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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3년만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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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38 Aug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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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y 코비F
협업 참여 동의

 아래가 변했다.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무뚝뚝하고, 말 수가 적고,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오히려 밀어내는, 평소의 신아래다.

그러나 미묘한 부분에서 내가 지난 3년간 보았던 신아래와는 달랐다. 

더 이상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은연중에 살피지도 않는다. 보건실에 가겠다며 손을 들고서는, 선생님의 답도 기다리지 않고 교실에서 나가지 않는다. 느닷없이 몸 일부에 붕대를 칭칭 감고 오지도 않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한밤중에 내 방에 들어오는 일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바보같이 침을 흘리며 자지도 않는다.

"야 신아래."

교실은 이미 텅텅 비어있었다. 

수능을 마치고 입시도 대부분 끝난 12월의 겨울. 단축수업이 시작되었고, 3교시가 끝나자마자 반의 학생들은 오늘도 마지막 10대를 즐기기 위해 학교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에게도 같이 놀자며 권유하는 녀석들이 몇몇 있었지만 오늘도 거절했다.

"수업 끝났어. 일어나."

길고 검은 생머리 한 가닥을 집어 쿡쿡 잡아당긴다.

아래는 잠시 몸을 뒤척이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노려보았다. 노려보았다고는 해도 반쯤 풀린눈에, 입가에는 허연 침이 말라붙은 채다. 

"더 잘래."

"그럼 여기서 자지 말고 집에 가서 자. 감기걸린다."

"그런거 안걸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의 아래는 몇번이고 깨워봐야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아래의 앞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배가 고프면 언젠가 일어나겠지.


-----



오후 한 시 경이 되서야 아래는 눈을떴다.

"기다리지 말라니까."

아래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가방을 등 뒤에 매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나도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갔다. 건물 밖으로 나서자 체육수업을 받고있는 1,2학년이 보였다. 

공 차는 것을 구경하며 성큼성큼 발을 옮겨, 아래의 옆으로 가 걸음을 맞췄다.

"뭐 먹을래?"

"회덮밥."

"그럼 중앙상가로 가야겠네. 걸어 갈 꺼야?"

"어."

그 뒤로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바로 옆에 서 있는데도, 서로 다른 곳을 보면서 걸어갈 뿐이었다.

아래와 내가 같이 있으면 거의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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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마치고 물을 두 잔 떠서 돌아오자. 아래가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보기 드문 일이다. 인기척을 죽이고 천천히 아래의 뒤로 다가갔다.

"카톡?"

그 화면에 떠 있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바로 다음 순간 화면이 검게 변했다.

"너 친구도 있었구나. 처음알았네."

"......그거 무슨 뜻이야?"

"평생 카톡이란건 써본 적이 없잖아, 너. 여고생이 되서 카톡을 안쓰는 건 아싸중에 아싸라는 소리니까. 다행이네 친구생겨서."

"나 원래 친구 많거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래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해는 풀린거야?"

"......조금은."

아래는 이번 수능을 처참하게 망쳤다. 안 그래도 반에서 고립되어 있었는데, 덕분에 집단적인 괴롭힘으로 번질뻔 했다.

수능을 망친 것과 괴롭힘이 무슨 상관이냐하면, 아래는 항상 전교 일등을 놓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평소에 틈만나면 양호실로 사라지고, 성격은 싸가지가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없는데, 성적은 항상 자신들의 위.

명문 인문계인 우리 학교의 학생들이 그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쌓이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겠지.

그런 여자가 수능을 처참하게 망쳤고, 몇몇이 호기심 반 위로 반으로 왜 망쳤냐고 물어보자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하나도 모르겠어서.'

그게 자신들을 놀리는 말로 들렸나보다. 어차피 수시 합격은 확정된 터이니 그냥 찍고 잤다고 대답하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렇게 한 달쯤 분위기가 험악했었는데, 드디어 그게 어느정도 해소 된 것 같았다. 친구가 생긴 것은 의외지만.

"그거 다행이네."

"...사실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아."

"왜?"

"나를 그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어."

그녀는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비결을 묻는 반 친구들의 질문에 아래는 '알고 있는 문제여서'라고 대답할 뿐이였다.

다른 녀석들은 자기 놀리는 거냐며 씩씩거렸지만, 사정을 아는 내가 듣기에는 참으로 정직한 대답이었다. 

아래는 그저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 수능을 망친 이유도 같다.

정말로 하나도 몰랐던 것이다. 11월이 된 이래로, 이제 그녀는 모두와 똑같은 시간을 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다들 본심은 그렇지 않을태니까."

"......정말?"

"정말로 널 싫어했으면, 너랑 친구가 될 리가 없잖아."

아래는 그 말을듣더니 자신의 스마트폰을 꼭 붙잡았다.

드디어 친구가 생기다니, 어떤 여자 그룹에도 끼지 못하고 겉도는 아래를 보며 걱정하던 나날도 이제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구랑 카톡하던거야?"

"최현우"

남자다. 그것도 여자 관련해서 소문이 엄청 안좋은

"...걔는 안돼."

"왜?"

"아무튼 안돼."

아래는 아리송한 얼굴을 하다가, 갑자기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질투?"

"아니야."

입꼬리를 히죽히죽 거리는 아래의 얼굴에 꿀밤을 먹여줄까 생각하는 순간에, 밥이 나왔다.

입으로 회덮밥을 옮기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앞으로도 한참은, 아래의 웃는 얼굴에는 익숙해 지지 못할거 같다-고

comment (2)

Rogia
Rogia 18.08.15. 14:05
시간여행의 루프 속에서 탈출한 대신, 여러 번 겪어본 적이 없는 수능만큼은 망해버린 소녀와 '나'의 이야기였습니다. 수 차례 반복한 일상은 지루하더라도 매일 매일 새로운 자극이 시작되는 1회차 시간대에선 사뭇 밝아진 모습입니다. 이 글을 읽으니 문득 '내가 인생 1회차를 허무하게 날리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네요 흑흑... 잘 읽었습니다!
알리미
알리미 18.08.15. 14:32
Rogia 님이 게시글에서 본 글을 링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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