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한대

부나방

by 한세계 posted May 28, 2017 (22시 29분 49초) Replies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인디켓 참여 동의

욕심이 부른 파멸-부나방.

 

 

하아.”

새하얀 복도를 나는 서성거리고 있었다.

하아아.”

내가 바라보는 것은 대학병원 3층의 4인 병실의 문이다. 간호사들이 대기하는 데스크 바로 옆에 자리한 그 하얀 미닫이문은 조금 때가 타 있었다.

하아아아.”

나는 그 문 근처로 다가갈 자신조차 없었다. 몇 발짝 나아갔다가도 두려운 마음에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막힌 복도 끝으로. 나는 그 자리에서 한숨만 계속 내쉬었다.

하아아아아.”

다시 나아간다. 한 발짝, 두 발짝. 이제 열한 발짝만 남았다.

그러나 역시 더 나아갈 수 없다. 내게는 문을 열 자신이 없고, 그러므로 당연히 근처로 다가갈 자신도 없다. 다가갔다가 내 모습이 저 안에 비치면 어쩌지?

……. 역시 안 돼.”

나는 침통한 기분에 바닥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대로 걸음을 떼고, 복도 옆에 난 계단으로 몸을 틀었다.

 

지성.”

익숙하고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보니 그곳에는 언제 봐도 신비한 파란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가 서있었다. 신화슬. 그녀는 나를 훑어보더니 내뱉듯이 말했다.

뭐해?”

그냥…….”

그냥은 무슨……. 만난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아……. 네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 보는데. 일단 앉아. 곧 쓰러질 사람 같아. 눈물도, 가만히 있어. 내가 닦을 거니까.”

화슬은 손을 뻗어, 눈을 짓뭉갤 기세로 내 눈가를 비벼 닦았다. 화슬이 그 손을 혀로 핥더니 짜다고 인상 찡그리는 것을 본 뒤 나는 말했다.

미안, 그냥 좀……. 그냥……. , 무리인 거 같아. 미안한데 오늘은 그냥 돌아가자.”

안 돼.”

화슬아…….”

하루 늦춘다고 뭐가 달라질 거 같아? 그렇게 시간이 많지도 않단 거, 알잖아.”

그렇지만 역시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

이미 끝난 이야기를 나 혼자 붙들고 있을 뿐이야. 나 혼자. 나 혼자, 그냥.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이미 알고 있는데.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잖아? 모두에게 민폐인 게 아닐까.”

.”

화슬이 곧은 목소리로 말했다.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 말을 하지 마. 남을 핑계로 삼지 말라고.”

나는 여전히 횡설수설하는 모습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납득하든 말든. 그런 문제가 아니야. 나도 확인하고 싶어. 병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 불러보고 싶어. 그렇지만 난, 확인하고 싶지 않아. 상처받고 싶지 않아. 확인해선 안 돼.”

확인한다면 분명.

난 아마 버티지 못할 거야. 나는 알고 있어.”

그야말로, 죽어버릴 만큼.

나는 부서질 것이다.

…….”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졌다. 자연히 고개가 내려갔다. 머리는 어느새 식어있다.

신지성.”

.”

나는 너랑 싸울 생각은 없어.”

알아.”

방금 했던 말, 진심이지?”

진심이야.”

그러면 다행이네.”

화슬은 한 박자 쉬고 말했다.

병실로 돌아가.”

…….”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이어서, 낮은 웃음을 지었다.

깨지고 와. 내가 바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책임지고 회수해줄 테니까. 어서. 가라고.”

무자비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냥, 그래, 그렇구나, 생각했다.

.”

역시 너는 그렇게 말해주는구나.

정말 믿음직한 동료라고 생각했다. 나는 의식적으로 크게 웃었다.

깨지고 와라. 네가 그렇게 말해준다면, 깨지고 오겠다.

……고마워.”

앞장서.”

나는 그 4인 병실을 향해 걸음을 뗐다.

 

나는 고아였다.

자랄 때 이미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없었고, 나라의 관리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거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바라지 않는 법이다. 나는 부모님이 없어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부모님이 나타나도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 세상에 평범하지 않은 현존재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얼떨결에 그 이상자異常者들을 억제하는 세력에 소속 당하게 된 후.

풋내기답게 쉬운 임무만 여덟 건 처리하고 난 후.

커다란 악이 내게 찾아왔다. 진정한 정의의 투사를 자칭하는 초능력자, 코드네임 다우트.

놈은 개인시간을 보내고 있던 내게 찾아와, 나의 부모님을 구속하고 있으니 자신의 조직에 들어오라고 말했다. 나는 부모님을 알지도 못하고 답했으나, 놈은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그게 뭐 어쨌는데? 너는 친부모의 죽음을 모른 체 하는 패륜아가 될 건가?”

물론.

나는 그 말에 솎아 넘어가지는 않았다.

않았지만.

놈에게 빠큐를 날려준 뒤 사건을 보고하고 나서, 며칠 뒤, 나는 다음과 같은 통보를 받았다.

다우트는 정말로 나의 친부모님을 구속하고 있었다. 조직은 그 두 사람을 구하려 했으나,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도 중상을 입었다. 더불어, 그녀는 병을 앓고 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부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부모란 무엇인가. 나를 버린 존재? 아니, 무언가 사정이 있었겠지. 무슨 사정이? 어쨌든 분명한 건 그쪽이 먼저 날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나도 찾아가지 않는 게 옳은 논리일까? 하지만 찾아가서, 대체 뭘 한단 말인가. 그런 일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무슨 의미가.

조직에서는 나의 친부모에 대한 정보가 적힌 서류를 건네줬다. 찢어서 버렸다. 그들에 대한 건, 이미 알고 있다.

이미 예전에, 원장선생님께 들은 바 있었다.

삶이 고달팠을 뿐 착한 사람들이라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사람다운 사람들이라고.

……그런 사람들이 왜?

왜 나만 내버려두고 살아갔단 말인가.

강한 의문이 찾아왔지만 인자한 얼굴의 선생님께는 물을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예상했던 대로의 지옥이었고, 지옥은 예상보다 버거웠다.

저기…….”

…….”

저기요.”

날 찾아온 건가요?”

.”

사진으로 본 것보다 노쇠한 모습이었다.

누구신데요?”

…….”

, 잘못 찾아온 거 아닌가요?”

아뇨.”

머리가 새하얘지고 있다.

아뇨. 제 이름은 지성입니다.”

…….”

제 이름은…….”

미안해요. 모르는 이름이네요.”

아무런 악의도 저의도 없는 얼굴이었다.

……저는.”

말이, 시선이, 마음이 일렁인다.

저는.”

말해야 할까. 굳이 말해야 할까. 꼭 말해야 할까. 나는 그저 멍하니 서있고 싶었다. 멍하니 서 있다가 어느 순간 타임아웃이 찾아와서, 이 모든 상황이 끝난다면.

하지만 상황은, 행동해야만 끝나는 것이다. 나는 문득 문 너머에서 화슬의 그림자를 보았다.

저는 당신의 아들이에요.”

나의 어머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아이가 없어요.”

그 순간, 나의 일부분이 잘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

어머니에게 정신적 장애가 있다거나, 치매가 있다거나,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머니가 나를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혹은, 평범하게 나를 잊어버린 것이었다.

……. 사람을 착각했나보네요. 죄송합니다.”

나는 이만 포기했다.

어머니.”

포기했다.

찾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마음이 타들어가서, 하얗게, 새하얗게 재가 되어가는 것을 나는 느꼈다.

병실 밖의 화슬이 나를 맞았다. 나는 웃었다. 생각보다 유쾌한 목소리가 나왔다.

내 욕심이 너무 컸나봐. 기억도 못한데.”

기억 정도는, 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구나.”

화슬은 그런 나를 안고는 물었다.

아파?”

아파.”

죽고 싶어?”

…….”

화슬은 품에서 나를 놓아주고,

……바람 쐬러 가자.”

재가 된 나의 손끝을 화슬이 잡아, 이끌었다.

  • profile
    Novelic 2017.05.28 23:20

    오타 [물론. 나는 그 말에 솎아 넘어가지는] → [속아]
    부모 없이 성장한 '나'는 부모를 외면하고 싶어도, 결국에는 자신의 친모에 대한 끌림을 참지 못합니다. 그 끝은 차라리 무관심했으면 몰랐을 상처 밖에 없었습니다. 화슬은 살짝 등을 떠밀고, 되돌아온 '나'를 받아주었을 뿐입니다. 친모에게 찾아간 건 '나'의 의지였고, 혹여 어머니의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해도 '나'에게 구원은 찾아오지 않았겠죠. 그건 '나'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 대한 끌림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제목과 맞물려서 참 씁쓸한 결말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라한대

라이트노벨 1시간 쓰기 대회. 구글 크롬/파이어폭스 최적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라한대 공지 이제 텔레그램에서도 알림을 받으세요! file Admin 2017.01.19 118 1
공지 라한대 공지 라한대 주최자 분에게 건의사항 드립니다 4 Admin 2016.08.14 334 0
공지 라한대 공지 라한대(라이트노벨 1시간 쓰기 대회) 공지사항 - 대회신청은 여기 댓글로! 172 file 수려한꽃 2012.06.02 85955 6
2293 라한대 공지 6월 11일 라한대 마칩니다(감평) 한세계 2017.06.12 64 1
2292 라한대 [라한대] 데이트립 AERO 2017.06.12 32 0
2291 라한대 [라한대]일곱번째 날 날개달린망상 2017.06.12 25 0
2290 라한대 망상 산바람 2017.06.12 14 0
2289 라한대 한 처음에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다 네크 2017.06.12 28 0
2288 라한대 [라한대] 자동인형 라즈벤더 2017.06.11 21 0
2287 라한대 사람이 만들지 않은 세계 불고기의반대말은물고기 2017.06.11 25 0
2286 라한대 [라한대] 태양룡 낸시 2017.06.11 18 0
2285 라한대 [라한대] 썩은 사과 삼치구이 2017.06.11 35 0
2284 라한대 [라한대] 나비잠 킹갓초원 2017.06.11 17 0
2283 라한대 [라한대] 에코-1 프라마나스 2017.06.11 29 0
2282 라한대 공지 6월 11일 라한대 시작합니다 한세계 2017.06.11 50 0
2281 라한대 공지 5월 28일 라한대 닫습니다. 1 Novelic 2017.05.29 111 0
2280 라한대 오줌 1 華謙 2017.05.28 61 0
2279 라한대 [라한대] 이상적인 사람 2 루시머 2017.05.28 79 0
2278 라한대 [라한대] 광인 1 으렘 2017.05.28 54 0
» 라한대 부나방 1 한세계 2017.05.28 87 1
2276 라한대 욕구 1 네크 2017.05.28 59 0
2275 라한대 [라한대]파트라 2 라즈벤더 2017.05.28 59 0
2274 라한대 원숭이 2 1590 2017.05.28 57 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5 Next
/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