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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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15 Dec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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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a밀감
협업 참여 동의

"그러니까, 내가 신이야."
"신.. 이라구요?"
"응!"

그녀는 활기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

"그게 다야?"

만족하지 못했는지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럼 달리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무슨 농담인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는다.

아침 댓바람부터 나타나서는 자신이 신이라는데,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머리 괜찮아요?

"머리 괜찮냐니... 조금 심해..."

"아.. 그냥 해본 소리죠 뭐...어라?"

방금 내가 소리내서 말했나?

"됐고, 일단 나와. 믿지 않는다니 내가 증명해줄게."

"잠시만요. 아니 그것보다 실례인데요. 저 약속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구요."

"너 친구 없잖아."

"...꼭 친구랑만 약속잡는건 아니잖아요?"

이 여자가...아침부터 극딜이네.

"알았어요.. 일단 씻고 옷 갈아입을테니 거실에서 기다리세요."

"어? 좋아! 기다려주지. 얼른 나와야 해?"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속에서 나는 생각을 가다듬었다.
신 이라.
그러고 보면 그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대화의 주제였다.

어느 동아리의 술자리였는데... 어느 동아리인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날, 생각보다 많이 마시고 평소보다 더 우울해진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와 밖을 거닐며

중얼거렸다. 신 같은게 어디 있는데-라고.

그리고 그걸 주워들은 선배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던 것이다. " 왜 그렇게 생각해?"라며,

열등감과 염세주의에 찌든 나의 한탄을, 밤이 다 지나가도록 들어 주었다.

그때 이후로도 가끔, 혹은 종종. 그녀는 뜬금없이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예상치 못한 곳으로 가곤 했다.

내가 끝없는 자괴감의 바다에서 헤맬 때마다. 그런 만남들이 나를 들뜨게 하고, 또...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깨진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은 함께 금이 가 있어, 쓸데없는 생각이 범람하려 했던

나의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 그건 쓸데없는 생각일 뿐이야.

머리를 대충 말리고, 옷을 입고 거실로 나가자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데요?"
"글쎄~. 당구나 치러 갈까?"
"당구요?"
"왜 당구는 싫어?"
"아니 싫은 것보다... 좀 예상 밖이라서.."
"예상 밖이라니?"
"웬일로 한국에서 노네요?"
그동안 갔던 곳들.. 밀림, 사막, 북극... 을 생각해보면 오늘은 매우매우 고생을 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걸 생각했는지 그녀가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가끔은 이런것도 좋잖아~."
"글쎄요... 그것보다 저 당구 칠줄 몰라요."
"엄...그럼 볼링은?"
"안쳐봤지만 머 대충 굴리는거 아닌가요?"
"게임은 하는거 없니?"
"아, 저 체스는 할 줄 알아요."
"으으..." 좌절하는 그녀.
고민하는 그녀를 보니 왠지 살짝 웃음이 나왔다.
"아무거나 하러 가요. 어차피 선배 앞에선 아무리 잘해봤자 거기서 거기일텐데."
"그..그러니? 그래 내가 다 가르쳐 주면 되지! 일단 역으로 가자."

아직 말을 안한 것이 있다면, 그건 그녀의 완벽함에 관한 것일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란 어떤 것일까?
아들러는 인간은 완벽하게 태어나지 않았기에, 자신의 결점을 인식하는 데서 열등감이 생겨나고,
그 열등감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정도의 용기를 내어 자신의 타고난 결점을 극복해낼
수만 있다면, 니체가 생각한 초인이 되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완벽한 인간상이었다.
그러나, 결점이 처음부터 없는 사람은 어떨까? 라는 것이다.
168cm 정도 되는 키에, 적당히 긴 팔다리. 유려한 곡선에 항상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은 아름다운 얼굴.
처음 보는 순간에는 그 외모밖에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넘치는 에너지와  티 하나 없는 순수함을 발견할 때,
사람들은 그녀를 경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와 함께 길을 걷다 보면, 듣게 된다.
"방금 봤어..?"
"어... 완전 여신인데?"
이런 대사들을.
다 들린다 자식들아... 라고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자,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들었지?"
"뭘...요?"
"여신이라잖아! 처음보는 사람조차 알아볼 수 있는, 신의 후광! 이정도면 증명이 되었지?" 그녀가 득의양양히 웃으며 말했다.
이건 뭐...-_-;;
"그 여신이... 그 여신이 아니잖아요..."
"무슨 소리야? 여신! 즉 신! 나는 신!"
참으로 나이스한 미소를 짓는 그녀.
"하하..."
"흐음..."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표정을 바꾸더니 말했다.
"뭐, 좋아. 이렇게 쉽게 넘어가려는 생각도 아니었다구."

"좋아요...인정할게요. 당구의 신 정도는 되는 것 같네요."
어느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는 말했다.
삼십분동안 나는 큐대를 두번이나 잡아봤는지 모르겠다. 멈추지 않는 그녀의 흰 공 앞에서 내 노란 공은 그저 관중이 되었을
뿐이다..
"하~. 그정도야 뭐."
조금 우쭐해하던 그녀가 뜨거웠는지 마시던 핫초코를 급히 내려놓고 손부채질을 해댔다.
"오... 신도 핫초코는 뜨겁나 보네요?"
"무슨 말이지?"
순식간에 핫초코를 집어든 그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품위있게 마신다.
정말..
"궁금한게 있어요."
"뭔데?"


"갑자기 왜 신이 되겠다는 거에요?"
"신이 되겠다는게 아니라 원래 신인데?"


저기요...


"나는 말이야..전지 전능한 신이라니까. 좋아, 지금 너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소원을 말해봐. 내가 들어주면,
너는 인정하는거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우승했으면 좋겠어요."
"안돼."
"하-! 것봐요."
"아니지 아니지... 너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라니까? 그게 아니면 들어주지 않을 거야."
"좋아요... 괜찮은 핑계네요... 내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라니, 그거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아니, 난 알고 있어."


그리고 너도 알고 있지. 그녀가 말해왔다. 그리고 그녀의 눈길이 나와 마주친 순간,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어느샌가 카페의 소음이 멈춰 있었다.


식은땀이 났다. 어쩌면- 그녀는 정말로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나는 무엇을 원하냐구?

"나는... 조금 더 내가 나은 사람이기를 원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조금 더 멋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무엇을 위해서?"
"그냥... 그러면 좋잖아요?"
"그게 너의... 가장 간절한 소원이야?"
"..."
"지금?"

어쩌면-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나는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이 키스해주기를 바라요."
"어렵지 않지."


잠시 꿈같은 시간이 지나고, 눈을 떴을 때 나는 그녀의 살짝 붉어진 뺨을 보았다.
그리고 살짝 들썩이는 가슴과, 살짝 벌려진 입.
무언가 부끄러워진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어때?"
"좀..부끄러운데요."
"응...나도..."

조금 정적이 흘렀다.

"아니-! 이제는 내가 신이라는걸 믿겠냐는 소리야!"
"아-. 그러네요...확실히."
그렇다. 확실히 그녀는 전지하며, 전능하다. 나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던 나의 뇌리를, 어떤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만요. 그런데요... 방금전에 부끄럽다고 했잖아요?"
"어...그 사람들도 있으니까..."
"아..."

괜히 얼굴을 붉히니까 나까지 귀가 달아오르는 느낌이 났다.정말...

"아니 아니! 그러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정말로 전지 하다면,
그러니까 다 알고 있다면, 키...키스의 느낌정도야 당연히 알 것이고, 내가 좋아할... 아니
내가 어떻게 말할지도 다 알고 있을 텐데, 거기서 "응...나도" 라고 답하면 안되는것 아닌가요?"

아.. 당황해서 횡설수설. 뭐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남아 있으니 괜찮은가.

"음... 뭐, 그렇지. 나 신 아닌가봐."
"예?"
그녀가 말없이 그저 싱긋 웃었다.
"그럼 뭘 위해서...그렇게?"
"너가 나를 여신으로 생각하고 있었던것은 아닐까?"
"예...?"

이게 대체 무슨 소리...

"그러게, 그게 무슨 소리일까?"
알려줘 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팔짱을 꼈다.

"제가 괜히 겁을 먹었다는... 얘기인가요?"
"그래! 나는 여신이 아니라구. 여기 앉아있는 사람이고, 완벽하지도 않아."
너는 환상속에서 너의 여신을 창조한 거야-. 라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응?"

"하지만... 어쩔수 없잖아요... 나는 이런 사람이고..."

"어떤 사람인데?"

"...결국 나는 열등감을 버틸 수 없을 거에요."

"아니. 나는 너를 믿는걸."

"왜죠?"

"그야 내가 믿기 때문이지! 내가 믿으면 너도 믿어야 해!"

"그게 무슨..."

"시끄러워!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이렇게 너가 좋다는데-. 그녀가 뒷말을 흐렸다.

으윽.. 다시 귀가 뜨거워진다.

"아니면... 이런건 싫어...?" 그녀가 나를 살짝 올려다보았다.

"그럴...리가요..."

"그럼...좋아?"

"....네, 좋아요."

"좋아!!!"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다시한번 웃었다.

" 저기 그럼 나는 이거 갖다놓고 올 테니까... 오늘 어디 갈 지는 너가 정하구 있어!"

벌떡 일어나더니 후다닥 달려가는 그녀.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 보며 문득 생각했다.

그래도, 그녀는 역시 나의 여신이라고.

comment (1)

Novelic
Novelic 17.12.16. 21:53
세계를 멀리서 보면 거대담론이 인류의 길을 뒤흔들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나의 세계는 나와 너의 관계로 형성됩니다. 모두를 구원하는 모두의 신이 있다면 나만을 구원하는 나만의 (여)신도 있기 마련이죠. 지금 이 이야기처럼요. 읽다보면 뱃속이 간질간질 해지는, 그렇기에 뒷맛이 깔끔한 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말줄임표가 조금만 더 적으면 글을 읽는 호흡이 더 매끄러울 거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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