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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달의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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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유난히 밝은 보름달이 뜨던 밤.

 그녀는 평소엔 입에 대지도 않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 사화 씨. 술 싫어하시던 거 아니었어요?"


 내가 다가가 묻자 그녀는 잠시 날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누군가 했더니 너였구나. 그냥, 마시고 싶은 날도 있는 거지."

 "뭐 그런 날도 있죠. 그래도 밤늦게 너무 마시진 마세요. 내일도 가게 열어야 되잖아요."


 여기는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책방. 일단 평범한 중고 서점 같은 곳이지만, 파는 책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신화, 환상, 마귀, 요괴, 악마...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들만 담은 책들. 이 낡은 책들을 찾아오는 존재 또한 심상치 않았다.


 어느 날은 수상한 로브를 뒤집어 쓴 흑마술사가 찾아오기도 했고, 어느 날은 번쩍이는 은빛 갑옷을 입은 근엄한 수호신이 찾아오기도 했으며, 어느 날은 동물의 귀가 달린 수인 요괴가 찾아오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이상한 책방을 운영하는 점주도 인간과는 다른 무언가였다.


 단도직입적으로, 사화 씨는 인간이 아니었다.


 달의 주신, 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도 있었지만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난 어디까지나 이 책방의 점원일 뿐. 특별한 존재가 아닌 그냥 인간이었다.


 "가게라... 예전부터 생각해온건데, 이 책방. 네가 나 대신 이어서 하지 않을래?"

 "농담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그 손님들을 감당합니까."


 나는 언젠가 찾아온 흡혈귀 손님에게 피를 빨려 죽을 뻔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움츠렸다.


 "그것 참 곤란하네... 이번이 꼭 만 번째 보름달인걸."

 "네?"


 내가 되묻자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술병을 흔들었다. 소주나 양주가 아닌 고풍적인 전통주다.


 "이리와서 같이 마셔. 밤에 혼자 마시는 것도 좀 그렇고."

 "아... 죄송한데 막 자러들어가려던 참이라..."

 "어허, 지금 점원이 점주 말을 무시하겠다는 거야?"


 그녀는 내 거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내 팔을 잡아당겼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옆에 앉아 술을 마시는 일이 됐다. 술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라 기분이 싫진 않았다. 그저 오늘의 사화 씨는 어딘가 이상하구나, 싶을 뿐이었다.


 "뭐 고민거리라도 있으세요?"

 "글쎄. 그렇게 보여?"

 "그렇다기 보단. 음. 보통 사람들도 고민거리가 있으면 평소 마시지 않던 술을 마시기도 하잖아요?"

 "너도 그래?"

 "아니요. 전 고민거리 없어도 마시는데요."


 그녀는 쿡쿡 웃으며 내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나는 그걸 두 손으로 받아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첫 맛은 의외로 달았고 뒷맛은 조금 쌉쌀했다. 내가 좋아하는 맛이었다.


 "고민거리가 없진 않지. 어떤 점원이 일을 너무 못해서 해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

 "예?!"

 "하지만 이 책방의 존재를 알아버린 이상 그냥 자를 순 없고.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버려야 한단 말이지."

 "제발 그런 농담 하지 마세요... 저 여기서 일하면서 몇 번이고 진짜 죽을 뻔 했단 말입니다."


 진심으로 두렵다.


 "후후. 여기서 일한지 아직 1년밖에 안됐는데? 앞으로도 목숨 잘 붙어있을 수 있겠어?"

 "있겠...죠? 아마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정말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땐 사화 씨가 어련히 구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마음 한 켠에 있었다. 아무렴. 점장님은 이때까지 내가 본 인간이 아닌 무언가 중에 제일 쎈 사람이었으니.

 다른 사람한테 의지만 하는 놈은 쓰레기라고? 알게 뭐야.


 "이 책방 너에게 맡긴다는거. 방금 전엔 농담처럼 이야기 했지만 진심이야."

 "에이. 자꾸 그러지 마세요. 저 진짜 무섭다니까요."

 "아니."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원래 그다지 밝지 않은 표정이었으나, 이번엔 더 심각한 느낌의 얼굴이었다.


 "오늘은 만 번째 보름달이야."

 

 또 같은 이야기였다.

 만 번째 보름달?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이해하기 힘들다. 단 하나 이해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이 이야기를 나에게 전하기 힘들어 한다는 것. 평소의 그녀라면 좀 더 속시원하게 말하고 싶은 걸 말했을텐데.


 "저 달을 띄우고 있는 건 누구라고 생각해?"

 "글쎄요. 지구의 인력과 원심력 때문 아닌가요?"

 "법칙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래. 좀 더 직설적이게 말하면 저 달을 띄우고 있는건 나야."

 "아 그랬구나. 달의 주신이란건 그런걸 뜻하는 거였군요."

 "별로 놀라진 않네?"


 그야 별의 별 신이라는 작자들도 만나봤으니까요.

 그런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녀는 틈을 주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달을 띄우는 건 꽤나 많은 힘이 필요해. 아무리 강한 존재라도 혼자선 길어야 1000년정도가 한계지. 그래서 '우리'는 달의 주신의 역할을 돌아가며 하기로 했어. 달의 주신이 만 번째 보름달의 밤을 넘기는 순간, 다음 사람에게 그 역할을 넘기고 사라지지."

 "......"

 "그러니까 난..."

 "잠시만요."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사라진다니. 사화 씨가? 오늘 밤이 지나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이상한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작별의 날을 미리 전해주지 않은 그녀에 대한 분노? 이렇게 허무하게 그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허탈감? 아니면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슬픔?

 무엇이든 간에 이 느낌이 내 속을 울렁거리게 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사라진다는 건 말 그대로의 의미인가요?"

 "예전에 지박령이 찾아왔던 날의 일 기억해? 그때 그 지박령이 제령되었던 것처럼 환상이 되어 사라지는 거지. 그 원리는 꽤나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그걸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할 수가 있죠?"


 화내선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목청이 올라가고 만다. 이 울렁거림을 해소할 수 있는 건 목소리를 내는 것 뿐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밤은 같이 마셔달라고 했던 것도, 이 책방을 나에게 맡긴다고 했던 것도 전부 그것 때문이라는 이야기인가.


 "슬퍼할 필요 없어. 다음 사람이라고는 해도 그것 또한 나야. 달의 주신 사화... 그 존재가 변하지는 않지. 환생과도 같은 거야. 생김새도 성격도 달라지겠지만."

 "기억도?"


 내 질문에 그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해보세요. 기억도 사라지나요?"

 "그건..."


 우물쭈물 하는 그녀의 언행에 결국 난 폭발해버렸다.


 "왜 미리 이야기해주지 않으신 겁니까?! 좀 더...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 그깟 달이 대수랍니까? 태양의 신도 우주의 신도 이딴 낡은 책방에 찾아오는데 그깟 달 하나 띄우는 다른 방법이야 어딘가 있겠죠! 하필 이제와서..."


 나는 필사적으로 분노 속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을 찾았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 누가 등을 밀어줬으면 했던 말. 내 용기부족 때문에 몇 번이고 기회를 놓쳤던 말.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른다. 오히려 지금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될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분노속에서 찾아낸 그 말을 하기로 했다. 끝맺음을 맺지 못한 이별은 너무나도 후회스러울 것 같았기에.


 "저는, 저는..."


 숨을 한 번 삼키고 고한다.


 "당신을 좋아했습니다."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던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래서?"

 "...?"


 예상치 못한 되물음.

 그녀는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그러니까 내가 사라지는게 너무너무 슬퍼서 어쩔 수가 없다고?"

 "...네."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이 즈음 되니 나도 깨달았다.

 나 지금 개쪽팔린 소리 하고 있구나.


 그녀 또한 온 몸을 비틀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잠시만요. 저 지금 완전 진지하거든요?"

 "크흡, 큽. 아, 알아, 써."


 X발.


 머릿속에 그 단어 밖에 담지 않는다.


 아 젠장.


 아!!


 한참 웃음을 참던 그녀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를 바라봤다.

 이번엔 웃음기 없이.


 "나도 거의 800년을 살았는데. 남자한테 고백을 받을 줄은 몰랐는걸."


 웃음을 참았던 것 때문인지 그녀의 뺨은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건 선수를 빼앗겨 버렸네."


 사화 씨는 '준비 많이 해왔는데', 라며 어딘가 토라진 표정을 했다.


 "아쉬워. 좀 더. 조금만 더 너를 일찍 만났더라면. 하다못해 1년 만이라도. 더 많은 추억을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아마도, 감히 예상컨데, 그녀도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언젠가.


 또 다른 '내'가 너를 찾아왔을 땐. 더 오랜 시간을. 더 많은 기억을. 함께할 수 있길."


 조금은 질투나지만.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한 순간의 눈깜박임.


 그녀는 나에게 입맞춤을 했다.


 그리곤 웃으며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당신을 좋아했습니다."


...


 시간은 흐르고. 아침해가 뜨기 시작하자 원망스러운 보름달의 모습이 사라진다. 그녀의 모습 또한 그 보름달처럼.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놓인 조금은 달고 쓴 술을 들이켰다.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은 이상한 책방에서. 이상한 손님들이 찾아오는 책방에서.


 그리운 이름을 가진 손님이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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