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두 사람만의 창조신화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18:52 Dec 15, 2017
  • 125 views
  • By 코비F
협업 참여 동의

<1>
관측할 수 있는 자는 곧 세계의 신이다. 그러므로 나는 신이고, 내 눈앞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녀석 또한 신이다.
신의 일부와 신의 일부가 맞부딪혔다. 충격에 온 세상이 흔들린다. 고통을 견디기 위해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녀석이 내 배를 발로 툭툭 치면서 말했기 때문이다. 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힘이 있나니.
“눈 떠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2>
세상이 멸망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내가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스스로의 파멸, 관측의 종말. 혹은 자살이라 불리는.
“오늘은 일찍 끝나서 다행이네?”
붉은 빛이 감도는 교실에 얇고 새된 목소리가 울린다. 먼지가 들러붙은 교복 마이를 손으로 털어내고 나서, 나는 미닫이문을 거세게 열어 젖혔다.
복도는 쌀쌀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 마다 온몸이 욱씬거린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간다. 하얀 입김이 시야를 가렸다가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벌써 11월이다. 마이 위에 패딩을 걸칠 시기가 다가온 것인지도 모른다.
“집에 가는 거야?”
계절에 따라 옷이 바뀌지는 않는 걸까. 여느 때처럼 말을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추워 보였다. 적어도 카디건이라도 걸치고 있으면 좋을 텐데.
교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천천히 주위를 돌아본다. 추위 탓인지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어.”
“그럼 오늘은 작별이네. 이따가 밤에는 안 놀러와?”
“너무 추워서.”
“안됐네. 나는 전혀 안 추운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의기양양하게 허리를 곧추 세웠다. 백색 반팔 와이셔츠의 주름이 팽팽해졌다.
“……그거 참 부럽구만.”
“부러우면 너도 이쪽으로 오지 그래?”
“사양할게.”
낮에는 고작 몇 분. 사람들의 눈이 없을 때만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짧은 대화. 시시콜콜한 농담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녀는 신난 듯이 입을 움직였고, 나도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럼 내일봐.”
“응.”
교문을 나서자 거짓말처럼 인기척이 사라진다. 매번 겪는 일이지만 황당하기 그지없는 현상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고개를 다시 교문 안으로 집어넣자, 그녀가 빤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나 보고 싶어서?”
“……아니야. 진짜 갈게.”
<3>
그녀의 이름은 신아래. 6개월 전에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당시 아래의 남자 친구였던 나도 자세한 이유는 모른다. 가족의 불화 때문인지, 진로문제인지, 교우관계의 트러블인지. 경찰 수사 결과 단순 자살로 결론이 났지만,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듯했다.
여러 가지 무성한 소문이 돌다가, 최후에는 화살표가 나에게 돌아왔다. 아래는 미인에다 활발한 성격인 덕에 학교에서 항상 인기인이었다. 반면 나는 평범한 외모에 말 수가 적은 편이었다. 아래가 살아있을 때에도 ‘왜 저런 애랑?’이라는 의문이 대부분이었는데, 아래가 죽자 그 의문은 삼류 소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로 변해버렸다.
최초에 강하게 부정했다면 끝났을 일이다.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아래의 죽음에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고 반쯤 넋이 나가있던 탓에 그런 이야기가 돌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마침내 그 이야기가 내 귀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전교생이 내 적이 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 즈음부터, 그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직 나만이 그녀를 관측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오롯이 내 세계만의 주민이었고, 나의 백성이었으며, 혹은 도피성 망상의 결과물이었다.

<4>
“추워서 안 온다는 거 아니었어?”
“안 온다는 이야기는 안한 걸로 기억하는데.”
롱패딩을 걸치니 야밤의 학교도 그리 춥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두꺼운 옷을 입은 탓에 거동이 조금은 불편했지만, 수위의 눈을 피해 몰래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반 아이들의 사물함을 뒤져 모포 몇 장을 적당히 꺼낸다. 아래가 옆에서 도둑놈이라며 야유했지만 적당히 무시했다. 몇 겹으로 바닥에 깔아놓고서, 하나는 둘둘 말아 베개로 만드니 쓸 만한 잠자리가 완성되었다.
천장을 보며 눕자 아래도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래야.”
“응?”
“이제 곧 졸업인데, 그럼 너는 여기 계속 남는 거야?”
아래는 지박령이다. 스스로의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 여전히 아래가 내 망상의 일부일 가능성은 남아 있었지만, 망상이라기엔 너무나도 또렷한 현실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아니, 아마 사라질걸.”
“……그렇구나. 내가 없어져서 그런 거지?”
“응.”
이 또한 아래에게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귀신이 현실에 남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원념 때문이다. 아래는 나를 보고 싶어 현세로 돌아왔고, 나에게 해를 끼치기 싫어 지박령의 형태를 택했다고 한다. 사람에게 달라붙은 귀신은 어떤 방식으로 던 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아래는 말했다.
“그럼 나도 죽을까.”
“나야 고맙지.”
아래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죽음을 제안했다. 그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이 아래가 내가 알던 신아래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죽으면 평생 둘이 함께 있는거겠지?”
“이 학교 안에서지만 말이야.”
“아래 너는 그걸로 좋아?”
“그야 물론이지~”
좋아. 그럼 죽자.
나는 옥상에서 올라가, 그대로 뛰어 내렸다.

comment (1)

Novelic
Novelic 17.12.16. 20:37
창조이자 멸세의 신화였습니다. 세계가 제아무리 크고 위대한들, 우리가 보고 접하고 느끼는 세계의 범위는 너무나도 조그맣죠. 분량은 짧으나 그 이상의 무력감이 맴도는 글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prev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157'이하의 숫자)
of 157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