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Peace Love & Icecream - J. Morrison 作 /2차 심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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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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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말도 안 되는 대회가 끝나고 며칠간은 평온한, 달리 말하자면 맥이 풀려 아무런 계획도 의지도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사실 인제야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고등학교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세계의 위기니 어둠의 세력이니 하는 도통 알 수 없는 것들과 무턱대고 얽히게 된 녀석이 얼마나, 아니 나 말고 존재라도 하겠는가.

우리 밴드는 아무래도 대회를 목표로 결성된 프로젝트 밴드적 성격이 강했고 거기다 고3에 초딩까지 끼어 있으니 대회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사라지자 구심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일이 없으니 출신성분이 제각기 다른 멤버들이 모일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모여서 합주라도 하려 해도 마땅한 연습실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여러모로 밴드는 존재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밴드를 하는 것이 내 소원이었다. 그것이 맹물 같았던 중학교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그 소원은 이뤄진 것과 다름없었고 그 동기 역시 흐지부지되었다. 맥이 빠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대로 나의 학창시절이 은근슬쩍 말라가는가 하고 탄식하던 차, 멜로디가 찾아왔다.

우리가 학교 앞 유일한 문방구라 해도 생각만큼 벌이가 있는 게 아니야. 군것질거리는 학교 안 매점이 다 잡고 있고 문제집 같은 건 여기로 들어오는 길목에 큰 서점이 있으니 거기로 빠지고, 학용품은 몇 달 전 생긴 펜시점으로 다 나가고. 문방구가 학교 앞 장사라는 말도 다아 헛말이지. 이렇게 학교 근처에 상가가 많으면.”

점심시간, 어쩐지 급식이 부실한 듯하기에 군것질거리라도 찾으러 교문 밖 문구점을 찾았다. 한가로운 가게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자니 주인아저씨가 날 붙잡고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것도 그래서 들여놓은 거야.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적어도 이런 아이스크림이면 매점에서 파는 유통기한도 없는 싸구려보단 나을 거 아냐. 마침 반응도 괜찮은데 저런 게 자꾸 오니까

아저씨는 창밖을 가리켰다. 조금 전부터, 아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이미 그것이 자연스럽게 학교 진입로에 진 치고 있는지 오래다. 피리 소리인지 실로폰 소리인지 애매한 러시아 민속음악 풍의 단음계가 골목 사이로 은은히 흘러 다니고 있었다. 아저씨의 불만은 그것이었다. 모 업체와 제휴하여 아이스크림을 개시한 것이 얼마 전이다. 문방구를 학생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하려던 것이었다. 건물 한켠을 뜯어 창구도 만들고 간판도 달고 테이블도 설치해서 새 학기 새로운 분위기로 시작한 것이 바로 얼마 전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저 차량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품목도 하필이면 아이스크림. 문방구는 교문에서 진입로를 따라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 아이스크림 차는 거의 교문 앞에 붙어 학생들을 먼저 채 간다는 것이다.

특히나 저 주인 놈이 맘에 안 들어. 젊은 놈이 헤실 거리면서 팔아대니 여학생들이 거기 또 끔뻑 넘어가 버리는 거야. 따진 적도 있었지. 그러더니 그놈이 뭐라는지 알아? 참나, 상도가 있다고 상도가. 그런데 그놈은 경쟁이 어떻고 승자가 어떻고 뻔뻔스럽게도 지껄여대는 거 있지. ! 구청에 신고해 버릴까 보다.”

확 신고해 버리시지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괜히 귀찮아지기만 하겠지.

금융위기니 뭐니 하는 파란만장한 인생사며 우리 학교를 나오고 지금은 ROTC로 임관한 아들내미 하며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를 뻔한 것을 간신히 저지하고서 나는 문구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스윽 보기에도 아저씨의 푸념은 일리는 있어 보인다. 문구점 안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지만 아이스크림 차 앞에는 여학생 서넛이 몰려 있었다. 여학생이라면,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자 한다면 이왕이면 가까운데다 젊은 남자가 있는 쪽으로 가겠지. 난 그쪽 아이스크림은 먹어본 적이 없다. 단순히 그 실실거리는 주인 남자가 꼴 보기 싫기 때문이었다. 그 점에서도 문구점 아저씨에 동의한다. 손으로 빚은 듯한 매끄러운 피부와 붉은빛이 생생한 입술과 마치 중동인처럼 자글자글하게 파인 눈꺼풀하며 그러낸 듯 치켜 올라간 입가, 어깨까지 차분하게 내려오는 단발머리, 그리고 하얗고 가지런한 이. 한 마디로 남자로서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페이스이다.

아이스크림 차는 음악을 타고 온다. 점심시간이나 하교시간이면 삐용삐용하는 요상한 음악소리가 찾아오고 아이스크림 가게가 열린다. 사실 그 차가 손님을 뺏어봤자 얼마나 되겠냐는 생각도 든다. 아이스크림 손님은 죄다 저 차에 뺏기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내가 보기엔 몇 천원씩 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려는 학생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내가 보기에 아이스크림 차는 쥐도 없는 동네를 찾은 피리 부는 사나이 정도? 나는 쥐도 아이도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피리를 불어대는 차 옆을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

정말 그럴 뿐이다. 주인 청년의 얼굴짝도 딱히 보고 싶어서 쳐다본 게 아니란 말이다.

저 아저씨 말이 참 많지요? 상대하기 곤란한 분이라니까요. 후훗.”

아이스크림 가게의 청년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마침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으니 나에게 말을 건 것은 분명했다. 마치 CF라도 찍는 듯한 미소와 함께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대꾸를 하고 말았다.

,

그런데 이 녀석 아무래도 수상하다. ‘후훗이라고 음절 단위로 정확히 발음하는 사람이 멀쩡한 사람일 리가 없다.

어떻게 알았냐고요? 저는 문구점에 당신 혼자 들어간 것을 보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안에서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보냈지요. 주인아저씨의 습성을 생각해 볼 때 구질구질한 잔소리를 억지로 듣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간단히 추론할 수 있죠.”

누가 물어봤냐? 나는 설렁설렁 대꾸하고는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녀석의 말투하며 비웃는 듯한 미소가 은근히 신경을 거슬렸다.

정말 구제불능이라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추한 것이 패배자가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늘어놓는 거죠. 안 그래요?”

잠깐 아이스크림 판 걸로 패배자라고 하기도 뭣하지 않나.”

아이스크림뿐입니다만 분야가 뭔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이 거리의 고급 아이스크림 상권은 제가 전부 장악했다는 점이지요. 설마 당신도 패배자의 헛소리에 동조하는 건가요? 이런,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는데요.”

왠지 모를 짜증이 솟아났다. 이런 수상쩍은 녀석과는 애초에 상종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임에도 나는 한 마디를 더 하고야 말았다.

고작 며칠 장사 잘 된 걸로 우월감 갖지 말란 거야. 지금 그쪽이 교문에 더 가깝고 젊고 또 맨날 있는 게 아니니까 잠깐 주목 끈 거지 그것더러 승자니 패자니 하긴 그렇잖아.”

조건이 바뀌면 결과가 달라졌을 거다, 이 말이시군요. 이런, 이런. 역시 고등학생이란 어쩔 수 없는 건가요? 그런 한심한 소리를 하다니. 토끼가 태생적인 둔함을 원망하며 콘도르를 비난해봤자 달라지는 것이 있나요? 중요한 것은 쟁취된 결과 그 자체뿐이에요. 공정성이니 정의니 들이대 봤자 결과 앞에서는 약자의 변명 이상이 되지 않는다고요.“

상한 고무줄처럼 불안불안 하던 자제력의 끈이 마침내 끊어지고야 말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것에 개의치 않고 나는 말했다.

이거 참 웃기는 소리 하네. 그럼 법이니 도덕이니가 왜 있는 거지? 자기 꼴리는 대로 다 해도 된다면 그런 게 왜 있냐고.”

당신은 이것을 모르고 계시겠지요. 법이나 도덕 역시 승리한 자가 제정한 규칙이라는 것을요. 국가란 결국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의 모임이 아니던가요? 그들이 아랫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것이 곧 국가예요. 우리는 모두 그 규칙 아래에 있고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이해가 안 되시나요? 국가의 기원을 생각해 보신다면 이해가 빠를 거예요. 국가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민중의 추대에 의해서? 평등한 구성원의 계약을 통해서? 아니면 전사 계급 간 사냥감의 효율적 분배를 위해서? 무엇이 상식적인 가정인지 당신도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기원이 어쨌든 간에 공정하지 않으면 그게 법이겠냐는 거잖아.”

공정함. 그것이 최하계층의 민초들에게까지 적용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았지요. 아니, 국가 단위를 넘어선다면 아직도 선진국이라는 계급이 개발도상국을 착취하는 세계 체제가 유지되고 있어요. 그 체제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요? 결국 강자의 규칙 아니던가요?”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반박하는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넌너보다 센 놈이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날려버려도 뭐라 하지 않을 건가?”

후후훗.”

녀석은 기분 나쁘게 소리 내 웃었다.

그렇다면 이겨 보시지요. 떠들어봐야 입만 아프죠. 분명한 것은 승자만이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현실이라는 점입니다. 저에게 약자의 정의를 강변하고 싶다면야 저를 이긴 다음, 그것을 증명해낸 다음에야 실컷 말하시지요. 그러면 그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테니까요.”

으윽

분통 터지게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저 자가 하는 말이 헛소리라는 것은 온 몸과 가슴이 알겠는데 얼핏 반박할 말은 떠오르지 않는다. 꼼짝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이기고 나서야 자신의 승리를 정당화할 권리가 생긴다. 그런데 지금 이미 승패가 나뉘어 있다. 따라서 패배자는 항변할 기회가 없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이만 갈리는 문제였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놈의 그 고까운 말투가 바늘 끝으로 속을 긁어대는 것 같다.

나는 결국 수업 종을 핑계로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 뒤통수에 대고 놈은 말했다.

정 그렇다면 한번 기회를 드려보도록 할까요? 누가 진정한 강자인지 공정하게 겨뤄보는 겁니다.”

나는 무심코 멈춰서고 말았다.

똑 같은 위치에 가게를 열고 과연 어느 쪽 매출이 높은지 겨루는 거죠. 대신 각자가 어떤 마케팅을 쓰든 일체 관여하지 않는 거예요. 어떤가요?”

나는 버틸 수가 없었다. 분노에 휩싸인 의식의 결박을 해제하기 위한 희생양이 절실히 필요했다. 대결이라, 또 어떤 가여운 존재가 애처롭게 덤벼드는가. 나는 내 앞에서 바둥거리는 사냥감을 안쓰러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바라던 바다. 나는 압력밥솥처럼 부글거리는 호기를 다스리며 말했다.

문방구에 가장 부족했던 것이 뭔지 아나?”

글쎄요. 하고 녀석은 말한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바로 라는 인재였지.”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후후훗. 그냥 시합한다면 아무 의미 없으니 조건을 걸죠. 제가 지면 저는 미련 없이 이 지역을 뜨겠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거시겠습니까?”

넌 어차피 이동하잖아. 그게 페널티가 되겠어?”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그러면 그쪽 페널티도 적당한 걸로 하죠. 제가 얼마나 여기 있든 간여하지 않는 것으로요. 이것은 원래 제 권리였으니 그쪽도 크게 잃는 것은 아닐 겁니다.”

나는 정제된 결의가 범람하는 강렬한 눈빛으로 놈을 노려보았다. 눈이 마주치고 무언의 계약서가 오갔다.

좋아. 받아들이지. 일시와 방법은 추후에 통보하지.”

그렇게 말하고 나는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소집을 통보했다. 나에게는 아주 유효한 전략과 동료가 있었다.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진 밴드에게 이것은 좋은 자극제가 될 터였다.

내 전략이 뭐냐고?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목표를 잃은 동료들을 독려하기 위해 구상한 기획 중 하나였다. 바로 길거리 공연이다. 학교 앞에서 공연을 하며 우리를 알리는 것이다. 거기에 아이스크림 마케팅을 접목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멋진 계획이 아닌가. 최고의 밴드가 공연을 한다면 어느 누구도 발걸음을 내놓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무대는 문제없었다. 이미 경험이 있으니까. 우리 밴드는 연습실이 없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했는데 정 연습할 곳이 없을 때에는 산속에다 오픈 연습실을 설치해 연습하기도 했다.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놈이 가진 무기라고는 차에서 흘러나오는 그 요상한 멜로디밖에 없을 테니까. 당황한 놈의 얼굴이 절로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나는 아이스크림에는 취미가 없고 아저씨와도 그리 친한 게 아니고 가게에 애착을 가진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문방구를 대표하게 되었지? , 어쨌든 이상이 이번 사건의 인트로.

2.

, 그럼 본편이다.

그날 정규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곧바로 운동장에 모였다. 우리의 공식 미팅 장소는 운동장 한가운데에 있는 등나무 밑이다. 정식 인가 받은 동아리도 아닐뿐더러 소속이 제각기 다르니 그런 곳에서 흙먼지 뒤집어써 가며 만날 수밖에 없다.

나는 주회자답게 제일 먼저 나와 기다렸다.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진작에 수업이 끝나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강철. 조금 봐줘서 천재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한 실력이 있는 드러머이다.

! 모이려면 점심시간도 있잖아! 왜 이렇게 늦게 모여서 할 일도 없는데 기다리게 하는 거야?”

그리고 녀석은 버릇없는 초등학생이다. 그것도 아주 교활하고 악독한.

형님이 모이라고 했으면 모일 것이지 뭔 군소리가 그렇게 많아?”

형님 좋아하시네. 내가 니가 불러서 나온 걸줄 아냐? 전부 모이니까 나온 거지.”

녀석, 츤츤거리기는.”

뭐라는 거야? 이 오타쿠가.”

녀석은 경멸의 의미를 담은 듯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이런 용어를 알아듣는 시점에서 네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요새 초딩들은 벌써부터 이런 쪽 용어까지 알고 있는 거야? 인터넷이 사람 여럿 망쳐놓는다는 생각을 한다.

인터넷이 망쳐놓는 건 너 말하는 거냐?”

녀석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말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곧 이것이 서술자의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독백과 대화문을 혼동했나?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건데 일인칭 시점은 그게 문제인 것 같아. 때로는 서술자가 혼란을 겪을 수도 있으니까. 녀석은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거두지 않는다. 녀석이 날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바보취급 받는 것이 그리 편하지는 않다.”

“.지금 뻘줌해서 일부러 따옴표를 이상한 데 단 거지?”

제길, 의표를 찔렸지만 표 내면 안 된다.

서술트릭이라고 불러줘. 서술에 혼동을 줌으로써 독자를 속여 넘기는 거야. 그리고 이것은 이 작품의 중요한 복선이고.”

웃기시네.”

믿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사실 실수 같은 건 안 했어. 난 초능력이 있어서 생각을 읽은 거야.”

녀석은 말했다.

, ? 정말이냐? 너한테 초능력까지 있었어?”

그럼 그렇지. 내가 서술자로서 그런 기초적인 실수를 할 리가 있나. 녀석은 희한한 놈이니 초능력 하나 정도는 더 있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고.

아니. 뻥인데.”

으윽, 이 버릇없는 자식나는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가려는 것을 간신히 자제할 수 있었다.

혼자서 이 초딩을 상대하느라 골 썩이던 차, 유미와 소란 누나가 왔다. 둘은 학년은 다르지만 옆 여고에 함께 다닌다. 유미는 나와 같이 기타 겸 보컬을 맡고 있고 소란 누나는 베이스를 친다.

이렇게 모일 수 있는 멤버는 다 모였다. 지난 대회에서부터 합류한 단비만 제외하고. 단비는 아무래도 조금 먼 학교에 다니니 이번 일에는 낄 수 없었다.

둘 중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쪽은 아무래도 소란 누나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지만,”

하고 유미는 등나무 밑으로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또 잔소리로 시작할 모양이었다.

자네의 이 행동은 동아리 행동 준승 5개항에 어긋나는 위법 행위야.”

스탑! 그런 규정은 태어나서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또 무슨 억지를 부릴까 싶어 서둘러 말했다. 하지만 내 항의는 재판 받는 반정부인사의 항변처럼 간단히 묵살되었다.

첫째, 일반부원인 자네가 리더인 내 동의 없이 맘대로 공연을 정한 것. 둘째, 일반부원인 자네가 밴드의 위신을 상업적으로 활용한 것. 셋째, 일반부원인 자네가 리더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교섭을 한 것.”

셋 다 결국 내가 일반부원이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잖아! 차이가 뭐야?”

국제 조약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그런 사소한 조항 하나하나에 국운이 기울었던 우리의 통사를 잊어버렸어?”

이건 국제조약도 뭐도 아니잖아. 아니, 그보다 애초에 그런 규정 자체를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이건 자연법이자 관습헌법이야. 그 유명한 행정수도 이전 관련 헌재 판결문도 못 봤니?”

그건 또 뭐야

아무튼 이렇게 별 상관도 없는 것 같은 지식으로 사람 기 죽인다니까. 유미는 계속 말했다.

, 이렇게 리수 군의 죄가 명명백백한데 어떻게 처벌할까? 나는 법치주의자니까 이런 강상죄를 저지른 중범죄자는 형법에 명시된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보는데.”

아니, 법치주의자가 그렇게 멋대로 판결하냐고요.”

무슨 소리야? 여기 법전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유미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럴듯한 모양의 두루마리였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유미는 그것을 꺼내 끈을 풀어 내쳤다. 두루마리가 풀리면서 하얗고 길쭉한 종이가 펼쳐진다. 거기에 사인펜으로 적혀 있는 것이 법전이라는 건가 본데 언제 준비했든 간에 내가 그걸 본 적이 없다니까!

그럼 자네는 시험에 모르는 문제가 나왔다고 그 시험이 부당하다고 할 거야? 교과서에 명백히 등장하는 개념인데도?”

그런 거랑은 경우가 다르지 않나

아니. 출제자가 모든 권력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완, , 히 똑같아.”

결국 네 마음대로 하고 싶다 이 얘기잖아!”

이제야 이해를 한 건가? 리수 군은 역시 느리다니까.”

그렇게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놓고 참으로 떳떳하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그래. 그럼 형벌이 뭔데?”

죄형 법정주의에 따라

유미는 두루마리를 죽 훑어보았다. 아니, 훑어보는 척 하는 건가? 거기 정말로 관련 법규가 있기나 해? 이런 의문은 유미 앞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

강상죄는 이렇게 하라고 적혀 있네. 발가벗긴 뒤 운동장에 세워두고 전교생이 돌아가며 죽을 때까지 오이로 때리도록 한다.”

뭐가 그리 가혹해! 게다가 오이로 때려서 죽을 수 있겠어? 아니 그 전에 왜 하필 오이야?”

뭘 모르네. 이 형벌의 요점이 그거야. 수형자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비참함을 느끼도록 하는 거지. 오이는 인류가 수확한 가장 치욕스런 작물이라는 점에서 아주 적당해.”

너 오이 안 먹지?”

적중했나. 혹시나 해서 해본 말이었다. 유미는 태연한 척 못 들은 척 말을 잇는다.

신체형이란 전통적으로 주권의 침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어. 단순히 고통을 준다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고통을 통제함으로써 수형자를 통치 질서 하에 편입시키는 거지.”

오이소박이.”

실내화 끝이 솟아올라 한 순간에 명치를 파고든다. 나는 배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유미는 다소 살벌해진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으윽

불결한 말은 입에 담지 말아줘.”

정말로 싫어하는구나. 나는 이것이 약점으로 쓰일 수 있을지 잠시 고민했다. 이런 식으로 보복이 가능하지 않을까? 밥에 몰래 오이를 섞어둔다든가.

소란 누나는 옆에서 말없이 웃고 있다. 지금 코미디 따위를 하는 게 아니라고요.

저녁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곧 있으면 자율학습이 시작될 텐데 난 몰라도 소란 누나는 빨리 들어가보지 않아도 괜찮을까 하고 생각하던 차에 유미는 말했다.

불법적으로 일을 벌려놓긴 했지만 어쨌든 간에 밴드의 이름을 걸고 공연 스케줄이 잡혔으니 우리는 공연을 책임지고 마쳐야 할 사명이 있어. 그게 바로 프로로서의 자세야.”

우린 프로도 뭐도 아니다만.

그럼 리수 군. 공연 일자와 구체적인 계획을 브리핑해 봐. 길거리 공연이라고 했지? 장비는 어떻게 조달할 것이며 무대 세팅은 어떻게 할 것이며 등등.”

아직 구체적으로 잡힌 건 없는데. 일정은 나중에 정하기로 했고 아직 문방구 아저씨한테도 이야기 안 했고.”

그러니까 그 말은 아무 것도 결정 된 게 없다는 말?”

.”

공연은 누구한테 하기로 약속했는데?”

아무한테도. 아이스크림 차랑 그냥 대결하기로만 했고 길거리 공연은 그냥 내 계획인데.”

유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전할 말은 다 전했다고 생각하는데 또 뭐가 문제인가. 이야기할 때 그 배경보다 공연 계획을 먼저 말하긴 했지만

갑자기 유미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 거리는 방비가 불가능한 신체의 완전한 사각이었다. 복싱에서는 크런치라고 하던가? 유미는 긴 머리를 흩날리며 한쪽 다리를 축으로 회전한다. 왼쪽? 아니 오른쪽 다리인 것 같다. 아니, 어느 쪽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한 장면 한 장면 눈에 들어오는 유미의 동작이 마치 주마등만 같다고 느꼈을 뿐이다. 그것은 마치 투포환, 혹은 공성무기와도 같은 기세였다. 유미는 그대로 뒤차기를 나의 가슴팍에 꽂아 넣었고 나는 바닥에 등을 찧고야 말았다. 잠시 하늘을 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왠지 유미와 동료들이 아득히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주인아저씨께 양해를 구해야겠지?”

희뿌연 의식 사이로 소란 누나의 말이 들어왔다.

나 그 아저씨 잘 알아!”

초등학생도 말을 하는 것 같다. 유미는 나를 한 번 흘겨보더니 일행을 이끌고 등나무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잠시 육신에서 넋을 해방해주기로 했다.

3.

내가 정신을 차리고 문방구로 달려갔을 땐 이야기가 모두 끝나 있었다. 아저씨로서는 잃을 것 없는 조건이었으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아저씨는 우리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 설사 대결 당일에 손해를 보더라도 아이스크림 차를 쫓아낼 수만 있다면 모든 수를 강구하겠다고 한다. 아이스크림 청년과도 규정에 대해 합의를 했다. 일시는 이번 주 토요일 방과 후. 문방구와 아이스크림 차는 진입로에서 갈라지는 골목에 하나씩 자리잡는다. 교문으로부터의 거리는 완전히 같게. 그리고 마케팅에는 모든 수단 동원 가능. 고등학교와 바로 옆에 붙은 초등학교의 하교가 모두 끝났을 때 최종 수익을 비교하여 10원이라도 많은 쪽이 승리.

장비 세팅은 지난번 산중 수련 때처럼 하기로 했다. 적당히 전원 끌어와서 각자 쓰는 엠프 갖다 놓고 드럼 갖다 놓으면 된다. 믹서도 없이 저출력 엠프를 그대로 쓰기 때문에 음질은 썩 좋지 않지만 못할 정도는 아니다. 장비가 받쳐주지 않으면 실력으로 때우면 된다. 그것이 우리 벨리 스트링스, 이 리수 님의 방식이다. 더군다나 생전 라이브는 구경도 못 해봤을 고등학생, 초등학생들은 음질이 어떤지 분간하지도 못할 테니 아무런 걱정이 없다. 우리는 전국 동아리 대전에서 우승한 무적의 밴드이지 않은가.

토요일. 우리는 한 교시 일찍 나와 모여 악기와 가판대 세팅을 하고 가볍게 호흡을 맞춰보며 상대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스크림 차는 종 치는 시간이 다 되어가서야 나타났다. 하지만 예전의 그 차가 아니었다. 다마스정도 크기에 청년 한 명과 냉장고 하나로 가득 찼던 그 아기자기한 차가 아니었다. 마치 사이렌처럼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멜로디와 함께 나타난 차는 커다란 트럭이었다. 우리는 그 트럭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잖아!.”

스피커가 주렁주렁 달려 있고 풀 세트 드럼과 100와트짜리 엠프에 믹서까지 갖추고 있는 그 차량은 아무리 봐도 밴드 공연을 위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가끔 게릴라 콘서트 같은 것을 할 때 쓰이는 차량 있잖은가. 얼핏 보기에도 우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완벽한 장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게 뭐야! 저게 뭐냐고! 저거 아이스크림 차 맞아?”

나는 외쳤다.

와아. 정말 잘 만들었네. 저 차만 있으면 어디서든 공연할 수 있겠어.”

소란 누나는 속없이 감탄만 하고 있다.

저런 게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어째서 난데없이 아이스크림 차가 밴드를 끌고 오는 건데?

곧 차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렸다. 기타와 베이스를 들고 있는 훤칠하고 날렵하게 생긴 사내들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한 가닥 하는 녀석들로 보였다. 신속하게 무대 세팅을 하고 악기 점검을 하는 것이 상당한 숙련자인 듯했다. 운전석에는 예의 아이스크림 장수가 있었다. 그가 내리자 멜로디가 멈췄다.

안녕하십니까.”

아이스크림 청년은 예의 기분 나쁜 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후후훗. 홍보 방법으로 길거리 공연을 하시는 건가요? 기발한 방법입니다만 그 정도 장비로 소리라도 들릴는지 모르겠군요.”

너 이 자식! 스파이 짓이라도 한 거냐?”

스파이라뇨. 억울한 얘기입니다. 저는 그저 합리적인 추론 과정을 거쳤을 뿐입니다. 당신들이 어떤 전략으로 나올지 말이에요.”

합리적 추론 좋아하시네. 내가 보기엔 정확히 노리고 준비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상식적으로 학교 앞 아이스크림 장사에 밴드 끌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

후훗. 한 가지 유리했던 점이라면 제가 여러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고 할까요? 밴드가 할 수 있는 홍보란 공연 밖에는 없지요. 분명 계약상으로는 어떤 전략을 쓰든 상관없다고 했지요. 전 그것을 노렸을 뿐이에요.”

적어도 뒷조사는 했단 얘기로군. 그런가. 그랬단 말이지.

크큭

하지만 놈이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리수 님에 대한 것이리라. 내가 그 정도로 위축될 것이라 생각했다면 잘못도 한참을 잘못 생각한 것이다.

너는 나를 끓어오르게 만드는군. 덤벼볼 테면 덤벼 봐라. 그 정도 장비는 가져와야 나와 밸런스가 얼추

맞을 리가 있겠냐! 상대는 아무리 봐도 프로잖아!”

유미와 강철이 동시에 어택 해 온다.

유미의 로우킥 덕분에 잠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일어서려니 문방구 아저씨가 다가왔다.

이거 잘 되겠냐? 저쪽은 아무래도 작정하고 하려는 모양인데

걱정 마세요. 저 자식들 겉만 번지르르하지 사실 폼만 잡고 있는 걸 거예요. 실제 연주에 들어가면 우리 상대가 될 순 없죠.”

라고 내가 말했는데 저쪽에서 연주가 시작됐다.

지기깅

‘Living easy, living free’

지지징 지기징 지기 징 징

‘Season ticket on a one-way ride’

테스트도 없이 바로 연주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첫 소절부터 뭔가 범상치 않았다. 등허리가 절로 곧추세워지는 타이트한 연주가 전개되었다. 저쪽 멤버 구성은 다섯. 아이스크림 청년이 보컬이고 기타 둘, 베이스, 드럼 이렇게 전형적인 구성이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은 별도로 둔 모양이다.

오오 AC/DC잖아. 소싯적에 많이 들었지. LP판을 못 구해서 친구 집에 죽치고 앉아 하루 종일 듣곤 했는데. 문방구에 포스터 봤지? 그게 무려 20년이나 된 거야.”

아저씨는 말했다. 문방구 한쪽 벽에 빨간 돼지 저금통이며 상자에 가리워 잘 보이지도 않는 빛바랜 엥거스 영의 포스터가 붙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이 아저씨도 한때 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가 공연을 하겠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해 준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아저씨. 아저씨 볼의 은빛 방울은 결단코 추억 속에서 건져낸 결정체일 뿐이겠죠?

잘 하잖아.”

강철은 나를 째려본다.

자네. 이 사태를 어쩔 거야? 음향은 물론 객관적인 실력도 저쪽이 한 수 위인 것 같은데.”

유미는 내 볼을 잡아당긴다. 어쩌긴 뭘 어째. 락커가 무대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기타를 집어 들었다. 스승님에게서 물려받은 전설의 기타다. 나의 이 기타 앞에 서서 이제까지 당당했던 적은 한 명도 없었다. 저들에게 고가의 장비가 있다면 나에게는 불굴의 투지가 있다. 나는 나의 투지를 모아 줄을 내리쳤다.

.’

? 이게 다야?”

소리를 문자로 온전히 옮겨 적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 기타 소리를 문자로 표현하자면 그 한 어절이 적절할 듯했다.

왜 내 기타가 나타내는 효과음은 이렇게 단순한 거지?”

왜긴 왜야. 저쪽은 제대로 된 공연용 엠프에 믹싱까지 제대로 된 소리인데 자네는 그냥 연습용 엠프밖에 없으니까 그렇지.”

유미가 친절하게도 설명해 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뭐야, ‘! 적어도 기타스러운 소리 정도는 내 줘야 할 거 아냐!”

상대적으로 음압의 차이가 너무 크니까 리수 군의 소리가 그렇게 표현된 게 아닐까?”

소란 누나가 말했다. 물론 나도 이해하는 바다.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또 잊지 마. 내 드럼은 학교에서 안 쓰는 거 빌린 거라서 소리도 제대로 안 난다고.”

강철도 쓸데없이 덧붙여 주었다.

벌써 저기엔 줄이 잔뜩 서 있어.”

아저씨는 말했다. 어느 새 종이 친 모양이다. 하교 시간은 한 순간에 끝난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마치 재앙으로부터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간다. 그 기세는 해일과도 같아서 한 순간 몰려드는가 싶으면 금세 통과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 앞에 보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라. 앞서 가던 녀석들이 주춤하면 그리 넓지 않은 이 길은 그대로 정체되고 만다. 뒤에 오는 녀석들은 으레 앞에 무슨 구경거리가 있나 들여다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정체는 더욱 심해진다.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려는 녀석들이 만든 조그만 개울을 제외하고는 커다란 군중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밴드가 있다. 그 밴드가 우리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지만.

이젠 다 틀렸어

아저씨는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AC/DC에서 벤 헤일런, 에어로 스미스로 이어지는 메들리와 아저씨의 젊은 날의 열정을 되새기는 눈물 앞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강철은 포기한 듯 저쪽 공연장으로 달려가 버렸고 소란 누나는 아무도 지키지 않아 비어있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유미와 나만이 우두커니 서서 쏟아지는 학생과 공연장에 몰리는 학생, 우리를 그냥 스쳐 지나가는 학생들을 지켜보았다.

사실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축 쳐져서는 아무도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판다고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다들 이렇게 있을 거야? 모두 이리 모여봐.”

그렇게 음악이나 감상하고 있던 차, 유미가 말했다. 우리는 냉장고 앞에 주저앉아 있는 아저씨를 피해 한 구석으로 갔다.

지금 우리에게 그나마 쓸 만한 장비는 리수 군의 레스폴로 추정되는 기타와 내 펜더 엠프 뿐야. 이렇게 연결하면 소리는 작더라도 어느 정도 괜찮은 소리가 날 거야.”

하지만 소리가 이렇게 묻히는데.”

나는 아직 연결돼 있는 기타의 줄을 튕겼다. 여전히 무의미한 소리가 맥없이 흩어졌다.

그 정도면 돼.”

또 무슨 꿍꿍이야?”

유미는 소란 누나에게 말했다.

언니. 변신하자.”

, 변신?”

소란 누나는 흠칫 뒤로 물러섰다. 변신해서 어쩌자는 건지 나는 바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소란 누나를 전면으로 내세운 치어리딩 정도였다. 그것도 틀린 예상은 아니었지만 유미의 생각은 더욱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래. 마법으로 소리를 증폭시키는 거야. 할 수 있지?”

나는 무릎을 쳤다.

그렇구나! 소란 누나의 마법이면 저 정도 소리는!”

하지만 의문점 역시 따라붙었다. 소란 누나가 마법을 유지하며 베이스를 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내 물음에 유미는 말했다.

괜찮아. 그 기타 하나만 쓸 거니까. 저것들 연주를 흐트러트리고 관심을 여기로 끄는 건 내 솔로로도 충분해.”

소란 누나는 잠시 물끄러미 유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할 수는 있는데정말 그걸로 될까?”

. 또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솔로 기타로 승부수라그렇다면 내가 이 몸이!”

나는 말했다.

자네는 잼도 못 하잖아.”

그건 그렇지. 안타깝게도 나의 연주는 악곡을 외워서 하는 것이 전부이다. 즉흥연주는 손도 안 대본 분야이다.

언니. 혹시 노래도 할 수 있어?”

아아니. 노래는 잘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애들 다 나오겠다. 지금 바로 시작하자.”

소란 누나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언제 봐도 내놓고 다니기 조심스러울 것 같은 유아틱한 휴대폰이었다. 분홍색에 하트 모양 보석이 박혀 있고 테두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으로 빛나는 그것은 통화 기능을 확실하게 갖고 있는 휴대폰이면서 동시에 마법소녀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디바이스였다.

누나는 그것을 소중하게 양 손으로 잡고 눈치 보듯 주위를 슬쩍 돌아보았다.

저기변신하려면 사람들이 좀

아아, 이해하고말고요. 마법소녀에게는 고충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매 변신마다 겪는 문제였다. 어떤 작품이든 마법소녀를 접해봤다면 다들 알 것이다. 마법소녀가 변신할 때에는 언제나 변신 장면을 연출해야 한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매 화 반복되는 장면이 지루할 법 한데도 그 씬은 빠지지를 않는다. 그 누가 만들었는지 참 궁금한 규칙이 여기 살아 있는 마법소녀에게도 적용되나 보다. 변신 장면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럽겠지. 정체를 들킬 염려도 있고.

나와 유미는 누나를 골목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 그럼 한다!”

나와 유미는 골목을 누가 들여다보지 못하게 막아서고 누나는 변신 주문을 자그맣게 외웠다.

메지컬 멜로우, 샤이닝 메이크 업!”

변신 장면은 생략. 여담인데 혹시 어릴 적 마법소녀물의 뱅크 씬을 보면서 야릇한 두근거림을 느낀 적이 없는가? 변신 중인 소녀를 둘러싼 신비한 빛 너머로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살이 있으리라는 기대감. 실루엣.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쾌감. 혹여라도 실수로 속살이 드러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티비를 가까이 끌어당기고 충혈 된 눈으로 침을 흘리며, 여기까진 아니고. 어쨌든 이렇게 등 돌리고 서 있는 기분은 뭔가 미묘했다. 아니면 이런 느낌은 어떤가. 등 뒤에서 글래머한 여선배가 평범하게 옷을 갈아입을 때의 기분은. 은근히 신경 쓰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뭔가 잘 안 되는 듯한 달그락거리는 소리. “아직이에요?” 하고 물으면,

으응. 조금만 기다려.”

하고 대답하는 시추에이션.

어라? 진짜로 대답했다? 나는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고야 말았다.

, 아직 안 돼! 보지 마!”

누나는 막 헤어밴드를 소환하고 있었다. 기억 상 저것으로 머리를 세팅하면 끝이지만 나는 황급히 다시 앞으로 돌았다. 휘황찬란한 빛으로 감싸인 채 공중에 떠 있었던 장면은 잊어주기로 하자. 유미가 지그시 내 발을 밟는다.

마침내 마법소녀 매지컬 멜로우가 등장했다! 기본 모드는 역시 마법봉이다.

역시 멋있어, 언니!”

유미는 감탄하듯 말했다. 변신이라 해도 현실을 고려하여 적당히 디자인한 코스튬이라 외양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물론 포니테일 버전 머리모양이 매력도를 36%정도 증가시켜주었다는 것은 불변하는 사실이다.

흐음. 내가 기타 치는 동안 옆에서 춤이라도 추는 게 어때?”

히익! , 그건

누나의 얼굴이 파리해진다. 이봐, 너무 놀리지 말라고.

그럼 어서 가자!”

누나는 유미 손에 이끌려 엠프에 가까이 갔다.

빨리 주문을!”

소란 누나는 주변 눈치를 보는지 섣불리 봉을 들지 못했다. 마법을 쓸 때에도 뭔가 액션이 필요했었지. 유미는 재차 보챈다.

어서! 하교 시간은 금방 지나간단 말이야.”

마지못한 듯 봉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마법 봉은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 없을 텐데. 보통은 치어리더의 응원봉 정도로 생각할 테니 말이다. 안 그래도 변신 뒤 누나의 치마가 짧아졌으니까.

못 하겠으면 내가 먼저 해줄까? 이거였지? 매지컬 파워-”

, 그만! 내가 할게! , 매지컬 파워

허둥지둥 주문을 받은 소란 누나는 봉을 핑그르르 돌리며 온 세상을 녹여버릴 것만 같은 미소와 함께 마저 외쳤다.

샤이닝 볼륨 업!”

봉으로 하늘을 찔렀다가 엉덩이를 뒤로 빼 한 바퀴 돌고는 엠프를 향해 찔러 넣는 유려한 동작과 호쾌한 목소리는 아무래도 주목 받기 안성맞춤이다. 엠프에 특별한 시각적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타가 연결된 엠프에서 신경질적인 하울링이 삐져나와 성공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리가 증폭되어서 잡음도 커져버린 것이다. 잠시 얼어붙어 있던 소란 누나는 얼굴을 가리고 도망쳐 버렸다. 마법은 약식으로 쓸 수도 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얼떨결에 풀 모션을 취했나 보다. 흐음그냥 그대로 두는 게 상책이겠지.

유미는 내 기타를 메고 곧바로 길이 꺾어지는 모퉁이로 달려나간다. 유미는 경이로운 도약력으로 담벼락에 올라섰다. 마침 밴드의 연주가 끝났다. 담벼락에 올라선 유미는 한껏 치솟아 오르는 기세로 외쳤다.

모두! 내 노래를 들어!”

밴드의 연주가 잠시 멈춘 공백을 절묘하게 가로지르며 유미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소리였다. 나의 기타는, 유미가 연주하는 나의 기타 소리는 일순 골목 전체를 꿰뚫었다.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몰린다. 느닷없이 솟아난 미소녀와 찢어지는 듯한 단선율 프레이즈가 온 골목을 지배하고야 말았다. 아니, 소리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랐다. 어차피 유미의 즉흥 연주는 저쪽에 못 미치니까. 중요한 것은 최초의 시선 뺏기였다. 저쪽으로 몰린 시선을 일시나마 이쪽으로 몰리게 함으로써 소란 누나의 마법은 역할을 다했다. 나머지는 순전히 유미의 몫이었다.

유미는, 그야말로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그저 기타를 들고 담벼락에 올라선 것 만으로도 유미에게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야성적으로 흩날리는 긴 머리와 군중을 비웃는 듯한 여유로운 표정과 기타 소리 하나하나를 고르는 자그만 손, 선율에 섞은 격정적인 몸짓에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락의 신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빙의했다면 바로 저 모습이 아닐까 할 정도였다.

점점 사람이 몰렸다. 간간히 환호성도 들려왔다. 저쪽에서는 섣불리 연주를 시작하지 못했다. 유미의 연주 사이에 감히 끼어들 수 없었던 것이다. 유미의 연주는 5분 정도 지속됐다. 그 사이 우리 가게 앞은 하굣길을 빼앗긴 학생들로 가득 찼다.

4.

흐윽, 해버렸어

소란 누나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얼떨결에 깜찍한 표정으로 주문을 외운 것 때문에 그러는 것일 거다. 어쩐지 우리가 괴롭히는 듯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위로라도 해줄까 해서 다가가 말했다.

괜찮아요. , 방금 무지무지 깜찍했으니까요.”

말을 뱉어놓고도 조금 어긋났다 싶었는데 누나는 글썽거리는 눈으로 날 째려본다.

너어

평소 볼 수 없었던 매서운 표정이었다. 나는 서둘러 빌 수밖에 없었다.

, 죄송해요.”

확실히 유미의 연주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누가 무얼 하든 시크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얼씬도 않던 우리 판매대에도 사람이 모였다. 그렇다고 쉴 틈도 없이 마구 팔린다는 소리는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아이스크림이 그렇게 많이 팔리는 품목은 아니다. ‘기왕 볼거리 생긴 김에 사먹어 볼까하는 사람 정도 끌어들이는 게 전부일 테고 저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아이스크림이 팔리기 시작하자 아저씨는 표정이 달라졌다. 열댓 명 걸러서 한두 명 비율로 가게에 들르는 정도이지만 아저씨는 마치 재고 털이라도 하는 시장 상인마냥 들떠 소리 높인다.

어느새 유미의 즉흥연주도 끝났다.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서스테인과 함께 하늘을 향해 치솟았던 유미의 손이 마침내 내려가자 그 고요를 야단스런 환호성이 채웠다. 몇몇 남학생 무리와 일부 꺅꺅대는 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주고 있었다. 유미는 팬서비스도 잊지 않는다. 에어키스 한 번에 잠시나마 톱스타라도 온 듯한 소란이 일었다.

이거 대단하군요.”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이크로 우리에게 하는 소리였다.

그렇게 도전해 오다니,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그쪽에 당신만한 실력자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거든요.”

멀찍이 트럭 위에 선 놈의 모습이 보인다. 모니터 스피커에 한쪽 다리를 딛고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하는 꼴이 갖잖다. 이 와중에도 녀석의 주위에는 여학생 몇 명이 몰려 있었다. 벌써 팬클럽이라도 만들어진 모양이다.

이렇게 되니 저희가 우습게 되었습니다. 기타 하나로 그런 파워를 보여주셨는데 여전히 풀 밴드로 상대해 드릴 수는 없지요. 어떤가요? 기타로 일대일로 대결해 보는 게.”

유미는 담장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 골목 한가운데로 와 섰다. 끼잉 하는 소리를 흘려보낸다. 수락의 신호다. 놈은 후후훗하고 기분 나쁜 발음을 내고는 옆 기타리스트에게서 기타를 건네받았다.

대신 조건을 하나 거는 게 어떨까요? 최종 시합 결과와는 별개로요. 아니, 저희가 많이 양보하죠. 어차피 매출이 뒤집어질 거라 볼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배틀의 결과로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것으로 하죠. 대신 여러분은 그것을 거는 겁니다.”

또 무슨 조건이야? 나는 놈의 표정을 살폈다. 멀어서 뚜렷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놈이 웃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비웃는 건지 노려보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아가씨가 들고 있는 그 기타를요. 아가씨가 이기면 그것으로 대결의 종료, 제가 이기면 그 기타를 받아가는 겁니다.”

난데없이 기타를 왜?”

내가 말했다. 하지만 유미가 눈짓을 하자 알 수 있었다. 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나는 외쳤다. 목소리가 저기까지 닿을 수 있을까 했는데 놈은 알아듣고 답했다.

후후훗. 글쎄요. 하지만 합리적인 판단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향후 추세로 보아 과연 매출 역전이 가능할지를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전세는 불리하다. 남고와 여고는 하교 시간이 다르다. 남고가 10분가량 일찍 끝나기 때문에 이 하굣길은 처음에 남학생이 쏟아지다가 그 다음에는 남녀 학생이 섞여서 내려오고 그 뒤에 나머지 여학생이 내려오는 식으로 형성된다. 지금 시각은 하교의 끝물이므로 여학생 비율이 높아지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학생에게 주로 어필하는 청년 쪽이 단연 유리하다. 우리가 전세를 뒤집을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어떡할까. 받아들여?”

유미가 물었다. 나한테 물어봤자 기타 잡은 건 너니 알아서 해라, 라고 말하려 했지만 갑자기 나이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니, 이전처럼 매상 대결로 간다. 앞으로 주 고객층이 바뀐다면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대응하면 되는 거야!”

무슨 소리야?”

나는 품속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사나이가 나설 때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번 일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이 때인 것 같다. 선글라스는 각오의 상징.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유미가 든 기타의 넥과 유미의 어깨를 살포시 쥐었다.

여학생 상대로는 아무래도 남자가 나서는 게 낫지. 나한테 맡겨. 내가 기타를 잡겠크헉!”

기타 샷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나는 얼굴을 그대로 얻어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왜 또 때려! 기타 샷은 내 기술이란 말야그보다 내 선글라스는!”

선글라스는 또다시 분해되고 말았다. 이게 대체 몇 번째냐. 선글라스는 은근히 비싸단 말이야.

그걸 쓴걸 보니까 막 짜증이 밀려오는 거 있지.”

그래서 그렇게 매번 박살내는 거냐. 유미는 청년을 향해 돌아서서는 말했다.

받아들일게. 날 실망시키진 않겠지?”

좋아요. 긴장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렇게 매번 날 빼놓고 일이 진행되는군. 잠깐, 그러고 보니 배팅된 기타는 내 기타잖아!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그 기타는 스승님께 물려받은 내 소중한 보물이며 내 첫 애인이다. 이런 경우 물건과 관련된 일의 결정권은 주인에게 있는 게 아니냐. 사실 생각해보면 원래 방식대로 대결해서 결국 우리가 진다 하더라도 딱히 잃는 것도 없잖은가! 그냥 아이스크림 차가 떠나지 않을 뿐인데.

곧이어 내 기타의 운명을 건 한 판 대결이 시작되었다.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첫 공격은 청년이 시작하였다. 대번에 느낄 수 있었는데, 확실히 실력은 녀석이 한 수 위였다. 유미도 나름, 아마 우리 또래에서는 최고 실력자라 하겠지만 아무래도 놈의 실력은 프로 이상인 듯했다. 위기감이 엄습해 왔지만 지금으로써는 유미를 믿을 수밖에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철이는 어디 갔어?”

정신을 차린 소란 누나가 다가와 물었다.

글쎄요. 아까 공연할 때 저쪽으로 가던데. 심심해지니 집에라도 간 게 아닐까요?”

워낙 제멋대로인 녀석이니까요, 하고 덧붙이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나 여기 있어.”

꼬맹이가 다가왔다. 손에는 알록달록한 아이스크림 하나가 들려 있다. 좀 전에 놈들 쪽으로 가더니 하나 사온 모양이다.

너 이놈, 적의 물건을 팔아주다니 제정신이냐?”

탐색전이야. 무슨 맛인지 봐야 우리도 대비할 거 아냐.”

그래? 그럼 이리 내놔봐. 밴드 브레인인 내가 직접 맛봐주지.”

네가 브레인? 차라리 너네 집 고양이를 시켜라.”

? 이 꼬맹이가.”

나는 녀석의 아이스크림을 낚아채려 했지만 놈이 한 박자 빠르게 피한다. 나는 일어나서 달려들었지만 녀석은 약삭빠르게 도망간다. 녀석은 초등학교까지 도망가서는 기어코 아이스크림을 혼자 다 먹어 치우고 말았다.

나는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둘 다 잘 치네.”

소란 누나가 말했다. 청년의 첫 공격이 대단해서 그런지 유미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되는 게 유미는 벌써 레퍼토리가 떨어져가는 것 같았다. 즉흥연주라 해서 정말로 그 자리에서 작곡해서 연주하는 게 아니다. 물론 무지막지한 고수라면 그런 게 가능하겠지만 대부분은, 심지어 프로 기타리스트라도 자기 손에 익은 프레이즈를 그때그때 조합하고 응용하는 수준에서 잼을 한다. 유미는 아무래도 경력이 짧다 보니 새로운 것을 자꾸 보여줘야 하는 배틀에선 단연 불리하다. 어느 한 쪽이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을 때 승부가 결정된다. 유미 파이팅. 너의 손에 우리 밴드의 운명이, 아니, 내 기타의 운명이 걸려 있다.

나 또 먹을래.”

손에 흘러내린 국물을 빨며 강철이 다가왔다.

아이스크림? 우리 꺼 사먹어. 매출은 이제 상관없지만 저놈들 좋은 일은 그만 시켜주는 게

싫어. 나 저 아이스크림 먹을래.”

강철은 무턱대고 적진으로 걸어 나간다. 나는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녀석을 잡았다.

. 유미가 지금 저렇게 애쓰고 있잖아. 네가 저기로 쪼르르 달려가면 분명 안 좋을 거야.”

싫어! 나 아이스크림 먹을래!”

녀석은 돌연 주변 사람들이 죄다 돌아볼 정도로 소리지른다. 아무리 어린애라지만 평소 안 쓰던 떼를 쓰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녀석의 머리통을 양 손으로 붙잡아 눈을 마주쳤다.

갑자기 너 왜 그래? 네가 그렇게어라?”

나는 강철의 눈을 보았다. 나는 사람의 눈빛을 잘 읽지 못한다. 그럼에도 나는 녀석의 눈 속에서 섬뜩한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광인의 눈빛이었다. 이성이 거세되어 순수한 욕구와 충동으로 이뤄진 공간이 거기에 비쳐 보였다. 그 눈은 더 이상 나를 한심한 듯 바라보는 건방진 꼬맹이의 눈도 어설프게 시니컬한 척하는 눈도 아니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너 왜 그래?”

녀석은 순간 괴성을 지르며 나를 밀쳤다. 나는 아이스크림 차로 치달리는 녀석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녀석은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저리가! 나 아이스크림 먹을 거야!”

이 자식이 미쳤나? 아이스크림을 대체 왜! 정신 차려!”

이거 놔아!”

녀석은 전에 없도록 악을 썼고 거칠게 저항했다. 갑자기 유아기로 퇴행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행동은 결코 초등학교 고학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위악적인 녀석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확실히 뭔가 문제가 생겼다.

뚜욱!”

갑자기, 소란 누나가 말했다. 누나는 나를 제치고서 주저앉아 난리 치는 강철의 팔을 붙잡았다. 강철이 다리를 마구 내젓자 무릎으로 발등을 깔아 누른다.

우리 철이 뚝! 그러면 안 되지!”

마치 아이를 어르는 말투이다. 단호하고도 부드럽고 야단치면서도 달래는, 이세상의 누나들만이 가지고 있다는 그 스킬. 강철은 바둥거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누나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다.

철이 왜 갑자기 그러니? 여기 가만히 앉아봐.”

이거 놔! 놓으란 말야!”

왜 못된 짓이니? 여기 길바닥이야. 진정하고 누나 봐봐봐.”

강철은 막무가내로 몸부림친다. 누나는 침착하게도 말한다.

너 나 힘으로 못 이긴다. 철이야.”

으아! 이길 거야! 이거 놔!”

이러면 너만 힘들어 철아. 진정하고 누나랑 얘기해보자.”

싫어! 아이스크림!”

! 철이 진정하고 누나 눈 똑바로 쳐다봐야지.”

안 봐! 아이스크림! 먹을 거야! 놔아!”

왠지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 같기도 하고.

아저씨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사태는 금방 진정됐다. 누나가 달래주는 패턴은 다양했다. “우리 철이 착한 아이지?” “, 숨 들이마시고, 누나 얼굴 가만히 들여다보는 거야.” “이렇게 하니 얼마나 예쁘니.” “우리 철이 누나랑 있으니까 괜찮지?” , 기타 등등. 문득 나도 나쁜 어린이가 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뿐이다.

누나는 무언가 마법을 걸었다. 강철은 떼쓰다 지친 아이처럼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누나가 나에게 손짓한다.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멍하니 서 있다가 뒤늦게 깨닫고는 잠든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애라고 해도 여자가 들기에는 만만찮은 무게일 테니까. 녀석을 누일 적절한 곳을 찾다가 일단 카운터 뒤에다 두기로 했다.

마법이 걸려 있었어. 아이스크림에.”

마법? 난데없이 왠 마법?”

아무래도 저 사람들도 마법 같은 걸 쓰나봐.”

누나는 설명해 주었다

이건 나랑 계열이 다르니까 정확히는 알 수 없어. 내가 다룰 수 있는 마법은 나를 파생시킨 세계 속의 마법뿐이야. 다른 파생세계의 마법에는 난 관여할 수 없어. 원리도 효과도 다 다르니까. 그냥 뭔가 색다른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만 알 뿐이야.”

그럼 저 놈들이 또 다른 버전의 적이란 말이에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설정이 정말 난잡하군요. 이래서야 미디어믹스는 꿈도 못 꾼다고요.”

설정이라니 그건 누구한테 따지는 거야?”

어라? 내가 누구한테 말하는 거지? 아무튼, 쟤가 이상해진 게 아이스크림 때문이란 거죠?”

그래. 아마 그 아이스크림을 자꾸 먹고 싶도록 하는 마법일 거야.”

중독자들한테 팔아먹으려는 술수였군요.”

놈은 어떻게든 우리를 이길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어떤 방식의 대결로 유도되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했던 것이다.

. 철이는 어려서 효과가 더 셌던 거일 거야. 하지만 특별히 위험하거나 한 마법은 아닌 것 같으니 저대로 자다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놈들의 진짜 목적은 아무래도 내 기타를 뺏는 것 같은데, 그럼 놈들 정체는 지난번 그놈들이겠죠?“

어둠의 락커 연맹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

그런 이름이었죠.”

파생세계 중에서 가장 황당한 녀석들. 내가 가진 기타를 강탈하는 것만이 존재 이유인 정말로 할 일 없는 단체. 기타를 빼앗고 나면 그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될 녀석들인 것 같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배틀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전에 팽팽했던 국면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유미가 애쓰고 있다는 것이 바로 와 닿았다. 유려하게 흐르던 프레이즈는 이제는 쥐어짜는 듯한 단조로운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반면 청년은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놈의 연주는 고갈되기는커녕 점점 화려해지고 있었다.

어쩌지? 유미가 밀리고 있어.”

소란 누나가 초초해진 듯 말했다. 나는 태연한 척 했지만 비교해 본다면 더 긴장한 것은 나일 것이다. 아무래도 내 기타가 걸려 있으니까. 5분 넘게 즉흥 연주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나는 도저히 유미의 발끝에도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유미로서도 그것이 한계다. 상대가 너무 강했다. 상대는 가차 없는 자였다. 일개 스쿨밴드를 상대로 전력을 다하는 자이다. 이대로라면 패배한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나설 때야.”

나는 알이 깨지고 양쪽 다리가 엇갈린 선글라스를 다시 꺼냈다. 유미가 싫어하는 것 같긴 해도 선글라스는 락커의 의지이다. 선글라스를 쓰고 갑갑한 넥타이를 끌렀다. 자켓은 벗어버렸다. 나는 이 대결의 끝을 보겠다.

, 뭘 하려고?”

소란 누나는 나의 등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떠나가는 사내의 옷자락은 구름과도 같은 것. 붙잡으려 해도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나는 누나에게 간략하게 작전 사항을 전하고 유미에게로 다가갔다.

 

 

5.

 

수련을 받을 때 스승님께서 늘 하신 말이 있었다. 기타 솔로는 음악이다. 음악은 듣기에 좋아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는 깊은, 아니 사실은 단순한,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뜻이 담겨 있었다. 내로라하는 테크니션의 연주는 화려하고 다채롭고 때로는 기이하기까지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도록 한다. 하지만 락 매니아가 그리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그런 연주자들은 어떤 취급을 받는가. 이따금 장기자랑 프로그램에 나와서 패널들의 호들갑이나 받아주고 유투브 같은 데 올라가서 실속은 없는 명성이나 얻는 게 전부이지 않은가. 냉철히 말하자면 한국에 기막힌 연주자에 대한 수요는 없다고 봐야 한다. 기타 실력은 그저 내부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최소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승님이 나에게 즉흥연주를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듣는 사람 이해도 되지 않고 쓸 일도 그리 많지 않은 애드립에 집착하느니 차라리 완성된 악곡의 연주와 작곡에 치중하라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승님에게 실력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스승님은 나와 만나기 전부터 이미 실력만큼은 각지에서 알아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습 안 한 자의 변명 따위가 아니라 한 완성된 기타리스트로서의 의견으로서 말이다. 그것이 스승님이 나에게 전해준 가장 큰 유산 중 하나였다.

아마도.

? 왜 이런 부사가 덧붙었냐고? 사실 스승님은 맨 위의 말 말고는 하신 적이 없으니까. 뭔가를 가르쳐 줄 때에도 별다른 말없이 대충 따라하라는 식으로 가르쳐주었고 음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워낙 횡설수설이라 이해할 수도 없는 말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말은 내가 딱히 솔로 못 하는 걸 변명하는 게 아니라 스승님의 말씀에 주석을 다는 것이 제자의 일이고 하니까 스승님의 뜻을 최대한 밝혀서 전승하는 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스승님께서는 나에게 비장의 필살기를 몇 개 전수해 주셨다. 그것은 정말로 필살기였다. 이렇게 배틀을 할 때라든가 막간 타임에 기선제압이 필요할 때라든가 문외환은 물론 어느 정도 기타를 아는 사람 앞에서까지 좀 하는척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궁극의 악곡이었다. 스승님과 마지막 순간까지 연습한 것이 이 필살기였다. 아직까지 한 번도 실전에서 써본 적이 없어서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유미가 무너져가는 지금, 내가, 그리고 우리 밴드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이것뿐이었다.

나는 유미 곁으로 갔다. 유미는 이미 땀투성이였다. 표정에서도 여유가 사라져 보였다.

여긴 왜 왔어

지금은 청년의 턴이라서 유미는 잠시 쉬고 있었다. 놈의 연주가 마무리되면 곧바로 유미가 끼어들어야 한다.

수고했어. 지금부터는 나에게 맡겨.”

자네가? 자네가 어떻게

나는 수신호와 함께 타임을 외쳤다. 청년은 적당히 연주를 마무리 했다.

뭔가요? 벌써 항복 선언인가요?”

역시 놈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나는 말했다.

아니. 선수 교대다. 후반전은 나와 하도록 하지.”

역부족이야! 어떻게든 내가 마무리 하지 않으면

유미는 말했다.

안 그래도 따분한 공격에 지루해하던 참이었습니다만, 그런데 정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의 조사에 따르면 당신은 아가씨의 반도 못 미치는 실력을 갖고 있을 텐데요.”

역시 우리에 대해 조사를 철저히 했군. 놈은 비웃는 투로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그 말을 나를 두려워한 허세쯤으로 생각하면 되는 건가? , 계속 편한 길로 가겠다면야 좋아. 말리지 않을게.”

후후. 당신은 정말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그렇게 해보고 싶다면 해보십시오. 어디 한번,”

녀석은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기타를 맨 채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온다. 웃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볼을 타고 내려오는 머리카락 사이로 웃는 얼굴이 서서히 다가온다. 놈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입가는 귓가까지 찢어질 것만 같았고 미간은 호두껍질처럼 구겨졌다. 놈의 걸음은 기타 잭이 닿는 거리까지 가 멈췄다.

그리고 놈은 스산함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덤벼 보시지요!”

나는 유미에게서 기타를 건네받았다. 지친 얼굴의 유미는 힘내라는 말을 건네준다. 걱정 말라고. 난 선글라스를 썼으니까. 이미 하교 시간은 거의 끝나갔고 관객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지상 최대의 대결이 벌어지는 순간을 놓친 대다수의 하교생들은 평생을 두고 후회하겠지.

내 공격으로 다시 대결이 이어진다. 선공이 중요하다고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이 기술의 핵심은 키와 코드, 모드를 선점하는 데 있느니라. 이 선율의 의미를 지금의 너는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상대가 강자라면 반드시 말려들게 돼 있다.’

대충 곡의 분위기를 선점하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차분하게 필살기의 초식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음울하면서도 멜랑콜리하며 날이 서 있는 멜로디였다. 맛보기처럼, 미처 마무리되지 않아 상대로 하여금 그 뒤를 잇도록 유도하는 느낌의 곡이라고 했다. 이름 하여 천추금강환태격. 무슨 한자를 쓰는지는 모르겠다.

그 뒤에 상대가 들어올 수 있는 패턴은 경직돼 있다. 그리고 보편적인 코드 진행상 상대의 공격은 필히 G마이너를 활용하게 돼 있다. 그 코드를 노려라. 정신을 집중하고 G마이너가 나올 때를 기다려 그 다음 부분을 치고 들어가라.’

G마이너. G마이너. 이 필살기를 연마하기 위해 나는 모든 악기로 G마이너 코드를 연주해 보았다. 나는 절대음감도 아니니까 최대한 그 음의 분위기를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고된 수련 과정을 통해 나는 어느 순간에 G마이너 코드가 와야 할지를 깨우치고 있었다.

나는 순간을 치고 들어갔다. 갑자기 곡 분위기가 변모한다. 높은 음과 낮은 음을 수시로 오가는 공격적인 프레이즈다. 상대는 갑작스런 다이나믹한 변화에 이끌려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공수로 상대는 네가 곡의 일관성 있는 진행을 의도한다고 파악할 것이다. 하지만 기타 배틀은 하나의 곡을 연주하는 게 아니다. 어떤 변주를 주더라도 그것은 공격자 재량이다. 다음 알려줄 초식은 네 기본 테마를 유지하면서 상대의 정신을 혼미케 할 수 있을 것이다.’

놈은 내 변화에 맞추어 더욱 현란한 프레이즈를 선보였다. 하지만 분위기는 나로 인해 또다시 뒤집힌다. 이번에 내가 제시하는 것은 헤비 리프이다. 낮은 음의 반복되는 연주를 깔아주면 상대는 그 위에 올라탈 수밖에 없다. 기타 악곡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리프와 솔로니까. 잠시 둘의 합주가 계속되었다. 나는 리프를 반복했고 놈은 그 위에서 춤을 추었다. 이것이 필살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리프는 솔로의 무대나 마찬가지다. 만일 무대가 갑자기 뒤집어진다면 그 위의 무용수는 자빠지게 된다.

여기서 너는 반드시 너의 소리를 강조해야 한다. 반드시 상대의 연주를 압도하는 상승 선율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이 기술에서 유일한 결점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이미 정해진 연주로는 변화하는 상대의 연주를 압도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구나.’

, 상대를 받쳐주는 입장에서 단번에 곡을 주도하는 입장으로 선회하라는 뜻이다. 그 뒤로는 상대의 반응을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 부분이 이 천추금강환태격의 하이라이트이다.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열반에 오르는 듯한 음의 폭풍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역시 문제는 전환점이었다. 나의 주도가 필요한 순간이 왔다. 나는 소란 누나를 향해 외쳤다.

누나! 지금이야!”

기타를 잡기 전에 미리 누나에게 작전을 일러주었다. 나는 암기한 프레이즈를 따라가는 것만 해도 벅차다. 분위기를 반전할 애드립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필살기는 그 자체로 모순이 된다. 애드립 못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이 필살기인데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애드립을 해야 한다니. 하지만 나는 동료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어쨌든 상대의 소리만 죽이면 되는 거다. 소란 누나의 마법으로 볼륨을 잔뜩 키워 놈의 소리를 묻어버리면 되는 거다!

끼이이이잉

효과는 잔혹하리만큼 좋았다. 주변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귀를 막을 정도로 볼륨이 올라갔다. 당연히 청년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풀 밴드의 합주마저도 눌러버릴 것 같은 음압이었다. 나는 달렸다. 이제 놈이 끼어들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내 독주만이 계속될 뿐이고 내 연주를 받아주지 못한 상대는 패배하게 된다. 필살기 이름의 한자는 모르겠지만 대충 투지가 넘치는 뜻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나의 연주는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그 느낌은 로큰롤의 방방 뜨는 기분도, 스래쉬 메탈의 엉덩이를 조이는 듯한 질주감도, 사이키델릭의 몽롱한 소음도 아니었다. 나의 연주는 깡패와도 같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락커가 쌓아온 속주의 미학 따위는 모두 때려 부수고 오로지 제압만을 목적으로 하는 그런 무자비한 소리였다.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의미 없는 소리였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이 필살기는 오로지 연주자의 허세를 만방에 떨치게 하기 위한 것이니 말이다.

마침내 나는 연주를 마쳤다. 대충 보아하니 청년은 진작 기타를 놓고 있었다. 나의 승리다. 승리 세레모니와도 같은 마무리 선율과 함께 나는 연주를 마쳤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유미와 소란 누나, 아저씨,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강철이 귀를 막은 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치켜들었다. 줄에서 손을 떼자 요란한 잡음이 울렸다. 다급히 볼륨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기타를 내렸다. 멤버들이 다가왔다. 귀가 먹먹해서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상관없었다. 한 명 한 명 손을 마주치고 환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승리를 확신하고 기타를 내려놓으려 했다. 그리 오래 치지는 않았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그만 쉬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나는 내 기타가 잘못된 게 아닌지 급히 살펴보았지만 소리는 그쪽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청년이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좀 전과는 달랐다.

소란 누나가 증폭해준 내 기타소리도 엄청났지만 그 소리는 기껏해야 실내 체육관 콘서트 정도였다. 청년의 이번 반격은, 뭐라 하면 좋을까. 롤링 스톤즈의 리우데 자네이루 공연이라고 들어봤는가? 혹은 메탈리카의 붉은 광장 라이브는? 놈의 볼륨은 마치 그런 수십만이 운집한 콘서트마냥 무지막지했다. 마치 정전기가 온 몸에 흐르는 것 같았다. 저런 간이 장비로 이런 볼륨이 가능한 건가? 아니, 놈이 어둠의 어쩌고 하는 단체에서 왔다면 마법도 쓸 수 있겠지. 아니, 어찌 된 거든 상관없다. 나는 그 엄청난 음압에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이제 관객은 모두 귀를 틀어막고 도망쳐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청년의 연주가 끝났다. 내 차례였다. 나는 멍하니 기타를 들고 있다가 허둥지둥 멜빵을 메었다. 반격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질 수는 없다. 나는 소란 누나를 향해 외쳤다.

누나! 내 볼륨을 더 높여줘요!”

귀가 욱신거려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 이상 높여도 될까!”

상관없어요! 놈을 눌러야 돼요!”

누나는 다시 주문을 외웠다. 나는 볼륨을 개방했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이제는 기타 소리가 신물이 날 지경이지만 해야 한다. 테스트 삼아 잠깐 짧은 프레이즈를 쳐 봤다. 또다시 끔찍한 소리가 쏟아졌다. 조금 전 청년의 소리마저도 뒤덮을 만한 소리였다. 상대도 이 이상은 힘들 것이다. 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초식을 시전했다. 아직은 불완전하지만 스승님이 물려준 필살기중 그 첫 번째를 꺼내들었다. 이름은 Exceed Blaster. 전략이며 스승님의 말씀이며 떠올릴 여유는 없었다. 무작정 달리는 거다.

제길, 나도 내가 뭘 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어떻게 한 소절을 마치니 청년은 재 역습해 왔다. 하지만 절망적이게도 볼륨은 더욱 올라가 있었다.

고막이 터질 지경이었지만 나는 더 높이라고 외쳤다.

그 다음 돌아오는 놈의 볼룸은 다시 올라갔다.

뒤를 돌아봤을 때에는 누나며 유미며 강철, 아저씨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를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난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차, 엠프 볼륨 노브가 보였다. 노브는 반 정도까지만 돌아가 있었다. 엠프에서 직접 나오는 소리에서 증폭이 이뤄지므로 노브를 돌린다면 볼륨을 더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노브를 최대로 돌렸다.

그 다음 내 연주는, 차라리 고문에 가까웠다. 연주를 할 필요도 없었다. 적당히 높은 음에서 밴딩과 하모닉스만 반복해줘도 충분했다.

그러나 청년은 그보다도 더욱 볼륨을 높였다.

나는 결국 이성을 잃고 말았다.

야이, 자식들아! 그만 하고 그냥 한 판 뜨자!”

이것은 서로 죽어보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 이 미친 짓을 더는 지속할 수 없었다. 나는 기타를 거꾸로 쥐고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냥 전부 두들겨 패고 싶었다. 내 귀와 내 영혼은 휴식을 원했다.

그것이 내 최대 실수였다.

무턱대고 뛰어들 게 아니었다. 나는 기타가 엠프와 잭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당연히 전원이 들어온 엠프의 잭을 그냥 뽑을 경우 요란한 하울링이 난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물론 엠프 소리가 수십 배로 증폭되어 있다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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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악.

6.

이번의 결말이랄까, 대략 후일담.

다행히 부상자는 생기지 않았다. 여기서 부상자라 하면 이명이 생겼다든가 귀에서 고름이 흐른다든가 머리에서 락이 떠나지 않는다든가 하는 후유증을 말한다. 내가 구르다가 얼굴과 팔뚝을 아스팔트 바닥에 비벼 경미한 상처를 입고 잠시 기절했던 것은 쳐주지 않기로 하자. 나에게도 양심이란 게 있으니까. 그리고 배틀이 이어지는 내도록 근처 주민들이 밖으로 나와 항의를 하더라도 연주에 열중이던 내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점과 마지막 불의의 사고 덕에 근방 민가며 초등학교의 유리창이 박살났다는 점은 사소한 부작용으로, 그게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불효자입니다.

어쨌든 그날은 학교로 소환되어 조서도 작성하고 학교에 찾아온 주민들께 사죄도 하며 바쁘게 보냈다. 이 일의 주모자로 몰린 것은 나뿐이었다. 강철은 진작 도망쳤고 소란 누나는 3학년인데다 어떻게 연관성을 밝힐 수도 없는 일이고 유미는 리더의 직권으로 면책권을 행사했다. 일을 시작한 게 나고 클라이막스로 밀어 올린 것도 나이긴 하지만 조금 억울한 기분도 든다.

이것저것 장비며 깨진 유리창이며 정리하고 풀려나고 나니 해가 기우려 하고 있었다. 나는 몇 시간 전의 소란이 거짓말만 같은 한적한 언덕길을 터벅터벅 내려오며 사색한다.

결국 난 오늘 무얼 했던 것일까.

내 스토리에 아무런 진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밀려드는 허무함과 노곤함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래도 이번 일로 밴드 이름은 확실하게 알려지겠지. 제대로 된 합주를 보여주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누구도 이번 일을 잊지 못할 거다. 나는 나름 전설로 남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내심 뿌듯함도 든다.

이제야 나오시는군요.”

기분 나쁜 목소리가 내 앞을 막아섰다. 놈은 여전히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그는 혼자였고 그 거창한 차는 어디로 치워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승부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결국 승부는 보지 못한 것 같군요.”

승부? 지금이라도 볼 테냐?”

나는 기타 가방의 지퍼를 내렸다.

아아, 그쪽은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비폭력주의자이거든요,”

비폭력 좋아하시네. 그래서 내 기타를 뺏으려 한 거냐?”

그래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재물을 분배하자고 제안한 게 아닙니까. 결과는 애매하게 되었지만요.”

이제 승부고 뭐고 관심 없어. 내 기타는 못 주니까 여기서 장사를 하든 말든 맘대로 해.”

그 문제라면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기타는 포기하기로 했고 앞으로 아이스크림 장사도 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왜 이렇게 순순히?”

당신의 리더의 수완이 좋았습니다. 당신은 물론 저희의 장비까지도 모조리 다운되어 끝난 이 시합 결과가 무승부로 확정된 것은 그 아가씨 덕분이죠. 저희는 합리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합의 결과를 준수합니다.”

유미가 그랬단 말이지. 선수로 나섰던 내가 판을 깬 데다 기절까지 하고 곧바로 학교로 끌려갔으니 누군가가 마무리를 지어야 했을 것이다. 유미라면 그것이 리더의 임무라며 나서서 협의를 끌고 나갔겠지.

하지만 다음에 또 노리고 오겠지?”

그게 저희 단체의 방침이니까요.”

놈은 또다시 후후훗 하고 웃는다.

하지만 당분간은 마음 놓으셔도 될 겁니다. 우리도 내부 사정이 있어 바쁘거든요.”

다음에 또 보면 곧바로 기타 샷부터 시작할 거다.”

그러시든지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빨리 사라져버려.”

. 그러지요. 그럼 안녕히.”

놈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돌아서 가버린다. 나는 놈의 뒤통수에 대고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때 놈이 갑자기 멈춰 선다. 나는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놈은 말했다.

리더 아가씨를 잘 보필해 주시길 바랍니다.”

유미를 보필하라니 내가 무슨 종이라도 되는 줄 아나. 놈은 슬쩍 뒤를 곁눈으로 보는 듯하더니 다시 걸어 나갔다.

뭘 어쩌자는 거야.

우리 집으로 가려면 아래쪽 문방구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서둘렀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매우 피곤했기에 빨리 집에 가서 한숨 자고 싶었다.

문방구 아저씨는 다음 주에 뵙기로 했다. 이번 일의 시작이었으니 결말도 아저씨와 지어야겠지만 지금은 쉬는 게 우선이다. 뒤풀이도 내일이나 되어서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멤버들에게 연락도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문방구에서 꺾어지는 모퉁이를 서둘러 돌았을 때였다.

아앗!”

으악! 뭐야.”

문방구에서 막 나온 유미와 부딪힐 뻔 했다.

유미잖아.”

부딪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그랬다면 온갖 트집을 잡아서 날 패대기쳤을 테니까.

뭐지? 그 반응은? 꼭 어쩌다 여자애랑 부딪힐 뻔 했는데 얼굴을 보지 못한 그 순간 미연시에서나 볼 법한 음흉한 시추에이션을 상상하고는 상대 얼굴을 확인했는데 알고 보니 나라서 실망했다는 식의 반응인데?”

? 난 그런우헉!”

유미의 촌경이 내 명치에 꽂혔다. 제발 대답할 기회라도 주란 말이야!

, 그럴 리가 있겠냐

? 그게 아니라 여자애랑 부딪혀서 신체 접촉을 할 기회였는데 닿기도 전에 멈춰버려서 속상하다고?”

아냐! 아냐! 결코 길 가던 중 사람이 튀어나오니까 동물적인 반사작용으로 멈춘 것밖에 없어!”

아하, 일단 멈춰 서서 부딪힐지 말지를 정했단 말이야?”

그만하자나 피곤해

이 녀석은 피곤하지도 않나.

유미는 나를 기다리다가 하도 나타나지 않길래 직접 교무실로 찾아와보려는 참이었다고 했다. 언제 끝날 줄 알고 기다렸냐고 물으니 자기도 아이스크림 청년과의 협상이며 음향 장비 정리, 문방구 정리 등 자질구레한 뒷정리를 하고 나니 꽤 시간이 지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기왕 늦은 김에 내가 나오면 같이 돌아가려고 했다고 했다.

그보다 자네는 일이 끝났는데도 왜 보고를 안 했어? 만일 내가 문방구 안에서 차 한 잔을 더 마셨으면 길이 완전히 어긋났을 거 아냐.”

네가 기다릴 줄은 몰랐지.”

기다리든 안 기다리든 일이 끝나면 리더에게 보고하는 게 자네의 의무야. 아직도 모르겠니?”

네에, 네에, 알겠습니다 리더님. 그보다 난 빨리 집에 가서 자고 싶은데.”

이번 일에도 징계가 따를 거야. 물론 앞서 판결한 실형 말고도 소란 언니 부려먹은 거 하며 장비 날려먹은 거 하며 등등. 형량이 아주 길어지겠지? 물론 밴드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니까 사법거래 따위도 생각해볼 수 있어. 그 경우 등가교환의 원칙에 따라 형량에 일대일로 해당하는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알았으니까, 나 졸리다니깐.”

그러니까 자네는 일종의 채무자라고.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육체와 영혼에 대한 절대적 배타적 권한이 있는 거 알지? 앞으로 많은 걸 베풀며 살게 될 거야.”

이제는 반박할 힘도 들지 않는다. 나는 발길을 돌렸다. 나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뿐이었다.

잠깐 기다려봐.”

유미는 그렇게 말하고는 문방구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올 때엔 양손에 아이스크림이 하나씩이 함께다. 아이스크림 차에서 팔던 콘 아이스크림이었던 것 같다.

이거 마법이 걸려 있다며? 수상해서 사봤어. 아저씨네 냉장고에서 보관하고 있었으니 상태는 좀 안 좋지만.”

유미는 양 팔을 내민다. 층별로 색색이 쌓인 아이스크림 두 개.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자 유미는 말한다.

뭐해? 설마 두 개 다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착각하지 말길 바라는데 하나는 내 거야. 하나라도 먹게 해주는 걸 다행으로 알아.”

나는 씩 웃으며 왼쪽의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마법이 걸린 아이스크림이래서 뭔가 특별한 맛이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 아저씨네 아이스크림보다 조금 맛있는 정도?

. 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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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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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5)

ㅇㅇㅇ 10.12.02. 01:57
출품작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읽은 것 중에서는 개인적으로 최고점을 드리고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ㅁㅁㅁ 10.12.02. 19:37
현재까지 본 판라대 참가작 중에서 가장 라이트노벨다운 글이고 잘쓴 건 확실합니다. 다만 본작 자체로 완결성을 갖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작이 완벽하게 독립된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죠. 연작이라면 모를까요. 그런 특성탓에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실수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마법소녀가 너무 갑툭튀하고, 주인공이 겪은 비일상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사실 좀 이질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비일상적인 요소를 빼고 순수하게 밴드활동만을 부각시켰어도 충분히 재밌었을텐데 너무 그런 것에 연연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작품 전반에 흐르는 개그코드 중 주인공 본인이나 주변인물이 서술이니 묘사니, 현재 상황이 '소설'임을 의식하고 내뱉는게 재밌지만 이질적입니다. 이런 개그코드는 여러모로 글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지고 오니까요. 더불어 중요한 개그코드가 히로인과 관련된 개그인데 재밌었냐고 하면 글쎼요. 부정적입니다. 원래 폭력, 갈굼 개그를 거북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다, 여기서 사용된 폭력, 갈굼개그는 재치가 없는지라 히로인의 매력만 까먹은 것 같습니다. 만약 이게 정식 라이트노벨이었다면 소란과 초딩에게 밀렸을 것 같습니다. 뭐 원래 폭력녀 히로인이 그렇지만서도요(…)
하늬비
하늬비 10.12.03. 12:49
절정과 결말의 전개가 적절했던만큼, 캐릭터적인 생명력이 다소 아쉽습니다.
가령 초반부의 경우에는 아이스크림차 청년의 악당적 언행이 전개의 열쇠인데, 전반적인 청년의 대사가 충분히 세련되게 독자의 속을 긁었다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승자와 패자론'이나 일상언어보다 격이 높은 어휘를 사용해서 캐릭터를 만들려 했는데, 그게 딱 맞는 옷처럼 붙지 않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연작 형식을 선택함으로써 부족한 부분을 독자의 상상에 넘기고 있는데, 그래도 캐릭터 각각의 개성(매력)은 충분히 설명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악역, 주인공, 동료1`2`3은 다 살리기에는 아무래도 분량상 무리수였는지... 초등학생 강철의 경우에는 개성이 확 살아나지도 않았으면서 아예 엑스트라인 것도 아니어서 어중간한 느낌입니다. 소란은 아법이 너무 복선 없이 튀어나온 것이 이질감을 부추겼고, 유미도 특징적인 말투와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데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

'문장개그'의 이질성은 저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폭력개그에서의 액션이 밋밋하다는 점(챕터2 종반)도 걸렸고요. 개인적으로 폭력개그를 좋아하는데, 좋아해서 좀 엄격하달까, 호흡을 조절하고 너스레를 떨어주는 센스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함량미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도 수작임
ㅁㄴㅇㄹ 10.12.07. 01:23
상당히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밴드간의 배틀 부분에 대한 묘사가 좋네요. 음악이라는 청각적 요소를 글로 풀어내는게 쉽지 않았을 텐데, 자연스럽게 잘 쓰신 것 같네요. 전형적이고 탄탄한 라노베적 구성 위에 밴드에 대한 전문적이고도 자연스러운 묘사가 돋보이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시작 부분을 봐도 그렇고, 장편 라노베 속의 독립적인 에피소드 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그걸 감안해서 읽는다면 마법소녀 등의 설정이 아주 뜬금없게만 느껴지지는 않네요. 개그 코드도 무난하니 재밌었습니다.
cloud.9
cloud.9 10.12.14. 02:30
아무래도 우승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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