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Cherry Smile, 그대의 미소 - 데꼬드씨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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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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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로 가는 길목엔 멋진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희고 화사한 내부와 예쁘게 놓여 있는 아이스크림과 케이크, 바깥에 놓인 예쁘장한 나무 테이블, 어서 오시라면서, 올 여름엔 아이스크림 어떻냐며 웃고 있는 멋있는 오빠의 입간판, 상큼하게 웃어 줄 아르바이트 언니. 정말 멋진 가게다. 웃음을 줄 손님이 한명도 없는 게 문제지만. 없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르바이트 언니의 시선을 살짝 피해 목적지로 다가간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Cherry Smile, 그대의 미소

-1-


엄마가 아파트 상가 앞에 어떤 언니가 아이스크림 카트를 끌고 와 동네 아이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고 있길래 한번 먹어 봤는데, 맛이 진짜 끝내준다고 이야기했다. 자기는 그게 하루 이벤트인줄 알았는데, 이틀 전부터 공짜로 나눠주고 있었다고 하며 싱글싱글 웃었다.

뭐야 그게, 하면서 다음날 방과 후 상가 쪽에 가 보니 정말 카트가 있었고 아이들이 우글우글 몰려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미 아이스크림을 받은 아이들도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나도 줄을 섰고, 별 생각 없이 받아먹었다.

충격 받았다.

마니아처럼 심각하게 따지는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아이스크림을 가려먹는 내 입에도 이건 진짜 맛있게 느껴졌다. 엄마가 한 말맛있어, 진짜 끝내줘을 넘는 수준,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파는 수준 이상이었다.

난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찾아가 하나씩 받아먹었다. 3일째엔 친구들을 불러 함께 받기도 했다. 아이스크림 언니는 미소 지으며 맛있게 드세요, 하고 말했다. 친구들은 그 강도가 제각각이긴 했지만 어떤 맛을 먹었든 다 호평했다.

친구 중 한명이 언니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이스크림 맛있다. 언니, 가게 새로 오픈하세요?”

그러자 그녀는 그냥 웃으며,

아니, 취미생활이야.”

하고 답했다. 친구는 잠시 멍해져 있다 돌아와선 이게 취미래, 취미라고! 우와! 하면서 소릴 질렀다. 하긴, 신장개업 하는 거 홍보라고 해도 몇 백 명분의 아이스크림을 매일 공짜로 뿌리는 게 말이 되냐. 아니, 취미라고해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어디 재벌집 아가씨얼굴선이 가늘고 예쁘게 생긴 게 살짝 귀족의 향이 났다가 아이스크림 만드는 데 취미 들려서 저러는 게 아닐까, 하고 엄청나게 큰 주방을 상상하며 핥았다. 여름이 다가온 탓일까, 온 몸이 행복에 겨워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상가 너머에 있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살짝 봤다. 역시나. 손님이 없었다.

다음날, 하굣길이 반대쪽인 친구들 사이에도 공짜 아이스크림 소문이 쫙 퍼졌다. 줄은 어제보다 훨씬, 훨씬 더 길어져 상가 주위가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언니는 지난날들과 다를 것 없이 웃음과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고 있었다. 혹시 어떤 방송국에서 실험하는 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개인들이 폰카로 촬영하는 것 말고 특별히 이렇다 할 건 없었다. 아직 맛보지 못한 아이스크림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언니는 내일도 올 거죠? 하는 남자애의 목소리에 조용히 응, 이라고 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언니가 없었다.

아아, 아가씨가 오자마자 경찰들이 덮쳤어.”

하고 경비실 아저씨가 말했다.

왜요? 왜 경찰이 왔어요?”

아아, , 영업방해인가, 뭐 그렇다는 구나. 한참 싸우다가 결국 붙잡혀 갔어. 하긴 그 아가씨가 아이스크림을 매일 매일 공짜로 나눠주니까 사람들이 다른 걸 사먹겠어? 특히 저기, 저기 있는 아이스크림 주인 양반이 난리를 쳤겠지.”

그렇구나.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디 대기업에서 아이스크림을 뿌려 저 집 아이스크림 가게의 입지를 위태롭게 할 생각이었거나 그런 거인 모양이다. 언니의 얼굴이 예뻤던 건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였으리라. 취미라는 것도 거짓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취미로 몇 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해프닝이었을 뿐이다,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매일 먹던 아이스크림이 사라지고 나니 그 맛이 그리워졌다. 먹지 못한 다른 아이스크림의 맛은 어떨까, 하는 기대가 온 몸을 휘감았다. TV 광고에 나오는 잘 생긴 오빠가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눈에 박혔다.

다음 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없다. 나 말고도 몇몇 기대한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지만 경찰한테 붙잡혀갔다니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디선가 아이들이 떼쓰는 소리가 들렸다. 놀이터, 흔들흔들 거리는 그네에 그녀가 앉아 있었고 그 주변에 아이들이 너도 나도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어른들도 몇몇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그날들과 다를 것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아이스크림 카트는 없었다. 오늘은 안줘요? 오늘은 안줘요? 오늘은 안줘요?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얼굴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게 느껴졌다.

미안. 앞으로 아이스크림 주면 안 된대.”

싫어, 아이스크림 쭈세요.”

코맹맹이가 말했다. 그녀는 계속 미소 짓고 있을 뿐이다. 천천히 아이들이, 어른들이 사라져간다. 투덜투덜 거리는 소리. 괜찮아, 저기서 아이스크림 사줄게, 하는 소리. 수많은 개미들이 뼈밖에 남지 않은 시체에서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언니는 홀로 그네를 흔들어 하늘까지 갔다, 다시 땅으로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어린애들만 상대하다 갑자기 중학생이 인사해서 그랬을까, 언니는 바로 벌떡 하고 일어섰다 가슴을 손으로 살짝 누르며 미소 지었다.

, 안녕.”

나는 그녀의 옆, 주인 없는 그네에 앉았다. 내가 앉자 그녀도 앉았다. 전에도 느꼈지만 선이 정말 가늘다. 아이스크림을 나눠줄 때는 몰랐는데 양 뺨이 며칠 굶은 사람처럼 살짝 들어가 초췌한 느낌까지 들었다.

이젠 아이스크림 안 나눠주시나 봐요.”

다시 그녀가 조금, 아주 조금 하늘로 날아오른다.

, 앞으로 나눠주면 안 된대. 카트도 압수당했고. 다음에 또 이러면 정말 가만 안 둔대.”

아까워.”

, 아깝지.”

언니, 정말 취미였어요?”

아무 말도 없다. 내 질문의 의도가 뭔지아무래도 중학생이니까파악했으리라. 침묵이 감돈다. 삐걱, 삐걱. 그네 흔들리는 소리가 오랫동안 주변을 감돌았다.

. 취미였어.”

정말 맛있었는데. 그런 걸 취미로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며칠 동안 뿌리는 건 좀 이상하잖아요.”

이상해도 그래. 그 아이스크림, 팔려고 만든 거 아니야. 경찰에선 이해해주진 않았지만.”

가게 내도 될 정도였는데.”

그녀가 웃었다. 한참동안, 삐걱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계속 웃었다. 그녀는 웃음을 쓸어낸 뒤 아주 작게 박수를 치고 말했다.

가게 같은 건 절대 안 열거야.”

아까웠다. 정말, 정말, 정말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온 몸에서 아이스크림 주세요, 하는 소리가 나게 만든 아이스크림이었는데. 혀가, 혀가 제멋대로, 제멋대로 움직인다.

그렇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줄 알면서 장사 안 하면 아깝잖아요. 또 먹고 싶은데, 정말.”

그녀가 말했다.

정말, 또 먹고 싶니?”

, !”

그래……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받친 채 또 말을 잃었다. 그러다 멀리, 하늘로 날아갔다 돌아오고 또 하늘로 되돌아가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니?”

평가, 평가를 바라는 게 분명하다. 이 언니는 아이스크림 만들기가 취미라고 했다. 대기업에서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있는지, 뭔가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서 그런 일을 벌였던 게 분명하리라. 맛있다는 소리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일 지도 모른다.

어떻게, 뭐라고, 뭐라고 말해야 되지? 언니는 정말이지 멋져요? 아냐, 더 화려하게, 더 화려하게 말해야 돼. 정말, 정말 맛있었으니까. 뭐라고 해야 되지? 뭐라고, 뭐라고! 생각해보자, 뭔가 좋은 표현이 있을 거야. 국어책, 국어책. 펼쳐져라. ! !

, 전에 본 적 있어?”

?”

없다.

아뇨……

그렇구나……

그래도, 정말 언니 아이스크림은 다시 한 번 더 먹어보고 싶어요.”

그래?……

그녀는 다시 말을 잃었다. 경찰서에까지 다녀온 사람한테 괜한 소리를 했나, 싶어 괜히 그네 줄을 흔드는데 그녀가 말했다.

사실 집에 조금 남은 게 있는데.”

정말요?”

지금은 주기 뭣하고, 주소 알려줄래? 내가 가지고 갈게.”


언니가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올 거라고 말하자 엄마도 무척 좋아하며 생글생글 웃었다. 요즘 일이 조금 바빠서 못 갔었는데 갑자기 없어졌다는 말을 옆집 아줌마한테 들어서 아쉬웠었는데 잘 됐다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인터폰에 언니의 얼굴이 비쳤다. 언니는 한쪽 어깨에 작은 아이스박스를 메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엄마가 먼저 달려 나와 손을 잡고 붕붕 흔들며 말했다.

어머나 어머나, 정말 오랜만이에요. 나 기억해요?”

? , 아뇨…… 죄송합니다.”

들어와요, 어서. 차라도 한잔,”

아뇨. , 조금 바빠서. 시간 쪼개서 온 거에요. 아이스크림만 주려고…… 맛은 몇 개 없지만,”

하고는 앉더니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어 안에 있던 아이스크림 주걱을 꺼내 엄마에겐 녹차를, 내겐 슈퍼 후르츠를 줬다. 엄마는 살짝 베어 문 뒤 뺨을 매만지며 말했다.

딸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가게 낼 생각 전혀 없어요? 정말?”

.”

아깝다 정말. , 집안 사정이 나빠서 그래요? 이 정도면 어디 은행가서 사업 하겠다고 하면 오케이 해 줄 것 같은데. 저기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집보다 더 맛있는 것 같은데.”

고맙습니다.”

뭐 고마울 거까지야. 아깝네, 정말 아까워. 아무튼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저두요.”

, 그래, 하고 그녀는 아이스박스를 닫고, 내 얼굴을 잡았다. 그리고 무척 가까이 다가왔다. 언니가 선이 가는 미인이라서 그런지 살짝 부끄러워졌다.

맛있게, 먹어.”

작게, 속삭인다. , 하고 답하려 얼굴을 살짝 들었다.

정말 순간이었다. 내가 본 그녀의 입은 분명 미소였다. 하지만, 내가 본 건……

안녕히 계세요.”

차라도 마시고 가지 정말. 아무튼 고마워요.”

뭐였을까? 갑자기 다리가 떨려왔다. 난 얼른 아이스크림을 엄마 손에 쥐어주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얼른 팬티를 내렸다.

지렸다.

엄마가 뭐니 너 정말! 배웅도 제대로 않고! 하며 채근했다. 그거 말고 다른 소리가 없는 거 보니 화장실에 들어와서 이렇게 된 모양이다. 다행이야. 씻고 예비로 둔 걸 입으면 되겠지. 잘 참았어. 정말, 정말 다행이야.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너무 무서워 견딜 수 없는 눈빛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나눠줄 때 보여준 맑은 미소가 아니었다. 그건 오랜만이야, 이제 갈 시간이야, 하고 말하는 저승사자의 입 꼬리였다.

다리 힘이 살짝 풀렸다. 뭐라도 먹어야 될 것 같다. 맞아, 아이스크림.

엄마, 나 아이스크림.”

진짜 얘는! 화장실에서 무슨 아이스크림이야!”

아이스크리임!”

살짝 문을 열어 손을 내밀자 콘이 잡혔다. 얼른 들고 들어와 핥았다. 맛있다. 진짜 맛있다. 녹아내리는 걸 핥으며 다시 그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는 왜 그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 이렇게 맛있는 걸 만드는 사람인데……. 알 수 없었다.

배가 차가웠다. 아랫배를 누가 쿡쿡 찌르는 것 같아. 그래도, 맛있어. 맛있어, 맛있어, 맛있어, 하며 혀가 계속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배 아파. 몸이 조금씩 아래로 숙여졌다.



-2-


지금보다는 조금 선선한, 여름보다 봄에 가까운 날이었을 것이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중 한 아이가 손에 길 너머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었다. 살짝 짜증이 나 고개를 돌리려 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날 바라봤다. 그녀는 보란 듯이 분홍색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떠 입에 쏙 넣고 빼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무 비참한 기분이 들어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우리 집은,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넌 내 얼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지만, 그렇지만, 내가, 내가 어떻게 네 얼굴을 잊을 수 있겠니? 그 당당해 보이는 얼굴을, 그 굴욕감을, 어떻게, 어떻게 잊을 수 있겠니?


§


아빠는 정말 자신만만했다. 엄마가 죽은 뒤, 아빠는 회사에서 나와라곤 했지만 사실상 해고였다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거라고 했다. 무리, 절대 무리! 라고 했지만 아빠는 내가 어설프게 생각하는 거 같냐며 웃었다.

아빠는 근 1년 동안 전국의 아이스크림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웠다. 체인점을 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지만, 아빠는 그래서는 내가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없잖느냐, 며 내가 도전정신 없는 겁쟁이라고 했다. 그게 왜 그런 게 되냐고 하고 싶었지만 아빠의 열정이 대단했다, 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여행 끝에 어떤 장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 분의 비법을 전수받았다. 아빠의 아이스크림은 처음엔 메로나만도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맛이 좋아지더니 어느 새 아이스크림 체인점들 이상 가는, 스승보다는 못하지만 그만큼 훌륭한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내게 더 배울 게 있겠나. 그 이상은 자네가 알아서 개척해야지. 열심히 해 보게.”

졸업장을 받은 아빠는 연신 감사해했고, 스승님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빠는 조금 무리를 해서 스승이 준 설계도대로 새 냉장고를 만들고 아파트 상가에 가게를 열었다. 친척도 없고, 엄마가 죽은 이후라 외가에 손을 벌릴 수도 없었지만 어떻게 은행에 빚을 내 자그마하게나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테이크아웃 전용 가게였지만 처음에는 나름 장사가 잘 됐다. 아빠는 집에 올 때마다 오늘도 많이 팔았다며 즐거워했다. 아빠의 밝아진 얼굴, 미소를 볼 때마다 기뻤다.

나는 아빠에게 조금씩 기술을 전수받았다. 아빠만큼 소질이 없었던 탓인지 그만큼 맛이 나오지 않았지만, 아빠도 내가 아이스크림 하는데 너까지 배울 필요가 있겠냐, 했지만 좀 막무가내로 가르쳐 달라고 했다. 아빠는 지쳐, 귀찮아, 하면서도 내게 기술을 가르쳐주며 즐거워했다. 엄마가 죽은 이후 사라졌던 빛이 다시 스며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황금시대는 얼마가지 못했다.


상가 건너편 길에 커다란 아이스크림 체인점이 들어섰다. TV 광고에서 자주 보던 바로 그 체인이었다. 시작부터 공짜 시식에 들어간 바람에 아이스크림을 하나도 팔지 못했다고 했다. 아빠는 그럴 수도 있다고 내게 말했지만, 며칠 뒤 가게에 들렀을 때 아르바이트생 없이 아빠 혼자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걸 보니 상황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휴학계를 급히 제출하고 아빠 대신 카운터에 앉았다.

괜찮아요 아빠. 이렇게 맛있잖아. 잘 될 거예요.”

하고 아빠가 만든 민트 아이스크림을 떠 주었다. 아빠는 몇 번 베어 먹은 뒤 웃어줬다. 나도 함께 웃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손님 숫자가 줄어드는 게 확연히 보였다. 터진 적도 있었다던 포스 기계 안엔 기본적으로 준비해놓는 거스름돈밖에 없었다. 몇 번씩 손님이 오나 안 오나 체크하려 슬쩍 슬쩍 바깥을 보던 아빠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주방에 들어가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고, 나는 카운터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분홍색 무늬가 박힌 종이에 감싸인 아이스크림을 든 사람들이 앞을 지나갈 때마다 심사가 뒤틀렸다. 전단지를 만들어 아파트에 돌려도 봤지만 인쇄비만 날렸다.

괜찮아요 아빠. 조금만 있으면 여름이잖아.”

하며 웃었지만, 내 미소로는 아빠의 얼굴에 몰려오는 겨울을 막을 순 없었다.


며칠 뒤, 아이스크림이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그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내가 가게 셔터를 올리려 하자 아빠가 내 손을 잡았다. 손목이 어느 새 나만큼 가늘어져 있었다.

오늘은 쉬자.”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어제도 허탕, 엊그제도 허탕.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기분이었다. 셔터를 내려놓은 뒤, 아빠는 자기가 만들었던 아이스크림들을 조금씩 떠먹었다. 그러다 내게 이만 집에 가 보려무나. 난 좀 가 볼 곳이 있다, 했다. 난 이상한 짓 하지 마, 딸 아빠밖에 없는 거 알잖아, 하고 집에 돌아갔다.

TV를 보고 있는데 잘 생긴 배우가 그 체인점 광고를 하고 있었다. 아니, 못 생긴 배우가 그 체인점 광고를 하고 있었다.

아빠는 그날 엄청나게 취해 온 몸을 배배꼬며 돌아왔다. 침대에 눕히려는데 갑자기 날 밀치고 온 집을 뛰어다녔다. 그만해, 그만! 이라고 하며 붙잡아도 어떻게 내 품에서 벗어나 제 멋대로 뛰어다녔다. 여기 저기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러다 냉장고로 뛰어가 냉동실을 열고 아이스크림을 마구 퍼먹었다. 그리고 비명을 질러대며 말했다.

이렇게 맛있어, 이렇게 맛있다고. 그딴 가게 것보다 이게, 스승님이 전수해준 이게, 내가 만든 이게 훨씬 더 맛있다고!”

아빠는 아이스크림 통을 집어던진 뒤 오열하다 한껏 토한 뒤 기절했다. 아빠를 부축해 침대에 눕히고 겉옷을 벗긴 뒤 입을 닦아주고 토한 걸 처리하다 완전히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발견했다.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아빠가 토했던 것들처럼 흐물흐물해져버렸다. 눈물이 한 방울씩 그 위로 떨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주방 선반에다 소주병을 넣어놓고 시도 때도 없이 마셨다. 그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아이스크림은 팔리지 않았다. 어쩌다 아이가 와서 엄마를 조르는 통에 겨우 겨우 한 두 개 파는 게 고작이었다. 맛은 칭찬받았지만 단골이 되진 않았다. 며칠 뒤에 보면, 그 아이의 손엔 체인점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다.

괜찮아. 아빠, 괜찮아.”

하며 아빠를 감싸줘도, 아빠는 감싸지지 않았다.


그만두련다.”

하고 아빠가 말했다. 하나도 못 판 날이 전에도 몇 번이고 있었지만 아빠 입으로 그만두련다하는 말이 나온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무슨 소리에요 아빠.”

더 하면 뭐하냐. 가게는 콩만한 주제에 월세는 비싸지. 아이스크림은 새 걸로 만들어놔야 되는데 장사는 안 되지. 더 해서 뭐 어쩌자고. 그만두련다.”

아빠!”

아빠가 아이스크림 주걱으로 아이스크림이 가득 들어 있는 냉장고를 퉁퉁 치며 말했다.

너도 나한테 뭐 배운다 그런 생각 관두고 다시 학교로나 가. 알아서 살 길 찾아야지.”

아빠……!”

그만 할래, 그만 하련다.”

냉장고에 기대 스르르, 무너져 내린다.

진짜 더는 못하겠어.”

괜찮아. 아빠, 괜찮아. , 아 해봐요.”

얼른 민트맛 아이스크림을 떠 왔지만 아빠는 먹지 않았다.

질려.”

그럼, 그럼 우리 무료 시식행사라도 해요. ? 할 수 있어. 우리 할 수 있다니까. 아빠, 제발 기운 차려요.”

넌 저 사람들을 믿는 거냐?”

아빠는 주방 창밖을 가리켰다. 맑은 날, 빛이 쏟아지는 거리, 거기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공짜로 나눠주면 저 사람들 정말 좋아할 거다. 잠깐은 뭐가 되는 것처럼 보일 거야. 그런데 말야, 그래봐야 우릴 싸구려로 만드는 것밖엔 안 돼. 우리가 그랬는데 저쪽 가게에서도 공짜로 시식 행사하면 어떻게 할 거냐? 감당할 수 있어? 저쪽 가게에서는 행사 할 필요도 없다고 여길 지도 몰라. 잠깐 반짝하다 손해만 잔뜩 볼 거라고. 행사 끝나면 다 빠져나가버릴 거야. 관두자, 이젠 관두자.”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난 아빠의 스승님께 연락해 아빠와 통화를 시켰다. 얼마나 통화했을까, 아빠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스승님은 성공했으니 제가 어떨지 절대 모를 겁니다!”

아빠는 거칠게 핸드폰을 닫고 소주를 벌컥 벌컥 들이키다 이내 잠들었다. 나는 가게 셔터를 내렸다.


아빠가 아이스크림 만드는 걸 거부했기 때문에 가게 문을 열어놓을 수 없었다. 난 임시휴업 패를 내걸었고, 아이스크림들은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요 아빠. 잠깐 쉬어요. 기운 차리고 나면 우리, 다시 가게 열기로 해요.”

아빠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아빠는 가게 문을 닫아놓은 상태로 아이스크림을 대량으로 만들어 냉장고를 채워 나갔다. 다시 일어설 각오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빠의 아이스크림은 여전히, 아니, 더 맛있어지고 있었다. 아빠는 꼭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스승님은 내 이야기를 듣곤 다행이라며 옆에서 잘 도와주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셔도 잘 도와주고 있답니다. 에헴.

난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3-


밀린 가게 월세와 빚을 갚고 나니 가게 보증금 따윈 한 푼도 남지 않았다. 오히려 적자였다. 가게에 있던 물건들 중 냉장고를 빼곤 모두 중고상에 팔아넘겼다. 다 넘겼지만 냉장고는 도저히 넘겨줄 수 없었다. 비록 스승님께 설계도를 넘겨받아 만든 거긴 하지만 이건 아빠가 만든 것이고, 아빠가 만든 아이스크림들의 집이니까.

집으로 가져온 뒤 열어보았다. 아이스크림들이 예쁘장하게 차곡차곡, 잘 정렬해 있었다. 한 녀석의 뚜껑을 열어 살짝 떠먹어 보았다. 여전히 맛있었다. 한 번 더 먹었다. 맛있다. 한 번 더. 정말, 정말 맛있어. 맛있는데, …….


아빠는 내게 재료가 부족하니 시장에 가 보라고 한 뒤, 가게 셔터를 내리고 목을 매 죽었다.

아빠의 장례식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외가엔 연락도 하지 않았다. 자살이라는 것 때문인지 상가 사람들도 오지 않았다. 이젠 나 혼자였다. 나 홀로, 나 혼자. , 혼자……


복수가 하고 싶었다. 아빠를 죽인 녀석들한테 복수를 하고 싶었다.

아빠가 남긴 아이스크림은 작은 콘에 담으면 족히 몇 천 명이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잠깐이라도 좋아. 엿이나 먹어라.

난 카트를 임대해 아이스크림을 가득 담아 전에 가게를 냈었던 상가 앞에서 공짜로 나눠줬다. 처음엔 이거 뭐냐고 하던 사람들은 금방 아빠의 맛을 알아줬다. 수 십 명이 수 백 명으로 불어났다. 아빠의 아이스크림들은 금방 바닥까지 내려갔다. 맛있다, 맛있다하며 또 손을 내벌리는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짜증이 솟았다. 이 아파트 단지에 이렇게 많은 애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그 작은 입에 아이스크림을 쑤셔 박고 씨발놈들아 그래 맛있지 많이 처먹어라 하고 말하고 싶었다. 정말 끔찍한 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날, 아빠의 아이스크림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경비아저씨마저 날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참 이쁜 아가씨네, 어디서 왔수? , 나도 하나 좀 주게나.

그래도 난 미소 지어야 했다.

맛있게 드세요.”


나누어준 지 한주 정도 되었을까, 아이스크림들이 바닥날 때 즈음 경찰들이 카트를 덮쳤다. 영업방해로 신고가 들어왔다고, 이런 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나눠주는 게 말이 되는 짓이냐고. 취미로 만든 걸 사람들하고 나눠먹는 게 뭐 어떻냐고 항변했지만 결국 경찰서로 끌려갔고, 사정사정하다 아이스크림을 나눠준 뒤에야 겨우 훈방조치 되었다. 하지만 카트는 되돌려 받지 못했다. 카트를 빌려준 중고상 아저씨는 대체 무슨 멍청한 짓을 했냐며 엄청나게 욕을 했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로 돌아가자 아이들이 내게 가득 달라붙었다. 아이스크림 쭈세요, 쭈세요. 씨발, 저리 꺼져, 하려는 날 달래기가 너무 힘겨웠다. 미소를 지었다. 앞으론 아이스크림을 못 나눠줄 것 같아, 하고 말하며.

그 계집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걸 떠올리자 온 몸에서 쾌감이 솟아올랐다. 승리감이었다. 요 며칠간 텅텅 빈 아이스크림 체인점을 볼 때마다 느낀, 그 승리감. 그 아이가 내 맘을 제대로 알아먹은 덕에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졌다.

오늘도 체인점은 여름이 다가오기 직전임에도 텅 비어있었다. 며칠 동안은 그 여파가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신 오지 않을 아이스크림 카트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손이 그거보다 딱히 맛있지도 않은 5천원 1만원씩 하는 아이스크림에 선뜻 손이 갈까. 아주 잠깐이겠지만 정말 골이 썩어 미칠 게다. 나는 아이스박스를 열어 남아있던 아이스크림을 살짝 떠먹었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진짜, 맛있어……

아빠의 맛.


집엔 아무도 없다.

당연하지만.

다녀왔어요.”

하고 안방에 들어갔다. 커다란 냉장고가 웅웅하는 소리를 내며 나를 반겼다. 아빠와 달리 크고 듬직하게 생겼지만 난 녀석이 아빠처럼 느껴졌다. 웅웅 하는 소리는 어 그래 왔니?’처럼 들렸다. , 다녀왔어요, 하고 문을 열었다. 종류별로 깨끗하게 정리된 각종 맛의 아이스크림들이 작은 통에 담겨 정렬해 있었고 아이스크림 재료들도 아이스크림들에 지기 싫은지 예쁘게 정렬해 있었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 먹었다. 맛있어. 또 하나 더 꺼내 먹었다. 맛있어. 또 하나 더 꺼내 먹었다. 진짜, 진짜 맛있어, 행복해. 몸이 마구 떨리는데도 난 아이스크림을 마구 꺼내 먹었다. 맛있어서 견딜 수가 없어.

그럼 뭐해, 아빠는 죽고 없다. 가게도 잃었다. 남은 건 이 집과 냉장고뿐이다. 눈물이 마구 터져 나왔다. 어차피 잠시일 뿐, 여름이 완전히 오면 아이스크림 가게는 다시 손님들로 넘치게 될 거고 아빠의 아이스크림은 그냥 공짜로 풀던 아이스크림으로 기억되다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게 될게다.

지쳤어.

아빠의 말대로, 지쳐버렸다.

아빠, 아빠…… 보고 싶어요.

꺼냈던 아이스크림들을 다시 차곡차곡 쌓아 넣는데 냉장고 한켠이 텅 빈 게 눈에 띄었다. 아이스크림들이 빠진 자국이었다.

아이스크림은 아빠의 아이들. 냉장고는 아이스크림들을 지켜주는 곳. 나는 아빠의 아이.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마다 미소 지었다. 1년 동안 전국을 돌며, 스승님 아래서 아이스크림을 만들며, 맛없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나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나, 언제나. 그 미소가 보고 싶었다. 녹아내리기 전의 그 미소가 보고 싶었다. 거기에 기대고 싶었다. 거기 잠기고 싶었다.

아빠, 보고 싶어요.

나는 냉장고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몸이 조금씩 떨려왔지만 외로운 기분이 들진 않았다. 내 형제 중 한명의 몸에 손을 넣어 떠 입에 넣었다. 맛있었다. 뱃속까지 차가워졌지만, 외롭지 않아. 아빠의 품속에 안겨있는 기분이었다. 아빠는 작은 사람이라 나를 꼭 안아주지 못했었지만, 지금의 아빠는 날 꼭 품어주고 있었다.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사랑하는 아빠의 품속에서, 잠들고 싶었다.

몸에 온기가 퍼지는 것 같아. 따뜻하다.


§


따뜻하다고? 그럴 이가 없잖아!


§


눈을 떠보니 나는 냉장고 밖에 나와 있었다. 웅웅웅 하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었고, 내 주위를 흰색 안개가 감싸고 있었다. 돌아보니 냉장고가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재료고 아이스크림이고 가릴 것 없이 엉망진창으로 여기 저기 굴러다니고 있었고 아이스크림들은 모조리 녹아내려 흐물흐물 거렸다. 뚜껑을 열어 얼른 마셨지만 구역질이 몰려와 토할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빛이, 여름날의 석양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이스크림들은 아까보다 더 빠르게 형상을 잃고 사라져갔다. 내 울음에도, 비명에도 아이스크림들은 되돌아가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아빠는 그저 웅웅, 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대답해줘, 아빠.

아빠를 껴안았지만, 아빤 아무 답도 해 주지 않았다. 아빠의 몸이 너무 차가웠다.

따뜻하게 해 줄게. 그러니 웃어 주세요.

난 다시 아빠의 품에 안겼다.

Writer

수려한꽃

수려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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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cloud.9
cloud.9 10.12.14. 02:53
이런 반전 좋지 않아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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