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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잠겨버린 여름 방학

by 삼치구이 posted Jul 30, 2017 (22시 49분 04초)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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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는 부모님과 함께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맞벌이셨지만 피곤함에 절은 얼굴임에도 미소를 지으시며 방학숙제를 도와주셨다.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배, 어설프지만 즐겁게 그린 미래의 나, 10분 만에 읽고 쓴 위인전 독후감. 부모님은 장난스럽게 머리를 쥐어박으며 ‘그러게 숙제 미리 하라고 했잖니’라며 핀잔을 주셨다.


중학교 때, 방학숙제는 친구들과 함께했다.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슬픔도 기쁨도 함께했던 친구들이었기에 당연했다. 숙제 대부분은 초등학교에 비해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무언가 가치 있게 남는 것도 없었다. 대부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과 주제에 관한 자료 조사였다. 그중 가장 끔찍한 것은 문제집 한 권을 통째로 풀어오라는 것이었다. 물론, 당연히 무시했다. 하지만 재수 없게도 그 방학숙제는 수행평가에 반영되었고 그는 그 1점 차이로 성적 10위권에서 물러났다. 친구들은 ‘내년에도 같이 놀자!’라며


고등학교의 방학숙제는...



“심심하다.”

홀로 옥상의 벤치에 앉아 점차 침수되어 가는 도시를 보며 민수는 말했다. 단정하게 자른 머리에 말쑥한 교복차림. 뚜렷한 이목구비. 여기까지 본다면 사람 좋아보인다는 인상을 주지만 거기에 강렬한 임펙트를 주는 썩은 동태같은 눈. 그 혼탁하고 맹독을 모아둔 것 같은 눈 때문에 민수는 친한 사람이 아니면 좋은 인상을 주기 힘들었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옥상의 난간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광활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도시 아니, 바다의 수평선을 보았다.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의 흔적은 모두 바다에 침수되었다. 그가 사는 아파트의 옥상을 제외하고 모두. 도로도, 건물도, 탑도 침수되었다. 그는 자신의 발치에 놓인 오래된 신문을 바라보았다.


[온난화로 침수되는 세계와 대한민국.]

[G5, 마지막 희망 ‘노아의 방주’ 건설 계획 무산. 의문의 괴물 습격과 거센 조류가 원인]

[거대 오징어에 이은 거대 장어의 출현, 수중 생물의 비대화. 해양학자들 생태계 변화에 주목.]


대충 쓱 훑어본 그는 누렇게 바란 신문을 발로 짓이겼다. 짜증 났는지 신문에 침을 뱉고 그는 밑으로 내렸겠다.

“아, 젠장.”

민수는 찰팍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계단의 물이 어제보다 더 차올랐다. 눈에 보일 정도로. 이대로 가다간 그가 사는 마지막 층에도 차오를 것이다.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그는 혀를 차며 씁쓸하게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도어락을 풀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습기가 가득 찬 방 안의 짭조름한 냄새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러다가 살아있는 간고등어가 될지도...”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마치 포기한 듯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은 직장에 출근하신 동안 밀려온 파도에 휩쓸려 죽었다. 친구들도,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새내기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당시만 해도 지구 온난화니 뭐냐고 떠들었다. 그리고 세계가 이렇게 바다에 잠기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그가 처음 고등학생이 되어 맞는 여름방학 동안. 그는 학교에서 방학숙제를 받았을 때, 세계는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그 여름방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후 2년이 지났지만, 사태는 더욱 악화하고 민수는 옥상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와 같이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소용없다.

‘있으면 어찌할 건데. 같이 익사해서 죽는 게 좋은지 아니면, 서로 총알 구해서 안락사하는 게 좋을지 토론해?’

뭐, 이렇다.

어차피 식량도 바닥나고 있었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다. 언젠가 죽는다. 언젠가.

눈앞의 죽음을 인식한 이후 민수에겐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방학 숙제를 끝내는 것. 그의 여름 방학은 끝나지 않는다. 학교가 저 밑에 가라앉은 마당에 제출해야 할 교사는 이미 물고기 밥이 되었을 테니. 하지만 그럼에도 방학 숙제는 마치고 싶다. 그 이유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나도 별 신경 안 쓰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게 이유였다.

그 이후 민수는 식량과 무기, 약품 (오해 마시라. 순수한 치료용도다. 그는 안락사를 꿈꾸지 않는다.), 필수용품 등을 챙기며 틈틈이 숙제했다.

작년에는 수학 문제집 한 권과 다큐멘터리 감상문을, 영어는 생활 필수 관용어 100개를 썼다. 그 외에 한국사나 미술, 그리고 대충 다니던 동아리 숙제까지 마쳤지만 단, 한 과목이 남아있었다.


[국어: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을 주제로 시나 소설, 짧은 수필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글로 써서 제출하세요. (이 과제는 2학기 수행평가에 반영됩니다. >_<) ]


‘엿 같은 김진혜 선생님 같으니라고. 게다가 수행평가라니. 진절머리가 난다. 그렇게 문제 만들기가 싫냐!’

그는 애증 서린 욕설을 마음속으로 이미 죽어버린(?) 선생에게 퍼부었다. 분명, 재밌고 착한 교사이자 학급의 담임 선생님이었지만 과제를 내는 감각이 영 형편없었다. (적어도 민수에게는)

처음 과제를 봤을 때, 그는 대충 인터넷에서 베끼겠다고 생각했지만, 세계가 망하고 나자 진지하게 할 마음을 먹었다. 그 결과, 민수의 뇌가 터져버리기 직전까지 가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이라... 음, 역시 부모님이려나? 아니야, 너무 진부해. 부모님을 사랑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 이전에 품고 있는 마음은 존경이야... 아님 친구? 아니, 그 씨꺼먼 남정네들한테 사랑이라니. 뭔가 민망한데. 아! 초등학교 때 고백한 이진아! 그래, 걔로 결정했어!’

그 후 10분 뒤. 민수의 방은 온통 찢어진 스케치북과 널브러진 책으로 가득해졌다. 이유는 ‘쪽팔려서’였다.

아무튼 그런 일을 몇십 번 반복하자 지금에 왔다. 앞으로 반년이면 고등학생에서 졸업하는 나이가 된다. 그 이전에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하지만, 사랑이라니... 이런 세계에서 새롭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역시, 예전에 있었던...”

또 옛 추억이 떠오르려고 한다. 어쭙잖게 초코 막대과자와 어울리지 않는 토끼 인형을 선물하며 ‘좋아해’라고 고백하는 10살짜리 꼬맹이...

“으아아아아아! 시러어어어어!! 죽어! 죽어! 그 이후에 일주일 만에 다른 남자랑 사귄다고!!”

그는 책상에 앉아 벽을 발로 차며 소리 질렀다. 이렇게 소리 질러도 아무도 안 알아준다. 세계가 망한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그는 5분 동안 쉐도우 복싱을 하다 기력이 떨어졌는지 침대로 가서 누웠다.

“몰라, 숙제로 나발이고 망하면 소용없잖아.”

그는 눈을 감고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며 잠들었다.



‘철썩, 철썩’

파도소리와 미묘하게 다른, 무언가 넓이가 큰 물건이 물에 부딪히는, 그런 소리가 들렸다. 민수는 눈을 번뜩 뜨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예전에 한 번 들어본 적있는 소리. 거대한 물고기가 옥상에 살아남은 그와 아파트 주민을 잡아먹을 때 내던 소리와 같았다.

‘철썩ㅡ’

민수는 급하게 일어서서 베개 아래에 숨겨둔 칼을 꺼냈다. 침대 밑에 발을 딛자 차가운 물에 살짝 잠겼다. 그는 인상을 쓰고 방 문을 열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방 안이 잠길 정도라면 말 다했다. 이제 이 집도 버리고 아예 옥상으로 가야한다. 물론, 거실에서 찰팍 거리는 소리를 내는 저것을 죽인 후에.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그는 칼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창 밖으로 밝은 달이 거실을 비춰주었다.

‘아ㅡ, 무언가를 죽이고 싶은 밤이다.’

그는 예전에 봤던 여느 애니메이션처럼 생각하며 발을 옮겼다. 주방 쪽으로 철퍽거리는 소리가 점차 크게 들렸다. 푸른색 비늘에 2m 즈음 되어 보이는 어류의 하반신. 달빛과 냉장소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그런지 형태가 아주 잘 보였다. 저 정도라면 쉽게 죽일수있다.

민수는 칼을 들고 녀석의 하반신을 노렸다.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그는 칼을 내리 꽂을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이것도 맛있네~”

“응?”

“이건 멸종된 걸로 알고 있는데.”

말했다. ‘저것’이 말했다.

“에?”

이번엔 냉장고 쪽에서 말이 나왔다. 찰팍거리며 바닥을 두드리던 하반신이 멈췄다. 아니, 경직됐다.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민수는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젖은 먹을 먹인 것처럼 새까만 머리카락. 하지만, 끝부분은 하반신과 같은 옅은 푸른색이었다. 또랑또랑한 눈매에 오뚝한 코. 그리고 붉은 입술과 쉼 없이 움직이는 가녀린 턱과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볼.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머리카락으로 가슴을 가린. 아름다운 인어.

“아...”



시선을 빼앗긴 민수는 칼을 떨구고 천천히 홀린 것처럼 그녀에게 다가갔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위험해요!”

그러자, 인어는 크게 소리 지르며 민수의 발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녀 쪽으로 끌어당겼다. 바닥에 머리르 부딪치고 겨우 정신차린 민수는 왜 그녀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았다. 그가 서있던 자리에 거대오징어의 촉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뭐 하는거야! 내려가!!”

그녀는 송곳니를 세우며 아름다운 용모와 어울리지 않는 매서운 눈으로 녀셕을 쏘아봤다. 그러자, 오징어는 겁먹은 듯 촉수를 거두고 밑으로 잠겼다.


그녀는 눈에서 독기를 거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넘어진 민수의 가슴 위에 올라탔다. 부드러운 살결과 촉감이 느껴졌다.

“괜찮으세요?”

“아, 음, 오, 예.” 순서만 바꾸면 걸그룹 노래 제목으로 써도 될 법한 말이었다.

“다행이네요.”

그녀는 안심한 듯 다시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뒤에서 밝게 빛나는 달 때문인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사랑에 빠지기 좋은 날이다.



그녀의 이름은 인간의 발음으로 ‘쑨투핰펯셴학’라고 한다. 발음하기 어려우니 민수는 그녀에게 ‘세하’라는 발음하기 편한 이름을 주었다.

세하는 새로운 인간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키득키득 웃으며 헤엄쳐서 창문 밖으로 나갔다.

“세하? 어디 가려고?”

“이름을 선물 받았잖아요. 저도 선물 줄게요.”

살아생전 처음 보는 인어였다. 그럼에도 당황스럽거나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매혹되었다.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사이렌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스스로 물에 빠지고 싶을만큼 아름다웠다.

세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났다. 풍만한 가슴은 수면 아래로 숨기고 그녀는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거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물에 잠겼다가 튀어올라 창문을 통해 거실로 들어왔다.

“자, 여기요. 제가 주는 첫 선물이에요.”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세하에게 흑진주를 건냈다. 그녀의 머리카락 색과 닮은 아름다운 진주였다. 그 광택에 감탄하며 세하는 머뭇거리며 주머니에 진주를 넣었다.

“고마워. 음, 세하?”

“응? 왜요?”

세하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냉장고를 보았다. 민수는 피식 웃으며 냉장고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먹다 남긴 소고기를 건네주었다.

“으, 음... 먹어도 되나요?”

“응, 소고기 별로 안 좋아해. 질려거든.”

“이, 이게 질렸다고요?”

“뭐, 그렇지... 매일 이것만 먹었으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고. 소고기 못 먹으면 한이 될까 남은 생은 소고기만 먹겠다며 마트에서 소고기만 털어왔지만, 그가 깨달은 것은 영양 밸런스의 중요함이었다.

“이, 이, 이게 대체... 지상인들은 얼마나 풍족한 생활을...”

세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날로 된 소고기를 씹어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안한 듯 (민수의 눈에는 아깝다는 듯 보였지만) 고기 한 점을 그에게 건냈다.

‘거절하면 서운해 하려나?’

그는 밝게 웃으며 그 고기를 받아 입 안에 넣고 씹었다. 비릿한 냄새가 났지만 차가운 육회 같았어 먹기 불편하지는 않았다.

세하는 얇고 하얗고 부드러워 보이는 손가락을 빨고 민수를 바라보았다.

“신세를 많이 지내요. 혹시, 뭔가 원하시는 건 없나요? 너무 받기만 하네요.”

아무래도 인어들 사이에선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좋은 문화를 가진 모양이었다. 민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말했다.

“어디 살아?”

“바다 밑이요.”

“왜 여기로 왔어?”

“심심하면 가끔 놀러와요. 불법이지만.”

“다른 인어도 있어?”

“몇 명이요. 그런데 이렇게 위로 올라온건 제가 처음일걸요?”

질문하는 동안 세하는 냉장고에 있는 다른 식재료를 먹어치웠다. 아름다운 외견만큼 식탐도 끝내주는 그녀였다.

“음, 이런 말 하면 좀 이상하겠지만.”

“네, 네.”

그녀는 마지막 남은 파를 꼭꼭 씹으며 말했다.

“나랑 사귀어줄래?”

“음, 혹시 선물...”

“아니, 내가 너한테 준 음식 때문에 나랑 사귀는 거라면 사양할게.”

“아니요. 민수님이 저한테 선물 주시는 거냐고요.”

아무래도 세하는 받는 쪽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민수가 그녀에게 고백을 선물로 준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그럼 왜 굳이 인어와 함께?”

그는 자초지종 설명했다. 방학숙제와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다고. 설명을 듣는 내내 진중한 표정과 어린아이같이 해맑은 미소를 짓다가 마지막에 ‘첫눈에 반했어’라는 부분에서 볼을 붉히며 소녀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어도 볼이 붉어지는구나.’

“좋아요. 저희 사귀어요. 아, 들어오실래요?”

세하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민수는 당황하며 반대쪽 손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추스렸다.

“어딜?”

“제 집이요.”

그녀는 바다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미안. 난 아가미가 없어서.”

“에~?”

그녀는 지느러미를 찰팍거리며 말했다. 진심으로 놀란 표정으로. 그 의외라는 반응에 어쩐지 상처받은 민수였다. 그는 포유류의 특징 그리고 육상 동물의 특징을 세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 그렇군요. 바다에서 숨을 못 쉰다니...”

“미안.”

“아뇨! 그럼 배 위에서 즐거운 일을 더 많이!”

“배?”

세하는 바다로 뛰어들어가더니 잠시후 수평선 끝에서부터 다 부숴진 나룻배를 끌고 왔다. 그 사이에 물이 더욱 불었는지 창문 바로 앞까지 해수면이 상승했다. 간신히 숨을 쉴 공간만 남겨둔 상태에서 민수는 급히 세하의 도움을 받아 나룻배에 올라탔다.

“죄송해요. 많이 힘들었어요?”

“아니, 괜찮아.”

세하는 나룻배에 팔을 걸치고 그를 바라보았다.

“민수님은 그럼 시를 쓰실 거에요?”

“글쎄. 글을 써본 적이 있어야지...”

“제가! 제가 도와드릴게요! 다른건 다 낙제해도 국어는 간신히 통과했다구요! 믿어보세요!”

세하는 나룻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명량하게 하반신을 흔들며 말했다.

“간신히 통과한 수준이냐.”

“뭐 어때요. 그리고 처음은 누구나 있는 법이에요. 이 기회에 문학에 발을 담가보시는 건 어때요?”

“하하하, 그러면 좋겠네.”

그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세하도 꽃망울이 터지듯 그에 호응하며 크게 웃었다. 오랜만에 소리 내 웃은 민수는 다 젖어버린 종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세하와 함께 시상을 나누었다.

“절 처음 봤을 때, 어땠어요?”

“아주 예뻤어. 눈이 뽑힐 정도로. 바다 같은 네 눈에 잠기고 싶을 정도로.”

“엑, 뭐에요. 겉모습만 보고 반한 거였어요?”

민수는 차분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 괴물한테 잡힐 뻔했을 때, 도와줬잖아. 정확히 그때, 반했어.”

“아! 위기에 빠진 공주님을 구하는 왕자님 같은 거죠? 그거?”

“하하하, 그러네... 잠깐, 그럼 내가 공주님인가! 이상한데 이거?”

“인어한테는 그게 정상인데요?”

달이 하늘을 가르고 별들이 정해진 항로를 순회하는 동안 둘은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풀었다. 시답잖은 유년기부터 짜릿한 모험이나 일탈까지. 지상의 인간과 바다의 인어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신기했다.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도 가슴에 품은 마음은 같았다.

“저하고 싶은거 있어요!”

“뭔데?”

“해가 뜨면 다시 밑으로 내려가야 해요. 그 전에... 달이 수평선 아래를 가라앉기 전에, 입맞춤해보고 싶어요.”

그녀는 나룻배에 팔을 걸치고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 입술을 내밀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을 겹쳤다. 부드럽고 따뜻한, 그런 입술이었다.



결국, 이번 방학 숙제도 혼자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과 함께 방학 숙제를 했다.

중학교 때는 부모님과 함께 방학 숙제를 했다.

이번 고등학교 방학 숙제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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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gia 2017.07.31 20:12

    종말 이후의 세계, 포스트 아포칼립스 분위기에서 로맨스로 이어지는 글이었습니다. 이런 재난물의 작품은 '(독자인) 내가 이런 상황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란 감성을 자극하면서, 정말로 있을 법한 상황으로 캐릭터를 가혹하리만치 힘들게 몰아가곤 합니다. 삼치구이 님의 작품은 조금은 소프트하게 접근해서 인어와의 해피엔딩으로 맺어지게 되었지만, 작품 내부에서 좀 삐그덕 거리는 설정이 독자에겐 읽는 내내 마음에 걸릴 수 있습니다. 가령 급속한 해수면 상승인 상황에서 어떻게 냉장고가 작동할 수 있는지 등입니다.
    해수면 상승과 어류 거대화의 떡밥은 조석 웹툰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었는데, 최초 연재 당시 반응은 '진격의 어류'였습니다. 즉,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물고기 습격이란 설정은 피상적인 부분에 불과하고, 독자가 받아들인 내용은 [진격의 거인]과 같은 재난 생존물이란 맥락에 더 집중하였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도 '해수면이 상승한 세계에서 인간과 인어 생활권의 교집합'에 대한 쪽으로 더 접근한다면 굉장히 이색적인 작품으로 확장되리라 생각합니다. 쿠이 료코의 단편집 [용의 귀여운 일곱 아이]에 인어 관련 단편이 있으니 한 번 구매해서 읽어보시면 큰 인상을 받으실 듯 합니다. 국내 정발이 된 작품이니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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