명도 안 나온다는 개소리를 한 건지.

 

그런 정신 혼미한 와중에도 군중 속 그녀의 하늘색 머리칼은 눈에 잡힌다.

그리고 그녀가 짓고 있는 유쾌한 웃음도.

이 씨발년이.

 


4.

 

“이야~ 많이 아팠겠다.”

 

서리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진심으로 화가 올라온다. 심호흡을 크게 몇 번 하고 속으로 ‘참아라’를 연신 몇 번 외쳤는지 알 수 없다.

 

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요 예쁜 누나, 힌트 하나만 좀 주면 안 될까요.”

 

사람은 비굴해질 줄 알아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도 이득을 챙길 수만 있다면 땅 끝까지 자존심을 굽히겠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누나라고 했어? 내가 너보다 나이 많다 이거야 이 틀딱아?”

 

웃었다.

 

“네? 아니, 그런 게 아니옵고….”

“꺼져. 일주일간 용돈은 없다. 알아서 돈 벌어.”

“잠깐만! 오케이. 여동생으로 하자.”

“개소리 작작해.”

 

내 유일한 보급로가 끊기게 생겼다.

이 세계에 넘어온 이후, 당연히 직업도 신분도 없는 난 그녀가 주는 돈을 가지고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서리를 함부로 못 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발 살려주세요.”

 

멋대로 이 세계에 가두어놓고, 멋대로 불사의 저주를 걸고, 멋대로 날 부려먹는.
이 여자는 대체 나에게 뭘 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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