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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들지 않은 세계

by 불고기의반대말은물고기 posted Jun 11, 2017 (22시 56분 46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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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가 아파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생각했다. 다음에 올 말은 과연 무엇인가. 더 이상 지구가 아프지 않게 하자는 내용? 더 이상 환경을 오염시키지 말자는 내용? 물론, 이 말들이 오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옳은 말이다. 환경 문제가 대두화 되고 있는 지금, 환경 파괴를 막자는 의견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실로 당연한 소리다. 나도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지구, 우리의 손으로 가꿉시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사는 지구를 아프게 한 건 다름아닌 우리지 않나? 우리가 이렇게 만들었으면서 이런 소리를 할 자격이 있나? 그리고 이 의문을 시작으로 환경 오염, 환경 파괴에 대한 나의 인식은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환경 오염을 막자는 이야기는 실로 정상적이며, 지극히 당연한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왜 이런 느낌을 느끼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지구를 아프게 만든 장본인은 우리나 마찬가지인데도 이제와서 지구를 아프지 말자고 하는 게 염치없어 보이고, 어이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래서는 마치 학교의 한 아이를 왕따 시켰는데, 갑자기 괴롭히지 말라고 하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그 아이를 괴롭힌 건 우리임에도 말이다.

  그 아이를 처음 괴롭히기 시작한 사람이 자신을 따라 같이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왕따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라며, 괴롭히는 행동을, 왕따 시키는 행동을 그만두자고 하면 어이없지 않겠는가. 괴롭힘을 시작한 건 바로 그 아이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아이를 따라 같이 괴롭히던 아이가 그의 말에 동조한다면 어떤 느낌이겠는가. 마치 환경을 오염 시켰던 사람이 더 이상 오염 시키지 말자고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지 않겠는가.

  물론 왕따를 시키지 말자, 괴롭히는 짓을 하지 말자는 생각은 매우 당연한 생각이다. 만약 왕따 가해자였던 아이가 피해자의 기분을 이해하고 마음 속에서부터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라면, 매우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그 아이가 선생님에게 이를 것을 걱정해서 그만둔 것이다. 우리는 그 아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우리에게 복수하는 것이 두려워 그만둔 것이다. 우리는 그 아이가 심부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쳐 더 이상 부려먹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만둔 것이다.

  우리는 지구가 아파하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환경 파괴를 막자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환경 파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서 그만 두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환경 오염이 심각해지면 더 이상 지구를 이용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파괴를 막자는 것이며, 환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가 사는 것이 불편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해결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아파하는 지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우리에게 피해를 낄칠 것만을 우려했었다. 우리가 불편할 것만을 신경썼었다. 우리가 편해질 방법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없이 이기적인 동물이다.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것만을 신경쓰던 정치인과 같을 정도로 이기적인 동물이다. 지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지구는 우리가 편한대로 쓸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지구는 단순한 지구다.

  만약 우리에게 지구라는 편한 물건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지구가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 오염이 심각했으면 어땠을까. 가차없이 지구를 내팽겨 치고 화성으로 이주를 갔을까? 제 2의 지구를 찾아 우주 저 멀리 여행을 떠났을까? 기존의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지구를 만들었을까? 우리에게 그 어떤한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새로운 괴롭힘의 대상을 만들 수도 있는 것도 아니며, 새로운 대상을 찾아 전학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구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만들 수 없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지구 위에서 우연히 생겨난 존재일 뿐이다. 사람은 지구를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없고, 힘도 없다. 사람은 지구를 만들 수 있을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지구는, 세계는 사람이 만들지 않았다. 세계는 자기가 쓰고 싶을 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세계는 쓰기 힘들어 졌다고 쉬이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세계는 더러워 졌다고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세계는… 세계는 사람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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