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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나비잠

by 킹갓초원 posted Jun 11, 2017 (21시 58분 10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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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켓 참여 동의

 

 

 

사람이 만든 세계나비잠.

 

 

 

──몽롱한 정신 일어나지 않는 눈꺼풀,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무심함. 천천히 일렁이는 몽상의 끝에 난 익숙한 행동을 취했다.

오른손 중지를 잡고 뒤로 쭉 늘리는 행동. 놀랍게도 중지는 손등에 닿을 정도로 구부러져 몹시 기괴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오늘도 성공.”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나만의 세상. 내 모든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찾게 되는 이 꿈이 어느덧 나의 모든 관심을 아우르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손끝으로 바라기만 하면 구름도 잡을 수 있는 신비로운 나만의 세계. 자각몽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이 나의 인생의 낙이 되어버렸다.

오늘로 자각몽을 시작한지 벌써 1년은 된 것 같은데.

미래야, 오빠 왔어. 이제 나와.”

오빠!”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이곳에는 나 이외의 사람을 한 명 더 초대할 수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 달려드는 하얀 머리의 소녀.

허공에서 갑자기 형태를 이루더니 달려든 소녀의 얼굴은 오늘도 새삼 아름다워 감탄이 나왔다.

기다렸어! 빨리 오늘은 구름 가지고 놀자!”

티 없이 맑은 미소가 어울리는 이 소녀의 이름은 미래. 삶의 어두움이나 암울함은 모두 날려버리는 그 미소에는 미래란 이름이 잘 어울렸다.

미래야, 천천히 가. 내일은 휴일이니까 오빠가 오래 놀아줄 수 있어.”

안 돼! 미래는 이제 시간이 없단 말이야!”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팔을 잡아당기는 미래의 모습은 귀엽게만 보인다.

오늘로써 10살이 되는 내 소중한 동생 미래. 언제부터 자각몽을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기는 확실히 기억한다.

몸이 약해 밖으로 나가기 힘들어하던 미래를 위해 내가 생각해냈던 방법, 자각몽.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미래와 함께 보내고 싶다는 일념으로 시도했던 이 행동이 이제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부분이 돼버렸다.

오늘은 구름으로 성을 만들 거야!”

나이에 비해 성장이 조금 더딘 미래의 모습이지만 그 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오직 상상력 하나에 의존해 하늘에 펼쳐진 구름을 모아 성을 쌓기 시작하는 미래의 모습. 현실에서 카메라에 담아 평생 보관하고픈 광경이었다.

오빠도 빨리 만들어. 오늘은 안 질 거야!”

그래? 하하, 그럼 오빠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즐겁다.

미래와 함께하는 지금이 영원토록 계속됐으면 하고 느끼는 현재. 할 수만 있다면 지금부터 며칠 동안이든 잠에 빠져 미래와 놀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구름을 가지고 열심히 성을 만드는 미래는 당장의 시간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 이제…… 완성! 어때? 오늘은 미래가 만든 게 어제 오빠가 만든 것보다 훨씬 더 크지?”

현실에서는 절대로 이루어질리 없는 일이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미래는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평소 꿈꿨던 모든 이상을 지금 이곳에서 이루는 일.

거기에는 나도 이제 변명의 여지없이 빠져버렸다.

누가 마다할 수 있겠는가.

부모란 인간들은 자식들도 버려둔 채 새로운 사랑을 찾겠다며 집을 나갔고, 태어나면서부터 백혈병을 앓은 미래를 돌봐야만 했다.

미래를 보살피는 건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도 몸은 너무 지쳐버렸다. 학교도 그만두고 미래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되는 일이라곤 닥치는 대로 손을 뻗었다.

삶의 목표와 의식이 흐릿해질 무렵, 자각몽이란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나는 살아갈 의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

아니겠지.”

문득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고 이를 지켜보던 미래가 잔뜩 토라진 얼굴로 볼을 부풀리고 다가왔다.

오빠! 미래랑 빨리 더 많이 놀아줘! 미래는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

, 미안.”

헌데 오늘 미래의 행동이 이상하다.

평소에도 떼를 쓰긴 했지만.

그래도 미래야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렇게 급하게 굴어.”

시간이 없어!”

아직 적어도 6시간은 남았잖아. 그것도 부족해?”

……오빠는 아무것도 몰라.”

.”

미래는 기어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내 행동이 까칠했던 걸까. 아니면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평면적이었나.

미래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알기에 난 문제를 스스로에게서 찾았다.

내 고민이 조금 길어지자 눈물을 보이던 미래는 쌓아올렸던 구름 너머로 훌쩍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크게 화를 내는 미래는 처음이다.

그 아프다던 골수주사를 맞고도 오빠를 원망하지 않는다며 꼭 안아주던 미래인데.

일단은 쫓아가보자.

미래야!”

미래가 만들었던 성을 넘어 나도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허공을 떠다니는 부유감. 썩 나쁘지 않는 느낌이 몸에 감돌았지만 이를 만끽할만한 여유는 없었다.

미래야!”

저리 가!”

구름 틈새로 몸을 욱여놓고 있는 미래를 찾았다.

고개를 무릎에 붙이고 이쪽을 보지 않기 위해 등을 돌린 모습. 이유는 몰라도 미래가 잔뜩 화가 났다는 사실은 알 수 있다.

오빠 보기 싫어! 미래가 어떤지도 모르고…….”

그게 무슨 소리야, 미래야. 오빠는 미래를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미래가 제대로 오빠한테 얘기해주지 않으면 오빠도 어쩔 수 없어.”

…….”

오빠는 미래랑 놀고 싶어. 하루 중에서 제일 기대하는 시간이 지금인데 미래가 이렇게 오빠 얼굴도 안 보고 그러면 오빠도 슬프단 말이야.”

……오빠, 슬퍼?”

슬쩍 고개를 들어 올린 미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웅크렸던 팔을 풀고 슬쩍 일어난 미래가 내 쪽으로 팔을 벌리고 다가왔다.

미안해, 오빠.”

아니야, 미래 맘도 몰라준 오빠가 미안하지.”

허리를 숙이자 내 목을 감싸 안으며 훌쩍이는 미래. 자기도 화를 내서 미안했다는 의사를 이렇게 표현하는 어리숙하고 귀여운 소녀였다.

감정에 서툴고 저도 모르게 격해지는 감정을 표출하고서 또 후회하는 아이.

어릴 적 나를 보는 것 같아 왠지 서글픈 바람이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럼 미래는 이제 어떻게 하고 싶어? 오빠랑 얘기할까? 아니면 오빠랑 계속 놀까?”

놀고 싶어.”

하하, 그래. 이번엔 오빠가 뭐하고 놀지 골라야지.”

작은 몸으로 힘겹게 안겨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미래.

분명히 눈물 때문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다.

이런 때는 미래를 위해서 미래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를 해야겠지.

이제부터 미래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놀이를 시작하겠습니다!”

인형? , 미래도 만들 거야!”

그럼 지금부터 시작!”

다행히도 어색했던 공기도 잊고 미래는 새로운 놀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평소 가지고 싶었던 인형을 오직 상상력을 이용해서 만들고 그걸 가지고 서로 소꿉놀이를 하는 것. 미래도 여자애인 터라 이런 놀이를 정말 좋아한다.

내가 만든 못생긴 인형을 보고 미래가 웃기도 하고, 내 아빠 역할을 보던 미래가 화를 내기도 하고, 자기가 좋아했던 인형을 가지고 놀며 신나게 목소리를 바꾸기도 하면서.

평소대로의 꿈을 꾸며 미래와의 시간을 보냈다.

이후에도 건물을 만들거나, 우주로 가거나, 동물들을 만들어 함께 뛰어놀면서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는 만족스러운 시간이 어느덧 끝을 향했다.

마지막 놀이 정하기 순서네. 오빠가 하고 싶은 놀이는…….”

오빠, 마지막 놀이는 미래가 정해도 돼?”

미래가 정하고 싶어?”

.”

자기가 하고 싶었던 놀이를 하면 다음 놀이는 반드시 다른 사람이 정한다.

미래와 조금이라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미래가 토라지지 않도록 정한 규칙이었는데, 오늘의 미래는 역시 뭔가 이상했다.

슬그머니 이상한 오한이 목을 타고 흘렀으나, 그래도 기우이겠거니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래, 그럼 오빠가 양보할게. 미래는 뭐가 하고 싶어?”

우리 숨바꼭질하자.”

숨바꼭질?”

여태 무궁무진한 놀이들을 해왔던 미래의 입에서 나온 숨바꼭질이란 말이 꺼림칙했다.

내가 숨바꼭질을 하자고 했을 때, 그때 미래는 분명히 하기 싫다고 온갖 떼를 쓰며 소리를 질렀는데.

미래는 숨바꼭질 싫어하지 않았어?”

싫어했는데……. 마지막은 이걸로 끝내고 싶어.”

그렇구나. 알았어, 오빠가 처음에 술래 하면 되지?”

이제 일어날 시간이 가까워졌으니 술래잡기를 끝으로 나는 잠에서 깨어날 거다. 아쉽긴 해도 재밌게 놀았으니 됐다.

난 숫자를 세기 위해 눈을 감고 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오빠.”

그런 내 몸을 작고 여린 손으로 잡는 미래.

미래야,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오빠가 잡아버릴 거야!”

오빠, 미래 얼굴 한 번만 봐줘.”

잠깐 타임이야? 하하, 알았어.”

미래는 힘없이 이쪽을 응시하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평소 지었던 맑고 청아한 미소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농후하고 왠지 모른 서글픔을 간직한 미소.

오빠는 미래가 없어도 슬프면 안 돼. 그리고 미래를 잊지 마.”

대체 무슨…….

이제 시작하자, 오빠. 숫자 세는 거야.”

, 알았어, 미래야. 이제 숫자 센다. 하나──

귀에 울리는 미래의 발소리.

두울──

일관된 걸음으로 멀어지던 발소리는 갑자기 느려졌다.

세엣──

그리고 허공에서 잠시 떠도는 숨소리.

네엣──

……모든 소리가 일순 사라졌다.

……? 미래야?”

숫자를 다 세기도 전에 이상한 감각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미래가 걷는 소리를 아주 크게 들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피니 주변엔 그 어떤 인기척도 없었다.

밝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피어오르던 꿈.

이 적막함이 그 어떤 현상보다 어색했다.

미래야? 미래야! 어디 있어, 미래야!”

불안감은 순식간에 목까지 차올랐다.

숨바꼭질 동안 하늘을 나는 게 반칙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날아올랐다. 미래가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해 꼭 필요한 행동.

그러나 어디를 살펴보고, 또 찾아봐도.

미래의 흔적은 깔끔하게 사라져있었다.

────.”

 

 

──삐이, 삐이.

귀를 시끄럽게 찌르는 소리. 무겁게 감겼던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온통 백색으로 도배된 병원 천장을 쳐다봤다.

얼마나 잠을 잔 거지.

빨리, 7호실에 있는 백혈병 환자의 호흡이 이상하다! 일단 호흡기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

삐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박동이 완전히 정지했습니다. 호흡도 이미 몇 분 전에 완전히 멈췄고. 원인은 쇼크로 인한 심정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감을 잡지 못했다.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과 백의를 입고 미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눈은 모두 나를 향해 슬픈 동정을 품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 아아아아아아────.”

미래가 마지막에 남기고 떠난 잊지 말라는 말의 의미.

아아아아아아아아!!”

미래가 계속 강조했던 시간이 없다는 말의 의미.

으하아아아아!!”

미래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미래야, 미래야, 미래야────!!”

아무리 불러 봐도 미래는 이제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는다.

남게 되는 조금의 시간도 아까워 나와의 시간을 더욱 소중히 하고, 더 빨리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미래의 생각과 노력.

이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늦어있었다.

피래가 없어도 슬프면 안 돼.’

벌써 사무치게 그리운 이름을 연신 되뇐다.

미래, 내 사랑스러운 동생 미래, 누구보다 아름답고 예쁘고 착했던 미래, 내 전부를 바쳐도 아깝지 않았던 나의 동생 미래.

그리고 미래를 잊지 마.’

이별은 예기치 못하고.

세상을 원망하고픈 마음만을 남긴 채.

미래란 이름의 행복을 내게서 갈라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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