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산타와 해피엔딩 크리스마스 - G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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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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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캐롤, 곳곳에서 보이는 빨갛고 푹신푹신한 옷을 입은 사람들. 시간은 이제 막 11시, 그다지 이른 시간은 아니지만 사람이 꽤나 많이 보인다. 여기가 시내 한복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방에서 반짝이는 전구들 때문에 사람들이 밤낮을 헷갈리고 있는걸까. 광장 중앙의 분수와 주변 상가, 병원, 패스트푸드점, 가로수, 기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뒤덮은 반짝이는 전구는 왠지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물론 여자친구가 있으면 그렇지 않겠지만.
 혼자서 버스 기다리기를 약 20분.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20분 전에는 이곳에 없던 사람들이다. 나만 빼고. 뭔가 따뜻한 거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나오는 건 은박지에 싸인 작은 초콜렛 뿐이다. 에휴, 그래. 이런게 섭리지. 혼자서 피식피식 웃자 건너편 분수 앞에 있는 빨간 옷을 입은 구세군 아저씨가 이상하게 쳐다본다. 가서 ‘유행이 지난 옷을 입으시네요.’ 라고 말하면 어떨까. 아마 경찰을 부르겠지. 그건 그거 나름대로 심심하지 않고 좋을것 같지만 열심히 일하는 구세군 아저씨가 불쌍해서 복장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참고로 저 복장이 유행이 지났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왜냐면 요즘 산타는 아무도 저렇게 입지 않으니까. 나를 포함해서.
 류재욱. 올해 22살. 대한민국 육군 병장 전역. 현재 여자친구는 없음. 이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 신상명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아빠를 포함한 몇몇을 빼고는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나는 산타이다. 이제 이 세상에 얼마 존재하지 않는, 진짜 산타.
 갑자기 바람이 한층 싸늘하게 불어온다. 군대 가기 전부터 입던, 가장 좋아하는 회색 자켓도 늙은건지 품안으로 바람이 술술 불어온다. 다시 한번 주머니를 뒤적여보지만 나오는 것은 여전히 초콜렛뿐. 새삼 느끼는 거지만 정말 쓸모없는 마술이다. 방금 나온것까지 해서 두 개를 한번에 집어넣자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져나간다. 
 “그래도 맛은 있네.”
 스타워즈의 세계에는 포스라는 힘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 정확히 말하면 산타를 제외한 사람들 모두가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 세계에는 산타력이라는, 이 세계의 모든 질서와 인과율을 관장하는 힘이 존재한다. 지금 내가 추운 크리스마스 이브에 혼자서 쓸쓸히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내가 기다리는 버스만 이상하게 계속 오지 않는것도 모두 산타력의 뜻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산타들은 이 산타력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마술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방금 전에 내가 아무것도 없던 주머니에서 초콜렛을 꺼낸 것처럼.
 주머니에서, 정확히 말하면 손이 들어가는 모든 것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은 산타의 유전자에 기본적으로 새겨진 마술이다. 그 외에도 시간을 되돌리거나 공간을 이동하거나 하는 여러 마술이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산타들은 마술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산타들이 자제를 아는 상식인들이라서 그러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산타들은 자제라는 단어와는 지구 두바퀴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대가가 커서 그런것도 아니다. 그 모든 마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오직 산타력만 있으면 된다. 물론 몸에 저장할 수 있는 산타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쓰고 다시 충전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기에 대가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산타들이 마술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이유는, 마술의 결과가 산타의 의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산타력의 의지를 따르기 때문이다.
 쉽게 예를 들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마술을 쓴다고 할 때, 마술을 사용하는 산타도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공간이동은 어디로 떨어질지 알 수 없고, 시간조종은 언제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작위. Random.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절대 믿을 수 없지만, 산타 초급 마술교범에 의하면 산타력이 판단하기에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그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고 한다. 젠장, 그래서 그때 태연이랑 비슷하게 생긴 여자랑 소개팅 할 때 혹시나 하고 꺼낸 물건이 끈적거리는 흰색 액체를 뒤집어쓴, 밤꽃 냄새를 풀풀 풍기는 신장 16cm짜리 세★버 피규어였군? 이런 모양인데 적절한 물건이 나온다는 말을 믿으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
 호주머니를 뒤져서 초콜렛을 하나 더 입에 집어넣는다. 이 마술에 대해 내가 유일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별 상황이 아닐때 뭔가를 꺼내면 반드시 달콤한 초콜렛이 나온다는 것이다.
 시계를 보니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한지 30분이 거의 다 되어간다. 배차 시간이야 30분 내외일테니 아마 조금 있으면 한 대 정도는 오겠지. 구세군 아저씨가 자리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시간은 별로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방금 전보다 거리에 사람이 확 줄어들었다.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크리스마스 오라를 풀풀 풍기는 연인들보다는 다른 일이 있어서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듯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때, 반대쪽 병원 정문을 걸어나오는 여자가 내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끈다.

2.
 그녀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사실 불행한 사람이라는 말은 맞지 않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이고, 순간순간 어떤 요소를 강하게 느끼느냐에 따라 기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상관에게 엄청 깨져서 우울한 아저씨가, 집에 가서 토끼같은 자식들을 보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것처럼. 사람은 항상 행복과 불행 양쪽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고, 따라서 ‘저 사람은 지금 불행하다’는 문장은 말이 되지만 ‘원초적으로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산타는 행복을 배달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산타라고 해서 아무데나 행복을 펑펑 뿌리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뿌리는 것은 자기 마음이지만 지나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가끔씩 산타를 강렬하게 잡아 끄는 사람들이 있다. 원인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산타력의 섭리에 의한 현상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생각이다. 어쨌든 산타력에 의해 결정된 그런 사람을 보면 산타는 도와주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이성적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하게 느끼게 된다. 산타력에게 선택된 그런 사람들을 산타들은 이렇게 부른다. 불행한 사람.
 그녀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나는 산타였고, 버스 한 대를 삼십분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광장 한가운데 분수 옆에 서있었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나를 삼십분동안 기다리게 만든 버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출발하는 것이 보였다.
 “으허아흐어허헝....”
 이 모든 것이 산타력의 섭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왠지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은, 산타라는 피곤한 종족으로 태어난 나 자신에 대한 동정일까.
 어쨌든, 흔히 말하듯이 버스는 이미 떠났다. 그리고 나는 산타력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다. 아무리 피곤하고 자고 싶어도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면 집에 갈 수 없는 것이다. 
 불행한 그녀는 분수 옆 벤치에 앉아 힘없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묘하게 잘 어울리는 보라색 코트 위로 어깨에 닿을듯 말듯하게 자른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린다. 방금까지 따뜻한 병원에서 있다가 나왔겠지만, 추운 날씨 때문에 벌써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옷이나 분위기를 보면 그다지 어린것 같지는 않지만, 추정되는 나이보다는 굉장히 어려보이는 얼굴이다. 아마 누군가가 아프고, 그것 때문에 상심에 잠겨 있는 거겠지.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까.
 “저기요.”
 “꺅!”
 그녀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본다. 당연한 반응이다. 아마 누구라도 혼자서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어깨를 건드리면서 말을 걸면 깜짝 놀라겠지. 나는 원래 이렇게 무식하게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직선돌파식 접근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지금 굉장히 피곤하고 졸리고 그래서 후딱 일을 해치우고 집에 가서 따뜻한 라면이라도 한그릇 쭉 들이키고 자고 싶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 헛기침을 하고, 살짝 큰 목소리로 오지도 않은 전화를 받고, 괜히 길에 떨어진 깡통을 주워서 15미터정도 떨어진 쓰레기통에 멋지게 던져서 골인시켰는데도 그녀가 나를 알아채는 기색이 없이 생각에만 잠겨있던 것이 더 크다. 
 “......” 잠시동안 서로 무진장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녀의 어깨를 잡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어떤식으로 말하고 행동할지 어느 정도 선이 잡혀 있던 것 같은데, 그녀의 눈을 바라본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 크고, 지적이고,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런 눈동자. 살짝 충혈되어 있는 것은 아마도 피곤함 때문이겠지. 
 “....실례지만, 누구시죠?”
 다행히도 그녀가 나를 도와준다. 굳어있던 내 손을 밀어내는 그녀의 눈빛에 살짝 경계의 빛이 떠올라 있다. 덕분에 나도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시나리오를 연기할 수 있게 된다.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아니겠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평소와는 다르다. 이런 말을 하면 뭔가 반응이 나오는 것이 정상인데. 종족 특성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에 굉장히 작업 성공률이 높은 편이다. 물론 먹힐 만한 상대한테 시도한다는 것이 큰 이유겠지만. 어쨌든 일은 일이다. 나는 시작하기 전 의례 하는대로 어깨를 으쓱하며 살짝 한숨을 내쉰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면 가끔씩 경찰에 전화를 거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에, 나도 이러기 싫은데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를 반드시 보여 줘야 하는 것이다.
 “저는 산타. 불행한 당신에게 행복을 배달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어디선가 어린아이들이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나누자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나와 그녀 사이에서는 뻘쭘한 침묵이 3초정도 쓰나미처럼 몰아쳐 갔다.
 그녀의 표정이 한순간 멍해졌다가, 살짝 화난듯한 표정이 되더니, 곧이어 눈꼬리가 내려가며 피곤한 표정이 된다. 그녀가 기운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하아. 누구시고 뭐하시는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제가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거든요? 그냥 가주셨으면 좋겠네요.”
 아마 내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약간 걸렸다가, 이해하고 나서 자기를 놀리거나 하여튼 뭔가 쓸데없는 작업을 건다고 생각했다가, 자기 사정을 모르는 나한테 무조건 화를 내면 안된다고 생각했겠지. 굉장히 착하고 사려깊은 성격이다. 그리고 나는 슬프게도 그녀의 배려를 깡그리 무시해야 한다.
 “처음에는 다들 비슷한 반응이죠. 그런데 생각하시는 것과는 조금 다른....”
 “아, 좀 가라구요!”
 아.
 시끄러운 소리에 사람들이 잠시 이쪽을 돌아보더니 다시 자기들 갈 길을 걸어간다.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전구들 사이로. 그리고 나를 쏘아보는 그녀의 눈에도 그중 가장 반짝거리는 것이 맺혀 있다. 글썽거리고 있다. 그녀가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떨군다.
 “제발...이제 한계인것 같아...가만히 좀...제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라고 혼자서 웅얼거리는 것 같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다. 나는 그녀가 지금까지 억눌러오던 감정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버린 걸까. 물이 가득한 컵처럼. 톡 건드리기만 해도 물이 넘쳐버리는. 흘러서 자신을 상처입히는.
 한번 흘려버린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컵에 담긴 슬픔을 전부 마셔줄 수는 있다. 아무리 건드려도 넘치지 않도록. 자신을 상처입히지 않도록. 그리고 그것이 산타가 해야 하는 일이다.
 잠깐 자리를 비웠지만 그녀는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오랫동안 억눌러오던 것이 터지면, 그 자리를 메꾸는데도 오랜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녀는 감정의 홍수에 휩쓸려서 허우적대기에도 힘에 겨운 상태였고. 그래서 내가 옆자리에 앉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하나를 입에 물고 한쪽 팔로 그녀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아?”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어리둥절함이 잔뜩 깃들어 있다. 나는 반대쪽 손에 든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내밀며 그녀에게 말했다.
 “으으읍.”
 입에 내가 먹을 컵을 물고 있는 관계로 마셔요, 라는 발음을 원활하게 내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내가 내민 컵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으으읍. 으응. 으웁으웁.”
 마셔요. 지금. 따뜻하니까.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컵을 받는다. 나는 입에 있던 컵을 왼손으로 움켜쥐며 말한다.
 “헤, 받았당.”
 그녀가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풋 하고 웃는다. 그녀를 알고 처음 보는 웃는 얼굴이다.
 “이상한 사람이네요.”
 내 생각도 그렇다. 나도 그녀를 바라보며 에헤헤, 하고 실없이 웃어준다.

 3.
 그녀의 이름은 이혜린. 나이는 23세. 지금 병원에 있는 사람은 그녀와 세 살 터울인 남동생이라고 한다. 그리고 병원을 찾아온 가족은 그녀 혼자. 고아라거나, 사고로 부모님을 잃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남동생은 고작 22시간 전에 쓰러졌고, 그녀는 그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소식을 전했다고 해서 그들이 찾아올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는 무능력한 알콜중독자였고, 어머니는 그런 남편에게 질려서 그녀가 열두살 때 집을 나가버렸으니까.
 “별로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조숙했으니까. 언젠가는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동생은 불안해했어요. 엄마는 언제와? 어디갔어? 그렇게 계속 물어봤어요.”
 그녀는 조숙했다. 조숙했기에, 어머니가 집을 나간 순간 그녀는 아홉살짜리 동생과 마흔을 넘게 먹은 아버지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생활무능력자 아버지에게 나오는 쥐똥만한 연금과, 동생과 함께 틈틈이 버는 눈물겨운 용돈으로 그녀는 세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학비는 어떻게 하고? 중학교까진 모르겠지만, 고등학교때부턴 그것도 꽤나 나갔을 텐데.”
 “장학금이요. 대학교까지 쭈욱.”
 “대단하네요.”
 “당연하죠.”
 당연하죠, 라니. 자의식 과잉 환자냐. 내가 딴지를 걸었어도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물론 내 마음속으로 건 딴지라서 그녀가 들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그다지 밝지만은 않았던 성장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굉장히 자신과 남에게 당당한 성격이다. 어린 나이에 다른 애들보다 못 입고 못 먹는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였을텐데. 어쨌든 현재 그녀와 동생은 현재 둘다 어엿한 성인이며, 아버지와는 서류상으로만 이어진 관계이다. 명절때나 가끔 가서 얼굴만 비추는 정도? 어쨌든 그녀는 앞으로 밝은 미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세시간 전까지는.
 “동생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더니 계단에서 굴렀다고. 현재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다고.”
 그녀는 한달음에 동생에게 달려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동생은 의식은 없었지만 그다지 심한 부상은 없었다. 안심하고 있는 그녀 앞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말했다.
 “보호자 분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의사는 근엄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평소에 아무 말도 하지 않던가요? 배가 아프다거나, 밥맛이 없고 소화가 안된다거나.”
 “무슨 말씀이시죠?”
 의사는 근엄한 얼굴을 살짝 끄덕이곤, 불안에 휩싸인 그녀에게 말했다.
 “환자에게서 위암 증세가 발견되었습니다, 라고. 그 순간 숨이 탁 막히는 것 같았죠.”
 “음. 잘은 모르지만 요즘은 수술로 어느정도 고칠 수 있지 않나요?”
 “네, 맞아요. 어떻게 보면 적절한 시기에 쓰러진거죠. 지금 수술하면 거의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럼 수술하면 되죠. 뭐가 문제에요? 돈?”
 그녀가 피식 웃더니 커피잔을 내려다본다.
 “본인 의사가 문제죠.”
 “아, 그런....뭐라구요?”
 그녀가 종이컵을 까닥거린다. 커피가 출렁이면서 벽 안쪽에 연한 갈색 자국을 남긴다.
 “재린이가 거부해요. 수술을.”
 그녀도 나처럼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생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수술받지 않겠어. 왜? 이어지는 동생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난, 이제 지쳤어. 할말을 잃은 그녀를 생기잃은 눈으로 쳐다보며 동생, 그녀와 똑같은 돌림자를 쓰는 재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동생은 계속 말했다. 지쳤어. 반찬을 아니라 밥을 걱정하고 사는 삶.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하고. 이제 간신히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수술하고, 일어나서, 다시 그때처럼 돌아가자고? 싫어. 충격으로 온몸이 굳은 그녀에게 동생이 결정타를 날렸다. 난 죽을거야. 수면제를 왕창 먹으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누나는 이제 누나의 삶을 살아.
 “대판 싸웠어요. 나중에는 이런 말도 하는거 있죠. 내 목숨이라 내가 죽는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래, 확 혀깨물고 죽던지 말던지! 그리고 뛰쳐나오고, 지금 여기.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가장 추하고 비극적인 사실은 뭔지 알아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미 식어버린 커피잔을 감싸쥔 두손으로 그녀가 말한다.
 “싸웠지만, 대판 싸웠지만 사실은 내가 재린이 말에 흔들렸다는 거에요. 정말, 인간도 아니야....”
 길을 잃은 별 하나가 뺨을 타고 내려와 커피 속으로 섞인다. 커피잔 속에서 파동이 일어나고, 그 파동처럼 그녀의 몸도 다시 떨기 시작한다.
 “왜,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그녀는 다시 고개를 떨어트렸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울도록 내버려둔다. 사람들이 모두가 행복을 노래하는 이때, 그녀는 왜 이렇게 슬픔에 젖어있어야 하는 걸까. 사방에서 찬란히 빛나는 전구들이 문득 너무나 허황되게 느껴진다. 우리는 이런 것들 때문에 정말 빛나는 것들을 놓치고 있는데.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괜찮으니까, 은근슬쩍 어깨에 팔 올린거 치울래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고개를 들면서 팔을 밀어낸다. 눈은 더 충혈된다가 살짝 붓기까지 했지만, 얼굴은 방금 전보다 훨씬 개운해 보인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뭐, 어떻게든 해 봐야죠.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실 어리광이니까. 지금쯤 재린이도 혼자서 울고있을지도?”
 그녀가 에헤헤, 하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병원을 향해 걸어가던 그녀가 갑자기 뭔가 멈칫하더니 뒤를 돌아본다.
 “끝까지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이상한 산타씨. 그리고 만약에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코코아로 해줄래요? 커피는 별로 안좋아하니까.”
 그녀가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다시 저쪽으로 총총히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스스로도 민망했던지 이 추운 날씨에 손을 얼굴에 대고 파닥거리고 있다. 나는 피식피식 웃으며 종이컵을 버리고 그녀를 따라 걷는다. 내가 너무 여유를 부린건지, 아니면 그녀가 서둘러서 걸은건지. 그녀가 다시 뒤를 돌아봤을땐 상당히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그녀는 내가 다가갈 때까지 기다려 주다가, 가까이 온 내게 황당한 얼굴로 말을 꺼낸다.
 “설마 지금, 다시 코코아로 작업걸려고 따라오는 건 아니죠?”
 그래, 확정이다. 그녀는 자의식 과잉이다. 그녀가 아름다운 것과는 별개로 이 상황이 너무나 웃겨서, 참으려고 했지만 웃음이 한모금 입 밖으로 새어나오고 만다.
 “푸흐흡!”
 “이익! 웃지 말아요! 그럼 왜 따라오는건데!”
 “푸하으하으헤헤헤!”
 그녀의 토라진 듯한 목소리에 간신히 참고 있던 웃음이 폭팔하고 말았다. 나는 옆에 있는 가로등을 잡고 자지러지게 웃고,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나를 째려본다. 간신히, 정말 엄청난 노력을 들어서 최대한 진지해진 다음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를 향해 입을 연다.
 “하아, 하아. 말했잖아요?”
 얼굴로 쏟아지는 가로등 불빛을 느끼며, 나는 그녀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한다.
 “저는 산타. 불행한 당신을 위해 오늘도 행복을 배달합니다.”
 
4.
 “자, 정리해볼게요. 믿기지는 않지만 일단 당신이 산타고.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속임수가 있었을 것 같지만 어쨌든 호주머니에서 뭐든지 꺼낼 수 있고. 그런데 뭘 꺼낼지는 직접 정할 수 없어서, 계속 초콜렛만 나온다.”
 혜린이 어이없음과 한심함이 6:4정도의 비율로 섞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왠지 굉장히 억울한 기분이 들게 하는 시선이지만 아쉽게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왜냐면 내가 한 말들이 나를 특이한 종류의 망상증 환자로 오인받게 하기 충분했으니까. 콧방퀴를 뀌어보고, 어깨를 으쓱이고, 괜히 벽에 걸린 그림에 감탄해봐도 나를 향한 께림칙한 시선은 변하지 않는다. 에휴.
 분명히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왜 나한테 온 거에요? 선물받을 나이는 벌써 지난 줄 알았는데.”
 왜 자신을 선택했냐는 혜린의 질문을 받고, 나는 산타의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산타력의 존재, 산타력이 산타에게 끼치는 영향, 불행한 사람, 기타 등등 여러가지. 보통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듣는, 혹은 들어주지도 않는 이야기를(나는 내가 산타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왜냐면 아무도 믿지 않으니까)그녀는 꽤나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신나게 옛날에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았다. 가출한 꼬맹이랑 하루종일 놀아준 일이라던가, 고등학교때 자살하려던 친구를 살리는데 성공한 일이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나에 대한 경계심을 많이 누그려뜨렸다.
 “그쪽이 혜린씨라고 부르는 거 굉장히 어색하네요.”
 “뭐라고 부를까요?”
 “음...스물 둘이라고 했죠? 나보다 어리니까 누나라고 편하게 부르세요.”
 “....누나라고 편하게 부르라는 말을 한 사람치곤 굉장히 불편한 어조네요.”
 “자신이 산타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사람이랑 별로 가까워지고 싶지는 않네요. 그쪽에서는 저랑 가까워지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구요.”
 “네, 누나.”
 이런 식이다. 어쨌든 내가 들려준 이야기는 재미가 있었는지 어쨋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굉장히 스펙타클한 요소로 가득 찬 이야기들이었고, 그래서 혜린은 한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해준 이야기를 들은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법한 의문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공룡 가면이 어디서 나와서 꼬마랑 놀아준 건데요?”
 당연한 이야기다. 나는 그때 고등학생이었고, 보통 고등학생은 가방 속에 티라노 사우르스 가면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으니까. 나는 그녀에게 산타의 마술, 주머니 비슷한 것에 손을 넣어서 무었이든 꺼낼 수 있다는 말을 해줬고 그녀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에이, 이건 좀 아니다. 그럼 지금 한번 해봐요.”
 당연한 반응이다. 나는 웃으면서 코트 왼쪽 호주머니를 가리켰다.
 “그쪽 호주머니에 뭐 들었어요?”
 “아뇨.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오른손을 들어 마술쇼에서 많이 본 동작으로 손바닥과 손등을 번갈아 그녀에게 보여줬다. 그녀는 반쯤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나머지 반은 가소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지 마세요.”
 나는 오른손을 그대로 혜린의 코트 호주머니로 집어넣었다. 놀라지 않도록, 부드럽게. 그리고 다시 나온 내 손에는 포장지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그려진 허쉬쵸콜렛 한알이 들려있었다. 
 “우와!”
 가소로움이 경탄으로 바뀌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혜린의 얼굴을 덮은 불행이 전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맛에 마술사들이 마술을 하는 거겠지. 그녀는 한번 더 해보라고 했고,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초콜렛을 뽑았다. 반응이 처음보다 시들한 건 두 번째라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아니, 음, 초콜렛만 뽑지 말고. 뭐든지 뽑을 수 있다면서요. 기왕이면 예쁜 보석같은 걸 뽑아주면 좋겠는데.”
 경탄이 실망으로 바뀌는데도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혜린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나를 신나게 비꼬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묵묵히 들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걸로 저를 어떻게 도와줄 건데요? 맛있는 초콜렛을 잔뜩 먹이면 행복해진 재린이가 삶의 희망을 찾게 되나? 의사선생님이 그걸 보고 감동해서 무료로 수술을 해주나?”
 아마 믿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변명은 해봐야겠지.
 “아마 재린씨를 만나면 뭔가 다른게 나올거에요. 말했지만 제 맘대로 뽑는게 아니라...”
 “산타력의 의지로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일이 일어난다. 아아, 네네네. 그렇게 말할 것 같았어요. 그럼 지금 당장 실험해 볼 수 있겠네요.”
 혜린이 지쳤다는 목소리로 비아냥거리고는 먼저 응급실로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기 전에 잠깐 뒤를 돌아본다. 조명은 밝지만 왠지 착 가라앉아 있는 병원 로비, 피곤에 절어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를 흘깃 쳐다보고 다시 고개를 떨군다. 모두의 얼굴에 떠오른 제각각의 불행. 하지만 그 누구도 지금 산타의 본능을 혜린처럼 자극하지는 않는다. 그녀를 따라 들어가면서, 그녀를 본 순간 맨 처음 떠올려야 했을 의문을 뒤늦게나마 떠올리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의 불행은 무었일까. 무었이길래 산타의 본능을 이렇게도 자극하는 것일까.
 응급실 안에 들어가자 혜린이 약간 앳되보이는 남자 옆에 앉아있다. 아마 동생이겠지. 세 살 차이라면 지금 1학년이겠지만 누나처럼 동생도 역시 나이보다 더 어려보이는 얼굴이다. 그 얼굴이 창백해 보이는 건 진짜로 아프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암환자를 바라보는 안경을 썼기 때문일까.
 그녀는 나를 신경쓰지 않고 계속 동생과 말하고 있다. 어쩌면 진짜로 내가 들어온 것을 모르고 있는지도. 조용히 말하고 있다고 해서 싸우고 있지 않다고 말할수는 없겠지만, 왠지 분위기를 보면 동생이 갑자기 주사기를 목에 꽂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긴, 정말 죽으려고 결심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감정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억누르기 마련이다. 죽고자 하는 감정은 순간이다. 그것이 내가 고등학교때 얻은 결론이다.
 갑자기 동생이 울음을 터트리면서 혜린의 품에 안긴다. 역시 그녀의 생각대로 어리광이었나 보다. 그나저나 동생이란 친구도 나이깨나 먹었을 텐데 쪽팔리지도 않나. 침대 쪽으로 걸어가자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고 올려다본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한다.
 “해피엔딩인가 보네요.”
 “해피엔딩. 네, 그래요. 해피엔딩이죠.”
 혜린이 씁쓸하게 웃는다. 그래, 동생이 삶의 의지를 다시 찾았으니까 웃어야겠지. 그녀의 이성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부분,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조금 더 원초적인 부분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면 얼굴은 웃지만 눈동자는 죽어 있고, 무었보다 그녀를 감싼 짙은 불행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으니까.
 “누구시죠?”
 어느새 동생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올려다보며 묻는다. 이런. 나는 난처한 듯이 웃으며 혜린을 바라보고, 혜린은 황급히 말을 꺼낸다.
 “음? 아, 그러니까 이 사람은....”
 뭔가 빨리 그럴듯한 걸 꺼내지 않으면 다시는 뜨는 해를 보지 못할줄 알아요! 라고 외치는 듯한 시선을 받으며, 나는 여유롭게 호주머니에서 초콜렛을 꺼내 입안에 넣는다. 내 혀는 초콜렛에 슬슬 질려가고, 말을 마무리하는 그녀의 표정도 이젠 질렸다는 표정이다.
 “....그냥 이상한 사람이야. 스토커야. 세상에 넘쳐나는 잉여로움이야.”
 “에?”
 “잠깐만, 잠깐만 나갔다 올게?”
 응급실 밖으로 나온 혜린이 마치 만화에나 나올것 같은 반달눈으로 나를 쏘아본다.
 “어째서?”
 왜 재린이를 만났는데도 만병통치약이라던지 불로초라던지 그런게 안나오고 이제 슬슬 느끼해져서 먹기싫은 초콜렛 따위가 나오는 거죠? 라는 긴 문장이 어째서? 라는 한마디로 줄어들었다. 이것이 한글의 신비인가.
 “순수하게 제 생각이지만, 재린씨는 수술을 받기로 했죠. 그 순간 이미 뭔가 일어날 가능성은 끝난거죠. 돈이야 어떻게든 갚을 수 있을테니.”
 "아하, 그래서 초능력 같은 것은 개입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해결할 수 있으니까?"
 내 잘못은 아니다. 그녀도 알고 있겠지만 그걸 말할 순 없다. 내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그대로 동생이 자살하게 내버려 뒀을 거냐는 말도 할 수 없다. 왜냐면 그녀가 화를 내는 것은, 나를 믿었기 때문이니까. 어느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내가 산타라고 믿고 있는, 그래서 뭐든 해줄거라고 믿는 그녀의 믿음을 짓밟을수는 없다. 다시 입을 열었을때, 내 입에서는 가장 싫어하는 말이 흘러나온다.
 "미안해요."
 그녀는 피곤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체념한 듯이 한숨을 내쉰다.
 "네, 맞아요. 사실 그쪽 잘못은 아니죠. 미안해요. 괜히 짜증부려서."
 처음 만날때부터 느낀 거지만, 그녀는 굉장히 사려깊은 성격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타인의 감정과 사정을 배려할 줄 아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나는 짜증나면 되는대로 말을 해버리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이번에도 되는대로 내뱉어버리고 만다.
 "원래 성격이 그래요?"
 "네?"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그녀. 그제서야 내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깨닫지만 이미 물릴 수는 없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그러니까 약간 정도는 나한테 짜증내도 되는데."
 왜 그렇게 자신에겐 엄격하면서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죠? 되는대로 내뱉는 나지만, 이상하게도 뒷부분은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곧이어 쿡쿡거리며 웃는다.
 "뭐야. 지금 화풀이 받아준다고 말하는 건가요? 넓은 가슴으로 다 받아줄테니 나한테 모든걸 털어놔, 뭐 그런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문득 한시간 전 밖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과 입장은 반대지만. 지금 내 얼굴도 빨개져 있을까?
 "헤헤, 당신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지도?"
 "...시끄러워요."
 혜린은 계속 웃다가, 한층 편안해진 얼굴로 의자에 편하게 기댄다.
 "음, 글쎄. 기분이 되게 이상하네요. 사실 나한테 이런말 한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사실 친구하나 없는 왕따인생이었다던가."
 "당신같은줄 알아요? 크리스마스인데 여자친구도 없죠?"
 그냥 조용히 있는게 좋을것 같다. 그녀가 의자 뒤쪽으로 팔을 걸친다.
 "뭐랄까, 딱 보면 첫째인지 막내인지 구별가는 사람들 있잖아요? 전 그중 첫째 쪽이었어요. 내가 생각해도, 아무래도 어른이었으니까. 다른 애들보다는. 그래서 주로 들어주는 쪽이었죠. 재린이도 어렸을 때부터 믿을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었고."
 무슨 말인지 대략 알 것 같다. 흔히들 말하는 장남 증후군. 뭐든지 잘해야 하고, 어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고. 비슷하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그녀 스스로 자기에게 부과한 것일까. 내가 누나니까 뭐든지 잘해야해. 재린이를 돌봐줘야해. 난 어른이야. 어리광피우면 안되.
 점점 소녀는 죽어가고, 그 자리에 삶에 지친 어른이 자라난다.
 "사실 말할 사람도 없었죠. 말해봤자 걔들은 공감하기 힘드니까. 그렇다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선생님한테 갑자기 찾아가서 사는게 힘들어요, 이렇게 말하는것도 웃기고. 그래서 그냥 우울하고 그런 일이 있어도 조용히 참았죠. 그러다 보니까 어느날, 누군가한테 말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화풀이하는 법을 잊어버렸다고 해야하나?"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의 결정. 건드리면 넘칠 것 같은 위태한 제방.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독. 자신도 모르게 쌓이고 쌓여서, 본능이 산타에게 보내는 SOS.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느정도 확신이 든다. 그녀가 나를 부른 이유. 산타력이 그녀를 정한 이유. 가난이나 난치병같은 그런 하찮은, 아, 물론 그런 이유들이 절대로 하찮은 것은 아니지만, 어쨋든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몇가지 방법이 떠오르지만 전부다 굉장히 비현실적인 방법들이다. 그리고 무었보다, 나와 관련된 문제는 아니지만 그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동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걸 해결하기 전에는,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녀를 구해줄 수 없을 것 같은데. 잠시 심도있게 고민에 빠져보려고 할 때, 그녀가 말을 마무리한다.
 "아, 역시 어색하다. 에헤헤. 나한테는 이런 이야기 안어울리는것 같아요."
 "나한테 이런이야기 하는거 보니까 그쪽도 남자친구 없죠?"
 "음? 뭐라구요? 잘 못들었는데."
 "흐갸아아아아악!"
 아버지! 그녀가 앞을 보는 자세 그대로, 나는 보지도 않고 손만 움직여서 나를 꼬집는다. 팔 안쪽에서 지옥의 고통이 느껴진다. 분명 동생도 이런식으로 괴롭히면서 늘어난 전투력이겠지! 잠깐 얼굴만 본것이 전부고 말도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재린이라는 친구에게 갑자기 남자의 동질감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이곳은 병원이고 지금은 한밤중입니다. 좀 조용히 하세요."
 어디선가 들려온 근엄한 목소리가 나를 구해준다. 뒤를 돌아보자 풍채가 당당한 의사선생님이 서있다. 의사라는 직업에 오래 종사했기 때문일까. 말과 행동에서 은연중에 권위가 풍겨져 나온다. 
 "아, 죄송합니다. 선생님."
 "알았으니까 조용히 하세요."
 "네."
 의사선생님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지나가다가 혜린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혜린은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뭐지? 아는 사람인가?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의사선생님이 먼저 입을 연다.
 "그, 오늘 갑자기 위암 증세로 실려온 환자 보호자 맞지?" 
 "네."
 "환자랑은 관계가 어떻게 되나? 모친은 아니신것 같고."
 "아, 누나에요."
 "그랬구나.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나이에 굉장히 고생이 많다."
 "아뇨, 아뇨.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다. 말하는 걸로 봐서는 동생을 진찰해 준 의사정도 되겠지. 혜린이 말다툼한 내용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들은 것 같다. 하긴, 굉장히 큰 소리로 싸웠을 테니까. 그것도 환자들이 모인 응급실에서.
 "환자만 준비되면 바로 수술하도록 하자.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생각같아서는 지금 당장 내 손으로 수술하고 싶은데, 환자가 준비가 안되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네. 정말 감사합니다."
 혜린이 밝게 웃으며 인사하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갸웃한다.
 "어, 그런데 퇴근 안하세요? 그리고 보통 수술이 그렇게 일찍 끝나나요?"
 의사선생님이 반쯤은 곤란한 듯이, 반쯤은 즐거운 듯이 웃는다.
 "허허, 참. 질문이 두가지군. 우선 첫번째는, 사실 오늘 난 당직이야. 이런 날 당직이라니, 얄궂기도 하지."
 네, 선생님. 그런게 산타력의 섭리죠. 기다리는 버스는 안오고, 당직은 주말과 명절에만 걸리고, 분명히 뭔가 결정적인 등장인물이신것 같은데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거라곤 빌어먹을 느끼한 초콜렛밖에 없고. 사실 이제와서 뭔가 나올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습관적으로 입안에 초콜렛을 집어넣지만 그다지 넘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의사선생님이 웃으며 말을 계속한다.
 "그리고 두번째는, 특이하게도 환자가 초기에 증세가 나타난것이 굉장히 운이 좋았지. 지금 상태라면, 개복도 필요없고 위 절제도 필요없고 그냥 내시경만으로도 수술이 가능하다. 대략 한두시간 정도? 사실 대부분의 수술이 그정도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음?
 뭔가 지금껏 나와 혜린이 굉장히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착각을 했다는 불안한 느낌이 엄습해 온다.
 "그리고 얼핏 들으니 꽤나 불우한 삶을 살아온 것 같은데, 사실 비용 같은 경우에도 얼마 들지 않아.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써먹는 암때문에 온 가족이 거덜난다는 소재는 암이 일정 이상 진행된 경우에 시행하는 항암치료 때문이고, 수술 자체는 그다지 비싸지 않은 돈으로도 충분하다."
 혜린은 벙찐 얼굴이라는 표현의 훌륭한 실제 보기로 쓰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한 표정으로 의사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다. 아마 내 얼굴도 비슷한 상태겠지. 그나마 문제의 당사자인 혜린이 정신을 빨리 차리고 중요한 문제를 물어본다.
 "어..얼마정도 하는데요?"
 "수술, 입원, 전부 해서 아무리 많이 잡아봤자 500정도? 대학생인것 같은데, 그 정도는 한학기 쉬면 충분히 만들수 있는 돈 아닌가? 게다가 그 돈이 지금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야. 국가에서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응급의료비 대불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럼 남자친구와 즐거운 시간 보내게. 의사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휘적휘적 다시 응급실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혜린은 남자친구라는 말에 반박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서있다. 나? 나는 지금 무슨 말이나 행동을 했다간 입 속에서 반쯤 녹은 초콜렛이 그대로 뿜어져 나올것 같은 느낌이다.
 뭔가 많은 일이 있었는데, 재린은 자살하려고 하고 혜린은 동생과 부딪치고 세상과 운명을 원망하고 자신을 혐오하고 나는 그런 혜린에게 흔들리고 쪼이고 꼬집혔는데.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삽질이었다니. 특수효과와 액션과 멜로와 판타지가 가득 들어찬 영화의 결말이 '사실은 전부 꿈이었습니다!'라는 느낌이다. 설정과 복선과 감정의 충돌은 전부 왜 등장했던 거죠? 영화나 드라마라면 나름 그런것도 반전이라고 인정해 줄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그런 반전이 일어나면 배우들이 허탈해질 뿐이다.
 나는 혜린을 바라본다. 그 얼굴은 환희와 안도와 허탈함과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하긴 어쨋든, 결과는 나쁘지 않으니까. 눈이 마주치고, 부지불식간에 말이 흘러나온다.
 "해피엔딩....인가요?"
 혜린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한다.
 "그런것....같죠?"
 그래. 현실이 영화와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통용된다는 점이다. 뭐가 문제랴. 재린은 무난히 수술하고 나을 것이고, 혜린은 약간 고생은 하겠지만 암울한 전망처럼 가난에 쪼달리며 살게 되지 않을거고, 나는 혜린의 불행을 없애줄 수 있을텐데.
 "하하하...."
 웃음이 나온다. 그래, 웃어야지. 즐거우니까. 해피엔딩이니까. 그런 나를 보며 혜린도 웃기 시작한다.
 "하하하..."
 "아하하하하...."
 텔레비전만이 혼자서 철지난 액션 영화를 틀어대는 병원 로비에 나와 혜린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이번에는 우리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 누구도.
 
5. 
 어느덧 밖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이 사라져 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날짜가 바뀌고 새벽 1시. 이곳저곳에서 울리던 캐롤들도 조용해지고, 넓은 광장은 고요함에 뒤덮였다. 따뜻한 병원에 있다가 걸어나와서일까, 밤바람이 방금 전처럼 쌀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구름에 뒤덮인 하늘에서는 눈송이가 하나 둘씩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결국 산타는 하나도 도움이 안됬네요."
 "뭐, 꼭 그렇게 말해야겠다면 그렇긴 하죠."
 혜린이 빙긋 웃는다. 보라색 코트 뒤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반짝 빛난다.
 "그래도, 고마워요."
 그녀는 스스로 말하고도 어색한지 고개를 갸웃한다. 얼굴에 당황스러운 미소가 빛나고 있다.
 "어, 음. 정확히 뭐가 고마운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쨋든, 고마운 것 같으니까 고마운 거겠죠?"
 그녀는 모른다. 왜냐면 그녀의 문제는 원래 스스로는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만약에 느낀다고 해도,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그런 종류의 문제였으니까. 특히 그녀같은 사람이라면.
 그녀의 불행, 그녀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의 본능은 알고 있었던 그녀의 불행은 외로움이었다.
 외로움, 고독, 어깨에 놓인 짐. 뭐라고 부르든 그 본질은 같다. 어깨에 자신의 몫보다 너무 많은 짐을 졌지만 정작 피곤할때 어깨를 기댈 사람이 없다는것. 산타력은 그것이 그녀의 다른 불행보다도 가장 큰 불행이라고 판단했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불행.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녀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된다. 감정이라는 컵에 담긴 외로움을 같이 마셔줄 사람. 가끔씩 이유없이 눈물이 나올것 같을때 기댈 수 있는 마음의 기둥. 하지만 어떻게? 내 지인들은 대부분 따뜻한 마음과 솟아오르는 애정과는 휴전선보다 높은 벽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녀는 누군가의 수양딸로 들어가기에는 살짝 나이를 많이 먹었고, 또한 이제와서 그런 사람들에게 그녀가 진정으로 마음을 열 수 있을것 같지도 않다.
 "갈거에요? 버스가 아직 있으려나? 고맙긴 한데 택시비는 못줘요?"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자, 생각해보자. 나는 급하게 품위있는 어르신들을 조달할 수 없을뿐더러, 과연 그것이 그녀에게 도움이 될지 안될지도 모른다. 무었보다 그녀의 불행을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나는 오늘 집에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대답은 하나밖에 없잖은가?
 내가 그녀의 나무가 된다.
 물론 나라는 사람은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나는 혜린보다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 쪽에 가깝다. 짜증나면 되는대로 내뱉어버리고, 남보다는 일단 자기를 생각하는. 하지만 세상에는 때때로 세상의 모든 권위를 뛰어넘는 직업이 있고, 나는 그 직업 중의 하나에 종사하고 있다.
 나는 이제 내가 뭘 해야할지 알고 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자, 보기만 하고 한번도 만져보지도 못한 물건의 감촉이 느껴진다. 주변을 다시 한번 확인하지만 역시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새삼 산타력의 섭리라는 것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이게 뭐같아요?"
 "음, 글쎄요? 핸드폰고리?"
 "땡! 틀렸어요."
 그녀는 틀렸다. 내 손에 들려 있는것은 작은 사슴 모형이다. 물론 그녀가 말한 것은 생김새가 아니라 용도에 관한 것이겠지만, 그것도 틀렸다. 왜냐면 이건 리모컨이니까. 사슴 코를 살짝 눌러주자, 빨갛게 빛나기 시작한다.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는 그녀를 보니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어디선가 갑자기 루돌프 네마리가 끄는 오픈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아...?"
 반짝반짝 빛나는 초대형 트리. 그 앞에 떨어진 루돌프가 끄는 하늘을 나는 썰매. 굳이 내가 빨간 옷을 입고 수염을 붙일 이유는 없잖은가? 
 "진짜....산타였어?"
 멋있게 썰매에 올라타려고 했지만, 사실 나도 처음 타보는 거라서 서투른 동작이다. 하지만 잘 모르는 혜린에겐 멋있게 보이겠지. 썰매에 올라탄 다음, 멍하니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혜린에게 씩 웃으며 말한다.
 "난 이제 갈거에요."
 눈송이가 보라색 코트 위로 떨어진다. 살짝 벌린 혜린의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너무나도 청초해 보인다.
 "하나만 기억해줘요. 당신이 힘들고 삶에 지칠때면, 언제나 당신을 위한 산타가 찾아간다는걸."
 "자, 잠깐만!"
 혜린이 가방에서 핸드폰을 급하게 꺼내더니 내게 내민다. 얼굴이 빨개져 있는건 추위 때문일까.
 "찾아오려면 일단 내가 불러야 하니까...그러니까."
 내가 멍하니 보고 있자, 그녀가 핸드폰을 던지듯이 썰매 안으로 밀어넣는다.
 "뭐해요! 빨리! 번호!"
 "아? 으아아!"
 썰매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당황한 손놀림으로 짧은 시간 안에 내 번호를 찍어서 다시 혜린에게 건네는 건 무리일 것 같다. 급한대로 내 핸드폰을 빼서 그녀에게 내민다.
 "찾으러 갈테니까!"
 혜린이 뭐라고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그 순간 썰매가 날아올라서 그녀의 말은 묻히고 만다. 이렇게 빠를줄은 몰랐는데! 커다란 트리도, 분수도, 그녀도 모두 순식간에 점으로 변해버린다. 앞쪽을 보자 맨 앞에 있는 루돌프가 건방진 표정으로 나를 보고있다.
 "어...우리집으로. 이렇게 말해도 알지?"
 루돌프가 마치 사람같은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앞을 바라본다. 썰매가 방향을 틀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교통체증도 없고 사고날일도 없는 최첨단 운송수단이다. 갑자기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고 얼굴이 확 빨개진다.
 모든 것이 점으로 보이는 높이, 하지만 전파는 떨어지는 눈송이를 타고 전달될 수 있을까?
 '메리 크리스마스'
 마지막으로 내 번호로 문자가 전송되었다는 화면을 보고, 나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Writer

수려한꽃

수려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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