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확신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협업 참여 동의

어두운 방에 소년은 묶여있었다.


축은 조금 다르지만 반대편 창문에는 밝게 쏟아지는 별빛을 등진 소녀가 창턱에 비스듬히 앉아있었다.


소년은 쇠사슬에 손목이 앞으로 묶인채 침대를 등지고 구석에 앉아있었다. 엉켜서 풀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쇠사슬은 손목을 무겁게 짓누르며 땅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소녀의 금발은 별빛에 반짝이며 살랑, 흔들렸다. 소녀의 몸은 금방이라도 뒤로 미끄러져 떨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둘의 정확한 사이에는 존재마저 흐릿한 또다른 소녀가 있었다. 정말 말그대로 흐릿해서 어느 쪽으로 가도 빛에 삼켜져 사라질 것 같았고 어둠에 녹아없어질 것 같았다.


흐릿한 소녀는 말했다. '이젠 지겨워. 어른들은 내게 착하게 살면 된다고 했어. 하지만 착하게 살아봤자 내게 돌아오는 건 없어.'


소년은 말했다. '하지만 그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널 좋게 봐준거야.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에 처했을 거야.'


소녀는 말했다.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나쁘게 살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걸 다해. 나쁜다고 벌받는 일은 없어. 결국 자기를 받아주는 사람들끼리 뭉쳐서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 하지만 나는 뭐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서 그 어느 쪽도 마음 놓고 하지 못했어. 착하게 살면 모든게 잘 이루어진다는 말은 거짓말이야.'


소년은 목을 잠시 가다듬었다. '그건 네가 너 자신의 부족함에 집중해서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소홀히 했을 뿐이야.'


'난 단지 미움받고 싶지 않았어.'


'그래, 넌 미움받지 않았어.'


'그리고 결과는 미움받지만 않았어.'


'...'


'난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어. 아무와도 가까워지지 못했어.'


소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건 너의 오만한 단정...' 소년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다 거짓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다하고 싶은대로 살아. 나쁜 일을 저질러도 그냥 좀 수근대고 말뿐이야. 절대적인 정의의 실현 따윈 이루어지지 않아. 배신자들! 위선자들!'


'지키지도 않을 말을 하면서 그걸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절대악인 거처럼 꾸짖어. 그리고 자신들이 그런 사람이 되면 입을 싹 닦고 무슨 변명이라도 들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겠군... 소년의 생각이 말했다.


소녀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빛에 삼켜질 것 같았던 모습은 진해져갔다. '하지만 이 얘는 말해줬어. 내가 특별하다고. 내 상상이 다 맞았다고.'


'사회의 규범 따위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정한거야. 특별해지길 겁내하는 사람들, 특별한 사람들에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들!'


'난 이 얘를 따라갈거야. 더 이상 남이 말하는 걸 그대로 따르진 않겠어!'


그래 그렇게 할 수 있었잖아. 확신에 가득차서 뚜렷하게, 이 어둠 속에서도 빛날 수 있었잖아. 소년은 한숨지었다. 이쪽에서도 그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자신의 의지가 그렇다면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원래부터 저쪽에 맞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네(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내 마음을 따르는 수 밖엔.' 소년의 몸은 사르륵 흩어져서 소녀에게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잘 왔어. 아무 것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


소녀들은 창 밖으로 쓰러졌다.


'이 곳은 어둠 속에서 저 빛나는 별빛을 보는 세계, 그림자 속의 세계야. 지금은.'


금발 소녀의 송곳니가 반짝 빛났다. 눈이 붉게 빛났다.


'네가 왔으니까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될 거야.'


소녀들의 몸은 캄캄한 강물 속에 빠져들었다. 그 속에는 똑같은 붉은 눈이 십 수개 빛났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


소녀와 소년은 동시에 생각했다.

comment

권한이 없습니다.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157'이하의 숫자)
of 157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