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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03

by 유혈이 posted Aug 05, 2017 (11시 43분 19초)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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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 있는 너에게.


어제까지만 해도 찌는듯한 더위였는데, 오늘은 비가 내려. 하늘도 너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같아. 그곳에서도 잘 지내길 바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언제였지? 입학식에서 옆자리에 앉아있던 너. 왜, 그때 네가 말을 걸어줬잖아. 어디 중학교에서 왔냐고. 너도 잘 알다시피 나는 음침하고 기분 나쁜 여자애니까 잘 대답하지 못했어. 그래도 너는 자상하게 대해줬지.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이 참 좋았던 거 같아.

난 사실 고등학교는 여고로 갈까 생각도 했어. 공부하는데 연애가 방해가 된다고 엄마한테 들었거든.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어. 그런데 널 만나고 알겠더라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같은 반에 배정되고 나서부터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판서도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어. 네 뒷모습을 쳐다보는 게 내 수업이었으니까.

시골학교라서 학생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우리 둘은 유독 친해졌지. 사실 너의 노력이 크다고 생각해. 나는 남한테 먼저 다가가지 못하니까. 네 권유로 들어간 농업 동아리도 네가 없었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거야. 우리 아버지가 농사를 짓지만 나는 농사는 질색이었으니까. 아, 이 이야기는 저번에도 했지?

사실 나는 너가 참 좋았어. 처음엔 이게 무슨 감정인지 잘 몰랐지. 이런 게 사랑이구나 싶었어. 심장병에 걸린 듯이 너가 말을 걸어 주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쾅대고, 안 하던 실수까지 저질러버리고. 그런 내 모습도 너는 답답하지 않다는 듯 자상하게 대해줬어.

그때 생각 난다. 그, 친척동생 선물을 골라야 하는데 뭘 좋아할지 모르겠다고 너랑 같이 시내에 나간 적이 있잖아? 그거 사실은 거짓말이야. 난 친척동생 같은 거 없어. 그래도 너랑 놀고 싶은데 핑계를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선의의 거짓말이었으니까 용서해 줄 거지? 많이 걸어 다녀서 힘들어했던 것 같지만, 노래방도 가고, 쇼핑도 하고. 재미있었잖아? 돌아오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짜증나는 매미소리 때문에 너가 힘들어 했던 것도 기억이 나.

어느새 내 마음을 참을 수 없게 되었어. 그날은 바람이 거센 날이었지. 햇님은 뜨거웠지만 시원했던 그날. 나는 너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어. 너는 조금 더 시간을 가져 보자며 했지. 맞아, 내가 조금 성급했다고 생각해. 그 즈음이었나? 너는 일정이 많아졌지. 부모님 생신, 친척 돌잔치, 할머님도 돌아가시고. 날짜도 전부 기억하고 있어. 너에 대한 건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으니까. 비록 그 때문에 주말에 너와 함께 지내기 힘들게 되었지만, 나는 다 이해해.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인걸.

정말 좋았어. 너와 함께 하는 모든 것이. 너와 함께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두려워졌어. 너를 빼앗기면 어떻게 될까. 특히 그년이 불안했어. 왜, 있잖아? 선배랍시고 동아리에서 이것 저것 참견하던 년. 너는 참 좋은 사람이지만 그년이 여우짓 하는 건 왜 알아차리지 못했어? 왜 아무데서나 웃음을 흘리고 다녔던 거야?

아, 미안해. 너를 탓할 일은 아니야. 다 그년이 잘못한 거야. 같은 여자 눈에는 뻔히 보여. 그년은 너를 빼앗아 가려고 했다고!

어쩔 수 없었어. 왠지 네가 점차 멀어져 가는 것 같고, 그년과 너가 단둘이 시간을 보낼 때면 불안해서 손톱을 깨물게 됐어. 물론 나는 너를 믿으니까, 그년과 너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믿어.

하지만 사랑은 확실한 게 좋잖아? 그년이 아예 넘볼 수 없도록. 그년이나 할만한 하찮은 발정이 아닌 진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날. 네 도시락에 우리의 사랑을 무럭무럭 키워줄 약을 넣었지. 왜, 있잖아? 동아리에 있던 식물들을 무럭무럭 자라게 해주는 약. 가슴을 움켜쥐며 찡그린 네 얼굴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 하지만 우리 사랑의 완벽한 성취를 위해서라면 잠시 참을 수 있는 고통이었지?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어. 바로 따라갈게.

우리 사랑의 골인은 바로 코 앞에 있어.


너만을 사랑하는 다연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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