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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by 배계카뮈 posted May 14, 2017 (22시 55분 47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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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버지와 어머니와 딸 하나와 아들 둘을 죽였다.

이상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다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누구가의 어머니이자, 누군가의 딸, 아들일 텐데 그것이 새삼스러운 것이냐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다. 보통은 알 수가 없다. 초면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 사람이 가정이 있을 지, 없을 지, 혹은 부모가 있을 지, 없을 지 알 수 없는 법 아닌가?

조금 더 풀어 이야기하자면 어떤 낡은, 오래된 가정집에 들어가 그 가정집의 주인인 다섯 식구를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이야기다.

적은 참호 너머에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참호 속에도, 그리고 이 머리 속 깊숙한 곳에도 적이 있었다.

의미가 있을까?

나는 머리가 좋지 못하다. 대학도 가지 못했다. 집안 배경도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 손을 벌리기는 커녕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반쯤 소년 가장이 되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더 구질구질하고 지긋지긋한 이 피와 철과 흙더미 속에 파묻혀 죽거나, 죽이거나를 끝없이, 아니 내가 죽을 때까지 반복하여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다. 곧 끝이다.

소총에 탄이 걸렸고, 손목이 날아갔다.

그러곤 나는 오라에 묶여......

"......이 개자식이 버거든씨네 일가를 살해하고 집을 불태운 걸 봤습니다."

손목은 멀쩡해져 있었다.

마법 덕분이다.

마법 때문이다.

둘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다.

우리는...... 우리?

글쎄 우리라고 해야할까.

모르겠다. 하여튼 인류는 한계에 다다랐다.

인내의 한계건, 자원의 한계건, 아니면 종 그 자체의 수명의 한계건 뭐건 간에

하루하루 피할 수 없는 파국과 종국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작위적이게도 모두가 무시하고, 모두가 외면하고, 모두가 조롱했던 한 이론 물리학자가 발견해 버렸다. 이 세계가 아닌, 이 세계와 평행한 이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이론을, 방법을, 나는 멍청해서 잘 모르겠다. 이론과 방법, 혹은 방법론 그 둘, 셋 중에 뭐가 더 올바른 표현인지.

"......이 개자식!"

탄성 있는 무언가가 뚱겨지는 소리.

쐐기와 같은 것이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

감고 있던 눈꺼풀채로 화살, 어쩌면 석궁의 볼트가 내 눈을......

 

부조리하다? 불합리하다. 불공평하다?!

마법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신재생에너지라거나, 그런 것들 보다도......

그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였다.

애초에 그렇게 편의주의적일리가 없잖아.

우리네 세상만 해도 판검사나, 의사따위는 백명중 한명, 이백명중 한명 꼴이니까.

눈속임이었다.

무한동력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억이 넘는 인구가 찰나동안 소비하는 에너지조차 충당할 수 없는,

촛불, 양촛불만도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지금보다 수가 줄기 전에는 어쩌면......

공장에서 공산품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마법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을......

적어도 사십만명은 넘는 마법사의 머리를 자르고, 가르고, 꿰뚫고, 폭파시키고, 뜯어 내고, 부수고, 불태우고, 쪼개고, 조각내고, 해부하고, 해체하고, 찢어 발겨 버린 이후였다.

그래서 이들은 내 귓속으로 강산을 흘려보냈다.

쟁쟁히 울려 퍼진다. 타들어 가는 소리가,

너무 아파, 구태여 아프단 소리를 할 필요까지 없었다.

죽을 것 같아 공포스럽지 않았다.

죽지 못할 것 같아 공포스러웠다.

그래서 치유마법이 죽을 것 같이 공포스러웠다.

이유 같은 건, 동기 같은 건 정말 아무래도 좋을 하등 쓸모 없고, 가치 없는 것들,

왼 팔을 도려낸다. 오른 팔을 잘라낸다. 왼 다리를 끊어 낸다. 오른 다리를 절단한다.

오른 다리는 오른 팔 자리에, 왼 팔은 오른 다리 자리에, 오른 팔은 왼 다리 자리에, 왼 다리는 왼 팔 자리에 접붙히듯 붙여 놓곤 치유마법을 사용해 버렸다. 열 손가락을 다 뜯어 버린 뒤 양 뺨에 구멍을 뚫어 그 곳에 그대로 박아 넣어 버리곤 치유마법을 사용해 버렸다.

하루하루, 시시각각 내 온 몸의 부속의 위치가, 장기의 위치가 뒤바뀌어 엉켜, 꼬여 버린다.

토막나거나, 한 덩어리가 되거나, 그리고 한 덩어리가 두 덩어리, 세 덩어리가 되어 버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저항할 수 없다.

그렇게 나도 세계도 멸망해 가고 있었다.

자포자기였던 걸까?

그렇게까지 헤집어 놓을 필요는 이유는 없을 텐데,

전쟁은 이미 이겼다.

인류는 이미 끝났다.

그럼에도 명령은 초토화였다. 몰살이었다. 학살이었다.

그러니까 이 고문이 끝날 일은 없을 것이다.

조금 변명하자면, 총살이었다.

불복은 즉, 즉살이었다.

죽이거나, 죽거나, 선택하라면 나는......

그래서 방아쇠를 당기고, 그래서 불을 놓았지만,

큰 착각이었다.

인권 같은 건 천박한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뒤늦게 깨닫고 만 것이다.

조심할 필요 같은 것은 없었다.

어차피 치유하면, 치료하면, 수리하면 그만이니까.

죽을 만큼 다쳐도 절대로 죽을 수 없었다.

죽을 만큼 아파도 절대로 죽을 수 없었다.

절대로 죽게 두지 않고,

두고두고 그들은 나를 분해하여 재조립하였다.

커다란 지네와 접붙였다. 그보다 커다란 따개비와 접붙였다. 그보다 훨씬 커다란 거미와 접붙였다.

타인이 타인을 이해한 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발단이었다.

커다란 도마뱀, 드래곤이었다.

날개가 달려서 날아다니고, 커다랗고, 게다가 불을 뿜거나, 얼음을 뿜거나, 그렇게 마법을 쓰는, 그리고 완전한 이방인인 우리를 극도로 경계해, 극도로 싫어하던 그런 커다란 도마뱀이었다.

선택권이 있었을까?

나는 땅개다.

파일럿 같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두 눈으로 직접 본 것도,

두 손으로 직접 한 것도 아니었지만,

하지만 그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

아는 사람도, 연고도 없는 만리타향에서 직화구이가 되는 최후는 싫었겠지.

미사일 열두발을 드래곤의 하복부에 꽂아 넣어 자궁을 터뜨려버렸다고 했다.

엄청난 양의 피와 살점들이 붉은 색 우박처럼 하늘에서 후두둑하고 쏟아져 내렸다고 했다.

사실...... 인류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 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사람이건, 사람이 아니건 서로 죽거나, 죽기 전까지 치고 받는 것은 다들 똑같으니까.

이 세계 사람들에게는 드래곤이 정말 각별하단 건 역시 뒤늦게 알게 된 것이고,

인도 사람이 소를 숭배하는 것처럼,

 

까마득한 나날이 지나고,

나는 비로소 구출받았다.

이미 사람과 조금도 닮아있는 구석이 없게 되었지만,

축복이었을까?

저주였던걸까?

치유마법이 지나치게 잘 드는 체질이었다는 것 같다.

체질을 되돌리기 위해선 조금 특수한 마법이 필요하다는 것 같다.

불쾌한 모습,

혐오스런 외관,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내게 남은 역할이란 이동식 육포공장뿐.

 

불쾌한 이야기.

혐오스런 이야기.

그리고 내가 자원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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