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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데이트립

by AERO posted Jun 12, 2017 (00시 37분 58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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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년.”
 위버가 그녀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말할 때는 중간을 살짝 늘어뜨려, 비꼬는 억양을 넣어주는 게 포인트였다.
 위버 나름대로는 애정의 호칭이라 생각했다. 물론, 당사자는 질색했다.
 “뭐어?”
 역시나 당사자는 조금도 좋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점에서 위버는 조금 슬펐다. 왜냐면 이 이상의 별명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인도 그걸 인정해야 했다.
 세실은 짐짓 화를 숨기는 채 하며 말했다.
 “흠! 하지만 오늘은 다 용서해주지. 저기 봐 위버! 영화관이라고! 영화관!”
 “그렇군.”
 ‘그렇고말고’ 위버는 생각했다. 역시 촌년만한 별명이 없었다.
 벌 건 대낮에 고개를 처 들고 이리저리 살피는 세실을 보며, 혹 아는 이라도 만난다면 위버는 자신이 더 부끄러워질 것 같았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 백악관? 박물관?”
 “호텔.”
 “저질.”
 딱 잘라 대답이 돌아왔다.
 쉬고 싶다는 뜻이었건만! 위버는 뒤늦게 전달에 심각한 실수가 있었음을 인지했다. 그는 헛기침을 섞어 정정했다.
 “그럼… 링컨 동상.”
 “어? 너치곤 재미없는 곳을 골랐네?”
 “이래도 사학과라고.”
 “하하! 뭐야 그게? 좋아. 보러 가자.”
 기분이 업 된 탓에 정말로 어떤 것도 다 좋은 건지, 세실은 폴짝폴짝 뛰어갔다. 짐짓 재미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 여행을 즐겨주는 그녀를 보며, 위버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단 둘이 오자고 하길 잘했네.”
 “응?”
 목소리를 들은 건지 세실이 멈춰 섰다.
 “너 진짜 촌년 같다고. 좀 얌전히 걸어.”
 “싫거든! 꼰대!”
 꼰대는 세실이 그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 점이 위버는 다시 한 번 슬퍼졌다.

 


 “잘 만들었네.”
 링컨 동상을 앞에 두고, 위버가 중얼거렸다. “우리 마을에 있는 게 더 낫지 않아?”
 “아냐. 이렇게 ‘문명’이라는 걸 세삼 느끼게 해 주는 게 난 좋아. 때로는 기술이나 솜씨 그런 것보다도, 그 안에 들어있는 자긍심이 더 중요할 때가 있지. 이건 그걸 한 번에 표현해주잖아. 오! 위대한 조국이여!”
 “와…… 영감탱이가 따로 없네. 아! 나 알아. 꼴통이라고 하는 거지? 트럼프던가?”
 “…….”
 “근데 좀 출출하네. 뭐 좀 먹을래? 망고 후르츠 블라스트 어때?”
 “마, 망 뭐?”
 “훗! 촌스럽긴. 마앙고 후르츠 블라스트! 너 서른하나 맛 아이스크림도 모르지?”
 “뭘 섞어야 서른한 가지 맛이나 나냐?”
 “이래서 초짜는 안 돼.”
 세실이 고개를 저었다.
 “따라와! 널 신세계로 인도해주마!”
 또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그녀는 그를 질질 잡아끌었다.
 뭐가 그녀를 이리 활기차게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정도는 맞춰주자고 위버는 생각했다.
 손에 끌리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석상을 보았다. 오른쪽 어깨에 터줏대감인 것 같은 비둘기 하나가 내려앉았다. 빛을 투영하지 않은 비둘기의 세 눈동자는, 무감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한적했다.
 세실은 눈을 반짝이며 아이스크림 진열대로 달려갔다. 위버는 매장 인테리어를 둘러보았다. 매장 내에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비치되 있었는데, 그냥 장신구에 더해서 이런저런 소원을 적은 쪽지가 묶여 있었다.
 “사연을 뽑는 이벤트라도 하나보네.”
 “오! 재밌겠다.”
 세실이 금세 다가왔다.
 “서른한 가지나 된다며. 벌써 구경한 본 거야?”
 “힝. 남은 게 얼마 없어.”
 아쉽게도 서른한 가지나 맛이 나는 음식을 먹을 일은 없겠구나, 하고 위버는 안심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손에 하나는 들지 그래?”
 “그럴까?”
 세실은 다시 카운터를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바쁘네.”
 위버는 웃음이 나왔다. 세실이 서른한 가지의 뭔가를 고를 동안 그는 트리에 달린 소원 쪽지들을 이리저리 들춰보았다.
 트랜스포머를 바람.
 복권 당첨.
 둘째의 무사 출산.
 사업 번창.
 에메랄드 비치 해변으로 해외여행.
 한정판 굿즈 획득.
 병 쾌유.
 남편의 사망, 보험금.
 “바람직한 바람들이 많군.”
 위버는 중얼거렸다. 그러다 무척 눈길이 가는 쪽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
 그 쪽지를 보자 위버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때였다.
 “위버! 이것 봐! 좋은 기념품 득템한 것 같아.”
 세실이 소리쳤다. 그녀는 핑크색 모자를 들고 있었다.
 “이거 여기 유니폼 모자야! 정말 봤던 거랑 똑같이 생겼어!”
 별 거 아닌 걸로 좋아 호들갑 떠는 그녀를 보며, 위버는 세삼 자신의 감정을 다시 느꼈다.
 “정말, 촌년.”
 취향저격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세실이 물었다.
 “어땠어? 인간이 만든 세계는?”
 위버는 어깨를 으쓱이고 대답했다.
 “생각보다 괜찮더라.”
 “만약 멸망하지 않았다면, 교류할 수 있었을까?”
 “원인이 전쟁이라면서? 모르지. 새워놓은 문명이야 볼만 했지만, 그렇게 호전적이어서야 말이나 통했겠어?”
 “그래도 모르잖아? 그쪽도 우리처럼 단 둘이 여행도 즐기고 했을지 말이야.”
 “그럴까나?”
 위버는 아까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챙겨온 쪽지를 손 안에서 굴렸다. 그리고 슬그머니 웃으며 말했다.
 “그랬을 지도 모르지.”
 “뭐야? 엄청 귀찮아하더니. 나름 느낀 건 있나봐?”
 “그 큰 도시도 아무도 없으니 쓸쓸하기만 하더군. 그 정도?”
 “아…… 그건 나도 동감이야. 역시 흔적만 남았다는 건 좀 슬퍼.”
 “하지만 그래도 우린 둘…….” “아! 워프 게이트 활성화 됐다.”
 위버의 마지막 말은 세실의 외침에 묻혀버렸다.
 “미안, 무슨 말 했어?”
 “……아니.”
 위버는 얼른 출발 버튼을 눌렀다. 우주선이 떠오르며 차원이동 준비를 했다.
 이 별을 떠나며, 위버는 마지막으로 이 넓은 우주에서, 심지어 서로 다른 행성의 이와 소원이 같을 수 있다는 것에 어떤 작은 감탄을 하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쪽지의 문구를 되뇌었다.

 

[그녀와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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