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달을 사랑한 남자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협업 참여 동의

 나와 제이슨은 우주비행사였다.


 우리 둘은 우주비행사 양성학교를 나란히 수석, 차석으로 졸업하고 올해 5월 발사되는 유인 월면 탐사선 '디재스터-X' 의 탐사원에 선발되었다.


 선발 당시 내가 느낀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 부터 꿈이었던 달나라 여행을 실제로 할 수 있게 되다니, 어렸을 적 체스 클럽에 다닌다고 놀려먹던 양아치들이 다시 찾아와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몸서리치는 희열을 느꼈다. 온 동네방네 달에 간다고 자랑하고 다녔지만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북받침은 한참 동안 꺼지지 않았다.

 

 반면 제이슨은 비교적 깊은 반응을 보였다. 그도 물론 기뻐하긴 했지만 그 모습은 단순히 달에 간다는 사실에 대한 즐거움보단 그 이상의,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숙원을 드디어 이루어냈다는 감격에 더 가까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자태에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고결함을 엿본 듯 했다.


 생각해보면 제이슨은 언제나 차분하고 미스테리한 친구였다. 비록 성적은 나보다 낮은 차석이었지만 점수의 편차 자체는 오히려 그 쪽이 더 좋았고, 평소에 그가 은연히 풍기는 이지적인 아우라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희미한 동경심을 이끌어내었다.


 그런 그가 월면 탐사원 선발 소식을 듣는 순간 보인 그 반응 때문에, 나는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제이슨은 달에 가는 것을 얼마나 기다려왔던 걸까? 저 반짝이는 두 눈은 언제부터 달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음 속으로 그를 더욱 높이 평가하던 나였다.


 그것을 달에 도착한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난 지금 기를 쓰며 어떠한 행위를 열심히 시도하는 제이슨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이슨, 지금 뭘 하는 건가?”

 “성관계를 하고 있네.”


 우주복 내부의 근거리 전파 통신기에서 믿겨지지 않는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내가 방금 들은 이 목소리는 진짜 제이슨의 음성이 맞는 걸까?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 소리는 달 뒷면에 숨어있는 외계인이 중간에 전파를 가로채서 지구인의 음성을 모방한 것이고, 아직 파악되지 않는 단어를 조합하여 소통을 시도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럴 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난 지금 눈 앞에 있는, 달에게 박기 위해서 엎드린 채 허리를 흔드는 제이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저 행동은 분명 우주규범조례에서 최근에 새로 추가된 의사소통 제스쳐이리라. 내가 몰라서 저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 꺼야.


 “음, 잘 들어가지 않는군.”


 제이슨은 일어나서 반쯤 벗고 있던 우주복의 하의를 더 내렸다. 하얀색 외갑이 발치로 구겨지고, 내부에 있던 회색 바디슈트의 고간 부위에 툭 하니 튀어나와 있는 '무언가' 가 보인다.


 그 무언가는 우주복 사양으로 맞추어진 합성고무 -즉 콘돔의 역할을 하는- 로 둘러싸여져 있었지만,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선 채 그 오똑하고 늠름한 자태를 보란듯이 자랑하고 있었다.


 “제이슨”

 “왜 그러지?”

 “자네 정신 나갔나?”


 다시 엎드려서 허릿질... 을 시작하려는 제이슨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멀쩡하다네.”

 “그럼 씨발 지금 니가 하고 있는 짓거리는 뭔데?”

 “말했잖나. 성관계를 하고 있다고.”


 달이랑. 제이슨은 그렇게 덧붙였다.


 “우주선 탑승 전에 마약성 약물을 투여한 건 아니겠지?”

 “내 정신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최고로 또렷하고 맑다네.”

 “그럼 왜 지금 월석을 감식하고 지형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이 중요한 순간에 왜 거대한 돌덩이랑 애정행각을 벌이는지 나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었으면 하네만.”

 “그건 긴 이야기지...”


 문득 제이슨은 자리에 걸터 앉아, 저 검은 하늘에 덩그러니 떠 있는 우리의 고향 푸른별을 바라보았다. 우주복으로 둘러싸여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의 눈빛이 애수로 가득 차 있으리란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열 두살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았던 날, 나는 달과 사랑에 빠졌다네.”

 “흠.”

 “그 사실을 눈치챈 건 달의 얼룩과 문양이 언제나 똑같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즈음이었지. 그 날도 평소처럼 부모님 몰래 밖에 나가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달은 항상 나에게 같은 면만을 보여주었던 거야.”


 그래, 동주기 자전 형상 때문이지, 라고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내가 달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달 또한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지. 그 때 부터 알았어.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달은 이웃집에 사는 사춘기 소녀가 아니라네.”

 “아니,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아. 달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계속 지구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야. 지구에 살고 있는 연인을 매일 밤 눈에 담기 위해서.”

 “돌아가면 꼭 정신 감정 받아보게.”

 “아무튼 마침내 이 순간 나는 달과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감동적인 재회를 할 수 있었고, 이 벅차오르는 사랑의 감정은 오로지 서로간의 진한 성적 행위만이 해소할 수 있다네.”

 “월면 분석은?”

 “자네가 좀 해주면 안되나?”


 우주선 안으로 다시 들어간 나는 콘솔에 앉아 본부에 전송할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동료 탐사자의 태만행위 고발. 정신착란을 인위로 가장하며 얼토당토 않는 핑계를 대고 주어진 임무 작업을 타 연구자에게 강제 전가하려는 태도 심각. 본부로 복귀 후 해당 인원의 신속한 징계위원회 회부 요망.'


 타자를 치는 중에, 근거리 전파 통신기에서 고음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 오오... 마이 루나...!”


 난 신경질적으로 통신 회선을 뽑아버렸다.

comment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이제 텔레그램에서도 알림을 받으세요! file Admin 2017.01.19. 799
공지 라한대 주최자 분에게 건의사항 드립니다 (4) Admin 2016.08.14. 1044
공지 라한대(라이트노벨 1시간 쓰기 대회) 공지사항 - 대회신청은 여기 댓글로! (188) file 수려한꽃 2012.06.02. 87205
2391 라한대 인스턴트 달빛꽃 2021.05.08. 32
라한대 달을 사랑한 남자 쀼스쀼스 2021.05.07. 29
2389 라한대 지각 신시연 2021.05.07. 37
2388 라한대 공지 [라한대] 2021.05.07 라한대 여는 글 errr 2021.05.07. 54
2387 라한대 공지 [라한대] 20.10.18. 라한대 닫는 글 errr 2020.10.20. 118
2386 라한대 내가 이름을 바꾸게 된 사연 (1) limo 2020.10.19. 94
2385 라한대 [라한대] '경' 딸갤러 2020.10.19. 104
2384 라한대 [라한대] 기사는 검으로, 도적은 교수대로 Eglantine 2020.10.18. 215
2383 라한대 [라한대] 혈기사가 너무 덜 강함 하유지 2020.10.18. 80
2382 라한대 공지 [라한대] 20.10.18. 라한대 시작합니다 errr 2020.10.18. 25
2381 라한대 공지 2020년 4월 1일 라한대 시작합니다. (2) PunyGod 2020.04.01. 180
2380 라한대 공지 [라한대] 3월 8일 라한대 결과 발표입니다. 금과명주 2020.03.08. 123
2379 라한대 [라한대] 네온사인 현안인 2020.03.07. 109
2378 라한대 [라한대] 유리관 속에서 타오르는 불 샤이닝원 2020.03.07. 123
2377 라한대 오늘도 평화로운 사이버시티 천마 2020.03.06. 122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160'이하의 숫자)
of 160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