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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SF는 어째서 쇠퇴하였는가─라이트노벨도 포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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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32 Apr 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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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SF는 어째서 쇠퇴하였는가─라이트노벨도 포함하여

by 크로이츠 2008/09/03


2008년 8월, 일본 SF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성운상(星雲賞)의 일본장편부문을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전쟁』시리즈가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아리카와 히로는 전격소설대상으로 데뷔한 라이트노벨 출신 작가로, SF요소가 있는 작품도 내놓긴 했지만 『도서관전쟁』시리즈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SF로 분류되지는 않는 작품이었다. 물론 일종의 디스토피아적인 가상세계를 그렸다는 의미에서는 SF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도서관전쟁』의 본질은 도서관과 군대라는 특이한 소재를 이용해 그린 '연애'였으며 SF에서의 '공상과학'적인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 수상에 의문을 제기했다. 영화연극・미디어부문에서는 종종 SF라고 하기 어려운 작품이 수상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장편소설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성운상은 유행하고 있는 작품을 끌어들여서 '이것도 SF! SF는 아직 죽지 않았다!'라고 주장하기 위해 수여하는 상」이라고 비꼬기도 했지만, 실제 수상작은 일본SF대회에서 참가자의 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노미네이트된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가 있었던 『도서관전쟁』의 수상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실은, SF팬들조차 정통SF작품보다 라이트노벨 출신 작가의 SF로서의 성격이 모호한 작품을 더 선호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때 일본에서 SF란 오타쿠의 메인컬처 중 하나로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일본의 SF팬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본SF대회는 80년대까지만 해도 매니아들의 최대행사로서, 훗날 GAINAX를 만드는 오카다 토시오, 안노 히데아키 등을 배출하는 등 수많은 인재에게 영향을 끼쳤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일본SF대회는 매년 1000명 정도가 참가하는 정도로 그 규모가 축소되었으며, 일본SF대회를 모방하여 시작된 코믹마켓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약해진 상태이다.
물론 장르문학 시장 자체가 협소한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겠지만, 현재 일본의 SF는 과거의 전성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쇠퇴해있는 상태다. 순수한 SF소설뿐만 아니라 라이트노벨의 영역에서도 SF장르는 찾아보기 힘들다.
풍부한 토양이 있었으며 소설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등을 통한 전개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SF는 왜 이렇게 쇠퇴한 것일까.


일본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SF문학은 2차세계대전 패전 후 주둔해있던 미군에 의해 페이퍼백 형태의 SF소설이 전해지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1962년에 『일본SF대회』가 개최되면서 본격적인 일본SF가 시작되었고, 호시 신이치, 츠츠이 야스타카, 코마츠 사쿄라는 일본 SF '3대작가'가 차례차례 작품을 발표하면서 소설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들의 활약으로 소설독자들 중에는 다른 소설은 읽지 않고 SF소설만 읽는 SF매니아까지 나타나게 되었으며, 1970년대에 들어서 『우주전함 야마토』, 『스타워즈』등 영상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SF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결국 SF는 소설의 일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가장 세력이 큰 매니아집단을 보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등 영상방면에서 SF가 계속적인 유행을 보인 것과는 달리, 소설장르로서의 SF장르는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현실사회에서의 과학의 발달 등으로 인해 공상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흥미가 약해지고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SF요소도 SF가 아니라 거대로봇 등 일종의 아이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SF팬의 인구 자체가 축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10개를 넘었던 SF잡지는 차례차례 폐간되게 되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SF매거진』도 신인상인 「하야카와SF콘테스트」를 폐지함으로써 신인작가의 등용문은 사라져버리게 되었다. SF에 대한 정열을 가진 사람이 줄어들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요구하는 하드SF는 묻히게 되었으며, 라이트한 SF는 SF작가들이 내놓았던 쥬브나일이나 히로익 판타지물의 영향을 받은 라이트노벨로 대체되게 되었다.


01.jpg특히 라이트노벨로의 유출이 심각했는데, 골수 SF팬이 아닌 독자들은 대부분 라이트노벨로 이동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독자들의 흥미가 SF에서 판타지로 이행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986년 게임 『드래곤퀘스트』가 발매되면서 서양의 판타지를 일본식으로 어레인지한 세계관이 보편화되기 시작했으며, SNE의 미즈노 료가 『로도스도전기』를 내놓으면서 일본식 판타지소설이 완성되게 되었다. SF가 갖는 참신함이 퇴색된 상황에서 적절히 어레인지된 판타지세계관은 독자들의 큰 흥미를 끌게 되었으며, 결국 1985년 창간된 카도가와스니커문고(창간 당시에는 카도가와문고 靑版)와 1988년 창간된 후지미판타지아문고 등 라이트노벨 레이블의 판타지물이 SF물을 대신해 장르문학을 이끌기 시작했다.

또한 하드커버 혹은 소프트커버의 단행본으로 발매되어 1000엔 이상의 비싼 가격이 책정되는 경우도 흔했던 일반 SF소설과는 달리 문고 형식으로만 발매되는 라이트노벨은 항상 500엔 전후의 낮은 가격이었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거라 생각된다.

한편 라이트노벨에서도 SF장르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이 라이트노벨에서는 판타지물이 강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SF물도 『무책임함장 태일러』, 『그래가라! 우주전함 야마모토 요코』등 애니메이션적인 라이트 SF(실제로 애니메이션화도 되었다)가 주류를 이루었다. 인기작은 있었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대형작가가 부족했고, 기존의 SF매니아에게 있어서 이런 타입의 소설은 SF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SF만을 내세운 라이트노벨은 쇠퇴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 전격문고에서 타카하타 쿄이치로의 『크리스크로스』, 후루하시 히데유키의 『블랙로드』, 카와카미 미노루의 『판처폴리스1935(도시 시리즈)』 등 개성적인 SF적 세계관을 지닌 하드한 라이트노벨이 등장하기도 하였으나,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의 등장으로 전격문고의 방향성이 현대를 무대로 한 일상밀착형 쥬브나일로 정해지면서 이와 같은 작품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라이트노벨에서 순수한 SF 장르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으며, 그 대신 판타지나 학원물에 SF요소를 삽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 독자들은 점점 상상력이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는 SF세계, 판타지세계보다는 비일상적인 요소가 포함된 현대물을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에, 항상 일정 수요가 있는 스페이스오페라 정도를 제외하면 SF장르는 라이트노벨에서 거의 명맥이 끊기게 되었다.


02.jpg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SF라는 장르는 일본에서 힘을 잃게 되었다. SF소설은 전성기 때와는 달리 완전히 위축되게 되었으며, 하야카와문고, 소노라마문고 등 라이트노벨의 색채가 강한 문고 레이블을 중심으로 진행되게 되었다. 애니메이션화도 된 『성계의 문장』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이트노벨처럼 캐릭터성이 강한 작품이 히트하는 경향을 보였고, 기존의 정통SF는 차츰 매니아들만의 전유물이 되어갔다. 1999년에 일본SF신인상이 창설되고 2001년에 비쥬얼 중심의 계간지 『SF JAPAN』이 창간되면서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일본의 SF는 침체기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도서관전쟁』의 성운상 수상은 이와 같은 일본SF의 쇠퇴, 그리고 변화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정통SF의 지지도가 약해지고 라이트노벨적인 SF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라이트노벨과 일반문예의 중간에 위치한 『도서관전쟁』이 성운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2000년대에 들어서 노지리 호스케, 오가와 잇스이, 신죠 카즈마 등 라이트노벨 출신의 작가들이 성운상 일본장편부문을 대부분 차지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데뷔 이래 SF적 성격이 강한 작품을 발표해온 아리카와 히로가 성운상을 수상하는 것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겠지만, 어쩌다보니 SF로서의 성격이 약한 『도서관전쟁』이 수상작이 되어버렸다. SF는 장르문학으로서 경쟁력을 상실한 이후 라이트노벨의 기법을 도입해 돌파구를 찾았지만, 이와 같은 경우는 조금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현재 일본의 또다른 장르문학인 판타지(일본식 판타지가 아닌, 서양식 정통 판타지)는 해리포터 이후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호러 장르 또한 『다빈치』등의 홍보나 교고쿠 나츠히코의 활동 등을 통해 '괴담'이라는 형태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자생적인 변혁의 원동력이 아직 보이지 않는 SF업계로서는, 이와 같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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