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한대

쓰레기용사님

by dsds posted Jun 28, 2017 (01시 16분 13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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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 너는 미쳤어. 한때 널 사랑했지만 이제는...

미안해. 너는 벌을 받아야 해."

 

"주인님. 죄송합니다만, 소녀도 주인님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벌해주시는건 상관없지만, 이제 소녀와 주인님의 인연도 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왜 그녀들은 나를 탓하고 있는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인 그녀들이 이제는 저주를 토하고 있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생각해보았지만 떠오르는것은 없었다.

 

"왜?"

 

뭐가 불만인데? 나는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것은 전부 해줬다. 너희들이 입고있는 옷은

어디에서 난거지? 너희들이 먹은 음식은? 너희들이 사는 집은?

 

전부 나의 돈이다. 

 

아, 그런가.

 

"돈이 부족했던 거야? 미리 말하지. 나 저번에 드래곤 레어 털었었잖아. 돈이라면 썩어

넘쳐나. 뭐가 갖고 싶은데? 집? 옷? 보석? 말만 해. 다 사줄테니까."

 

나 스스로는 완벽한 해답이라고 느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면 딱히 나에게 저런 감정을

표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다르게 느꼈나 보다.

 

"신우! 제발 정신 차려. 우리는 돈, 보석 이 따위 것 때문에 널 이렇게 보는게 아니야. 

신우, 네가 한짓을 생각해봐. 너 한명 때문에 세계가, 대륙이, 국가가, 마을이.

어떻게 됐다고 생각해?"

 

스텔라가 그리 말했다. 스텔라라...내가 판타지 세계에 와서 두번째로 얻은 반려였다.

금발에 건방진 성격 이라는, 판에 빼다 박은 캐릭터 였지만 몬스터 연합 왕국의 침공에서

구해준 이후로는 쭉 러브러브 모드였다.

 

즉, 나에게 저런 증오의 시선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주인님. 소녀 또한 안타깝습니다. 주인님의 시선을 혼탁케 하는것은 무엇인지요. 소녀, 도움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만...주인님 자신이 마음을 먹지 않는다면 소녀에게도 방법이 없습니다.

주인님의 행동으로 죽어간 생명들을 잊으셨습니까?"

 

생명이라?

 

"아아, 그랬었지. 생명이라. 이제야 기억났어. 설마 그따위것 때문에 나에게 이렇게 대한 거야?

엘사. 너는 나에게 충성을 맹세했지 않나? 스스로 노예를 자처하며 평생토록 나에게 복종하겠다

하지 않았나? 그런데 고작 그것 때문에 나를 배신한다는 거야?"

 

"주인님."

 

엘사는 그저 특유의 서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마치, 구제불능의 악인을 바라보는 듯한, 그러나 동정과 연민이 섞여있는

시선이었다.

 

회색 머리칼에 무감정한 동색의 눈동자를 가진 엘사는 한때 나의 가장 충실한 파트너였다.

 

"엘사. 아직 기회는 남았어. 지금이라면 전부 잊고 용서해줄 수 있어. 

스텔라, 류시아, 너희들도. 그저 이렇게 말하면 돼."

 

'신우, 미안했어. 다시는 안그럴게. 우리들한테는 역시 너 밖에 없어.'

 

그러나 그녀들은 그런 기회를 잡을 생각조차 안한다는듯 표정을 더욱 굳혔다.

외모가 외모다 보니 그것도 일종의 그림이었지만...마음에 드는 표정은 아니었다.

 

"류시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신우. 넌 미쳤어."

 

류시아는 보다 직설적인 어법을 사용했다. 비수처럼 나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큭큭. 류시아. 역시 고위 마족 답네. 그것도 마족특유의 용기라는 건가?"

 

반쯤 협박이 섞인 내 말에도 류시아는 응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스텔라, 류시아, 엘사. 그리고."

 

아.

 

그래.

 

그녀가 있었지. 하지만 그녀는 내가....

 

그녀를 떠올린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뭐라고 할까, 정성적인 과정을 밟았다.

 

명문대를 나오고 대기업을 들어가는게 정성적인 엘리트 코스라면

 

왕따소년이 이세계에 진입하는것은 이계진입의 엘리트 코스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엘리트였다.

 

나는 교통사고가 나서 죽어버린것인데, 신의 말에 의하면 그건 신의 실수라고 한다.

그래서 신은 나에게 보상의 의미로 능력을 약속했다.

 

아주 강력한 능력을.

 

그후는 뭐, 딱히 볼것도 없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몬스터연합의 엘리니아 왕국 침입을 막았다.

 

브레스로 산 하나를 통채로 증발시킨 악룡 그라시아를 처치했다.

 

지상에 강림한 마왕을 죽였다.

 

인간들의 엘프 왕국 침공을 막았다.

 

모순되기도 한 과정 속에서 나는 엘리니아 왕국의 공주인 스텔라를 만났다.

엘프 소녀인 엘사를 만났다.

마왕의 딸인 류시아를 만났다.

내가 한국에 살던 시절의 급우 소녀, 소연을 만났다.

 

그 후로는 즐거운 생활을 보냈다. 스텔라와 결혼한 나는 사실상 엘리니아 왕국의 군주였고

아무도 내게 거스르지 못했다.

 

스텔라의 아버지인 선대 국왕도 나의 눈도 제대로 못마주칠 정도였다.

 

나의 반려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나의 귀에 어떤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폭군이고 사악한 학살자라는 말이 왕국의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것이다.

 

부하에게 좀 더 자세한 조사를 명령했다.

 

그 결과 한장의 보고서가 올라왔다.

 

이미 왕국 백성들 사이에서 혁진의 인망은 상당히 떨어져 있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정치를 전혀 돌보지 않고 애인들과 노닥거리는 사실상의 왕에게

백성들의 평이 매우 나쁘다.

 

그 외 수인족과 엘프들 사이에서도 신우를 저주하는 목소리가 생길 정도다.

 

놀라운 결과였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나에게 노는 시간을 줄이고 공무를 하라고 하는 아리스 공작을 처형했다.

 

아리스 공작의 처형에 딴지를 거는 놈들도 전부 처형했다.

 

그래서 나에게 좋은 말만 하는 신하들을 남겼다. 이게 문제인가? 사람이 좋은 말만 듣고 싶어하는

것은 본능이 아닌가?

 

엘프? 수인족? 드워프?

 

류시아에게 아무리 예쁜 보석을 선물해도 이미 어느정도 내성이 생긴듯 하길래 어느날

참신한 선물을 마련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 결과 떠오른것이 엘프들의 수호석 이었다. 숲을 압축해 담은 것처럼 신비로운 녹색 빛을

뿜어낸다고 하는 그 보석은 수만년간 엘프들을 수호해왔다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류시아를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데, 다른건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래서 친위대를 동원해서 엘프들이 사는 숲을 침공해 수호석을 가져왔다.

 

류시아가 눈에 띄게 기뻐했다.

 

"와아아. 이건 어디서 가져온거야? 진짜 예쁘다. 너무 아름다워. 진짜 나무를 녹여서

보석에 담은것같아."

 

"그럴줄알고 선물로 준거야. 어지간한 보석은 이제 눈에 안찰 테니까. 좋지?"

 

"응! 진짜 기뻐. 혁진, 고마워. 그런데 진짜 어디서 가져온 거야?"

 

"그건...비밀로 해두지. 비밀이 있는게 보석을 더 아름답게 할테니까?"

 

"푸웃. 그게 뭐야."

 

어느날은 사실상 나의 자택이 된 왕궁을 살펴보다 불만이 생겼다. 아무리 왕궁 이라지만 내가

이상으로 그리는 집의 수준에는 미달되었다.

 

그래서 드워프를 불렀다. 

 

"두달 내로 내가 말한대로 집을 완성해라."

 

"죄, 죄송하지만 혁진님. 두달내에 말하신 크기와 퀄리티의 집을 만들기는

불가능 합니다. 부디 사정을 좀 헤아려 주십시오."

 

"사정을 봐달라?"

 

"네, 그렇습니다.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하여..."

 

드워프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내가 방금말한 드워프 바로 옆에 있던 드워프의 목을

베었기 때문이다.

 

"허어어억! 무슨 짓입니까! 혁진님! 갑자기 살해 행위를!"

 

"두달 안에 못끝내거나, 두달 안에 못끝낸다고 징징 거리면 너도 이 꼴이 날거다.

당장 공사를 시작해라."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드워프들의 공사현장에 내 친위대를 파견했다. 느릿하거나

농땡이를 피거나 하는 놈들은 친위대가 즉결처형했다.

 

그 결과 50일 만에 내 저택은 완성됐다. 가혹한 노동과 즉결처형으로 드워프의 절반이 사망한

결과였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작게 드워프들을 치하했다.

 

"수고했어. 다음에도 잘 부탁해."

 

그 외에는 미관을 안좋게 만드는 수인족들을 '청소'하고, 오크와 고블린들의 서식지를 불태우고,

건방지게 구는 드래곤들을 때려 죽이고...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물론 저런 일들은 내 애인들이 모르게 이루어졌다.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알면 귀찮아질게 뻔하니까.

 

드워프들이 피땀을 흘려 완성한 저택안을 걷고 있노라니 말소리가 들려왔다.

 

"소연?"

 

소심하고 조용한 소녀. 흰 피부에 검은 머리카락 이라는, 전형적인 현모양처 속성의 캐릭터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방에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공작님. 이대로 가면 왕국 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가 멸망할 거에요. 힘이 있다고 해서 그걸

남용해서는 안되는데 혁진은 벌써..."

 

"소연님. 그건 저도 알겠지만 당장 일을 일으키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게다가 혁진은

소연님의 반려인데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저는 이미 혁진을 마음속에서 버렸어요. 한때 나를 구했지만, 수십만 생명을 학살한 사람을

사랑할 여유는 없어요. 얼마 전에는 뒷골목 어린아이들이 자신을 비방한다고 목을 매달아 죽였

다더군요."

 

"소연님..."

 

풉.

 

일련의 대화를 들은 나는 무심코 웃었다. 폭소를 터트릴뻔 했지만 겨우겨우 참았다.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거지? 공작. 그리고 소연. 네가 나를 악당으로 생각한다면,

그에 맞게 행동해주지."

 

그리고 몇일 뒤, 공작과 소연이 행방불명 되었다. 왕국군이 나서 대륙전체를 샅샅히 뒤졌지만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내가 죽였으니 흔적을 알 수 있을리가 있나.

 

그리고 얼마 뒤 내가 쓴 일기를 우연히 보게된 류시아는 내가 저지른 사실들을 알게되고 상황은

지금에 이른다.

 

"그래서 너희들은 날 버리겠다는 건가? 마룡을 물리치고, 몬스터연합군을 물리친 나를? 너희들의

목숨은 누가 구했지?"

 

"배은망덕하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도 지옥에 갈테니까."

 

"미안한데 너희들은 몰라도 내가 지옥에 갈일은 없어. 기억안나나? 난 드래곤 로드도

돌맹이를 던져서 머리통을 터트렸다고. 날 어떻게 막을건데? 한동안 체벌받다보면

생각도 달라지겠지. 따라와."

 

내가 막 힘을 쓰려는 순간 무언가 어색한 촉감이 배에서 느껴졌다.

 

"어...?"

 

검은 칼날이 복부를 관통해 있었다. 물론 나의 배다.

 

"사자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계에서도 손꼽히는 마검, 설사 신이라 해도 맞으면 무사하지 못한다는

전설의 무기였다.

 

"그렇군. 이걸 믿고 그랬다는 건가. 날 처치하고 그 돈으로 잘나신 귀족하고 정분이라도 나려고?

응? 빌어먹을 년들아!"

 

나는 순수하게 분노했다. 나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빌어먹을 년들에게!

 

"주인님. 주인님 께서는 아직도 자신의 죄를 모르시는것 같습니다. 미천한 저도 곧 따라갈테니,

지옥에서 같이 불타는게 어떠신가요."

 

"개같은 년들이."

 

마지막 힘을 모아 눈앞의 빌어먹을 년들을 쓸어버리려고 했지만 힘이 전혀 모이지 않았다.

과연 마계의 궁극병기. 

 

"죽어서도 이 원한은 잊지 않겠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나는 죽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허억!"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주위의 풍경을 살펴봤다. 

 

평범한 나무 책상, 의자, 책 몇권, 내가 이전 한국에 살때의 방이었다.

 

"뭐지? 난 분명 죽었을텐데."

 

그러던 와중 흰 종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종이를 들고 살펴 보았다.

 

'시간을 되감았다. 앞으로는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마라. 잘못을 깨닫고

반복하지 마라. 그렇다면 진정한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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