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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신 이야기

  • 햎엔
  • 조회 수 33
  • 2017.12.15. 23:52
  • 글자 수 자 (공백 포함)
협업 참여 동의

어느날, 신은 낙원을 만들고 있었다.


"어디 보자. 나무는 이 길을 따라 심어두고, 강줄기는 동그랗게 할까."


왜 그런 걸 만들고 있느냐면, 그는 적잖이 따분했다. 시간, 공간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아 헤아릴 수 없는 만큼의 세월을 살았으니 말이다. 그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해봤으니 더이상 뭘 해도 만사가 성에 차지 않는 건 당연했다.


"이쯤에는 무지개다리를 놓자. 그 밑에는 황금빛 산맥을 세우는 게 좋겠어."


그래서 심심풀이겸, 그는 아마 천만 번째의 낙원을 만드는 중이었다.


"얍."


그가 손가락을 튕기더니 순식간에 생명체를 만들었다.

현 인류 여성와 비슷하게 생긴 그 생명체는, 완벽이란 단어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전신에서 묻어나오는 고결함은 그야말로 신이 내린 생명체라 할 수 있었다.


"아버지, 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가 신에게 말했다. 신은 미소지었다.


"이야, 이번에도 걸작이네. 이놈의 미적 감각이란."


생긴 것도, 생각하는 것도 완벽무결을 뛰어넘은 그녀.


"...."


그녀는 차갑게 신을 바라봤다. 그것이 나쁜 의미라기보다는 그녀에게 있어선 당연한 행동이었다.

무슨 소리냐면, 그녀에게는 감정이 없다. 감정은,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조차 왜곡해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만들고, 괜한 무모함을 솟아나게 하는 골칫거리니까. 모든 것이 완전한 그녀에게 감정이 없는 건 당연하다.


"널 소피라고 부르마. 소피, 너는 18,882,851번째 딸이다."

"네, 아버지."


인류가 상상조차 못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존재, 이른바 하느님.

 그런 거창한 존재라 해도, 고독이란 감정을 숨길 순 없었다. 천문학적인 시간동안 수많은 생명체를 창조해냈지만 그는 아직 외로웠다.


"한번 안아보자. 자, 이리 와라."

"네."


그녀가 신에게 안겼다. 신은 평온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기분이 역력했다.

신은 그녀를 떼어놓으며 생각했다.


'역시 뭔가... 부족해.'


신은 이번에도 어떠한 감정을 느꼈다. 아무리 완벽하고 완전한 것을 만들어도 채워지지 않는 복잡한 감정. 눈앞에 있는 1,882,851번째 딸을 보고 있어도, 조금도 충족할 수 없었다.


'....'


그래서 그날.

신은 자신이 만든 낙원 한가운데에 앉아 고민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채울 수 있을까?


'....'


아무리 신이라도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


그는 신이다. 모든 것이 가능한 신.

그런 존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그런 그에게, 외마디 외침이 들렸다.


 [하느님 개새끼!]

 "음?"


 그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고 하니, 그것은 어느 푸른 행성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아, 저곳은."


푸른 행성. 바로 인류가 사는 지구다. 신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호."


왜냐면 지구를 통틀어 온 우주는, 신이 실패작들을 던져둔 공간이기 때문이다.

못생기고, 이상하고, 쓸대없이 복잡한 것들이 존재하는 공간.

완벽하지 못한 것들의 세계.

그런 곳에서 어쩌다 듣게 된 첫마디가 만물의 창조자인 자신을 욕보이는 말이라니,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신은 더욱 귀를 기울였다.


[나이 60이 될 때까지 뼈 빠지게 일만 하시던 아버지를, 어떻게 데려갈 수가 있어! 처음으로, 처음으로 이런 내가 월급을 벌었어. 돈을 벌었다고! 여태껏 게으르고 건방지고 쓰레기 같은 나였지만, 우, 으으, 한번쯤은 자식 노릇하게 해줘야지....]


신은 하소연하는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동시에 어떠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인지 표현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천문학적인 세월을 살아온 그가 가히 처음으로 느낀 감정이라 할 수 있었다.

곧 신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청년의 휴대폰이 울렸다.


[...뭐? 무, 뭐?! 대체 어떻게, 진짜야? 거짓말. 아빠 심장이, 심장이 다시 뛴다고?!]


청년이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헐레벌떡 어딘가로 달려갔다. 아마 병원이란 장소일 거라고, 신은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신은 그를 등지고 본격적으로 지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오호, 오호, 오호."


차, 건물, 사람.

차, 건물, 사람.

신에게는 온통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자신은 공간을 넘어다니면 되기 때문에 이동수단은 필요가 없고, 이 세상이 곧 자신의 집이기 때문에 건물도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과 거의 똑같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못생기고, 악하고, 부족한 점 투성이었다. 감정이란 게 있어 화를 내고, 사소한 것에 웃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질투도 했다. 이 얼마나 연약한 생물체란 말인가. 완벽의 'ㅇ'자도 따라가지 못하는, 그야말로 실패작 중 실패작들.

하지만.

그럼에도 신은 깨달았다. 천만 개의 낙원을 만들면서도 몰랐던, 1,882,851명의 완벽한 자식을 만들면서도 몰랐던 한 가지를.


"오호...."


부모 자식 간의 따스한 애정.

친구 간의 굳건한 우정.

남녀 간의 뜨거운 연정.

무엇보다도, 완전해지기 위한 인류의 열정.

그 모든 것은 완벽하지 못하기에 이루워진다.


"...."


신은 감동했다. 또한 자신을 질책했다. 긴 세월동안 고민해온 것이, 분명 실패작이라 생각하고 버렸던 세계에서 풀리다니,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지, 진짜다.... 살아계셔. 아빠, 아빠! 으, 으으.... 그동안 미안해요. 죄송해요....]


신은 고민도 하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우주 이외에 그동안 자신이 만들어온 모든 것, 천만 개의 낙원도, 1,882,851명의 자식도 전부 무로 되돌리기 위해서다.

마치 자신의 빈공간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은듯.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오호, 오호호."


그렇게 그는 인류의 하느님이 되었다.

오늘도 그는, 어딘가에서 기분좋게 웃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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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Novelic
1등 Novelic
신은 인간(을 비롯한 우주 전체의 피조물)을 실패한 작품으로 분류하지만, 그 실패의 불확정성이 모여서 신조차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전지전능'하지 않은 인격신의 이야기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는 이유는, 이글과 같이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겠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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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3
201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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