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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유리관 속에서 타오르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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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타이양성에 물건을 대던 때의 일이다. 타이양성은 최근에 본토까지 사업을 확장한 커다란 상사였다. 타이양성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나의 사업 또한 덩달아 덩치를 불릴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나는 조간신문 구석에 작은 구인광고를 내었는데, 면접날 회사로 찾아온 이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회사에서 일하려 할 것이고 출세를 바라며 밀입국한 어중이 떠중이라면 단숨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려 할 테니까. 뭐, 회니 방이니 조직해서는 주먹이나 휘두르고 다니다 어느 순간 시궁쥐의 잔칫상이 되어 잊힐 뿐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시안은 별 볼일 없는 사내였다. 교육받지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열의도 없는, 그저 그런 사내. 하지만 회사로 찾아온 사람은 시안 뿐이었기에 시안은 직장을 구하게 되었다. 나 또한 세 번째 직원을 구했음은 말할 것 도 없다.

 시안은 일을 배우는 조건으로 이 주간 급여를 받지 않고 일하기로 했다. 첫 주는 렁에게서 일을 배우게 됐다. 렁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중늙은이로 오래 전부터 답답증을 앓고 있어 몸이 쇠약하였다. 그래서 렁은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보이는 데가 있었다. 시안이 렁을 보고 '노인장, 이건 어떻게 하는 것이지요?'하고 물은 일은 크게 흠 잡을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리버가 '그 노인네는 귀가 어두워서 그렇게 작게 물어봐서 알아듣겠어?'라며 비웃는 것이었다. 이에 렁은 크게 화를 내며 리버에게 달려들었다. 그바람에 쌓여있던 서류며 필기구가 쓰러지며 어지러워져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걸쳤다. 렁과 리버가 쓸데없이 소란을 피우는 일은 익숙한 것이다. 이럴 때면 두세 시간 정도 나갔다 돌아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상복구가 되어있곤 했다. 

 그런데 내가 사무실 문고리를 쥐고 돌리기 직전에 시안이 엉켜서 종이뭉치 위를 구르던 렁과 리버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손속이 워낙 재빨라 렁과 리버는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둘은 상황이 이쯤 되자 자리를 정리하고 업무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 일로 시안은 내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시안은 열심히도 게으르지도 않게 일했다. 시안은 늘 오분 일찍 출근하고 정각에 퇴근하였는데 아무도 그가 퇴근 후 무얼하는지 몰랐다. 언젠가 렁이 술을 마시자며 운을 띄워도 딱 잘라 거절하고, 내가 술을 사준다며 불러보아도 이런 저런 대답없이 퇴근 시간이 되면 사라져있는 것이다. 다음날 내가 그에 대해서 물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었나요?'라며 모른체를 하는 것이다.

 시안이 내 사무실에서 일한지 반년 쯤 되었을 무렵, 나를 포함한 모두는 그에게 무언가를 권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시안을 따돌리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그는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사무실 밖에서 시안을 본 것은 그와 일한지 이 년이 갓 넘었을 때였다. 새해를 앞두고 구룡에서도 활기찬 분위기가 감돌았다. 심심할 틈 없이 뒷골목에서 울려퍼지던 총성과 목숨을 구걸하던 울음이 뜸해지던 때기도 했다. 마침 나는 올해 마지막 일로 타이양성을 통해 한 의뢰를 받았다. 네온사인 간판 하나를 만들어달라는 일이었다. 러시아의 부자가 프랑스 저택에 장식하기 위해 의뢰한 것이었다. 십 년전 구룡 땅과 홍콩 섬에선 네온 사인을 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지만 요즘 사정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유리가루를 녹여서 불고, 구부리고, 가스와 촉매를 넣어 태우는 번거롭고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물건이 네온사인이란 물건이다.

 무계획적으로 난립한 불법건축물 속에서 술과 여자를 파는 가게들이 부나방을 이끄는 횃불처럼 네온사인을 밝게 틀어 어두컴컴하소 축축한 골목으로 손님을 유도하는 광경은 차차 사라져가고 전광판이 네온사인을 대신하여 그 자리를 밝히는 것이다.

 요즘 술집 주인들은 처음 돈을 더 들이더라도 전광판을 다는 것을 선호했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몇몇 노인네들이 '그래도 붉고 푸르게 타오르는 네온이….'하고 중얼거리지만 그것을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손님은 손님대로 더 밝고 선명한 전광판에 마음이 이끌리는 것이고, 주인은 주인대로 유지보수가 더 간단하고 오래 쓸 수 있는 전광판이 좋은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구룡의 골목을 밝히던 네온사인은 사라져만 갔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네온은 비싼 전광판을 달 여유가 없거나 이미 달이둔 네온사인을 밝히다가 언젠가 그 불빛이 꺼지면 불 꺼진 네온사인과 함께 어둠에 묻힐 가난뱅이 가게에 달린 것이 끝이었다. 구룡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 말이다. 

 어쨌건 나는 네온사인을 러시아인 부자에게 전달할 의무가 있었기에 후미진 골목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홍콩에 남은 다섯 네온장이 모두가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찰박거리며 골목길을 지나던 나는 젖은 구두밑창에 찜찜함을 느끼며 한 반지하 문을 열어젖혔다. 공방에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불 꺼진 공방을 둘러보며 집게니 쇠 파이프니 뒤적거리다가 공방 깊숙히 위치한 방안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자 읍을 하며 그곳으로 향했다. 만들다 만 네온사인이 어지러이 널려있는 틈새로 몸을 비집어 넣고 가까스로 방문을 열자 송장같은 노인네가 얇은 이불을 덮고 오롯이 누워있었다. 노인의 눈두덩이와 양 볼은 홀쭉하게 패여있었다. 눈도 뜨지 못하는 노인은 나를 누군가와 착각한 모양인지 무어라 지껄이기 시작했다.

 '샤오샤오, 왜 일을 하다 말고 돌아왔느냐? 사람은 일을 해야한다. 언제까지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게야. 아무런 전망도 없는 일을 해선 안 돼. 네온 사인을 만들고 싶어 못참겠어서 돌아왔느냐? 너는 젊은데 어째서 네온을 하려는 게야….'

 나는 눈 앞의 노인이 야우 노인인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한 때 이름을 날렸다던 제작자는 죽음을 앞둔 쇠약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아무튼 이 꼴이라면 물건을 부탁하기엔 틀린 것 같아 돌아가려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문에 달린 유리창 너머로 인영이 비추었다. 시안이었다.

 '웬 일이야?'

 '사장님은 왜 여기 있나요?'

 '일 때문에.'

 '전 퇴근하고 왔죠. 제 집이거든요. 여기.'

 '퇴근할 시간이던가?'

 '예.'

 시계를 보니 시안의 말대로 퇴근시간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내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몇 가지 일을 묻자 시안은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어릴 적 노인에게 주워져 지금은 노인을 모시고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네온사인을 만들 줄 아느냐 묻자 시안은 그렇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힘이 좋긴해도 별 볼일 없는 사내라고 생각하는 건 여전했기에 물건은 다른 이에게 맡기기로 마음 먹었는데, 내 가방은 어느새 시안의 손에 들려있었다. 그는 도안을 꺼내 살피더니 일주일 쯤 걸릴 것이라 제멋대로 말했다. 도안을 빼앗긴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일을 맡기게 되었다.

 시안과 나는 해가 떠있는 동안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그의 공방으로 같이 가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가 제대로 물건을 만드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의 실력이 모자라는 구석이 있으면 도안을 뺐어들고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기도 했고.

 그는 전기고로에서 노랗게 빛나는 유리 한뭉텅이를 꺼내들더니 입으로 불어서 부풀리고 틀에 넣어서 모양을 잡고 집게로 잡아 구부리고 접으며 순식간에 그럴듯한 글자 하나를 만들어보였다. 나는 그의 솜씨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나니 걱정은 놓아두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러자 시안이 유리와 씨름하는 꼴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가 떨어져 버렸다. 어쩌다보니 노인네가 누워있는 방문에 걸터앉아서 땅콩을 까먹다가 그가 고로의 전원을 내리면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늦은 퇴근길을 떠나는 것이다.

 시안의 공방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옛 풍경이 아직까지 살아숨쉬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을 밝히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들. 비라도 쏟아진 날이면 웅덩이 속에서 뒤집혀 있는 거리를 찾아볼 수 있었고 태양빛 아래에선 흉물스럽게 보이던 에어컨 실외기며 녹슨 금속제 울타리는 표면에 맺힌 빗방울이 네온 불빛에 휘황찬란하게 반짝였다. 만두 찌는 증기가 뿌옇게 앞을 가리다가도 극장의 커튼이 젖혀지며 배우를 소개하는 마냥 네온사인 간판을 하나 둘 등장시키는 것이다.

 나는 며칠 되지 않아 이 늦은 퇴근길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구룡역까지의 짧은 시간만 유지가 되는 일이고 역에서 전차를 탄 순간부터는 그 감정이 확 식어버리는 것이다. 좀전까지 사위를 밝히던 네온 불빛은 사라지고 네온 불빛을 어설프게 대채한 선이 아닌 알알이 박혀 반짝이는 전광판의 숲을 지나면 아무런 불빛도 없이 깜깜한 언덕길이 펼쳐졌다. 

 덜컹거리며 언덕 위로 몸을 힘겹게 올리는 전차에 타고있다보면 울컥한 감정이 치미는 것이다. 예전같으면 언덕 위에서 보는 홍콩의 야경을 기대했겠지만 그 불빛은 더 이상 어떠한 감정도 주지 않는 차갑기 짝이 없는 것이다. 언덕 너머로 밤하늘을 물들이는 아지랑이에 기대를 품었다가도, 드높이 솟은 마천루가 섬을 가득 채우고 빌딩이 밝히는 불빛이 온 사위를 비추는데도 내게는 더 이상 그 불빛은 차가운 전깃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나는 시안이 어째서 네온사인을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고향을 떠나왔지만 그토록 바라던 홍콩 섬에 닿지 못하고 구룡의 뒷골목을 전전하던 소년의 마음을 모른다. 자신을 주워준 네온장이에게 보답하고자는 마음이 있는 것인지, 어릴 적 본 화려한 네온 불빛을 잊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저 추측할 따름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가 네온사인을 만드는 이유를, 그가 구시대적이고 비효율적인 네온을 사랑하는 이유를 찾아내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언가를 보고 느낀다는 건.

 누구나 그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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