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한대

[라한대]흑염룡

by 이수현 posted Jun 28, 2017 (01시 41분 07초) Replies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협업 참여 동의
"안녕. 난 이시하라고 해. 네 이름은 뭐야?"
 
"안녕? 반가워! 안타깝지만 하찮은 피조물한테 알려줄 이름이 없네. 난 신이거든!"
 
태연히 웃으며 저런 말을 하는 여자애한테 대체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할까.
그냥 넘어갈까? 못 들은 척 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 못 들은척 하기에는 뜸 들이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여기서 모르는체 해봤자 너무 속보이잖아.
 
아니 아니. 침착하자.
당황하면 할수록 상황이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더 좋아질리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중학교 2학년 교실에서 이 정도 중2병은 그렇게 드문 것도 아니잖아?
좋아, 침착하자 침착.
태연하게, 적당히 받아넘기는거야.
 
막 호흡을 가다듬으며 소수를 세려던 찰나, 빌어먹을 여자애가 내게 소리치듯 말을 걸었다.
 
"못 들은거야? 난 신이라니까?"
 
"응 그렇구나. 난 드래곤이야."
 
아.
망했다.
내 말을 듣고 눈까지 반짝거리며 기뻐하는 여자애를 보며, 나는 내 중학교 2학년 생활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 모든 상황은 내가 멍청해서 벌어질 일이었다.
갓 전학온 내게 같은 반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옆자리 미친년한테 말 걸지 말라고 했고, 나는 그 경고를 어겼다.
그래도 짝꿍이니까 인사 정도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이 봐, 드래곤! 널 내 수호룡으로 임명하지!"
 
"으아아아아아! 쪽팔리니까 제발 좀 닥쳐!"
 
나는 빠르게 책상에 이마를 박고는 양 귀를 막아버렸다.
벌써 2시간째였다.
빌어먹게도 내 짝궁인 그 여자애는 수업시간이고 쉬는시간이고를 가리지 않고 내 옆에서 종족이 뭐니, 나이가 어떻게 되니하며 온갖 헛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이제는 심지어 수호룡이란다.
대꾸를 해주든 무시하든 상관없이 끊임없이 말을 해대는 폼이, 아무래도 나는 물려도 단단히 물린 것 같았다.
 
2시간이나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나를 보는 애들의 눈빛도 싸해졌다.
아무래도 애들은 내가 저 여자애의 놀이에 완전히 동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나보다.
귀를 막아도 내 뒤쪽에서 애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들었어? 쟤가 드래곤이래.'
'으웩. 우리반 또라이가 2명으로 증식했네.'
'드래곤과 여신? 미친, 그런 분들이 왜 여기서 수업을 듣고 계실까.'
'우리 반 미친년 자칭이 광희의 여신이었지? 그럼 전학생 별명은 흑염룡으로?'
 
"흑염룡 아니야!"
 
여기서 반박하면 더 상황을 악화시킬거라는걸 알면서도 나는 벌떡 일어나 외쳤다.
'흑염룡'이라니, 한 번 붙으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법한 별명인데 앞으로 몇년간 그딴 별명으로 불리라고?
절대로 싫어.
 
그러나 주변을 둘러본 순간 알게 되었다.
저기서 둘러앉아 키득거리는 아이들은 이미 내 반응을 본 순간 내 별명을 확정지었다고.
또다시 전학가지 않는 한, 내 별명은 쭉 흑염룡일 것이다.
새로 친구를 사귀는 것도 힘들어질지 모른다.
전학 온 첫날에, 모든걸 망쳐버렸다.
 
"오오, 흑염룡이라니. 멋지구나! 하긴, 여신을 모시려면 그 정도 급은 되줘야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어? 잠깐만, 어디 가?"
 
뒤에서 나를 부르는 듯했지만 상관하지 않고 달렸다.
 
모르는 학교였기에 딱히 혼자 있을만한 곳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1층에 교장실, 교무실이 있다는건 알았기에 나는 무작정 계단을 올라갔다.
아직 최소한의 이성은 남아있었고, 이런 일이 선생을 통해 부모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 때 뒤에서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내 어께에 손을 올리고는 훅 잡아당겼다.
 
"잠깐, 도망가지 마! 내가 미안해."
 
그 여자애였다.
여자애는 나를 잡느라 지쳤는지 그 자리에 서서 헉헉대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우리 두명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계단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내 행동들이 유치하고 초등학생이나 할법한 짓처럼 느껴졌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서로의 숨소리만이 층계참을 웅웅 울렸다.
 
한참 쉬고 있자니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조금 전, 그 여자애는 제법 정상적으로 말하지 않았나?
대체 왜 드래곤이니 여신이니 하며 사람을 괴롭히는거지?
나는 말을 꺼낼까말까 망설이다가 처음으로 여자애한테 질문을 했다.
 
"넌 대체 왜 네가 여신이라고 그러면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거야?"
 
"그야 내가 신이니까!"
 
한치의 의문도 없는 당당한 대답이었다.
그 대답에 기가찼다.
 
"아 그러셔? 네가 뭐 판타지 세상을 다스리기라도 했나보지? 용은 좌우로 한마리씩 거느리고?"
 
뜻밖에도 내 말에 여자애는 우물쭈물해대며 말을 망설였다.
당연히 긍정할줄 알았는데?
 
"으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마 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의 존재에 의해 기억을 잃고 인간계로 떨어져 인간의 삶을 살게되지만 않았더라도 네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었겠지."
 
여자애는 그 말을 마치고 숨이 찼는지 다시 후하후하 심호흡을 했다.
그동안 나는 여자애의 말을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어.. 그러니까 여신일 때의 기억이 없다고?"
 
"그렇다!"
 
"...그러면 네가 여신에서 인간이 되었다는건 어떻게 아는건데?"
 
"어...내가 여신인데,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 ...왜 네가 여신인데?"
 
"그야 내가 여신이니까!"
 
"네가 여신이라고 생각하게 된 근거는?"
 
"그냥 알아. 난 여신이야!"
 
틀렸다.
이 중2병 환자하고는 도저히 정상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나는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자애를 훑어 보았다.
 
또래에 비해 조금 작아보이는, 대락 155cm 쯤 될 법한 키.
어께를 조금 넘는 검은 머리에 약간 주근께가 있는듯한 귀여운 얼굴.
조금 헐렁한 명찰을 달지 않은 교복.
어디를 봐도 지극히 평범한 여중생이었다.
 
하긴, 15살이라는 그 나이를 고려하면 저런 생각도 지극히 평범한 것..인가?
어쨌든 확실한 것은 저 여자애가 고칠 도리 없는 중중 중2병이라는 것이다.
거기다 무시하는 사람에게 2시간씩 일방적으로 말을 걸어댈 수 있는 중중 중2병.
나는 저 여자애를 상대하려면 약간의 전략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아 여신. 너 내가 드래곤인건 알지?"
 
"물론! 너는 흑염룡이잖아! 저기, 난 인간 이외에 이생명체를 만나는건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너무 설레고, 내 신하로 삼고 싶고-"
 
"그래그래 알았어. 그런데 미안하지만 난 사실 내가 흑염..그, 하여튼 그거인걸 아무한테도 밝히면 안되거든? 비밀로 해주면 안될까?"
 
"왜?"
 
"왜냐하면..., 왜냐하면 난 종족의 배반자라서. 어, 일족의 어른이 내가 여기있는 것을 발견하면 아마 나를 죽일걸?"
 
"히익!"
 
"나를 천년간 팔팔 끓는 용암불에 던져넣을거야. 그러니까 여신님, 제발 협조좀 해 줘. 잘 도와주면 내가 나중에 그, 수호룡? 그것도 해줄게."
 
"알았어! 나만 맡겨!"
 
판타지 소설을 읽은 경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말을 지어내는 동안에도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이번만큼은 내 창의력이 자랑스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쪽팔리지만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말이 안되는 소리를 해도 전부 믿을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여자애는 팔을 붕붕 휘저으며 사명감이라도 느끼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아예 아는 척도 하지 말아달라고 할까 고민했지만 마땅히 지어낼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건 후일로 미뤄두었다.
 
"알았지? 흑염룡 같은건 입에도 담지 말아야 해!"
 
"응!"
 
여자애에게 다시 한번 확답을 받고 교실로 내려가는 길, 머릿속이 복잡했다.
여자애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을 찾아낸듯 싶지만 다른 아이들은 아까 있었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계속해서 나를 흑염룡이라고 부르겠지.
더군다나 생각을 해보니 저 여자애가 나를 쫓아오는걸 모두가 봤을 것이다.
이제 들어가면 단단히 놀림거리가 되겠지.
아, 최소한 따로 들어가야한다.
 
"저, 여신님? 미리 교실에 들어가 있을래? 난 잠깐 나를 추적해온 암흑 버섯 군단 좀 처치하고 올게."
 
"혼자서 괜찮겠어?"
 
"괜찮아. 난 엄청 강하거든."
 
"대단해!"
 
만담같은 대화를 주고받은 뒤 여자애는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정확히 5분을 더 기다렸다가 심호흡을 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뜻밖에도 아이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보였다.
 
정말로,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몇몇은 호의적인 웃음을 보이거나 말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 뿐이었다.
아무도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떨떨해져서 자리에 앉았는데, 옆자리의 여자애가 내게 속삭였다.
 
"어때? 나 잘했지?"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해야 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네가 한 짓이야?"
 
놀라서 외치자 여자애, 아니 여신? 하여간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기억을 지웠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이상해? 너도 할 수 있지 않아? 너는 흑.... 아니, 그..."
 
인정하자.
그녀는 여신이었다.
나는 어리석었고, 이 세계에 인간 외에 우뚝 선 고고한 존재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경이에 빠져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찰나, 여신은  답을 찾은 듯 밝게 웃으며 말했다.
 
"성흑의 신룡, 그대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일텐데."
 
'성흑의 신룡'
'성흑의 신룡'
'성흑의 신룡'
 
귓가에 그 한마디가 웅웅거렸다.
그 순간 모든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는것이 느껴졌다.
 
저, 저, 저 망할 년!
그래, 그 애는 여신이든 뭐든 하여간에 참 빌어먹을 년이었다.

라한대

라이트노벨 1시간 쓰기 대회. 구글 크롬/파이어폭스 최적화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라한대 공지 이제 텔레그램에서도 알림을 받으세요! file Admin 2017.01.19 133 1
공지 라한대 공지 라한대 주최자 분에게 건의사항 드립니다 4 Admin 2016.08.14 364 0
공지 라한대 공지 라한대(라이트노벨 1시간 쓰기 대회) 공지사항 - 대회신청은 여기 댓글로! 175 file 수려한꽃 2012.06.02 86005 7
2304 라한대 신주단지 errr 2017.07.15 38 1
2303 라한대 [라한대] 시인 EIR 2017.07.15 42 0
2302 라한대 공지 2017년 7월 15일 라한대를 시작합니다. 총♂잡이 2017.07.15 49 0
2301 라한대 공지 2017년 7월 5일 여-----름 라한대 감평 및 결과. Bugstrin 2017.07.10 46 0
2300 라한대 다시 YangHwa 2017.07.05 52 0
2299 라한대 BANG 킬링스코어 2017.07.05 40 0
2298 라한대 익스트림 부루마불 1 유지미 2017.07.05 51 0
2297 라한대 라한대) 위대한 게임 서기 2017.07.05 51 0
2296 라한대 20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1 선작21 2017.07.05 45 0
2295 라한대 공지 2017년 7월 5일 여-----름 라한대를 시작합니다. Bugstrin 2017.07.05 62 1
2294 라한대 공지 6월 27일 『라이트노벨 프롤로그』 라한대를 마칩니다. 1 에이틴 2017.06.28 79 0
2293 라한대 [라한대] 감기는 언제나 조심합시다 Err0r 2017.06.28 44 0
» 라한대 [라한대]흑염룡 이수현 2017.06.28 48 0
2291 라한대 [라한대] 아아, 낯선 천장이다 배계카뮈 2017.06.28 60 0
2290 라한대 [라한대] 신은 주사위게임따윈 하지 않지만 벌칙게임은 할지도 몰라. 영드리머 2017.06.28 7860 0
2289 라한대 [라한대] 비포장도로와 일종 운전면허 기사도 1 네모 2017.06.28 52 0
2288 라한대 깊고 푸른 우주와 악마 사이에서 네크 2017.06.28 40 0
2287 라한대 [라한대]이번 분기의 히로인은 쿨한 전파계라는 모양입니다만 세이로 2017.06.28 39 0
2286 라한대 쓰레기용사님 dsds 2017.06.28 32 0
2285 라한대 [라한대]검은 베일 물착소년 2017.06.28 23 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17 Next
/ 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