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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겨울오리

by 네모 posted May 08, 2017 (23시 50분 14초) Replies 0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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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조명 아래에 조용히 식기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은색 나이프는 짙은 갈색으로 구워진 스테이크를 천천히 갈랐다. 벌어진 고깃덩어리 사이로 빨갛게 핏물이 베어 나온다. 만족스럽게 익은 스테이크에서 향긋한 향신료 내음이 올라온다. 날카로운 포크 끝이 붉은 육질을 비집고 들어온다. 공중에 들어 올려진 고기 토막은 번들거리는 고깃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서 곧장 남자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혓바닥에서부터 목구멍 끝까지 흘러내리는 농밀한 육즙에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남자는 환상적이지만 너무 농후한 스테이크의 지방을 음미하며 다시 포크를 들었다. 남자의 포크 끝은 스테이크와 함께 잘 구워진 아스파라거스로 향했다. 아스파라거스가 포크에 꿰여 들어 올려 질 때, 남자는 시야의 끄트머리에서 똑같이 아스파라거스를 집어 올리는 누군가를 보았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탁자 건너편을 보았다.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익지 않은 아스파라거스가 빨려 들어간다. 누군가는 조용히 작은 입술을 오물거렸다.



“왜 그렇게 바라 봐?”



누군가가 의아한 눈빛으로 묻는다.



누군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남자는 움찔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그냥.”



남자는 다시 나이프와 포크를 잡고 접시 위의 고기를 썰어나갔다.



“정말 채소만 먹고 어떻게 사나, 싶어서.”



남자가 흘끗 탁자 건너편을 보며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누군가는 자신의 접시 위를 내려다 보았다. 새하얀 접시 위에는 얼마 안 되는 양의 채소가 쌓여 있었다. 아스파라거스와 방울토마토 위에 소스를 뿌린 샐러드다. 누군가는 어깨를 으쓱 하곤 컵을 들었다.



“채소도 먹을 만 해.”



누군가는 짧게 대답했다.



“매일 그것만 먹는데도....?”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의 머리 뒤로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흔들거렸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실없이 웃으며 잔을 들었다. 컵을 입으로 가져가던 여자는 싱긋 마주 웃으며 팔을 내밀었다. 쨍 하고 유리잔이 마주치는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진다.



 



 



“그냥 고기가 입에 안 맞을 뿐이야.”



요란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 퍼진다. 여자는 재빨리 길 가장자리로 붙었다. 유선형의 승용차가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그런데 오늘따라 새삼스럽게 그런 건 왜 물어? 평소에는 별 관심도 없더니.”



여자는 어쩐지 새침한 투로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는 약간 당황한 듯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어제 우연히 잡지에서 채식주의자에 관한 칼럼을 봤거든. 생각했던 거와는 다르게 같은 채식주의들 사이에서도 식성의 유형이 다양하게 갈리는게 신기해서....”



여자는 멋쩍게 웃는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두 남녀는 골목길을 빠져나와 대로로 들어섰다. 넓은 길가는 한적했다. 지나다니는 자동차는 드물었고 무리지은 사람들 몇몇이 보였다. 보도블럭 위를 걷는 발소리가 엇박자로 울려퍼진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채식주의자들의 생각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남자가 말한다.



살짝 눈썹을 찌푸리는 여자를 보고 남자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니, 아니. 너는 단순히 기호의 문제잖아. 나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채색을 고집하는 채식주의자들을 말하는 거라고.”



“어떤 부분이 이상했는데?”



여자가 물었다. 여자의 목도리 안에서 하얀 김이 새어나온다.



“건강이나 경제적 이유, 또는 환경 보존적 측면에서 채식을 선택하는 데서는 별 이견이 없었어. 그에 관한 과학적인 반론도 있었지만....그런 생각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남자가 대답했다.



남녀는 인도를 따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조명으로 꾸며진 아치 다리를 지났다. 차가운 강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육식 자체에 윤리적으로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의아했어.”



여자는 남자의 말을 들으며 강가를 바라봤다. 물살은 새카맣게 깊어 보였다. 다만 몇 마리의 오리들은 여상스럽게 수면 위를 헤엄치고 있었다.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데 거부감을 가진다는게 이상하지 않아?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강 위의 오리는 검은 물살을 물끄러미 내려다 봤다. 오리의 새까만 눈동자에 매끄러운 은빛 비늘들이 비친다.



“동물은 생각과 감정이 있잖아. 사람처럼. 식물은 그렇지 않고.”



여자가 대답한다.



“글쎄....살기 위해 먹는 건데.”



순간적으로 오리의 목이 쭉 늘어나 물속에 처박힌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솟아오른 오리의 넓적한 주둥이 사이에는 은빛 물고기가 요란히 파닥거리고 있었다.



“설령 꼭 육식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더라도, 우리는 원래부터 잡식동물이잖아? 고기를 씹을 수 있는 이빨과 소화시킬 수 있는 위장을 타고 난 것 자체가 육식에 대한 허락 아닐까?”



남자는 신이라던가, 아니면 유전자라던가 하고 덧붙였다.



물고기는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었으나 오리의 쩍 벌어진 부리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미끄러져 들어갈 뿐이었다.



“그런 이빨과 위장을 갖고 태어난게 죄라고 생각하진 않아?”



오리의 부리 안쪽에 접혀 있던 이빨들이 불쑥 튀어나와 물고기의 살을 파고든다. 은빛 비늘 사이로 붉은 피가 퍼져나간다.



“다른 생명을 죽여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우리의 몸이 나쁜게 아닐까? 동물도 사람도 죽음을 두려워해. 그런 공포를 강요하는 건 나쁜 일이잖아.”



오리는 새빨간 목구멍을 한도 끝까지 벌리며 물고기를 우겨 넣었다. 물고기의 꼬리 끝이 마지막으로 힘없이 흔들렸다. 불룩해진 목을 곧추세운 오리의 눈은 깊은 강물만큼 새카맿다. 여자는 오리의 눈동자에서 강물에 이는 것과 같은 작은 파문을 찾지 못했다. 오리의 눈동자에는 아무런 동요도 감정도 없었다.



“모르겠어.”



남자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다리 끝을 지났다. 남자는 강가를 쳐다보지 않았다.



“어려운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직감적으로 그게 잘못이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아.”



강물 위의 오리는 몇 번 목을 뒤틀더니 다시 얌전히 날개를 접었다. 그리고 여상스레 물 위를 헤엄쳤다.



“....그렇구나.”



여자는 중얼거렸다.



“그보다도, 내일 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남자는 갑자기 쾌할한 목소리로 물었다.



“으...응? 내일?”



여자가 당황해서 우물쭈물 하자 남자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일 네 생일이잖아. 자기 생일도 까먹고 있었어?”



남자는 보통 여자가 이런거 꼬박꼬박 잘 기억하잖아, 하고 웃었다.



“으음, 그게....”



여자는 작은 입술을 옴작거리며 말을 늘어뜨렸다.



“내일은 좀....해야 할 일이 있어서....”



여자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뭐? 너 작년에도 그랬잖아? 이번에도?”



남자의 눈이 둥그래졌다.



여자는 안절부절 못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미안해. 다음날로 미루면 안될까?”



여자가 남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남자는 여자의 말에 의구심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당사자가 말하는데 어쩔 수 없지. 이틀 후에는 확실히 괜찮은 거지?”



여자는 허둥지둥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행동이 귀여워져 볼을 살짝 꼬집었다.



한겨울에 볼을 잡아당기면 어떡하냐고 핀잔을 주는 여자에게 남자는 끈질기게 장난을 걸었다. 이내 여자는 다시 표정을 풀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남녀는 다시 시시한 잡담을 나누며 겨울 거리를 걸었다.



“야, 나 사실 동안이라는 소리 자주 듣고 다니거든?”



“거짓말 하지 마. 그 얼굴로 무슨....”



“너 내가 피부 관리 엄청 하는 거 알고도 그런 소리 하냐? 이 피부가 10년전 피부야.”



남자는 자신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네, 혼자서 세월을 비껴맞으니 좋으시겠어요.”



여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자는 회색 담장을 따라 걸었다. 담장 끝에는 아담한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럼 들어간다.”



“그래. 이틀 후에 보자.”



여자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며 손을 흔들었다.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줬다.



여자의 등 뒤로 삐그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여자는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열었다. 집 안에는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너무 미약해 바닥에 희끄무레한 선을 남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자는 신발을 벗고 천천히 마룻바닥을 밟았다. 여자는 불을 켜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니야, 안 돼.”



어두운 방 안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아니야,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입술 사이로 작은 중얼거림이 새어나온다.



“그렇지만, 해야 해. 해야 되.”



여자는 어둠속에서 찬장을 연다. 찬장에 손을 열어 무엇인가를 꺼낸다.



여자의 손에 들린 것이 저물어가는 햇빛을 반사한다. 날붙이를 따라 하얀 빛줄기가 흐른다.



 



 



골목길에 구둣발 소리가 아련히 울려 퍼진다. 남자는 회색 담을 지나 대로를 걸었다. 아치 다리를 오른 남자는 고개를 돌려 강가를 구경했다. 오리 몇 마리가 새카만 강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차가운 강바람이 남자의 손을 햘퀴었다. 남자는 꾸물거리며 차가워진 손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때 얼어서 감각이 둔해진 남자의 손에 무엇인가 닿았다. 남자는 고개를 기울이며 주머니 속에 든 것을 꺼냈다.



“이런.”



앙증맞은 열쇠고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오늘 시내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사 준 열쇠고리다. 도중에 깜짝 잊어버리고 건네주지 않은 것 같았다.



남자는 작게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여자의 집 까지는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안 주면 이틀이나 기다려야 하잖아."



남자는 중얼거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한시간이 조금 안되서 남자는 회색 담장 끝에 서 있었다. 남자는 대문을 두드리며 여자를 불렀다.



"야! 너 열쇠고리 안가져 갔어!"



안쪽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대문은 남자의 노크에 삐그덕 소리를 내며 맥없이 열렸다.



남자는 열린 대문을 보고 우두커니 멈춰 섰다.



"저기....들어간다....?"



남자는 슬쩍 한 발을 대문 안쪽으로 내밀었다. 남자는 작은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문 앞에 섰다.



"설마...."



남자는 슬쩍 손잡이를 돌렸다. 걸리는 느낌이 없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남자의 머리 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도둑, 강도. 남자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여자는 결코 방비를 허술히 할 사람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여자와 사귀어온 남자는 알았다. 남자는 여자의 현관문과 대문 열쇠를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방비에 철두철미한 여자였다. 남자의 머릿속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결국 남자는 이를 악물고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조명도 햇빛도 방 안을 비추지 않았다. 남자는 천천히 집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둠속에서 무엇인가 질척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은 쇳소리가 남자의 고막을 천천히 긁었다.



남자는 전등을 찾아 벽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남자가 전등 스위치에 손을 올리기 직전, 남자는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꼈다.



남자에게는 너무도 친근한 냄새다. 하지만 여자와는 결코 인연이 없을 냄새다. 여자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냄새다.



남자가 스위치를 눌렀다.



 



은은한 조명 아래 식기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은색 칼날이 고깃덩어리를 가른다. 벌어진 고깃결의 사이로 빨간 핏물이 배어나온다.



잘게 찢긴 고기가 벌어진 입술 사이로 사라진다. 새하얀 치아가 정신없이 고깃덩어리를 씹는다.



남자는 그 자리 서 얼어붙었다. 그 자리에 서 몇시간 전에 맡았던 그 향기를 맡는다.



남자는 천천히 누군가의 턱 아래를 내려다 본다. 그곳에는 하얀 접시도, 유리컵도 없었다.



그저 기다란 고깃덩이와 칼, 포크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남자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속에서 부터 헛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여자의 머리카락 너머로 보이는 고기는 남자에게 이질적인 것이었다.



매일 수십번도 넘게 보면서도, 남자는 그것을 한번도 고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남자는 천천히 시선을 위로 움직였다. 그리고 마루 너머에서 식사하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눈동자는 쌔까맿다. 호수의 밑바닥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강물 위의 그것처럼 고요하지 않았다. 까만 두개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한참 동안 말없이  마주 보았다. 이윽고 천천히 여자의 입이 열렸다.



"먹기 싫어...."



여자가 중얼거린다.



"죽이기 싫어....정말....더 이상 죽이고 싶지 않아....먹고 싶지 않아....."



여자가 흐느낀다.



"하지만 먹지 않으면 죽어. "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단 말이야...."



누군가가 흐느꼈다.



눈물이 여자의 뺨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여자는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여자는 힘없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잠깐...위험해!"



동상처럼 얼어붙어 있던 남자가 급히 외쳤다. 마룻바닥에는 날카로운 뼛조각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개중에는 주먹만큼 커다란 것들도 많았다. 여자는 그 위로 발을 내딛었다.



새하얀 뼛조각이 여자의 발바닥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여자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여자가 뼛조각을 뽑아내기 무섭게 상처는 빠르게 아물어갔다.



"나는 죽지 않아."



누군가가 말했다.



"어떤 상처를 입어도, 어떤 병에 걸려도 죽지않아. 늙지도 않고 쇠약해 지지도 않아."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어."



누군가는 자신을 어깨를 감싸 안고 부르르 떨었다.



"한사람의 생명을 먹으면, 1년을 더 살 수 있어. 열 사람을 먹으면, 10년을 더 살 수 있어. 다른 사람을 씹고 소화시켜서, 내가 살아 갈 수 있어."



누군가가 말한다.



"하지만 이젠 싫어...."



여자가 말한다.



"내가 몇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해? 몇명을 먹었을 것 같아? 그리고, 앞으로는 몇명을 더 먹어야 할 것 같아?"



여자가 오열한다.



"끝이 없어. 끝나지 않을거야. 내가 살아있는한, 내가 사람을 먹을 수 있는 이빨과 위장이 있는 한, 멈출 수 없어."



여자가 힘없이 말한다. 그리고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진다. 날카로운 뼛조각들이 여자의 몸에 박힌다. 여자의 몸 곳곳에서 새빨간 피가 배어나온다. 날카로운 뼛조각들은 마치 강물 위 그것의 이빨과 같았다.



"죽이기 싫어...죽기 직전 사람들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아.....그리고 그들의 눈동자에 비친 내 까만 눈동자도 잊혀지지 않아...."



"그래서...지금까지 참아온 거야?"



남자가 말했다.



여자는 작년 생일에도 오늘같이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마, 그때 한명을 먹은 이후 지금까지 먹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마루에 떨어져 있는 고깃덩어리는 한명분의 고기라 하기에 지나치게 양이 작다. 아마 최소한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작년에 남겨 놓은 것을 꺼낸 것이리라.



여자는 말이 없었다. 그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하지만....."



누군가가 속삭인다.



"싫어......"



"싫어, 무서워. 무서워. 너무 무서워. 안 돼, 안 돼, 싫어. 정말이야. 정말 싫어. 무서워. 너무 무서워."



"느껴져. 진짜 느껴져. 이대로면 죽어. 진짜 죽어. 없어져. 영원히 사라져. 내가,내가 사라져. 조금만 있으면, 정말 조금만 지나면."



누군가가 몸을 비튼다. 필사적으로 꼬리를 흔든다. 하지만 그럴수록 누군가는 더 깊고 새카만 죽음 속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제발, 제발."



누군가가 고개를 든다.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본다. 남자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의 눈동자에 새카맣고 흔들리는 두개의 눈동자가 비쳤다.



"네가 그랬잖아. 먹는건 당연하다고. 먹기위해 죽이는건 자연스럽다고."



여자가 천천히 일어났다.



"살기 위해 먹는거잖아. 살고 싶으니까 먹는 거잖아. 그래."



여자가 비척거리며 남자에게 다가온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살아왔어. 그리고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더 죽음이 두려워져. 알겠어? 수백년, 수천년 계속되던 삶이 일순간에 영원히 끝나버린다고 생각하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너무 무서워."



여자는 천천히 남자의 품에 안긴다. 여자의 팔이 남자의 허리에 감긴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여자와 자신, 누가 더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했다. 누가 먹고 먹히는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누가 더 단단한 이빨과 위장을 갖고 있는가, 누가 허락을 받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강가에는 겨울오리가 여상스레 헤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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