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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굴복

by 으렘 posted May 14, 2017 (23시 11분 39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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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유우우우웅- 콰과강!!

“ 살려줘!!! 으악!! ”

쾅! 쾅쿵!! 푸쾅!!

“ 아아아아악!!! 으아아악!! 위생병!! 씨발 위생병!!! ”

귀를 찢는 굉음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비명들. 생존의 욕구가 가득 담긴 외침은 처절했다.

피슝 푸쾅 콰광!!

파츳! 콰캉 츠츠즈즈즛!!

여긴 어디인가.

나는 또 누구인가.

이러한 중요한 명제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하루, 그래 딱 하루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 이야, 김병장. 이 새끼 내일 말출이지? 새끼... 이병으로 들어와서 좆빠지게 고생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드디어 가는구나. ”

여성은 걸걸한 아쉬움을 내뱉었다. 그녀는 윤기가 흐르는 검은 단발을 뒤로 묶은, 국군 홍보 포스터에서나 볼법한 아리따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 에이, 윤중위님도 저랑 비슷한 시기에 들어오셨지 않슴까? 짬티 오지게 내십니다? ”

“ 햐, 김윤태 이 새끼 많이 컸어, 그치? 하늘 같은 중위님한테 건방지게 요놈이! 흐흐 ”

칠흑 같은 군 생활 중 유일하게 축복이라 생각됐던 그녀였다.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흐뭇해진달까. 뭇 아름다운 여자 상관이란 모든 국군장병의 로망이 아니던가.

많은 일이 있었다. 울 때도 웃을 때도 있었다. 그녀와 나의 감정공유는 충분히 이루어졌다.

“ 이제 누나라고 불러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저도 이제 사회인인데. 그치않슴까? ”

“ 임마. 전역증 받기 전까지는 군인이야, 재판에 회부되고 싶냐? 영창 보내줘? ”

윤중위의 재치있는 농담에 둘 사이에 한바탕 웃음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나는 줄곧 생각해왔던 것을 다시금 결심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 ...윤중위님. ”

“ 어,응? ”

사뭇 진지해진 것을 눈치챈 그녀가 대답했다.

“ 전역하고... 계속 연락해도 됩니까? ”

“ ... ”

내가 느꼈던 모든 것들. 생각했던 감정들 모두를 한마디에 담아서 표명했다. 나는 당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어색한 적막이 감돌았다. 윤중위는 고개를 푹 숙였다. 괜히 말을 꺼냈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 아, 장난... ”

“ ...아 ”

“ 예? ”

장난으로 치부해버리려 했다. 연인이 아니더라도 원만한 관계로 끝내고 싶다고,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 좋아, 라고했어... ”

내 수줍은 용기에 충분할 만큼의 대답을 해주었다.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감정이 고조됐다. 마음 한켠이 이상하리만치 시원해졌고, 달아올랐다.

그녀에게 감사했다. 모든 것이 어설픈 남자였지만 받아준다는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 아...감사... ”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극도의 흥분은 언어능력을 저하시켰던가. 당장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하며 난리를 치고 싶었다. 윤중위의 빨개진 볼이 나를 흥분시켰다.

그때.

흥분을 공포로 바꾸는 경적이 나를. 아니 세상을 강타했다.

빼에에에에에에에엥- 뺴에에에에에에에엥-

전투준비태세 때나 울렸던 사이렌이 병영 내에 울려 퍼졌다.

실수 혹은 단순한 방송사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다급한 목소리는 우리를 얼어붙게 하였다.

“ 현 시간부로 칵크드 피스톨을 발령한다. 실제상황이다. 다시 한 번 전파한다. 현 시간부로 칵크드 피스톨을 발령한다. 이건...실제상황이다. 정확한 사항은 추후 전파하겠다. ”

스피커 너머로 들려온 음성이었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얼마나 급하면 제대로 된 양식도 지키지 않은 채 전파를 했을까. 하는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였다.

뜨겁던 몸이 차갑게 식었다. 윤 중위와 나는 말도 안 된다는 눈을 하고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혼란이 뒤섞인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중대장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것은 현 상황이 훈련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알려주었다.

“ ...야 이 새끼들아! 빨리 군장싸! 전쟁이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훈련해왔던 데로 움직여!!! ”

윤중위가 몸을 떨었다. 하지만 신경을 써줄 겨를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내 몸도 그녀 못지않게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 ...북한? ”

그렇겠지, 그럴 것이다. 빌어먹을 빨갱이 새끼들. 놈들이 기어코 태동했다. 내일이 말년휴가인데. 하필이면 지금.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우선 정신을 바로잡았다. 어찌 됐든 간에 방아쇠는 당겨졌다. 이렇게 얼이 빠져있어서는 안됐다.

“ 윤중위님. ”

내 단호한 호명에 그녀가 얼굴빛을 바로잡았다.

“ 아, 미안. 너무 혼란...아 일단 가자. 아직 실감은 나지 않지만... 준비하자. ”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일어났다. 그리고 생활관 문을 열고 나갔다.

그 뒤로는 단편적인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메뉴얼대로 군장을 챙겼다. 행정반에서 총기를 받았다.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어떻게 내가 배속되어있는 전차의 탄약수석에 올라탔다. 무전으로 수많은 음성이 오갔지만 들리지 않았다.

전차 내의 싸늘한 한기가 코를 시리게 했다. 전차장과 포격수, 조종수가 올라탔다. 모두의 얼굴은 새파랬다. 어느누구도 평소의 익살맞은 웃음을 지을 엄두를 못 냈다.

탄약고에서 탄을 조달했다. 잘못 떨어뜨리면 죽는다는 생각은 안 들었던 것 같다. 그저 기계처럼 탄을 실었다. 그리고 출발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병력이 합류하여 사단급의 부대가 편성됐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헬멧에서 흘러나오는 노이즈만이 들려오는 소리의 전부였다.

잠깐의 평화는 예정되었던 파멸에 집어삼켜 졌다.

벼락이 치는듯한 폭음. 하늘을 찢는듯한 소리가 헬멧을 뚫고 들어왔다.

바깥을 보고 싶었지만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어쩔수없다는 것을 깨닫고 막 체념했을때였다.

찰나였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전차 내부의 모든 것이 무중력상태에 들어갔다. 똑바로 인지할 시간도 없이 밀려오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의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는 들려오는 외침, 그리고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내 육체를 자각할 수 있었다.

뜯겨나간 해치 사이로 기어 나왔다. 전차는 뒤집혀있었다. 48톤에 달하는 쇳덩이가 배를 드러내고 누워있었다.

“ 아아아악!! 제발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

새까맣게 탄 시체들이 즐비했다. 어딘가 잘려나간 사람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인간의 형체라 보기도 힘든 살덩이가 어디론가 기어가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인지 혼란은 가중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행성충돌이라도 한 것처럼 거대한 동공이 위용을 내뿜고 있었다. 도심부였던 것인지 건물의 잔해. 그리고 그을린 시체들이 보였다.

감미로운 냄새가 났다. 이것이 무엇인지 대충 알고 있다. 신기하게도 구역질은 나오지 않았다. 

어째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전차들은 모두 뒤집혀있거나 옆으로 넘어져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정리해놓지 않은 것처럼.

치지익- 응...답- 치지익-

혼란 속에서 어디선가 듣기 싫은 잡음이 들렸다.

머리를 돌려보니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있는 PRC가 무전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 여..기는 치지익- 사단...대대...생존...있는가-치지지지익. ”

그리고.

파츠즈즈즈즛츠으으읏!

“ 호오, 그대들은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이것참...내 번개도 많이 녹슬었군. ”

프라이팬에 콩을 튀기는듯한 소리와 서라운드로 들려오는 음성. 근엄을 표방하는 남성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 ...꿈...인가?... ”

구름을 밟고 서 있는 사내. 중후한 인상의 서구적인 중년. 그가 손에 들고 있는 빛의 뭉치에서는 휘황찬란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 아니, 아니야. 그대가 딛고 있는 것은 현실이라네. 나는 인큐버스같은 저급한 몽마는 아니거든. 이래 봬도 올림포스의 첫 번째 신이라고? ”

내 중얼거림을 기가 막히게 포착한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고통은 여김 없이 대뇌를 죄여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짙게 낀 암운 사이로 흐르는 파장이 보였다. 그것은 당장에라도 번개를 뿜어내려 준비하고 있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려댔다. 위험하다고, 당장 앞에 있는 위험을 배제하라고.

떨리는 손이 등에맨 K-1소총으로 향했다. 하지만 힘이 풀려 총을 들지 못했다.

바닥에 있던 PRC에서 다시금 음성이 들렸다. 이번에는 전과 비교하면 깔끔한 음성이었다.

“ 적병은 ... 신... 신으로 판명. 시급한 작전속행을 요구한다. 각 부대의 피해 상황과 잔존 병력규모를 보고해라. ”

신.

신이라...

“ 허... ”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들과 혼돈으로 점철된 상황을 신이 만들어 낸 것이라니. 참으로 기가 찼다.

- 그래, 인간의 아이들이여! 이제 너희들의 위치를 확인했느냐? 신의 역린에 도전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깨우쳤느냐!!!

- 제우스 네놈은 여전히 그런 센스 하나는 진짜 아니구만 큭큭, 신의 역린이니 어쩌니 그딴 단어를 쓸 필요가 있나?

- 자고로 신이란 군림하는 존재이며 모든 생물체의 정점. 단어선택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지!

- 인간들의 과학이랍시고 생명의 재창조에 손을 댔다고 해야, 이들이 알아듣지 않겠나? 미물들은 생각보다 우매하다네 친우여.

머릿속에 어떠한 음성이 문장이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듯했다.

있어야 할 북한은 어디 가고, 이런 규격 외의 존재가 세상에 나타난 것인가.

부활은 무엇이고 신의 역린은 또 무엇인가.

전쟁이란게... 인간과 신과의 전쟁이라는 것인가?

피유우우우웅-

멀리서 날아오는 미사일이 보였다. 육안으로 목격한 그것은, 내가 깜짝 놀라 호흡을 들이키는 순간 앞에 있는 중년에게 부딪혀 폭발했다.

이 정도의 지근거리라면 나 또한 복사열에 함께 산화하리라. 나쁘지 않은 인생... 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인생이었다만, 재앙을 뒤로하고 모든 것을 만끽할 수는 없는 삶인가 보다.

하고 생에 대한 미련을 놓았을 때였다.

콰아아아아앙!!!!

고막을 찢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 ? ”

나는, 자리에 서 있었다.

분명 열과함께 없어져야 했을 의식이 또렷이 남아있었다.

눈을 휘둥그레 뜨자 불투명한 구체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한 내게 눈앞의 중년이 입을 열었다.

“ 그대는... 세속적인 욕심은 가득하지만, 신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군. 무얼, 단순한 절대자의 변덕이네. 자네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겠다. 나 또한 인환이 귀결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벌레를 잡아 죽일 뿐. ”

풀썩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아랫도리가 축축한 것으로 보아 소변을 지린듯했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 감..감사..합니다... ”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건넸다. 현대 문명의 발전이 극대화된 현시점에서도 신을 타개할 방법은 없었다. 죽지 않기 위해 그의 마음에 들어야 했다. 예의는 기본 중 기본이다.

그는 그런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 오! 저건! ”

그의 얼굴이 환호에 가득 찼다. 그리고 탐욕의 눈빛으로 어딘가를 주시했다. 나는 그의 눈길이 머무는 곳으로 목을 돌렸다.

그 끝에 있는 것은.

“ 유,윤중위!? ”

“ 흐음, 참으로 아름다운 인간의 여아구나.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어, 허허. 치장을 시키면 헤라와 비견될만한 미모인걸? ”

내가 호감을 품은, 조심스레 마음을 고백했던 그녀가, 비교적 온건한 상태로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뭐욧? 당신 지금 또 바람피우는 건가요? 어디죠! 얼른 말해요. 당신의 그 쓸데없는 하물을 떼어 케르베로스의 먹이로 던져줄 테니까!

-아하하, 아니야 헤라... 그냥 해본소리야. 내가 그쪽으로 갈 테니 잠시 기다려!

-이 구제할 수 없는 난봉꾼이!

허공에 손사래를 치고 있던 그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눈앞에 있던 신은 사라졌다.

도로 위에 누워있던 윤중위도 모습을 감췄다.

필경 그가 데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손쓸 방도가 없었다. 압도적인 힘에 무릎 꿇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폐허가 돼버린 도시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뿐.

들어가지 않는 힘을 억지로 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소를 옮겨야 한다. 이곳은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터벅터벅 걸었다. 

얼마쯤을 걸었을까. 어디선가 또다시 잡음이 섞인 무전음성이 들려왔다.

“ 치이익- 칙- 여기는치익 - 사령부- 현 - 치이익 시간부로 무조건항복을 받아들였다. ”

아아, 그렇다. 인간은 막대한 힘을 못 이겨 굴복했다. 

문화는 앞질렀을지 몰라도 강함에서는 그들을 추월하지 못했다.

복종의 결과가 어두운 미래인지. 아니면 비호받는 안락한 삶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이다.

“ 참... ”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았다. 어느샌가 굉음은 멈춰있었다. 

“ 좆같.... ”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몰려왔다. 흙바닥에 몸을 뉘었다. 따뜻한 땅바닥이 노곤함을 촉진했다. 더는 생각이란 것을 하기 싫었다. 그대로 눈꺼풀을 감았다. 

어쩌면 긴 잠이 될 거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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