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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검은 베일

by 물착소년 posted Jun 28, 2017 (01시 13분 22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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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간 내 얼굴이 보인다. 흉측하다. 나는 다시 주먹을 날린다.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다. 나는 아수라장이 된 내 방의 모습처럼 처참한 미소를 지으며 피투성이가 된 손을 늘어뜨렸다.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는 베일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다.

 

나는 못생겼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항상 베일을 쓰고 다녔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베일을 쓰는 것은 고통스럽다. 숨이 막힐 정도로 두꺼운 베일은 항상 나를 미치게 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의 반항을 제외하고는, 그것을 거부해 본 적이 없다. 그에 따른 결과가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7년 전이었던가. 유난히 더웠던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정이 없어 쉬고 있던 나는 갑자기 엄마의 호출을 받았다. 최고로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오라는 말도 덧붙여져 있었다.

나는 짜증을 내며 방을 나섰다. 베일만으로도 불편한데 화려한 드레스라니. 덥고 습한 공기와 합쳐져 기분은 최악이었다. 나는 기다리고 있던 시종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예고도 없이.

 

"따라와 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 늙은 시종은 성의 없이 대답하고서 앞서갔다. 나는 화를 억지로 삭이며 그를 따라갔다.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명심하십시오. 베일에 손대선 안됩니다"

 

". 언제나 그 소리. 지겹다고."

 

나는 그를 쓱 노려본 뒤, 그가 가리킨 방으로 들어갔다.

 

", 이분이시군요. 그 공주님이.“

 

머리가 벗어지고 뚱뚱한 남자가 일어서며 맞이했다. 그의 첫인상은 변태같이 늙은 아저씨였다. 나는 슬쩍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왜 그러고 서 있니? 이쪽으로 오렴."

 

 

엄마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약간 당황하여 시선을 돌렸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한 그녀가 내게 처음으로 보여준 따뜻한 행동 있기 때문이다.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녀가 다음 말을 하기 전까지는.

 

"딸아이를 만나보는 걸 조건으로 걸으셨죠? 이제 약혼은 확정된 겁니다?"

 

약혼?

 

"흐음. 베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두껍군요. 정말 안이 하나도 안 보이니 이거 참. 그래도 뭐, 미래의 왕비님 낯을 봐서 받아드리겠습니다. 하하."

 

뭔가 얘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나는 다급하게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게 뭐예요? , 약혼이라뇨, 갑자기?"

 

"신경 쓸 것 없다. 넌 그냥 내 말에 따르기만 하면 돼."

 

방 안을 모조리 얼릴 듯이 엄한 대답이 돌아왔다. 몸에 소름이 쫙 끼쳤지만, 나도 이번만큼은 물러날 수 없었다.

 

", 하지만 저런 배불뚝이 아저씨랑 어떻게 결혼해요?

 

그 말에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던 엄마의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 그녀는 내 팔을 잡아 끌어당기고는 속삭였다.

 

"닥쳐라, 이 딸 같지도 않은... 네 처지를 생각해야지."

 

그리고는 다시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맞은편의 남자에게 '애가 아직 어려서 철이 없다. 귀엽게 봐 주시기를 바란다...'정도로 들리는 말을 건넸다. 그는 자신의 음흉한 표정을 바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억눌렀다. 언니들의 약혼자를 본 기억이 났다. 그들은 이렇지 않았다. 절대

 

그런데 도대체 나는 왜?

 

분노가 점점 강렬해지면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진정하기위해 주먹을 꽉 쥐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 분노는 딱히 엄마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이 일을 하는 게 나를 위한 것일거라는 믿음이 아직 남아있을 때였으니까. 단지 나를 이렇게 못난 모습으로 세상에 내놓은 운명에 저주를 퍼붓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결국, 나는 응석을 부리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으려 억지를 부리고, 엄마는 괜찮다며 감싸주는, 아직 철들지 않은 어린 소녀라면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얘기의 주제는 어느 새 다시 베일로 돌아와 있었다.

 

"정말 안 되겠습니까? 베일 안에 얼마나 귀여운 얼굴이 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애가 얼마나 낯을 가리는지... 결혼하시면 계속 보게 되실테니 조금만..."

 

이 베일을, 내가 원했다는 그 말이 내 분노를 폭발시켰다. 처음으로 나는 반항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요."

 

내가 조용히 꺼낸 말에 방 안의 시선이 모두 내게 모였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한 뒤, 베일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말했다.

 

"...원하신다면, 보여드리죠!"

 

그 말과 함께, 나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베일을 걷어젖쳤다.

 

땀에 젖었던 얼굴이 바람에 닿으며 무척이나 시원했다. 아주 짧은 순간, 나는 최초의 해방감을 맛보며 전율했다.

 

반대로 방 안의 분위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잠시 내 얼굴을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뚱뚱한 남자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약혼은 없던 걸로 해야겠군요. 저런 얼굴이라니..."

 

그는 황급히 문을 열고 사라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그의 빈자리를 멍하니 쳐다보던 엄마는 갑자기 일어서서 내 뺨을 후려쳤다.

 

''소리와 함께 나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잠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쓰러진 채로 올려보니 엄마는 벌레를 보듯 쏘아보고 있었다. 절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눈은 아니었다.

 

"덜 떨어진 년... 냉궁으로 데리고 가! 베일도 잊지 말고.“

 

옆에 있던 시녀들이 내 팔을 잡고서 베일을 다시 씌웠다. 그리고는 어디론가로 끌고가려 했다. 나는 그제서야 몸부림치며 외쳤다.

 

 

"잘못했어요. 엄마, 엄마!"

 

대답은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나는 지하의 작은 방에 이틀 동안 갇혀 있었다. 냉궁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방은 한여름에도 입김이 나올 정도로 싸늘했다.

 

더욱 불운하게도, 이틀 동안 나는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했다. 그래서 이틀 후 방을 나가게 되었을 때, 나는 거의 탈진하기 직전의 상태였다.

 

그 방을 들것에 실려 나오면서, 나는 두 가지를 가슴 속에 새겼다. 첫 째, 엄마는 나를 위하지 않는 다는 것.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엄마의 마지막 표정과 행동이 그것을 증명했다. 둘 째,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 후로 나는 어머니를 한 번도 거스르지 않았다. 대신에 나는 가끔씩 발작하며 내 방의 물건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방금 전처럼. 내 주위에는 거울을 비롯해 박살난 물건들이 마치 시체들처럼 늘어져 있었다.

 

베일을 쓰고 문을 두드렸다. 밖에서 시종들이 들어왔다. 내가 손을 내밀자 그들 중 하나가 손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그들은 내가 왜 이러는지 전혀 모르겠지.

 

"원래대로 해놔."

 

무덤덤한 어조로 말하고선 나, 멜리아 예리엘은 문을 나섰다. 가야할 곳이 있었다.

 

 

나는 대리석이 깔리 복도를 따라 걸어간다. 이곳, 별궁에는 공주들의 방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방은 따로 떨어져 있어 궁 밖으로 나가려면 조금 걸어야만 했다.

 

복도를 중간쯤 걸어가니 계단이 보인다. 빨간 카펫이 깔린 곳이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첫발을 막 내디뎠을 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예리엘 언니!"

 

뒤를 돌아본다.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흑발의 소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녀의 머리카락 색깔과 잘 어울리는 검은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녀가 너무나 거리낌 없이 내 품속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를 제지했다.

 

그녀는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오랜만이야 언니. , 근데 손은 왜 그래?"

 

겸연쩍게 웃으며 인사하던 여동생이 붕대가 감긴 오른손을 발견하고 놀란 듯이 손을 잡았다. 나는 그제야 실수를 알아채고 황급히 손을 뺐다. 그리고는 거짓말을 한다.

 

여동생에게도 손의 상처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 어딘가에서 따끔한 고통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살짝 긁혀서 그래.“

 

손을 뺄 때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 그녀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화났어? 언니?"

 

"야냐, 소니아. 그냥 좀 따끔했을 뿐이야."

 

나는 미안함에 슬쩍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소니아는 그것을 볼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화가 났다고 느낄 것이고, 나를 차가운 언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결국에는 내게서 멀어질지도 모른다. 내 얼굴을 보지 않고도 내게서 멀어져 간 많은 사람처럼.

 

지금 궁 안에서 내게 우호적인 인물은 소니아를 포함해 열 손가락 안에 들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 피해망상이기를 바라며 베일 속에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둘이 서로 어색하게 바라만 보고 있을 때, 굽이 높은 신발이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목소리가 따라왔다.

 

"이런, 예리엘이잖아? 그 거지 같은 베일은 도대체 언제쯤 벗을 거니?"

 

"레베카."

 

 

 

 

"언니라고 안 해?"

 

그녀가 눈을 치켜떴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약간의 굴욕감이 가슴을 찔렀다.

 

". 언니.“

 

소니아와 같은 어머니를 둔 탓인지 함께 흑발과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레베카. 그녀도 역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화려한 귀걸이, 조금 파인 가슴, 그리고 끝에서 구불거리게끔 한 머리 등으로 성숙미를 강조했다는 점은 달랐지만.

 

웃기는 점은, 그녀가 나이가 같다는 것이었다. 생일이 몇 달 빠르기는 했지만. 그런데도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뭘까.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린애나 할 한심한 짓거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슬쩍 그녀가 보지 못할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그런데도 내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쪽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옛날처럼 내 베일을 벗겨보겠다고 덤비는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땐 정말 식겁할 뻔 했다.

 

, 일단 지금은 아무렇게나 생각하라지. 나는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든다. 역시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어딜 가고 있니, 소니아?"

 

거만한 목소리다.

 

"음악관에. 예행연습이 있어서요.“

 

"그래? 급한 일이야? 아니면 좀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급한 일이에요. 그럼."

 

나는 돌아선다. 더는 저 기분 나쁜 '언니'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잠깐! 그럼 하나만 물어보자."

 

나는 돌아보지 않고 대충 대답한 뒤 갈 것이라고 다짐하며 멈췄다.

 

"밤마다 뭘 하길래 네 방에서 계속 이상한 소리가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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