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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삼류 레이드물입니다만?

by 자사김 posted May 15, 2017 (00시 00분 53초) Replies 0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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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드물.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괴수가 인류를 공격하고, 그에 반발하듯 나타난 초능력자들이 괴수들을 잡는다. 괴수들로부터 나온 코어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써 그 가치가 급부상하고. 수요에 따른 공급이 필요하기에 헌터들은 또 다시 괴수를 잡으러 나선다. 

판타지 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이야기.

 

"대여점 불쏘시게들에서 자주 보았던 설정이었는데."

"이제는 불쏘시게가 아니라, 예언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푸핫, 맞는 말이네."

 

불쏘시게가 아니라 예언서라. 그렇게 재미있는 개그도 아니었지만 기분 좋게 취한 지금 상태에서는 꽤나 우스운 이야기로 들려왔다. 예언서라, 예언서. 확실히 맞는 말이긴 맞는 말이었다. 

헌터가 괴수를 잡아서 코어를 얻는다. 

3년 전 까지만 해도 현실에선 들을 수도 없던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달랐다. 

 

[S급 이상 반응. 근처에 있는 A급 이상의 헌터들에게 도움바람.] 

 

"하, 술 마실 땐 건드리지 좀 말지. 왜 괴수놈들은 허구한 날 지랄이야?"

"끄응. 낸들 알겠냐?"

 

마시던 술을 내팽겨치고 주머니에서 숙취해소제를 꺼내 마셨다. 괴수의 코어가 아주 소량이지만 포함된, 알콜 성분을 완벽하게 분해해주는 신제품이었다. 정말 세상이 달라지긴 달라졌다. 코어 덕에 숙취 생각도 안해도 되고 말이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는듯 고개를 내젓는 파트너, 윤한과 빠르게 대충 뒷정리를 하고서 핸드폰에 알람이 온 곳으로 뛰쳐나갔다. 고작해야 오 분 거리. 대략 알람이 뜬 이후 십 분후에 괴수가 나타나는게 정석이었으니. 아슬아슬하지만 딱 맞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이런 기능이 없어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었는데. 이제는 정말 많이 발전했다. 일반 시민들은 모두 대피한듯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차원 파장이 일어나는 곳은 여기인 것 같지?"

"아아. 그런데 주변에 다른 헌터들은 얼마 없었나보네?" 

"지금쯤 멀리서 하던거 내팽겨치고 달려오고 있겠지. 우리 둘로는 무리라는 걸 정부도 알테니까."

 

이렇게 강한 괴수가 출연 할 경우,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간에 A급 헌터 이상의 고위 헌터들은 무조건적으로 동원된다. 물론 안 올 경우에는 심각한 패널티가 부여된다. 국제적으로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정한 법이기에 그건 어딜가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나올 수 밖에 없었지만. 무언가 불안했다.

 

"뭔가 으스스하지 않냐?"

"예언서들에선 꼭 그렇게 말하면 보스몹 같은거 나오던데."

"그럼 우린 엑스트라겠네."

"그건 너고."

 

시덥잖은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대기를 하고있자. 곧이어 정상적으로 보이던 공원의 벤치가 일그러져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일그러짐이 멈추는 타이밍을 마음 속으로 세고선 화염구를 날렸다. 상당한 마나를 투자했으니 피해가 없을 수는 없으리라. 그리고 그와 동시에 뛰쳐나가는 윤환. 평소엔 멍청해보여도 나름 대한민국 탱커 중 수위를 다투는 녀석이니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이번에 나온 괴수는 어떤 타입일까.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화염구가 터지고 일어난 먼지가 바람에 휩쓸려 지나가자 그제야 윤환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만, 검? 괴수가 아니라 인간이 여기 왜 있어.

보통의 경우, 헌터를 공격하려는 인간은 단 하나 뿐이다. 헌터를 죽이고, 그 대가로 돈이나 코어를 받는 스캐빈저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괴수를 공략하려는 고위 헌터들을 노리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드문게 아니라 아예 없다.

그러면?

 

"ᚠᛟᚱ᛫ᚦᛖ᛫ᚨᛋᛏᛟᚾᚨᚲᚨ᛭!"

"뭔 개소리야?"

"ᛃᛟᚢ᛫ᛃᚢᛋᛏ᛫ᚾᛖᛖᛞ᛫ᛏᛟ᛫ᚲᚾᛟᚹ᛫ᚦᚨᛏ᛫ᛃᛟᚢ᛫ᚹᛁᛚᛚ᛫ᛞᛠ᛫ᛋᛟᛟᚾ᛬"

"한국어로 말하라고, 이런 시발!"

 

대검을 든 윤환이 장검을 든 검사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실력으로 보았을 때 최소한 검술은 일류 이상.더군다나 능력 자체도 S등급 헌터 이상으로 보였다. 문제가 있다면, 괴수가 나타나야만 할 일그러짐에서 그가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를 물리쳐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물을 들이키듯 주머니에서 황급히 꺼낸 마나 포션을 원샷했다. 아까 화염구를 쏘느라 잠시 부족해졌던 마나들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것도 코어를 갈아 만든거라서 비싼건데, 왜 이런 일에 휘말려서 써야만 하는건지. 

 

"헬 파이어!"

"기술명 외치지 말고 그냥 쏴! 거기에 헬은 무슨, 가스렌지 파이어로 개명하라니까."

 

이름만큼 거창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윤환이 무시하는 것만큼 약하지도 않은. 대략 판타지 세계관의 마법으로 따지면 8~9서클에나 등장하는 헬 파이어는 아니여도 6~7서클쯤은 될만한 폭염이 날아갔다. 윤환의 의견을 수용해서 이름을 바꾸자면 아마 익스플로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마나를 쏟아부은 한 발. 그렇게 폭발. 하지만 죽지 않은 적을 보니 내 마음은 그저 시발.

존나 비싼 마나 물약을 한 잔 더 들이켰다. 그렇게 한 발 더. 들이키고, 한 발 더. 또 들이키고, 다시 한 발 더.

 

"좀 센 마법 좀 날려봐! 내가 먼저 죽겠어!"

"내가 지금 마나 물약을 몇 개나 쓰고 있는지나 아냐?"

"누군 체력 물약 안 쓰나?"

 

그 말대로였다. 나름대로 한국에서는 최정상급이고, 세계에서도 우열을 다툴 수 있는 인재 둘이서 겨우 괴인 하나를 처치 못 하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죄책감 따위는, 뭐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느껴지지 않았다. 

안 죽이면 우릴 죽일텐데 어떡하라고. 알량한 정의는 오히려 목숨을 앗아갈 뿐이다. 

 

"제발 좀 뒤져라!" 

"ᚺᛟᚹ᛫ᚲᚨᚾ᛫ᚦᛁᛋ᛫ᛒᛖ᛫ᚺᚨᛈᛈᛖᚾ᛭ᚺᛟᚹ᛫ᚲᚨᚾ᛫ᚦᛁᛋ᛫ᛒᛖ᛫ᚺᚨᛈᛈᛖᚾ᛭"

 

그리고 마지막 한 발. 

죽을만한 고비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국 최후에 선 것은 우리들이었다. 

 

"..심장 갈라봐야 하나?"

"아마도." 

 

보통의 괴수는 코어가 심장이나, 가슴 부근에 존재한다. 그걸 구분짓기 애매한 놈은 아예 절반으로 갈라버리다 보면 나오고. 우리는 인간과 완전히 같은 얼굴을 한 놈을 해부하는 데에 역겨움을 느끼면서도 심장을 갈랐다. 아니나 다를까, 보통의 마석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의 마석이 튀어나왔다.

 

"..대박이네."

"와, 이 정도면 대체 얼마나 할까." 

 

기뻐하면서 마석을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슬슬 돌아가려고 할 때 이상한 점을 느꼈다. 왜 다른 헌터들은 지원을 오지 않았지? 분명, 권고 메시지가 헌터들에게 보내졌을텐데. 그리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보자 권고 메시지가 열 통이 넘게 와 있었다. 

 

"S등급 파장이.. 10개 이상?" 

 

거기에 지금도 속속이 지원 요청이 오고 있는 참이었다. S급 뿐만이 아니라, A급부터 F급 파장까지 모두 적어도 이백 배 이상은 늘었다. 아무리 안정화 되고 있는 참이라지만, 이백배? 

버틸 수 있을리가 없잖아. 눈 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우리는 이미 다른 S급 파장으로 지원을 나가기 시작했다. 

알량한 정의감이 자기를 죽인다더니, 우리가 딱 그 꼴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 

 

그렇게 이 년이 지났다. 

서울은 파괴되고, 대한민국은 붕괴되었다. 일반인은 모두 죽었으며, 아니. 일반인이라고 해야 하나? 적어도 예전의 기준으로 A급 이하의 헌터들은 모두 죽은 것 같았다. 지금은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예전의 기준으로 S급 이상의 헌터들.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에는, 아마 모르겠지만 EX나 SSS 정도로 이름 붙여지지 않았을까? 그러한 규율이 모두 무너진 지금은 의구심만 표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인류는 졌다. 아스토나카 대륙의 침공에 의해서 말이다. 아, 아스토나카 대륙은 괴수들이 뛰쳐져 나오던 차원에 있는 대륙의 이름이다. 거기서 차원이동 마법을 개발했다나 뭐라나. 괴수들은 그냥, 침공 전에 맛배기로 보내는. 그런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누구랑 대화하는 거지? 

 

"총도 안 통해, 이능도 우리보다 강해, 결집력도 우리보다 좋아." 

 

이길 수 없는 적. 

인류는 끝내 그들을 그렇게 규정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지만, 그들에겐 악의가 넘쳤다. 그리고 무력 역시도 독보적이었다. 이년 전, 처음으로 마주했던 상대가 그쪽 동네에선 초급 기사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넘어온 기사들 중 최고는 상급 기사였다. 

하물며 최상급 기사가 넘어온다면? 그를 넘어서서, 아예 소드마스터라는 경지에 이른 자들이 넘어온다면?

 

"힘들다, 이제는."

 

영웅이라고 불렸던, 영웅이라고 불려야만 했던 이들은 이미 아스토나카 차원인들의 손에 끔살당했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남은게 나였지만. 나 역시 윤환이 죽은 이후로는 딱히 기운이 나지 않는다. 지금 지구에 있는 인류를 모두 모아봐야 겨우 만 명이나 될까?

지구를 가장 오래 차지한 종족 치고는 허무한 종말이었다. 허구한날 자기들끼리 전쟁만 하던 종족은, 결국 타 차원과의 전쟁으로 멸망했다.

 

"이런 세계관의 소설이 있다면 분명 삼류 소설이겠지." 

 

거기에 내가 눈을 감고, 떠보니 과거라고 한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양판형 소설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이제는 지쳤어. 우연히 구한, 헌터들에게도 효과가 탁월한 극독을 물에 타서 마셨다. 와, 효과 쩌네. 바로 졸려오고. 

눈을 감았다. 다시 뜰 일이 없기를 바랬다. 기왕 누군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내가 아니라 윤환이기를. 

 

*

 

"대여점 불쏘시게에서 자주 보던 설정들이었는데."

"..불쏘시게? 잠시만, 여긴 어디야?"

"뭔 개소리야?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돌아버렸나? 우리 집이잖아."

"집? 아, 그래. 어. 그랬지. 하하하."

 

오늘따라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내 표정은 기묘하게 굳어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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