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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라한대] 일주일간 데이트

  • 칸나
  • 조회 수 88
  • 2017.08.05. 12:00
  • 글자 수 자 (공백 포함)
협업 참여 동의

“조, 좋아… 합니다. 저와 사, 사, 사귀어주세요!”

     

좁은 방. 교복을 입고 마주 앉은 남녀. 풋풋한 고백을 하며 아마도 얼굴을 붉히고 있을 나. 어디로 생각해도 청춘의 한 장면이다. 어디선가 폭발해버리라는 야유가 들려올 것만 같다.

     

하지만 고백을 받은 소녀의 반응은 냉담했다.

     

“컷, 컷! 패기가 부족해! 남자가 고개를 붉혀봤자 아무런 메리트도 없으니까 그만 둬! 그리고 뭐야 그 어정쩡한 태도는? 그래가지고는 지나가던 물벼룩도 안 넘어올 거라고!”

     

이쪽도 지나가던 물벼룩에게 고백할 생각 같은 건 없는데.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역시 찌질한 고백이었지. 하아.

     

“실전이라고 생각하면 떨리는 걸 어떡하라고.”

“우와…… 진짜 한심하네.”

     

시끄럽다. 나도 알고 있으니까 일일이 얘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눈앞에서 독설을 내뱉고 있는 이 여자아이는 내 소꿉친구인 소나기 양. 그녀에게는 얼마 전 우연히 같은 반의 이슬비 양을 좋아한다는 걸 들키고 말았다.

     

나기는 그날 이후 고백이 성공하도록 도와주겠다며 매일 우리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건지 의심스러운 이 고백 특훈이 시작된 것이다.

     

“실전이라고 생각하면 떨린단 말이지…… 아앗, 그거야!”

     

나기는 또 뭘 생각해냈는지 눈을 번뜩이며 벌떡 일어섰다. 아무래도 좋은데, 일어나면서 치마가 말려버렸다. 아무리 소꿉친구라지만 그렇게 서비스 해줘도 괜찮냐?

     

“결국은 경험이 부족하니까 그렇게 동정 냄새를 풍기는 거잖아? 그렇다면 일단은 실전 경험을 늘리면 되는 거야! 진짜 좋은 생각이지? 후후후. 역시 나는 대단하다니까.”

     

뭐냐. 동정 냄새라는 건. 그런 걸 풍긴 기억은 없다. 이래봬도 청결을 생각해서 매일 씻는 깔끔한 남자라고. 흥이다.

     

잠깐만. 그런데 동정 냄새가 안 나게 실전 경험을 늘린다는 건…… 설마 나기가 직접 떼준다는 걸까?

     

“죽어! 죽어! 죽어! 죽어어어어어!!!!!!”

     

이후 엉망진창으로 얻어맞았습니다.

     

* * *

     

아무래도 나기가 말한 실전 경험이란 건 여자와 어울리는 것. 즉, 데이트를 말한 모양이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는 건 앞으로 일주일. 그러니 남은 기간 동안 자기와 데이트를 하며 어떻게든 여자에 익숙해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학하는 날에 멋지게 고백하면 분명 성공할 거라고, 나기는 밋밋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하여 오늘이 바로 대망의 첫 데이트 날인 월요일. 데이트 장소는 동물원. 물론 나기가 골랐고, 비용은 전부 내가 부담하는 걸로 되어있었다.

     

……혹시 나 속고 있는 건 아니겠지?

     

“미안해. 조금 늦어버렸지? 많이 기다렸어?”

     

청반바지에 검은색 뷔스테에를 입고 있는 나기가 어느 새 옆에 있었다. 확실히 슬비와 맞먹을 정도의 미인. 엄청 잘 어울렸다. 아니, 이게 아니지.

     

“조금 좋아하시네. 너 1시간이나 늦었다고.”

     

내가 불평하자 나기는 오히려 한심하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야. 왜 그러는데?

     

“쯧쯧. 이럴 때는 너도 이제 왔다고 해야 하는 게 상식이잖아. 슬비한테도 그렇게 말할 거야?”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오늘 늦은 건 명백히 네가 잘못한 거 맞잖아. 그냥 적당히 말 돌리고 있는 것뿐인 거 아냐?

     

“자, 우선은 서벌쨩부터 보러 가자!”

     

뭐라고 더 추궁하기도 전에 나기는 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벌쨩이라면 역시 그거 맞지? 이 동물원에 사바나캣은 없을 텐데?

     

“읏…… 어째서…….”

     

풀이 죽은 나기를 보고 조금 기분이 좋아졌던 건 비밀이다. 결국에는 금방 회복하고 말았지만.

     

* * *

     

화요일의 데이트 장소는 수족관. 이번에도 물론 이번에도 나기가 고른 장소였다. 그러고 보니 방학 내내 수족관 타령을 했던 것 같았는데.

     

이거… 역시 날 이용해먹고 있는 거 맞지?

     

“와아아! 진짜 상어다! 완전 커! 헤엄치는 것도 완전 멋있잖아!”

     

하지만 아이처럼 붕붕 뛰는 나기를 보고 있으니 아무래도 좋은 것처럼 되어버렸다. 어쨌든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서 이런저런 조언도 해줬으니까. 답례로 며칠 어울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런데 있잖아. 수족관 상어 지느러미도 똑같이 맛있을까?”

“…….”

     

* * *

     

수요일은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 이젠 완전히 다 잊고 즐기고 있는 거 맞지?

     

“꺄하하하. 진짜 재밌었다.”

     

고공행진하는 놀이기루를 몇 개나 타고도 나기는 발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응? 뭐야. 멀미라도 하는 거야? 힘 좀 내봐. 슬비 앞에서도 그렇게 한심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아! 정 힘들면 이번에는 회전목마라도 탈까? 푸흐흣. 아, 유령의 집이다. 그럼 저건 어때?”

     

아주 신났군.

     

“우읏. 흐끅! 뭐, 뭐야… 왜 저렇게, 리얼하게 무섭게 해, 해놓은 거, 냐고, 히끅!”

     

나기는 의외로 유령은 무서워하는 모양이었다. 음. 메모해두면 언젠가 써먹을 수 있을 지도.

     

* * *

     

목요일은 열차를 타고 바다로 가게 되었다.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신이 나서 뛰어놀던 나기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진짜 뭐하고 있는 거야. 위험했기 때문에 제법 진지하게 화를 내자 풀이 죽은 모습으로 솔직하게 사과를 해왔다. 결국에는 용서해줄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에는 백화점으로 함께 쇼핑을 갔다. 여자아이의 쇼핑에 어울려주는 것도 필요한 경험이라나. 어제 풀이 죽은 일은 이미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역시 회복이 빠른 녀석이었다.

     

토요일에는 영화를 보거나, 디저트를 먹으러 카페에 가거나. 맛집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일주일은 정말로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어쩌면 나도 즐기고 있었을 지도.

     

그리고 마지막인 오늘. 일요일은 평범하게 한강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느긋하게 앉아서 도시락을 먹거나. 근처의 분수를 찾아서 뛰어놀거나. 나란히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마지막엔 어째서인지 경주를 하고 있었지만.

     

“후후. 역시 승리의 맛은 달콤하구나.”

     

경주 내기에서 진 내가 사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기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금 앞에서 걷는 나기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있잖아. 나기야."

"응?"


내 목소리를 듣고 돌아보는 나기는 노을을 받아 감귤색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왜 이제야 깨달은 건지 모르겠다.


나기와는 몇 년 전부터 저절로 소원해져버렸지만, 슬비의 일을 핑계로 먼저 다가와준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나도, 제대로 용기를 내야겠지.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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