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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주사위를 한 번 더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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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삶은 풀잎 위의 이슬과 같아서 서로 만나기가 어렵단 말이 있다. 인연을 소중히 여겨라, 그런 말씀이다. 그러나 기대치도 않았던,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그런 일을 맞닥뜨리면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 인연은 지나가고야 깨닫는 것인데.

 여름 날의 초원, 그것도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끝 모를 녹빛에서 그 사내 들을 보았다. 큰 키를 가진 노인장과 그의 아들인 잘생긴 청년은 나에게 묘한 감흥을 주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 부럽구나 나도 저렇게 아버지와 같이 왔으면 좋았겠는데... 하고 말이다. 청년은 나보다 서너 살은 어려 아직 학교를 다니는 중이라 하였고, 노인장은 교외에서 낚시용품점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노인장은 매 사냥을 보기 위해 왔다하고 청년은 당신께서 해외로 나가본 적이 단 한번도 없음을 걱정하여 같이 왔다지만 그것은 노인장에게 비밀로 해두어달라 말하더라 당신은 그런 말을 들으면 별 신경 안쓰는 체 하시겠지만 섭섭해하실지 모른다고 말이다. 물론 노인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모양새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여름이라 매 사냥을 볼 수는 없겠단 현지인의 조심스러운 충고에 노인장의 대답이 걸작이다. 혹시 여름에는 하지 않는 것이냐? 어쩐지 텔레비전에선 겨울만 배경으로 나오더라, 혹시나 했는데 계절은 별 상관 없을 줄 알았노라... 다음에 한 번 다시 와야겠구나. 하고선 금방 다른 것에 관심을 돌렸으니 참 대단한 호인이라면 호인이다.

 나는 그 두 사내를 보노라면 무언가 희극적인 기분이 느껴져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예비군 훈련을 가서 실 없는 소리를 하는 몇몇을 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 그런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그것보다는 조금 순화된 무언가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두 사내와 나는 한동안 같이 다녔는데 차를 빌려서 초원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달려보기도 하고 번갈아 운전하여 하룻밤이 지나기 전에 다음 도시로 가기도 하고... 현지인을 만나 전통 음식을 먹어보기도 하고...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뭐 어떤가? 여행인데. 여행이니...

 귀국일이 가까워 수도로 돌아가려는 나에게 마중을 나가겠다며 함께 가자던 노인장의 배려는 잊지 못할만큼 고마운 것이었다. 

 내 허리둘레도 부쩍 늘고 머리통이 벗겨지고 안한다 안한다 하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르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언젠가의 별무리가 떠올랐다. 하늘, 보랏빛 그리고 제비의 털빛처럼 푸르게 빛나는 검정 깃털에 붉은색, 청색, 흰색으로 반짝이는 별이 그려졌다. 날이 추워졌으니 하늘은 더욱 선명히 비치겠구나, 그러고보니 노인장은 결국 매가 날개를 활짝 펴고 활공하는 그 모습을 보고야 말았을까.

 가자.

 아들놈은 늘상 스마트폰을 쥐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성질을 가졌으니 하늘을 올려다 볼 일은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쓰럽기도하고 요놈 버릇을 어떻게 한번 고쳐봐야지 하는 생각도 들어 빌다시피 부탁해서 같이 오고야 말았다. 아내도 같이 왔으면 좋았겠건만 관심도 없던 아내는 내 젊은 날 이야기를 좀 듣고서야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더니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나는 그런 곳 안간다. 하고 휑하니 돌아서버리니 말을 더 꺼내볼 수도 없었다. 아들은 이것저것 표도 미리 사두고 이렇게 하면 좋겠다, 잠은 여기서 자는 것이 좋겠다, 뭐 드셔보시고 싶은 음식은 있어요? 하고 물으며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니 참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놓으라던 그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할 수 있다면서 여기 이걸 쓰면 표를 싸게 살 수 있다, 여기서 가입해서 언제 뭘 받으면 다른 데에도 쓸 수가 있다하며 가르쳐 주려하니...

 그런데도 저 놈의 스마트폰을 꼭 쥐고 고개를 꾸부정하니 숙이는 모습을 보면 열이 확 솟구친다. 

 "이놈아 너는 꼭 그렇게 공항에 도착해서도 그렇게 꼭 그걸 들여다 보고싶냐?"

 "아니, 아버지 제가 이걸로 길을 찾고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길은 좀 알겠어?"

 "지금은 게임하고 있죠, 여기 와이파이도 잘 되네, 이야 몽골  잘 사네."

 이놈을 아주 그냥 콱, 어우 정말...

 자식놈의 스마트폰을 낚아채려다 말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이구 길을 막고 있었구나하고 문득 깨닫고 길을 비켜주자 돋보기를 쓴 노인네와 가슴이 두터운 중년의 남성이 실례합니다. 하고 지나쳐 간다. 나는 저 사람들은 참 키가 크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무언가 묘한 느낌이 들어 기억 속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Shaun?"

 "마이 턴! 더블! 12!"

 

 

 

comment (1)

알리미
알리미 18.12.29. 04:39
PunyGod 님이 게시글에서 본 글을 링크하였습니다.

2018년 12월 28일 라한대 감평입니다. - https://lightnovel.kr/47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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