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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단지

by errr posted Jul 15, 2017 (18시 43분 03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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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가 꼬리와 통하는 뱀이 있다.

한 때는 그 누구나가 그의 이름을 알았으나, 이제 그의 이름을 아는 자는 오직 그 자신뿐이다. 그저 사람들은 그가 벗은 허물이 곧 자신들이 밟고 선 땅이라 착각하여, 그를 세계-뱀이라 부를 뿐이었다.

     

‘아저씨는 왜 혼자에요.’

세계 뱀을 찾아온 소녀는, 무척이나 어린 나이에도 외톨이란 쓸쓸한 것이라고 알았다. 그러나 깊은 숲 속에 똬리를 튼 세계 뱀은 너무 오랜 세월에 사위어 쓸쓸함이 무엇인가 잊고 있었기에 소녀의 물음이 급작스러웠다. 마을의 젊은이들이 꿈을 상담하거나, 늙은이들이 젊을 적 토로했던 꿈을 다시금 거론하는 일은 많았지만, 그 자신의 상태에 대한 물음을 들은 것은 족히 세계 뱀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그의 허물 안에서 썩게 된 이후로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세계고, 세계가 곧 나다. 아이야,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하나라고 하느냐.’

‘아저씨는 혼자 있잖아요.’

소녀의 말대로 세계 뱀은 혼자였다. 오래 살면 손자가 늙어 죽는 꼴을 본다는 속담이 무색하도록, 그는 산의 손자가 늙어 죽는 것을 산의 할아버지 대부터 보아왔다. 그가 쌓아온 시간은 그를 떠받들었고, 어느새 세계 뱀은 저 스스로를 세계라 칭하는 경외로운 시선 속에 숭배자들과 같은 착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소녀의 물음에 따라 뱀은 자문했다. 

나는 혼자인가?

대답은 ‘그렇다’ 외에 없었다.

     

     

     

/2

     

     

‘그렇군, 나는 외톨이였나.’

하늘과 땅의 모든 앎이 담겨있다는 뱀의 두뇌는 골몰히 생각하고 물음으로써 답했다. 소녀는 웃었다. 그 때에나 쉬이 가질법한 순수라는 것으로써 웃으며 뱀의 자조에 답했다.

‘아저씨, 내가 친구해줄까요.’

세계 그 자체가 된 뱀에게 그 일부를 내어주겠다니. 마을에서 꺼냈다면 경을 쳐도 모자랄 오만이었다. 그러나 세계 뱀은 소녀의 그 오만한 순수로 하여금 웃는다는 행위를 기억해냈다.

‘그래주면 고맙겠구나.’

허나 입가가 몹시 굳어서 실제로는 그 주변의 근육이 희미하게 경직하기만 하였다.

     

     

     

/3

     

     

그 후로 소녀는 매일 찾아왔다.

깊은 숲 속으로, 세계의 구형 위에 제 머리와 꼬리만을 내어 놓고 현자나 신령 노릇을 하는 뱀의 앞으로 매일같이 발을 디뎠다. 노쇠는 그 무엇도 비껴가지 않았고, 감정의 격변은 그것을 가속한다. 바다의 물이 세 번 하늘 위로 올라갔다 내려올 동안에도 무심하던 뱀의 시간은 늙어가기 시작했다. 허나 세계 뱀은 죽기를 박탈당해 늙으면 늙어갈 뿐이었다. 그야말로 신을 참칭한 자의 말로겠으나 이전까지 뱀은 그것을 자신의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막을 위에 놓고 모래시계의 좁쌀만 한 틈새로 투과시킨들, 바위가 깨어져 모래가 되고 그것이 다시 사막에 쌓이는 것이 빨랐다. 뱀이 허물을 벗을수록 뱀의 사막은 더욱 거대해져만 갔다. 그러나 그 연약한 유리세공, 모래시계는. 소녀의 시계는 그 허물의 무게를 비껴내지 못했다. 뱀은 소녀가 나이를 먹는 것을 매일처럼 보아가며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운명을 직관했다. 몇 번이고 보아왔고, 결코 자신에겐 찾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의 전부가 제 앞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오래지 않아 세계를 자청한 뱀에겐, 작디작은 소녀의 하루가 자신의 하루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4

     

     

‘오늘 유치원을 졸업했어요. 이제 학교에 가요.’

‘초등학생이면 어른이래요.’

‘오늘은 학교에서 친구가 생겼어요.’

‘친구랑 싸웠어요.’

‘내가 잘못한 건 아닌데, 그래도 내가 사과해야 될까요.’

‘화해했어요.’

‘알고 보니 오해였대요.’

‘오늘 본 시험에서 백점 맞았어요.’

‘급식이 맛있었어요.’

‘친구가 더 생겼어요. 다음에 아저씨한테도 소개해줄게요.’

그러나 세계 뱀이 소녀의 친구를 소개 받는 일은 없었다.

소녀의 유치한 공부나 싸움에 그의 소중한 지혜를 낭비할 필요도, 더는 없었다.

     

     

     

/5

     

     

‘오랜만이구나, 아이야.’

‘세계 뱀을 뵙습니다.’

하루를 하루로 알게 된 뱀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끝없이 벗겨지는 허물을 제 입으로 씹어 삼키며 시간과 분과 초라는 단위를 피부로써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고작해야 십년이 될까 싶은 세월에 오랜만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오랜만이라 칭할 만큼 소녀에겐 변화를 주었다. 키도, 외견도, 분위기나 은은하게 풍기는 향수의 악취조차도 뱀의 모든 지혜로 하여금 소녀가 더 이상 그가 알던 소녀가 아님을 가리켰다. 

‘아이야, 너도 어른 놀이를 하는구나.’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도 있다.

‘내겐 별 일이 없었단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물론이다, 아이야.’

소녀의 이야기는 뱀의 시간으로도 하루를 꼬박 이어졌다. 처음에는 말문을 열지 못하기에 소녀 앞에 신주를 내어줬고, 소녀가 한사코 거절하자 세계의 법도는 마을의 그것 위에 군림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물론 허언이다. 세계 뱀은 제가 그저 오래 살았을 뿐인 거대한 고깃덩어리임을 알았다. 소녀의 입술 사이로, 소녀와 소녀의 부모가 가진 모든 것들보다도 값어치 있는 술이 흘러들어갔다. 그러나 뱀에겐 그리 가치가 없는 것이었으니, 뱀이 허언이고자 내뱉은 망어는 반쯤은 실체를 가지고 소녀의 목을 적셨다. 자, 이제 뱀은 말한다.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렴.’

     

     

     

/6

     

     

어른 놀이를 하는 소녀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뱀에게 고하지 않은 동안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소녀가 세계 뱀과 친구라고, 저에게 생긴 친구들에게 함께 보러 가자고 권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녀의 새로 생긴 친구들은 세계 뱀께 함부로 그런 망언을 지껄이면 아니 된다고 소녀를 타박했다 한다. 그리하여 소녀는 상대적으로 저보다 어른인 이들에게 물었다 한다. 영리하게, ‘세계 뱀님과는 친구가 될 수 있나요?’라고. 어른들은 하나같이 주위를 둘러본 다음 귓속말을 주워섬겼다고 한다. ‘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면 큰일 나!’ 그들은 하나같이 그리 지껄였다고 한다. 뱀은 알았다. 경원의 대상은 언제고 멀어지기 마련이라지만, 스스로 섬긴다 생각하며 그의 세계를 묶어두는 것이 어린 어른들의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한 유치함은 이전까지였다면 코웃음을 칠 것도 없이 그러려니 넘겼겠으나 뱀과 소녀에게 닥친 시간들의 무게가 역풍을 일으켰다. 뱀이 분노로 몸을 떨자 대지가 진동했다. 그러나 마을의 어른들은 지진이라는 말을 읊어댔고 그 누구도 예전과 같이 세계 뱀께서 분노하셨다 하지 않았다. 

     

소녀는 뱀을 진정시키고 말을 이어나갔다. 오래된 술에 취해 제 몸과 혓바닥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필사적으로 오래된 말들을 입에 담아 뱀의 진노를 가라앉히려 했다. 뱀은 그 가련한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연민과 동경, 동정에 사랑과 잃은 것들에 대한 슬픔, 자신의 잃어버린 순수와 후회와 그리움에 대한 갈망. 신들이 저에게 내린 화, 어린 어른들의 어리석음과 어리석음을 파하려 하지 않는 순결에 대한 당황. 그가 벗어 삼킨 허물 만큼의 감정이 뱀의 커다란 머리뼈 안을 갉아먹었다. 소녀의 다음 말이 귀에 들어온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단적으로 줄이면 소녀의 부모와 주변의 모든 어른들이 소녀의 만행에 대해 상의를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세계 뱀의 위험성을 논하는 과정도 있었다 한다. 아이가 말하면 불경일 그것이 어른들의 자리에서는 너무나도 쉽게 거론되었다고 한다. 병풍 뒤에 숨어 소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엿들었다 한다. 뱀은 다시 몸을 떨지는 않았다. 그 대신 소녀의 말을 재촉했다. 아이야, 내 가엾은 아이야, 이리하여 계속 얼굴이 붉어진 소녀가 그간의 시간을 그에게 고하길 바랐다. 

‘그리 하여서.’

소녀의 과거가 술에 젖은 혀를 튕겼다.

그 나이대의 모두가 그렇듯이 소녀는 자신의 친구보다 어른을 두려워했다. 친구 하나와 친구들의 무게를 저울에 놓고 달았더니 친구 하나가 더 가볍더나이다 고했다. 간단한 이야기고, 현자들의 과거를 들었을 때 매번 들어오던 지긋지긋한 화제였다. ‘저는 당신을 뵙는 것을 금지당하였나이다.’ 현명하다 자칭하는 이들이 새하얗게 바랜 다음에야 찾아오던 것에 비하자면 소녀는 그렇게까지 늦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말들을 듣자 뱀은 그럼에도 너무나 늦었다고 알았다. 소녀가 그로부터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소녀의 친구들도 그만큼의 나이를 먹자. 그들은 소외할 대상이 필요했다고 한다. 마땅한 소외자에겐 그에 걸맞는 약점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근처에 그만 한 약점을 가진 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상을 물색하던 중 어느 소녀의 친구가 명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쟤, 쟤 어렸을 때 세계 뱀님이랑 친구라고 거짓말 치고 다녔어.’

마을보다 자그마한 사회에선 그것만으로도 소외당하기엔 충분했다.

그것이 아직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소녀는 말했다.

     

     

     

/7

     

     

어린 어른들과 어린이들의 조잡한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악행이 소녀의 몸에 자행되었다. 그 작은 악마들은 선을 가장하여 악을 행한다는 것을 뱀은 알았고. 소녀가 취중에 읊은 수모는 그중 거의 모든 것의 비중을 차지했다.

‘아이야, 어찌하여 나를 찾지 아니하였느냐.’

‘은연중에 당신을 잊었나이다.’

‘아이야, 세계는 진실을 안다.’

‘당신을 의심한 것이 죄송스러웠나이다.’

제 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고개를 조아린 소녀에게, 뱀은 고개를 들라 말했다.

‘그리고 나를 보아라.’

‘당신이 보입니다.’

‘나는 크고, 강대하다. 마을의 것들은 나에게 닿지 못한다는 것을. 아이야, 너는 알겠느냐.’

‘이제, 알겠나이다.’

‘네가 원한다면 그들을 내 허물의 양분으로 삼겠다.’

‘바라기는 오래지만, 이뤄져서는 아니 될 바람입니다.’

‘아이야. 너는 이제 순수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선하다.’

‘어찌하여 그리 말씀하시나이까.’

‘나를 멀게 알지 않기 때문이다.’

커다란 뱀은 눈에 자애라는 것을 한가득 담았다. 

소녀는 뱀의 눈에서 자애라는 것을 발견했다. 

따라서 자각 있는 광오함이 소녀의 이빨을 훑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 하나.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마을을 멸하는 것은 바라지 않으나, 감히 다른 것을 청하겠나이다.’

‘그렇게 하거라.’

뱀은 소녀의 바람에 답해 꼬리에서 입을 떼고, 숲 위로 세계라 불리는 몸을 일으켰다.

     

     

     

/8

     

     

마을은 다시 뱀을 섬겼고, 소녀는 뱀의 신관이 되었다.

자신의 말을 뱀의 말로 위장하여 마을에 전하고 스스로의 이득을 취했다.

     

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 스스로가 그리 하여라고 말했음을 뱀은 잊지 않았다.

     

소녀는 마을의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 방울을 흔들며 재롱을 떨었고.

세계 뱀은 그저 꼬리를 물고 허물을 집어 삼키다 지혜를 던져주었다.

     

온갖 노랫소리와 좋은 술과 고기가 매일같이 뱀의 앞으로 대령되었다.

그러나 뱀이 그것을 취하지 않음을 소녀는 알았기에 제가 취하였다.

     

세계 뱀은 생각에 잠겼다.

이제 시간은 다시 그를 비껴갔다.

     

     

     

/9

     

     

머리가 꼬리와 통하는 뱀이 있다.

한 때는 그 누구나가 그의 이름을 알았으나, 이제 그의 이름을 아는 자는 오직 그 자신뿐이다. 그를 섬기던 신관은 대를 이어 죽었고, 그저 사람들은 그가 벗은 허물이 곧 자신들이 밟고 선 땅이라 착각하여, 그를 세계-뱀이라 부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제 스스로가 그저 커다란 신주단지일 뿐임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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