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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광기

by 아르투로 posted Jul 15, 2017 (22시 42분 11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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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미친년이라고 했었지?

글쎄, 당신이 미쳤다는 게 뭔지 알기는 하고 그랬는지 모르겠네. 뭐, 이왕이면 결백한 쪽이 좋을 테니 가르쳐 줄게. 광기라는 건 말야...... 회전목마 같은 거야. 늘 같은 지점을 뱅글뱅글 도는 거지. 회사 다니다 우울증 걸리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 본 적 있어? 이 나라에 좆 같은 회사가 지천이니 저런 사람도 한둘이어야 말이지! 그런데 말야, 회사가 좆 같으면 때려치우면 되지 왜 병을 얻을까? 말했잖아, 회전목마라고. 저런 생각이 가능했으면 애초에 정신병에 걸린 게 아냐. 부장한테 문자로 사직 통보하고, 회사 건물 쪽으로 가운뎃손가락이라도 한 번 들고, 여행 가서 훌훌 털고 재취업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뱅뱅 도는 백마 등짝 근처에도 안 간 거야. 우울증 걸린 사람은 이렇게 되는 거야. 아, 좆같다 그런데 아, 좆같다 그런데 아 좆같다, 그런데 아 좆같다. 하도 좆같다 보니 사고가 좆같음의 팔자 띠에 갇혀 버리는 거라고. 그만두라고? 그만둔단 생각을 못 하는데 어떻게? 그러니까 그러잖아. 주변에 우울증 온 것 같은 사람 보이면 상담 받아보길 권하라고. 목마에서 누가 내려줘야 되는 거야.

어머, 어머. 왜 그래, 왜 그러냐고. 진정 좀 해. 사람 잡겠다는 거도 아닌데 말야. 음, 그러니까 이제 알겠지? 난 아주 다채로운 사람이야. 시시껄렁한 쳇바퀴 따윈 안 돈다고. 아침에 일어나면 당신 생각을 해. 오 분 간격으로 알람 다섯 개를 맞춰 두고는 꼭 네 번째 알람에서 깨지. 아침을 안 먹으니 이십 분이면 씻고 튀어나갈 수 있게, 꼭 출근 정각에 아슬아슬하게. 흐응, 아직도 아침에 텐트 치는 거야? 내가 있었음 샤워할 때 입으로 한 발 빼 줬을 걸. 점심 즈음 당신 생각을 해. 나 먹을 겸, 당신 도시락 쌀 겸 요리를 하지. 어떻게 당신 좋아하는 요리가 빠지겠어? 비엔나 케찹볶음, 치즈스틱, 치킨텐더, 매콤한 김말이, 동그랑땡. 인스턴트하다, 인스턴트해. 그래서 당신 싫어하는 것도 챙겨야지. 온갖 푸성귀들 말야. 2호선을 타면서 당신 생각을 해. 오늘은 아침부터 힘들었을까? 부장 새끼는 또라이가 틀림없다고 욕을 할까? 신입사원 새끼는 병신이 틀림없다고 구시렁거릴까? 애 같이 푸념하지만, 난 그런 걸 들어주는 게 즐거워. 아, 얼마나 이상적인 여자야? 그렇지? 회사 건물 앞에 도착해서 당신 생각을 해. ‘저예요. 도시락 싸 왔어요’라고 톡을 보내지. 1이 안 없어져. 십 분을 기다려도, 이십 분을 기다려도. 일이 바쁜 모양이야. 왜, 느긋하게 밥 처먹을 시간에 기획서나 새로 올리라고 지랄하는 부장 있댔잖아? 나 구질구질한 여자 아냐. 괜히 당신 더 힘들게 할 순 없지. 그 길로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당신 생각을 해. 당신이 카페인이라면 질색팔색을 하니 나도 커피를 싫어해야 할 밖에. 커피 말곤 호지티라떼가 내 스타일이야, 마음에 들어. 오래 기다려야 하니 음료는 여러 잔. 호지티라떼를 시켜. 아, 당신이 카페인 음료 줄이래서 그런 거야. 나 기억력 좋지? 다섯 시 즈음 다시 톡을 보내. ‘저예요. 후문 스타벅스에서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1이 안 없어져. 야근인가 봐. 나 찌질한 건 싫은데, 이럴 때 부루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이번에는 전화도 한 번 해 봐. 벨은 꼭 열세 번 울릴 때까지 기다리지. 아, 전화를 못 받을 정도로 바쁜가? 그래도 미리 연락 한 번 해 주면 좀 좋아. 혹 연락 없이 와서 나 기쁘게 해 주려는 건가? 그 길로 후문 앞 오브제에 기대 서서 조마조마 기다려. 당신 생각 하면서. 어쩜, 당신 복 받은 거야. 세상에 이렇게 당신 생각 하는 여자가 어딨겠어?

그러고보니 당신, 나한테 미친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Who's 아르투로

profile

아르투로 벨라노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주인공 중 한명입니다.


'내장 사실주의'라는 정체도 형체도 모를 것을 찾아 헤매는 인물이지요.


저도 마찬가지로 무언지도 모를 저만의 문학을 무던히 탐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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