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라한대]천강유수 천강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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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는 달을 올려다 보았다. 손톱달이었다. 푸른 하늘 저편에는 태양이 황금빛을 멀리 뿜어내고 있었다.

 "무얼 그리 보느냐?"

 "푸른 하늘에 걸린 달이 밤하늘보다 더욱 선명히 비추는 듯 합니다."

 스승은 사내의 말을 듣고 따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비로소 밤이 되어야 그 휘광이 선명해지거늘 햇빛을 빌려 보인다 하여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사내는 곰곰히 생각을 해보는 듯, 달을 올려다 보다 저 멀리 지면으로 가라앉는 황혼을 보며 무언가 깨닳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기에 스승님께선 절간에 들어서지 않고 탁발승을 고집하는 것이군요?"

 스승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썹을 찡그려 보았다.

 "그게, 스승님은 누가봐도 불법에 정통하시고 서역의 말이며 밀어며 못하시는 것이 없는데 절에 몸을 의탁하려하지 않음은 이미 태양빛으로 밝은 곳에 빛을 더하려 하지 않고 어두운 곳에서 불법을 가르치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꼭 길을 밝혀주는 달과 같지 않습니까?"

 스승은 제자의 그 말에 무언가 틀렸는지 쑥스러운 것인지 석장을 짤랑이며 몸을 일으켰다.

 "이놈아 내가 절간에 의탁하려들지 않음은 내가 역마살이 있기 때문이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내가 석씨 이름을 빌려 밥을 얻어먹기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니 섣부른 생각 말거라."

 "에이, 스승님이 역마살이 있다는 거야 그렇다 쳐도 어느 누가 밥 한번 얻어먹었다고 사흘 밤낮동안 동네 편지를 다 써준답니까?"

 "글을 몰라 멀리 떨어진 혈육에게 소식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소식 한마디 듣지 못함을 모른 체 하는 것은 중생을 구제하는 올바른 도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 한양까지 가고 있지 않습니까? 편지 전해줄 사람을 구하러."

 스승은 그 말에 안색을 굳혔다.

 "그나저나 참 걱정이구나 중놈들이라며 사대문 안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할 것이고 들아간다 하여도 편지를 맡아줄 사람을 찾기도 쉬이 이뤄지진 못할 것 같다."

 "그냥 오랜만에 북으로 올라가 보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곧 여름인데 큰 비만 오지 않는다면야..."

 "지금 야인 때문에 큰 난이 난 것도모르느냐?"

 스승은 조곤조곤 말하여 사내의 말을 가로잘랐다. 사내는 무안하여 까까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


 사내는 나뭇가지를 주워 물 깊이를 재보았다. 나뭇가지를 물속에 모두 집어넣고서 하박이 온통 젖을 정도의 깊이였다. 사내는 나뭇가지를 자갈 사이에 꽂아넣고 앞섬을 털어내었다.

 "스승님, 그냥 건너는 것은 힘들겠고 어디 돌다리를 찾아보든 폭이 좁은 곳을 찾아보는 것이 나을 텐데요?"

 "물이 깊다면 어쩔 수 없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 보자꾸나."

 두 승려는 계곡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자갈이 사각사각 울음을 내며 밤공기를 데웠고 풀벌레들은 찌르르, 찌르르 하고 허리께를 맴돌았다. 저 멀리 산등성이 즈음에는 뻐꾹새가 뻐꾹 뻐꾹 울어대며 둥근 달을 맞이하는 듯 하였다.

 "그러고보니 벌써 보름입니다."

 "저 달빛이 만물중생을 비추고 우리의 늦은 밤길도 밝혀주니 이태백의 시구가 떠오르는구나."

 제자는 스승의 그 말을 듣고 키득거리며 물었다.

 "스승님께서 여러 경전이며 불법에 통달하신 줄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풍류에도 일가견이 있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사내의 그 말에 늙은 화상은 시구를 읊으려던 입을 다물고 석장을 한 번 떨어내었다.

 "제자가 풍류를 즐기지 못하니 불법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 그랬나 보다. 영아야, 금강경에서 천강유수천강월이라는 말이 있다. 이 구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더냐?"

 사내는 입을 꼭 다물고 발끝으로 자갈만 굴릴 뿐이었다.

 "쯔쯔, 아무리 행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지만 단순한 법구하나 해석하지 못한다니..."

 "제자가 미숙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비루한 제자는 귀를 씻고 경청하겠습니다."

 이윽고 잘그락 거리던 자갈 소리가 끊기고 물 흐르는 소리가 달빛과 섞여 계곡을 가득 메웠다.

 "천 개의 강에 물이 흐르니 천 개의 달이 뜨고 만리 공허에 구름이 없으니 만리가 모두 하늘이더라. 자 보거라, 저 위에 걸린 보름은 본디 둥근 모습이다. 그러나 저기 물살이 빠른 곳에 비친 달은 파스러져 물빛이 은빛으로 반짝일 뿐이다. 저 앞의 물살이 느린 곳이 비친 달은 비록 어그러졌으나 둥근 모습이다. 이렇듯 가지각색의 달이 비치나 본질은 하늘의 달이다."

스승은 자리에 주저 앉아 석장을 다리 위에 뉘이고 말을 이었다.

 "다양한 중생의 마음에 다양한 부처가 있으나 그 모두가 부처임은 분명한 진리이다. 하늘에 구름이 사라지면 달빛이 만리까지 펼쳐지듯 사람의 마음에 구름이 없다면 진리가 널리 펼쳐질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 알겠느냐?"

  사내는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는 듯 '아'하고 외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쯧, 이해도 못했으면서 알은 체 할 필요 없다고 몇 번을 말했느냐? 나는 다 쉬었으니 어서 일어나거라"

하고 스승은 잘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갈위를 딛었다.

 "스승님 저 또한 만물중생 중 하나인데 어찌 제 마음만 그리 모르십니까?"

 "안다, 알기에 이러는 것을 정 모르겠느냐?"

하고 스승은 비웃음을 흘리며 석장을 흔들어 짤랑하는 소리를 내었다.

 "어서 가자꾸나, 한양은 멀고 네 발걸음은 느리니 부지런히 놀려야지 않겠느냐? 달빛이 밝아 가는 데에 발을 헛디딜 일도 없으니 어찌 게으르게 앉아있을 수 있겠느냐?"

사내는 찬란히 빛나는 달을 응시하였다.

"그놈 달빛 한번 눈이 부실 지경이구나. 한양까지 두 밤은 더 걸리니 그 때까진 그렇게만 빛나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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