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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헛소리꾼 이야기

by Wcipe posted Jun 28, 2017 (00시 46분 30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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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001. 귀신의 집 (1)


   얼마나 잤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눈을 떴는데 그곳이 자신의 침실이 아니라면,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더불어, 불안한 상상까지 들기 시작한다.  자신이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면, 그것은 곧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로 치닫는다.


   그곳이 관을 연상시키는 좁고 밀폐된 공간이라면, 불안한 상상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머리 속이 '생매장'이라는 단어로 가득 차고, 패닉에 빠진다. 자신이 자는 사이에 납치되어 생매장 당할 정도로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짓을 했었나 하는 생각부터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상상이 상상을, 공포가 공포를, 절망이 절망을 낳는다.


   누가 그랬던가, 가장 강력한 감정은 공포이며,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에 대한 공포라고.


   그래도,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 보다는 빨리 정신을 차린 편이었다.


   절박함으로 가득한 몇번의 히스테릭한 몸부림 끝에, 그녀는 적어도 자신이 최악의 상황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인지 뭔지, 하여튼 그녀를 가두고 있는 장소의 안쪽은 지나치게 좁지는 않았고, 그녀의 몸도 묶여있지는 않았다. 길이도 그녀의 키보다는 꽤 길었고, 어떻게든 애쓰면 팔을 머리 위로 올릴 수도 있을 정도였다. 꽤 오랫동안 신경질적으로 움직이며 호흡이 거칠어졌지만 산소가 고갈되어 가는 느낌은 없었다. 뭐, 옷도 그래로 입고 있는 듯 했고.


   다소 이성을 되찾은 그녀는 그나마 손에 닿는 벽면을 손으로 훑어보았다. 안쪽은 매끄러운 금속처럼 느껴졌고, 벽면과 바닥면 사이에 유격이 있었다. 이 시점에서, 그녀는 자신이  관에 갇혀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다. 보통 관에 사람을 묻는다면 굳이 등이 위로 가게 관에 넣지는 않을테니까. 아니, 설령 그렇게 묻는다고 해도 굳이 관 뚜껑이 아래로 가게 해서 묻지는 않을 터였다. 


   어쩌면, 이게 뚜껑이 아닐수도.


   생각을 정리한 그녀는, 일단 벽을 한군데씩 밀어보기로 했다. 적어도 위쪽이나 아래쪽은 아니었다. 그 쪽이었다면 처음 몸부림치며 미친듯이 천장을 밀어낼 때 이미 뭔가 움직임이 있었을 터였다. 그녀는 침착하게 가능하한 최대한 팔을 벌려 양쪽 벽을 밀어보았다. 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뭔가를 찍으면, 항상 가장 마지막에 고르는게 맞는 답이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아예 답이 없었던 걸지도. 그녀는 설마 진짜로 그렇지는 않기를 빌며,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시도해 보지 않은 방향으로 힘을 주었다.


  낑낑대며 팔을 머리 위로 올려 머리쪽 벽을 지지하고, 발로 아래쪽을 밀었다. 처음엔 미동도 없었지만, 밀다 못해 다리를 살짝 굽혔다가 걷어 차듯이 두드리니 반응이 있었다. 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살짝이지만 발쪽 벽이 움직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발 쪽 벽과 바닥이 함께 움직였다. 이런 식으로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그녀는 조금 놀랐다. 


  그녀의 머리 속에 이 공간의 구조가 대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다리를 굽히고, 걷어 차고, 팔을 펴고, 힘주어 밀고, 조금 쉬었다가, 다시 다리를 굽히고, 다시 걷어 차고. 이 과정을 거치며 그녀의 머리 속 구조도는 점차 구체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어쩌면 이게 관보다 더 악취미적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서랍이었다. 금속 재질의, 레일 부분이 심각할 정도로 녹슨 것 같이 뻑뻑한, 그리고 사람 하나쯤 들어갈만한 구조의 서랍. 게다가 평범한 서랍과는 다르게, 안에 든 물건이 떨어지지 않게 받쳐줄 벽 부분이 없었다. 그녀는 이런 구조의 서랍은 단 한 곳에서 밖에 보지 못했다.


 영안실에서.


  정확히 명칭이 뭐더라,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시체 보관함? 아니었던것 같은데. 시체 안치함인가? 음, 아무렴 어때. 


  체감상 약 1시간여를 힘을 쓴 끝에, 그녀는 마침내 바깥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일평생 그 부위에 근육이 있는지도 몰랐던 곳의 근육이 아파왔다. 


  그녀는 짜증에 찬 신음소리를 내며 방금 자신이 기어나온 서랍에 걸터앉았다. 반쯤 빠져나온 서랍은 그녀의 체중을 잘 버텨 주었다.


  서랍 밖은 살풍경했다. 어지간한 대형 강의실보다도 큰 것 같은 방 전체가 회색조로 꾸며져 있었고, 한쪽 벽에는 방금 그녀가 기어나온 것과 같은 서랍들이 빼곡히 달려 있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저 안에 다른 사람들이 더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나오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었을 터이다.


  당장 일차적인 탈출에 성공한 그녀는,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두 번째 사상적 고찰을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녀는 이곳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였는데, 자신이 누구인지는 얼추 알고 있었으니 첫 번째 사상적 고찰은 뛰어 넘을 수 있었다.


  비록 대략적인 첫인상이었으나, '살풍경하다'는 것은 그 공간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다. 영안실에 있는 그것을 연상시키는, 혹은 그 자체일 터인 서랍과 오와 열을 맞춰 늘어서 있는 수술대 들. 그리고 수술대와 바닥 곳곳에 얼룩져 있는 검붉은 얼룩들과 녹슨 수술도구들. 화룡점정으로, 천장에서 내려온 전선 한가닥에 의존해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낡고 깜빡이는 전구들.


  그리 활기찬 느낌의 정물들은 아니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흔히 볼 수 있는 네모반듯한 물건들이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고딕풍 장식이 가미되어 있어 기괴함까지 느껴졌다.


  최근에 사용했던 시설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녀가 들어있던 서랍이 굉장히 뻑뻑했던 것도 그렇고, 장비들의 상태도 근래에 썼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다행이었다. 최근까지 쓰였던 시설이었다면 엄청나게 무서웠을 테니까.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고 해서 그녀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곳이 뭘 하는 곳이며, 누가 왜 자신을 데려왔는지는 감도 오지 않았다. 


  상황이  참 개같아 졌구나, 하고,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납치, 기억상실, 혹은 그녀로서도 그리 익숙하지는 않은 일종의 초자연적  현상. 무엇이라도 좋았다. 각각의 상황마다 이 장소에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이유가 하나 이상 씩 있었다.


  얼추 체력이 조금 회복되었다 싶자, 그녀는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았다. 뭔가 쓸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였다. 본디, 아는 사람이 없는 모르는 장소에 혼자 떨어진 사람은 불안함에 무기를 들기 마련인 것이다. 다행히도 이곳엔 곳곳에 수술도구 같은 것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자그마한 흉기 한두개 쯤은 건질 수 있었다.


  그녀의 생각은 절반 정도만 맞았다. 흉기로 쓸만한 것을 찾기는 했지만, 결코 자그마한 물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두였다. 결코 원래 목적으로 쓰였을 것 같지는 않은 약작두. 자신이 그것을 그대로 쓸 일은 없을거라고 판단한 그녀는, 그대로 팔을 뻗어 작두를 들어 바닥에 내던졌다. 


  시끄러운 금속성 충돌음이 방 전체에 울렸다.


  몇 차례 더 약작두를 바닥에 내려 찍은 그녀는, 마침내 작두의 손잡이 달린 칼날 부분을 분리해 낼 수 있었다. 녹슨데다가 날도 군데군데 나간 칼날이었지만, 얇고 단단한 철판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흉기로서 쓸 수 있다. 적어도 수박은 쉽게 쪼갤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칼날을 몇차례 붕붕 휘둘러 보았다. 칼날 끝부분에 작두와 연결되어 있던 구멍이 있어서 그런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조금 거슬렸다. 아무렴 어때, 하고 그녀는 만족스럽게 그 칼날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이제 뭐가 튀어 나와도 나름 저항은 가능 할 것이다. 그게 그녀를 납치한 괴한들일지, 혹은 정체 불명의 괴물들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대로 문을 향해 가다가 잠시 멈칫했다. 여태까지는 그래도 나름 자신있게 행동했지만, 저 문 밖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문을 열고 나가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병이라더니, 그동안 공포영화를 여럿 보아온게 화근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이곳으로 온 것이 일종의 초자연적 현상에 의한 것임이 기정 사실화 된 이상 그 공포영화를 현실에서 체험할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과학자다. 이제는 과거형으로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과학자였다'고. 그녀는 자신이 중요 책임자로 있던 실험을 진행하던 도중 큰 참사를 일으켰고, 여기에 오게 된 계기도 아마 그것일 터였다.


  수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게 뻔하고, 아마 그 실험을 하게 된 이유인 연구 역시 처참히 무너졌겠지. 전 세계의 석학들을 모아둔 연구동이 부서지면서 세계의 지적인 수준도 상당수 떨어졌을 테고.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과학자로 다시 대접받을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좋았다. 뭐, 일단 여기서 빠져 나가고 생각해야 할 일이겠지만.


  과학자라는 직업에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되려 그 부분은 후련하기 까지 했다. 그녀는 빠른 눈치와 상당한 임기응변 능력, 뛰어난 암기력과 외모를 거짓말에만 투자한 전형적인 사례였던 것이다. 


  슬슬 과학자라는 직업도 질려가기 시작했고, 그동안 그녀가 해온 수많은 거짓말들이 점차 그녀를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시점에서 미친척 사고를 한번 터뜨려 본 것이었고, 그 댓가로 완전히 신분을 바꿀 새로운 기회를 손에 넣은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그 댓가로 이런 일을 겪게 되는 건 그리 환영할 수 없었지만, 살면서 신기한 일 한번 겪어본다고 치면 나름 괜찮은 교환일지도 몰랐다. 정말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했다면 이미 일어 났을테고.


  그녀는 수많은 이름을 거쳐오며 수많은 직업을 가져왔었다. 뭐, 이제야 제 이름을 찾게 된 셈 쳐도 좋을지 모른다.


  그녀는 이파리였다.


  과학자 송혜연도, 작가 제니퍼 리도, 영화감독 정상화도, 오컬트 전문가 김지수도,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수 많은 직업과 이름도 아닌, 그냥 이파리.


  굳이 직업 비슷한 걸 붙이자면... '헛소리꾼' 정도가 될까. 헛소리꾼 이파리.


  즉석에서 생각한 것 치고는 꽤 어울리는 칭호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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