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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찰나의 순간

by 킹갓초원 posted Jul 30, 2017 (21시 46분 13초)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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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생에서 찬란한 순간을 담아 현상하는 직업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주저 없이 나오는 확답은 사진작가 되시겠다. 

슬픔을 남기고 떠나는 가족애든, 행복의 절정을 담는 사랑이든, 마음 깊은 곳에 숨은 본능이라는 전율이든 간에 사진은 찰나의 감정을 담는다.

지금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위를 먹고 마침내 미쳐버린 고등학생이 땡볕 아래 서서 오글거리는 독백을 한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사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방학 막바지에 다다른 고등학생~ 무조건 편하게 입은 복장~ 나른하고 짜증나는 더위와 삼촌에게 훔치듯 빌린 카메라~.”

그렇다. 8월 15일 화요일. 이날은 융통성도 없고 학생에 대한 배려는 물론이요, 귀찮은 행사만 일삼는 우리 학교가 마침내 개학을 하는 날.

그리고 오늘은?

“8월 14일~ 개학까지 하루밖에 남지 않은 날이지.”

승강장 옆에 있는 기둥에 머리를 내리찍고 기절하고 싶었다.

선로로 떨어져서 어디 한 군데만 부러진다면 남들보다 더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사실은 이상하다.

“그러다 평생 인생에서 하직할 수도……. 하, 하하…….”

더위를 먹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더운 것도 아닌 어정쩡한 몸으로 정신은 피폐해질 무렵, 드디어 고대하고 기다리던 지하철이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등장한다.

“제발 자리야 있어라, 제발, 제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품은 지하철의 문이 열리고 여태까지의 모든 더위를 청산하고도 남을 정도로 상쾌한 고양감이 몰려온다.

자리는…….

“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월요일 오후 시간 지하철은 꽤 한산했다.

덕분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쾌적한 자리가 펼쳐져 있었으니.

“좋다! 집보다 시원하네!”

부끄러움이란 게 없는 것인지 입에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목소리가 나온다.

 더위의 폐해인가, 방학이 하루밖에 남지 않은 날 숙제를 위해 박물관에 가는 현실에 대한 부정인가.

아늑하게 흔들리며 다시 출발한 지하철.

그때 내 눈에 들어왔다.

하늘거리는 검은 머리, 단정하고 예의바른 듯 보이는 기품과 귀여운 원피스.

“예쁘다.”

아차, 생각을 거치기도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혹시 들은 것은 아닐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반대쪽을 응시했다.다행히 듣지는 못한 모양.

“학생…… 인 것 같지.”

내부에 단 둘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의 모습은 이성을 집어삼켰다.

절세가인이라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분명히 예쁘다. 분위기가 청초하고 눈매가 기품 있고, 모습이 아름답다.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벚꽃이 떠오르는 외모.목에 걸린 카메라의 셔터에 무심코 손이 갔다.

──찰칵.

생각과는 무관하게 손가락이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당연히 카메라의 방향은 건너편 여자애를 향하고 있다.

플래시를 꺼둔 건 다행이지만 소리가 너무 크잖아.

“아, 아! 카메라가 잘 되나? 실수로 셔터를 누르고 말았네~.”

어설픈 무마. 여자애 쪽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지?

“자고…… 있는 거지?”

눈을 감고 여전히 단정한 품행을 유지한 여자애는 벽에 기대어 잠을 자는 듯 보인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것처럼 보인다만 분명히 착각일 거다. 분명히.

긴장이 풀린 까닭인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동시에 궁금해졌다. 저 애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사춘기 소년의 왕성함이 갑작스레 만나게 된 인연 탓에 하늘까지 치솟고 사고는 얕아진다.

[이번 역은 ──, ──입니다. 내리실 문은……]

박물관으로 가기 위해서는 내려야하는 역. 안내 음성이 들리고 정확히 3초 정도 고민을 한 것 같다.

결국 내리지 않았다. 문이 닫혀도 미련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스로의 결정에 이견이 없다. 적당한 이유를 대라고 하면…… 그래.

“숙제는 추억을 찍는 거잖아. 박물관은 너무 밋밋하지!”

언제는 심플한 게 베스트라고 떠들고 다녔으면서.

아무튼 배는 이미 떠났고 후회하기엔 늦었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만난 여자애를 따라서 가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어디서 내리게 될까. 사소한 의문이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애의 사진을 기필코 남기겠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일련한 마음가짐처럼 곧은 결심.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30분이 흘렀다.

차라리 여기서 사진을 찍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므로 자제하기로 했다.

“아!”

방심한 순간, 잠에 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던 여자애가 눈을 뜨고 일어났다.

종점에 다다라서야 기지개를 펴며 일어난 것이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여자애는 천천히 개찰구를 빠져나가 역 앞까지 움직였다.

“이 근처엔 산밖에 없을 텐데.”

저 복장으로 등산을 하려는 건 조금 무리라고 생각된다.

“일단 한 장……!”

──찰칵.

집중한 상태에서 셔터 소리를 들으니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잠시 멈춰 서있던 여자애는 내가 셔터를 누른 직후 슬슬 이동하기 시작했다. 방향을 보면 산을 오르는 건 아니다.

찬란하고 만연한 태양의 열기가 쨍쨍 내리쬐는 아스팔트 도로를 향해 걷기 시작한 여자애.

속에서 제발 멈추라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대체 왜 이런 길을 걷는 거야!!”

뜨거운 열기가 치가 떨릴 정도로 싫다.

여자애도 더울 게 분명한데 내색하지 않는다. 걸음도 쳐지지 않는 걸 보니 분명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모양이다.

18살 고등학생 또래 애들이 갖추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기품이 느껴지는 걸음.

짜증의 욕설을 내뱉던 입도 어느 샌가 조용해져 그 걸음에 매료되기 시작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걷기 시작한 여자애는 바로 밑에 강가가 있는 다리에서 흐뭇한 미소를 띠우며 멈췄다. 아래에서 놀고 있는 꼬마들을 보고 웃는 건가.

이건 기회다.

──찰칵.

카메라를 쓰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 손이 떨렸을지 모르지만 제대로만 찍힌다면 예쁜 사진이 나올 것이다.

“웃으니까 더…….”

무슨 부끄러운 소리를 하려는 거람.

2번째 사진을 찍고 독백하고 있노라니 여자애의 걸음이 다시 이어졌다.

밑에 있는 강가로 가려는 걸까? 저 여자애가 물에서 논다면 그건 또 예쁜 사진이 될 것이다. 확신에 찬 상태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내 예상과는 빗나간 여자애의 동선.

여자애는 강가를 지나쳐 하염없이 그저 앞으로 걷고 있다. 정해진 목적지가 있는 게 맞나 의문이 들 정도로 단순히 직진.

중천에 떠올랐던 여름의 해도 시들시들하게 조금씩 지고 있었다.

“어디까지 걸으려는 거야.”

지치지도 않는 건가.

여자애를 따라 걷는 것도 이제는 한계다. 이쪽의 체력이 바닥나서 더는 걷고 싶지 않았으니까. 싱그러운 여자애의 발자취를 따라 향긋한 향수냄새에 매료됐던 것도 풀려갈 무렵.

다시 한 번 여자애는 멈춰 섰다.

민가의 담장 위에 올라가 누워있는 고양이 두 마리.

한 마리는 새끼고, 한 마리는 어미로 보인다.

“봄도 아닌데 따뜻하네.”

마음이 따뜻해지는 듯한 그림. 그걸 잠시 지켜본 여자애는 휴대폰을 꺼내 고양이들을 향해 겨눴다.

“우왓!”

휴대폰 액정에 자신의 모습이 비칠까 냅다 숨었는데, 고양이들 사진을 찍는 거라면 내가 보일 리 없나.

고양이들이 한 번에 앵글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발을 동동 구르며 까치발을 드는 여자애의 모습이 흐뭇한 미소를 자아낸다.

“이것도 좋네.”

──찰칵.

내가 3번째 사진을 찍은 것을 끝으로 여자애는 발걸음을 돌렸다.

정처 없이 걷는. 뭐, 그런 쪽의 여행도 있다고 들었으니 여자애의 동선이 신기하긴 해도 나쁜 의미를 전해주진 않는다.

오히려 이쪽에서 고맙다고 할 정도인가.

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달이 떠오른 시간.

한 장만 사진을 더 찍었으면 좋았을 걸 하고 미련이 남았다.

여자애를 따라서 탑승한 지하철. 종점역이기 때문인가 자리가 넉넉하니 이번엔 아무 데나 앉았다.

“피곤하구만.”

이제 방학도 끝이구나 싶어 슬퍼하고 있을 때.

진이 다 빠져 골골대며 앓는 소리를 내는 내 맞은편에 누군가가 앉았다.

자리도 많은데 굳이 내 맞은편에 앉은 사람. 여태까지 쉬지도 않고 걷고, 또 걸은 몽환적인 기품과 예쁜 외모가 어우러지는 여자애였다.

어째서 라는 의문도 잠시.

피곤을 견디지 못한 내 눈은 슬며시 감겼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의 흔들림이 지친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만 같아 포근하고 아늑했다.

의식하지 못한 채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이제 집이 가까워온다는 것도 모르고 꿈자리를 헤매던 때.

──찰칵.

흠칫, 놀란 나머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자리에 기상했다.

“뭐, 뭐야?!”

잠결에 셔터를 누른 건가?

집에 가까워오는 지하철에는 어느덧 사람도 꽤 타고 있었기에 이목이 집중된다.

“으, 윽!”

운이 좋게도 알맞은 타이밍에 맞춰 열리는 지하철 문.

“죄, 죄송합니다!”

그 길로 나는 집으로 직행했다.


◇◇◇


“자, 많은 사고와 힘겨운 고난이 있었지만 이제 그 결과물인 사진들을 확인해볼까?”

여자애를 찍은 사진은 3장.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의미 없이 찍은 사진들은 20장 정도다.

솎아내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아 시간과 역행한 순으로 사진들을 확인하기 시작하니. 당혹스러움과 경악스러움으로 내 감정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에 맞춰서 얼굴도 엄청나게 일그러졌다.

“이게 다 뭐야! 왜 다 하나 같이 이상하게 나온 거냐고!”

고양이와 함께 찍은 사진은 태양빛을 직격으로 맞아 아무것도 안 보이고, 다리에서 찍은 사진은 각도가 절묘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마지막 역 앞에서 찍은 건?!”

이것도 틀렸다.

손이 흔들려서 나온 이미지들이 죄다 뭉그러졌다.

“으아아아! 왜 의미 없이 찍은 배경들은 잘만 나왔으면서! 그 애 사진은 하나 같이 다 이런 건데!”

숙제 내용은 카메라에 추억의 사진을 담는 것.

숙제와는 별개로 지금까지 봤던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여자애의 사진을 소장하고 싶었던 흑심이 마음껏 뿜어져 나왔다.

“으하아아악! 여태까지의 내 노력은? 내 고통은?!”

카메라를 바닥에 던지려다가 그렇게 하면 삼촌에게 분명히 맞아서 죽을 거라는 확신 때문에 참았다.

“하아, 내 인생이 그렇지. 내일은 개학이고…… 숙제 제목은 뭐라고 정하지?”

세상을 다 산 듯한 한숨이 바닥까지 뚫을 기세다.

뭘 어쩌겠는가, 전부 스스로의 실수인데.

“역 앞에서 찍은 사진 앞에 있는 사진도 전부 카메라가 잘 되나 시험 삼아 찍은 사진들뿐일 텐…….”

미련이 남아 찍은 사진들을 돌려보고 있었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오는 놀란 것인지 조금은 경직된 표정의 여자애.

“어? 어?!”

찍혔다.

선명하게 아주 잘 찍혀있다.

하늘거리는 머리카락도 단정하고 어딘가 붕 뜬 느낌도 없으며 지하철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오히려 싱그러운 느낌을 줬다.

“어, 언제? 언제?! 아, 아까 무심코 눌렀을 때구나.”

어라,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내가 셔터를 눌렀을 때 그 애는 자고 있었는데…….”

사진 속 여자애는 선명하게 눈을 뜨고 이쪽을 응시하고 있다. 갑자기 자신을 찍어 놀랐다는 듯이.

“아……. 자는 척 하던 거였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조금 의미심장했던 여자애의 행동도 왠지 이해가 갔다.

“내가 자기를 찍고 싶어 하는 것도 알고 있었겠지.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대놓고 따라다녔지.”

가끔씩 자리에 멈췄던 것도 나를 배려한 건가.

“어쩌면…… 너도 박물관에 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조금 더 망상을 해보자면 잘만 찍히는 고양이들 사진을 까치발까지 들면서 찍었던 것도…… 마지막에 지하철에서 들었던 찰칵 소리도.

“너도 나를 의식하고 있었던 걸까.”

이름도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주소는 당연하고, 사실 학생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서로에게 끌린 걸까.

“여름이 나쁘지만은 않네.”

지금 여자애의 사진을 본 순간 방학숙제의 제목은 정했다.

“찰나의 순간……. 하하! 이런 표정을 지으니까 우스꽝스럽잖아!”

여름방학이 끝나기 직전 작은 동기에서 시작한 사진 찍기.

내가 담은 건 찰나의 순간, 그리고 풋풋하지만 아쉬웠던 아주 짧은 첫사랑이었던 것 같다.

징그럽고 싫었던 매미소리도 나쁘지 않은 느낌으로 연주를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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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Rogia 2017.07.31 19:56

    마음에 드는 피사체를 사진으로 남기는 건 매력적인 일이죠. 작품 안의 '나'에게는 방학 마지막 날의 로맨틱한 에피소드가 되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플래시 팡팡 터뜨리면서 찍는 건 비매너인 걸 떠나서 자칫 경찰서에 갈 수 있으니 신중히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글은 라이트노벨 특유의 풍미가 잘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좀 더 길게 쓴 글을 읽고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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