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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이상적인 사람

by 루시머 posted May 28, 2017 (22시 31분 42초) Replies 2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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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얕봤을지도 모른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항상 못 했던 일을 지금이라고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무슨 생각이야? 뭘 기대했어? 이렇게 될 건 알고 있었지? 부들부들 경련하는 왼손 밑에 가려진 오른손이 허벅지 사이를 긁었다. 손가락을 멈출 수가 없다.
이게 아닌데. 손가락 말고 고개를 저어야 해. 난 이런 걸 원하지 않았어. 하지만 근육이 뇌의 신호를 차단한 것만 같았다. 머리만 열심히 돌아가고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 그럼 어디 중학교 나왔어? 난 인수중 나왔는데!”
 
그녀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게 딱히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목소리에는 아무 감정이 묻어있지 않았다.
그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나를 해칠 의도가 없다.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좋아해야 해? 모르겠다. 손가락은 더 빠르게 움직였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조율이 되지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말을 해보고 싶었다. 친구가 되지는 못할 테니까 가끔 대화 정도나 하는 정도의 관계를 원했다. 충분히 할 만한 시도니까. 그렇게 나를 속였다.
 
“왜 그래?”
 
이미 나는 그게 불가능할 거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시도했던 것이다. 경험으로 알고 있다. 말도 제대로 못 걸고, 얼어붙어서는 슬슬 떨기나 하는 놈에게는 무리다. 애초부터 나를 믿지 않았다. 나는 이 여자애한테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내 마음 속에서 멋대로 이 여자애를 이렇게 재구성했다.
그녀는 친절하다. 그러니까 나를 받아줄 수 있어. 그녀는 인내심이 깊어. 그러니까 나를 기다려줄 거야. 분명 사려 깊겠지! 그러니까 뭐든지 이해할 수 있어!
 
“너 좀 이상해.”
 
그렇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이상형 따윈 내 꿈 속에서나 찾을 수 있겠지. 나라도 나를 보면 이상할 거야.
엉킨  실타래 같은 찐뜩한 감정이 나를 감쌌다.
 
“미안, 잠깐만.”
 
다른 사람이 그녀를 불렀다. 나는 우선순위의 저 아래에 있었다. 즉, 내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나를 피해자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누구는 나를 하면 되는 아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해버렸다. 결과는 내가 가만히 있는게 더 도움 되는 가해자라는 것을 알려줬다. 괜히 혐오감과 꺼리낌만 안겨주었으니까. 그냥 혼자 엎어져 있자. 그냥 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자. 그게 그나마 좋은 선택일 거야.
 
“왜 그래? 괜찮니?”
 
깨끗한 목소리가 울렸다. 가만히 있었다. 누구도 저런 목소리로 나에게 말 걸 리 없었다.
잠시 뒤, 누군가 나를 건드렸다.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다. 청량감이 도는 여자애였다. 이 애도 나를 싫어하겠지? 못 참겠다고 생각하겠지?
 
“그, 어… 그게…”
 
그녀는 나를 부드럽게 응시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표현 같았다. 나는 계속 뜸을 들였지만 그녀는 그렇게 계속 나를 보았다. 몇 분이 더 흘러, 교실로 몇명이 더 들어와 의자가 가득 찰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자, 33명 전부 모였네. 내가 니네 담임 이민하다.”
 
그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지막 용기를 내어 의문을 던졌다.
 
“34명… 아닌가요?”
 
무슨 소리냐는 듯 했다. 선생님의 표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 한 명 더 있잖아요.”
 
“뭐?”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 ?
    루시머 2017.05.28 22:34
    (이미 지각한 분충입니다)
  • profile
    Novelic 2017.05.28 23:38
    후웁쓰... 이 글을 읽고 숨이 가빠졌습니다.. 기억 폭력에는 기억 경찰을 부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이 글의 '나'는 사실 욕심이라고 해봤자 의심스러운 걸 못 참아서 용감하게 손을 든 죄 밖에 없습니다. 그 댓가는 아마 최소 '컨셉충'이겠네요. 아무쪼록 슬기롭게 신학년 신학기의 위기를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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