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라한대] 모든 판타지의 도입부는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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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51 Feb 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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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신시연
협업 참여 동의

“깃발을...”


밤하늘을 바라보면 그곳엔 별이 있다.


사람들은 별빛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입에서 시작된 상상은 이야기가 되어 밤하늘에 닿았다.


갈 곳 없어 어두운 밤하늘에서 방황하던 이야기는 이내 별을 만났고,


그저 반짝이던 별은 이야기와 함께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이는.


별과 사람과 허구의 이야기.






0.




성산대학교 지도 교수인 이진철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내가 제출한 종이를 읽어나갔다.


눈가에 짜증이 베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뒤늦은 후회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너무 성급한 결정은 아니었을까, 좀 더 고민하거나, 상담을 한 번 더 받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꼭 결단을 내리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빙글빙글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네. 내가 학기 초에 공지한 것을 기억하나?”


“......아마, 도중에 그만둘 것이라면 차라리 당장 나가라고 하셨죠.”


“그렇지. 그런데 자네는 왜 기말고사까지 친 다음에 나를 이렇게 괴롭히려고 하는가.”


이진철 교수는 종이를 거칠게 내려놓더니 볼펜으로 딱딱. 책상을 두들겼다.

놀고 싶다. 아, 20대의 청춘. 아직 허리가 삐끄덕 거리지 않을 때 놀고 싶다.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으로 두들기는 볼펜을 바라보다가 그만, 보고야 말았다.


“내가 좋은 말을 해줘야 하나?”


“아닙니다.”


막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나찰처럼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그럼 어서 그 주둥아리를 좀 움직이게.”


“네?”


“정말 내가 이 상투적인 글 쪼가리를 보고 아, 알았네. 하고 자네를 보내줄 거라 생각했나?”


억지로 미소지은 이진철 교수의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가족이 아프다, 사실 지병이 있다, 빚이 생겼다, 이런 말 같잖은 이유로 도망치려고 한 학생이 한 둘인 줄 아는가?”


교수가 피곤에 절은 눈을 부릅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저게 바로 돈 안되는 전공의 원념…!


“아, 아니요….”


“역시 자네는 좀 더 특별한 이유가 있단 말이지?”


굉장한 기백에 고개를 숙여버리고 말았다. 이진철 교수와 말을 섞는 것도 내게는 심각한 부담인데, 열 받은 이진철 교수라니. 정예 네임드 몹이 아닌가.


“교내에서 자네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는 잘 알고 있네. 알고 있으니 편히 말해보게나. 응?”


“......그, 러니까. 하하하하!”


중국의 대문호 루쉰이 말하기를 대답하기 곤란한 일에 당면하면 웃음이 그 답이니라-. 


“쪼개지 말고.”


루쉰 호 침몰.

섬뜩하다. 시뻘겋게 번뜩이는 눈빛이 나를 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문젠가.”


아무래도 쉽게 빠져나오기는 글렀다.


“......죄송합니다. 다음 학기까지 잘 해내 갈 자신이 없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부족했던 걸까. 이진철 교수는 계속 두들기던 손을 멈추고 어떻게 들어도 불만 가득한 침음성을 흘렸다. 이렇게 된다면 이젠 정말 자퇴밖에 없다….


“자네가 알련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네가 잠깐 학점이나 받고 가는 아이들과는 좀 다르다고 기대하고 있었다네.”


시선을 종이에 향한 이진철 교수는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학기 초에 보여준 그 열정은 쉽게 품기 어려운 것이니 말일세.”


뒷말을 듣고, 알아차리고 말았다.

이건. 그거다. 소위 말하는 잔소리 대장정의 첫 스타트. 이걸 시작하고 말을 짧게 하는 윗사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민족 유전자에 새겨진 것일까. 

헌데 이진철 교수는 그 말을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자네가 이 과목을 포기하는 걸 내가 허락했다 치고, 그럼 자넨 뭘 할 건가?”


술도 좀 마시고, 방구석에서 게임도 좀 하고, 방송도 여러 개 챙겨본다든지….


“딱히 뭔가 해야만 한다. 그런 건 없지?”


“네.”


“그렇지만 그 나이에 연구실에 붙어있긴 싫고?”


“.......네.”


조그마한 내 대답에 이진철 교수는 찡그린 미간을 풀고 경쾌하게 종이에 사인했다.


“그래. 일 년 푹 쉬다 오거라. 여자친구도 만들어보고.”


“네.”


뭔가 축축하고 따스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울적한 기분이지만, 저런 눈빛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고작해야 스물셋 먹고 집, 연구실, 학교만 반복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이왕이면 한 삼 년 놀고 싶은데. 방구석에서 세계 일주도 한번 해보고 싶고, 죽은 듯이 일주일 동안 잠만 자는 것도 해보고 싶다. 삼류 판타지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무언가는 없어도 된다. 있으면 물론 좋겠지만.

여기까지는 확실히 의외이긴 해도 내 상상의 범주였다.


“일 년 푹 쉬려면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야겠지. 오늘은 이만 들어가고, 앞으로 한 일주일 정도 빡세게 마무리하자꾸나.”


따뜻한 눈빛은 어디로 갔는지, 이진철 교수는 희번득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어깨를 두들겼다.


“일주일…. 정도요?”


딱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움직여 물어보았다. 정말 일주일이면 양반이고, 168시간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 그 정도는 하고 가야 일이 돌아가지.”


책이 가득 쌓인 의자 위에 종이를 놓은 이진철 교수가 안경을 썼다. 끔찍한 상상에 내가 멍하니 있자 키보드에 손을 올린 이진철 교수가 나를 흘겨보았다.


“뭐하나?”


메마른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무서워 나는 다급하게 일어났다.


쉽게 말한 그 대답이 어떤 일을  일으킬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채로.




***




이곳 성산대학교 캠퍼스는 지옥의 오르막길로 유명하다. 


돈이 얼마나 모자랐던 건지, 하늘에서 매일 아침 우리 대학을 내려다보면 지옥도가 따로 없다.


높으신 분들은 버스가 있으니 그만 아니냐. 하고들 생각하시겠지만 어림도 없지.


어디 대학 생활이란 것이 스케쥴에 딱딱 맞출 수 있던가. 결국 고생하는건 불쌍한 두 다리다. 심지어 이왕 산에 부지를 잡아 자금에 여유가 생기셨는지 건물마다 잡아먹는 공간이 아주 예술적이다. 여백의 미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래서 성산대학교 사진을 찾아보면 고개를 절로 끄덕거리게 만드는 사진이 많다. 역시 초대 총장의 선견지명이란.


미친건가?


사실, 까놓고 말해서 대학교 중에서 오르막길이 없는 곳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것이 있을 건데 성산대에는 그게 없다.


건물을 크게 짓던지. 대체 이게 무슨 헛짓거리란 말인가.

늦잠을 잔 탓에 헐레벌떡 달려 간신히 붙잡은 버스 안에서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일찍 다니라고 했잖냐.”


이산화탄소 가득한 버스 안.


울렁이는 속을 진정시키며 뒤를 돌아봤다. 뺀질거리는 면상이 낄낄대고 있었다.


“재현아, 재현아. 남자라면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알거라. 허허.”


“지랄.”


“일찍 다닌다는 새끼가 왜 나랑 같이 막차타고 있냐.”


“허허, 어찌 어린 아해가 본좌의 뜻을 알리오.”


“지랄.”


마침 생긴 빈자리에 김재현이 잽싸게 앉았다. 정 없는 새끼. 친구가 구슬땀을 흘리는데 자기 편한 것만 알고.


“평소엔 보이지도 않더니 무슨 일이냐?”


“숙취.”


아하.


무성의하게 툭 내뱉는 꼴이 보기는 싫었지만, 순식간에 이해가 됐다. 모범적인 대학생인 김재현에게 있어 주말이란 술자리 잡는 날이니까.


“이따 해장술로 점심 가볍게 모이기로 했는데, 올래?”


“아니. 피방이나 갈란다.”


“겜 그만하고 너도 좀 애들이랑 술 좀 마셔라. 나야 랭겜 버스타면 좋긴 한데 그래도 좀...”


쫑알쫑알 시끄럽게 늘어놓는 잔소리에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오전 10시 25분. 


“아니다, 너네 지도교수랑 뭐 한다고 안했었냐? 전에 그랬던거 같은데.”


“아, 어. 그렇지.”


“뭔데 그렇게 교수가 널 쪼아대냐?”


“......별건 아닌데.”


“그래, 뭐. 학점이나 장학금에 낚이지 말고.”


김재현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쓸데없이 눈치만 빠른 자식. 배려를 하려면 자리까지 비켜주던지.


“그것도 얼마 안가. 일주일 정도 정리하고 때려치기로 했다.”


“엥, 대체 뭔 일을 하면 일주일이나 정리를 해야하냐?”


“그냥. 자료 정리.”


“막 먼지 풀풀 넘치는 책 뒤적거리면서 찾는 그거?”


“...어.”


안쓰러운 눈길로 바뀐 김재현이 막대사탕을 내밀었다.


“불쌍한 녀석.”


“감사.”

주머니에 사탕은 왜 들고 있는건데?


하긴 뭐 나도 가끔 초콜릿이나 사탕은 들고 다니긴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뭔가 먹고 싶을 때나 졸면 안될 때. 특히 과제가 밀렸을 때 애용한다. 이따 자료 정리할 때 감사히 쓰도록 하자. 


“고마운 김에 몇 개 더 주라.”


“아주 등골을 빼먹어라. 빼먹어.”


“늘 감사하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건네받은 사탕으로 두둑해진 주머니를 흐뭇하게 두들겼다. 자고로 친구란 이래야지. 


“그럼 다음 주에 한 잔 하자. 일도 끝난다며. 얼굴은 좀 제대로 보고 살아야지.”


“...어.”


주머니 가득한 사탕이 족쇄가 된 것 같아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너, 내가 여친 생긴 건 알고 있었냐?”


“...아니.”


“그럴 줄 알았다. 이걸 동기라고...”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미묘한 느낌으로 입을 다물었다. 불쾌한 침묵 속에서, 김재현은 바스락거리는 사탕 포장을 매만지며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래서 다른 사람과 뭔가 한다는게 싫다.


주변에 무관심한 내 탓이지만.


“얼마나 됐냐? 일주일? 이주? 한달?”


“별로 길진 않고. 이제 일주일 넘었지.”


“부럽네.”


싱글싱글 웃는 김재현의 기운이 직접 보지 않아도 옆에서 전해왔다. 


“다음 주에 볼 때 데리고 올게.”


“그건 좀 그런데.”


술을 마신 게 아니라 여자친구 정기를 빨아먹은 게 아닐까. 빛이 나는 김재현의 얼굴을 보니 절로 배가 아파왔다.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써 내려간 것만 같은 인싸 대학생.


“아, 진짜. 그럼 1차는 내가 낸다.”


“...”


갑자기 문득 이 녀석의 목소리가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밝고, 활기찬 목소리. 누가 들어도 또렷하게 들리고, 가끔은 듣는 것만으로 기운이 나는 목소리.


그렇다면 내 목소리는 어떤가? 


피곤에 찌들고, 한참을 연구실이나 방구석에서 보낸 탓에 저절로 작아진 목소리. 음울하고, 부정확한 말투.


“아니, 진짜 내가 산다니까?”


이게 바로 흔히들 말하는 열등감일까. 


머릿속을 날카롭게 후벼판 생각이 점점 크기를 키워가는 것을 애써 지웠다.


“어림도 없지. 어딜 1차 가볍게 사려고 그러냐. 비싼거 먹여주면 간다.”


그래, 어림도 없지.


혼자 생각하고, 혼자서 곱씹은 불쾌한 생각 탓에 속이 울렁거렸다. 


사람의 마음은, 한번 알아차리면 걷잡을 수 없다고 했던가.


아무렇지도 않았던 버스 안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목소리는 뒷덜미를 찔러대는 것 같았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시선이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 대신 가오 좀 잡는다.”


“그러든가.”


고작해야 몇마디 대화에 불과한데. 별 생각 없이 항상 이어나가던 대화가 왠지 모르게 속을 답답하게 뒤집었다. 


어쩌면 사소한 그 몇 마디 대화가 현실을 바로 보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꼬인 생각을 흩어버린건 타이밍 좋게 울린 버스의 안내음성이었다.


[이번 역은, 성산대학교 캠퍼스. 성산대학교 캠퍼스 역입니다.]


한차례 머리를 흔들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휴대폰의 화면을 껐다. 이제부터 일주일. 눈코뜰새 없이 바쁠텐 데 이런 문제로 낭비할 시간따윈 없다. 


말을 쉽게 하지 않는 이진철 교수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더욱 그렇다. 대체 무슨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 왔네.”


버스가 멈춰선 곳은 평소대로의 본관 건물 앞이었다.


꽉꽉 들어찬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하차하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갑자기 사람들이 멈춰 서기 시작했다. 무언가 괴상한 것을 보았다는 것처럼.


본관 건물 앞에는 평소처럼 뭔지 모를 현대 미술 조각들과 몇 대의 비싼 차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을 꼽자면 조각이 먼지로 조금 더러워졌다는 것일까. 아무리 봐도 차이점은 오로지 그것뿐. 딱히 특출나게 눈에 띄는 것 하나 없이 평소대로였다.

그다지 다를 것도 없는데, 대체 왜 다들 멈춰섰을까.


하지만 얼빠진 표정으로 어딘가를 쳐다보는 김재현을 보고서야 계속 느껴지던 이질적인 느낌의 이유가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공중에서 잠자고 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노인은 공중에 둥둥 뜬 채로 저렇게 잠자고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저절로 해버릴 만큼, 그 광경은 마치 비현실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어이가 없어 절로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분명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공중. 그곳에 둥둥 떠다니는 노인의 모습 정도라면 충분히 넋을 놓을 만 하다.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인기척을 느낀 노인이 쓰고 있던 안대를 벗은 후 고개를 들었다.


“좋은 아침이네.”


반듯이 빗어 넘긴 회색 머리칼. 주름졌지만 흉하진 않은 얼굴. 지겹게도 매일매일 보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차가 막혔던가? 오늘은 평소보다 늦었구나.”


노인의 삭막한 눈동자가 나를 무감각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저 노인을 알고 있다.


사학과 교수 이진철.


한 학기 동안 지겹게도 매일 본 얼굴. 수업이 있든, 없든 자료 조사에 노예처럼 부려 먹히느라 머리 속에 단단히 각인된 이름.


성산대학교 사학과에는 수강인원이 단 한 명도 없다 하더라도 폐지되지 않는 강의가 있다. 


이진철 교수의 별자리와 역사. 


이 강의는 언제나 인기가 없지만,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한줄기 동앗줄과도 같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장학금을 준다. 듣기만 하면.


그런 속물적인 이유로 꼬박꼬박 성실하게 강의를 듣고, 반쯤은 조수 노릇을 한 내가 이진철 교수를 한눈에 알아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네의 평안한 1년을 위해서라도, 일부터 얼른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한 일이다. 이진철 교수를 한눈에 알아보는 것은.


헌데 적어도 수년간은 잊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그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공중에 둥둥 떠 있어 그런걸까?


“......교수님! 대체 뭘...”


“꿈인가?”


이제야 둥둥 떠 있는 노인이 교수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일까. 멍청하게 서 있던 사람들이 의미 없는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너희... 교수님 아니냐?”


“맞아. 왜 저러고 계신진 모르지만.”


“선배님, 저분이 교수님이라구요?”


“아, 네...”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이진철 교수가 입을 열었다.


“자네들은 지금 시간... 9시 40분이군. 지금을 기점으로 한가지 시험을 보게 될 걸세.”


“교수님..? 대체 무슨 말이십니까.”


“일단 내려오시는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공중에 누워있던 교수가 몸을 일으켰다. 둥둥 떠다니는 모습에 사라진 현실감이 되돌아오고 있는것만 같았다.


무언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마 나를 바라보다 내 등 뒤로 시선을 옮긴 것은 교수 나름의 힌트였을까.


버스가 있어야 할 곳에는 새까만 벽이 있었다.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빡센 일주일의 시작이었다.



***



“자네들 중에서 혹시 사학에 관심있는 사람이 있는가?”


주변 학생들의 불만에 가득 찬 웅성거림에도 이진철 교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교수님. 왜 그러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저흰 관계가 없으니 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맞지. 우리가 왜 이러고 있어. 가자.”


“야, 그래도 교수님인데...”


다들 우물쭈물하며 말만 하고 있던 그때, 신경질을 내며 튀어나간 사람이 있었다. 검은색 맨투맨에 검은색 청바지. 심지어 검은색 신발까지. 체대생일까. 머리도 스포츠로 바짝 깎은 것이 인상깊었다.


“자네가 간다고 하면 내가 말릴 이유는 없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이진철 교수는 담담하게 우리들을 바라봤다.


“저, 그럼 저도...”


“나도...”


답답했던 걸까. 하나 둘 씩 일어나는 사람들을 따라가려는 김재현을 붙잡았다. 


“야, 왜. 이러고 있을거야?”


“......저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등 뒤에 솟아난 새까만 벽을 가리켰다.


“아니, 씨발.”


만화나 영화를 자주 봤다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사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너희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말투.


어쩌면 피곤함이 빚어낸 단순한 망상일지도 모른다. 실은 그저 몰래 카메라라던지. 꿈을 꾸고 있다던지.


그런데 등 뒤에 솟아난 벽은 그런 생각을 집어삼켰다. 허공에 떠다니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벽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살벌했다.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쉽게 허물어 버릴듯한 기묘한 느낌.


김재현이 크게 내뱉은 욕이 사람들의 주의를 한데 모았다. 사람들이 고작 말 한마디에 신경질을 내며 돌아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아니.”


“씨발... 저게 뭐야.”


“미혜야...”


한 명, 두 명. 뒤를 돌아보고 욕을 내뱉는 사람이 늘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체대생처럼 제 갈길 가려던 사람들이 모두 다 가만히 멈춰서자 이진철 교수는 그제야 빙긋이 웃음지었다.


“이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한다네. 성적에 반영하도록 하지.”


그러자 기묘한 침묵이 사람들에게 자리잡았다. 제 할 말을 마음껏 내뱉던 때로부터 마치 수십년은 지나버린 것처럼.


“아무튼 여기 남은 자네들은 내 말에 동의한다 보면 되겠는가? 아, 물론 억지로 시키는 것은 아닐세. 자유 민주주의 국가 아닌가.”


“저, 그럼 그냥 여기 있는건 안될까요..?”


“흠. 그건 조금 곤란하지 싶네. 지금 이 일대는 내가 빌렸으니 말이야.”


“아니, 교수님. 사전 공지도, 협조도 없이 이러시면...”


용기 있는 발언이야. 


겁도 없이 나선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말려야 할까? 무슨 수로? 무슨 이유로?


성격 급한 여자를 말리기에는 내 마음이 넉넉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빙긋 웃는 이진철 교수의 모습이 불길했다.


“하하하하! 지금 하고 있잖는가. 협조 말이네.”


“아니, 이게 무슨...”


“협조라기는 좀...”


“그럼 저도 갈게요.”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여자는 손등이 하얗게 변하도록 굳게 주먹을 쥐고 걸어갔다.


“자네 마음이지. 내가 뭐랬는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 했는데 말일세.”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남아 있는 사람들이 터벅터벅 걷는 여자의 뒷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뭐야, 진짜 가도 되는거야?”


“그런거 같은데.”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는 모습에 안도감을 느낄 즈음. 이진철 교수가 불만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친구들은 내 말을 믿지를 못해요. 것 참... 나 때는. 아, 이런.”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한참을 걸어가 본관 건물에 가까워진 여자의 새된 비명이 울려퍼졌다.


“요즘 세대는 배려라는 것을 몰라요. 배려를.”


눈썹을 찌푸리는 이진철 교수의 말에도 사람들은 말 하나 없이 침묵했다. 


그러자 이진철 교수가...


아니. 이진철 교수가 맞을까? 


듣는 사람도 없는 강의를 듣고, 한 학기 동안 조수 노릇을 했다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생각한 내가 틀린 것이 아닐까?


한번 시작된 생각은 참기 힘들었고. 솟구쳐오르는 의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저, 저, 저게 뭐야.”

언제 달려온 것일까. 


이진철 교수 뒤에 양 팔이 잘려 피를 뿜어내는 여자가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곱게 묶었던 머리칼은 풀어헤처졌고, 눈물로 젖은 얼굴은 소리 없는 비명을 계속 내질렀다. 


“역시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군.”


무감각한 말투로 이진철 교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여자를 치워버렸다. 손짓 한 번으로.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사람들은 제 숨소리까지 조절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고 있나. 편하게 있게. 편하게.”


이진철 교수가 살짝 손을 흔든 것 만으로 날아간 여자의 몸이 조각상에 부딪혀 움찔거리고 있었다. 


분명. 죽었을 것이 틀림없다.


온 사방에 핏물을 흩뿌리고 죽어가는 여자.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차올랐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예상과 다르다고 했던가. 작게는 나부터, 크게는 바짝 긴장한 모두가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제대로 된 공포란 이런 것일까.


“뭐, 좋네. 일을 해야지. 그러라고 받는 지원금인데.”


이진철 교수는 나를 보며 장난스러운 윙크를 보냈다.


“자네들은 본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를걸세. 본 교수의 강의가 참... 장학금까지 준다며 공지를 해도 인기가 없더군. 그래서 약간 마땅한 이유도 생긴 김에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네. 어찌보면 일탈이지.”


이진철 교수의 별자리와 역사. 교수의 말대로 무척이나 좋은 조건임에도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었다.


물론, 좋은 조건인 만큼. 잡다한 과제에 신경 쓸 일이 많은 강의이긴 했다. 적당히 대학 생활을 보내려는 사람에겐 그다지 메리트가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될 정도로.


하지만 이진철 교수에게 그런 사실을 말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물론 이 중에서도 몇몇 본 교수의 제자가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하고 있다네. 본 교수가 여태까지 강의를 하고 있는 건 다 자네들 덕이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아는 얼굴들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한 학년 위의 선배인 황희철, 이진철 교수가 유별나게 아끼던 김동하, 장학금을 노리고 들어왔다 말한 주제에 누구보다 교수의 강의를 좋아하게 된 하채연, 출석률은 낮지만, 과제에 있어서 누구보다 완벽한 별종인 강주연.


“어찌되었건. 본 교수는 얼마 전까지 별자리와 역사라는 자그마한 강의를 맡았던 이진철이라 하네.”


자연스럽게 나온 그 말에 사람들이 기괴한 표정으로 이진철 교수를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 무슨 개소리를 하느냔 분위기였다.


“이렇게 많은 청중 앞에서 말하기도 오랜만이라 좀... 떨리는군. 워낙 소심한 성격이라. 하하.”


소탈한 어조로 말하는 모습은 기억 속의 이진철 교수와 똑같았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의심 하나 생기지 않았을 텐데. 피가 튀는 이 상황은 도저히 눈 앞의 저것을 이진철 교수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아무튼 자네들은 시험을 봐야 하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공포 섞인 정적을 뚫고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시험, 이 뭔가요?”


공부에 방해된다며 머리를 깔끔하게 밀어버린 공부 벌레, 아마도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이진철 교수와 친할 사람. 김동하가 사람들 속에 숨어 간신히 말을 이어나갔다.


“아하. 동하 군이 아닌가. 그래, 당황스러울 법도 하지. 조금만 기다리게.”


“네, 네!”


“본 교수는 말일세. 국내에선 고리타분하고 지저분한 역사학자 수준이지만, 그래도 나름 세계로 나가면 그럭저럭 권위가 있다네.”


마치 평소처럼 늘어지게 시작한 이진철 교수의 말에 김동하의 얼굴빛이 조금 돌아왔다. 


“그 덕에 얼마 전, 황공하게도 사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이 모이는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네. 물론 흥미 위주의 토론회 같은 곳이라 온갖 신화, 전설, 점성술에서 주술까지 나오더군.”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그래서 그 모임에 나가 마법이라도 배웠다는 소리인가? 


평소라면 천천히 기다렸을 일을. 느릿느릿한 교수의 말투가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그렇게 계속 토론을 이어나가던 중, 어느 한 천문학자가 커다란 은상자를 꺼내들었다네.”


“....”


“한창 점성술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이라 다들 잔뜩 기대했지만 말일세. 상자 안에는 고작 구슬 몇 개가 들어있더군.”


“...네?”


누군가가 내뱉은 의문을 듣자, 교수는 나이에 맞지 않게 명랑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다들 그렇게 실망했지! 본 교수도 그 멍청한 인간들 사이에 있었어. 헌데, 헌데 말일세. 그 천문학자의 설명에 본 교수는 납득하고 말았다네.”


언제 나왔던 걸까. 가장 앞에서 이진철 교수의 말을 듣고 있던 김동하의 얼굴이 다시 희게 변했다.


“물론 설명하는 과정에서 몇몇이 죽기는 했지만. 위대한 발견에 있어 희생은 필수적인 게 아니겠나. 본 교수는. 봤다네. 보고야 말았다네. 소위 말하는 신비(神祕)를!”


얼토당토 않은 말이지만, 아직도 움찔거리는 시체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이진철 교수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강한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자네들은 대학생이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선별된.”


갑작스레 말을 돌린 이진철 교수에게서 무언가 흉흉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니 믿네. 수십만의 경쟁자 들을 헤쳐나온 자네들이라면 분명, 현대의 우리가 잊은 신비! 신화! 전설! 민담의 선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네!”


두 팔을 벌리며 외치는 이진철 교수를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본디 인간의 역사라 함은 언제나 저 밤하늘의 별과 함께했던 것!”


방향을 잡지 못하는 불만이 교수를 향해 채 발산되기도 전에, 이진철 교수가 사람들을 본관 건물로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네?”


“꺄아아아아악!”


“교수님! 교수님! 저, 저 동하에요! 김도오오오오옹...!”


이진철 교수의 손가락질 한 번에 날아가는 내 귓가에 교수의 마지막 한마디가 박혀 들어왔다.


“부디 자네들의 머리 위에 별이 빛나길 바라고 있겠네!”


이것은 아마도 내가 내심 바라던 소설의 도입부.


일탈이라면 일탈이었고, 판타지라 부르자면 판타지였다. 


단지, 피 냄새가 조금 난다는 것을 빼면.

Writer

신시연

자에픽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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