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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2000년대 청소년문학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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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03 Apr 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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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선유민


원래 이 글의 아이디어는 어느 편집자 분과의 대화에서 얻었던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을 검증하기 위해 집필을 시작한 이 글을 통해, 라이트노벨의 움직임과 청소년문학의 움직임 간에 일정한 상관 관계가 있으리란 사실은 추리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래 이 글을 쓰게 된 목적대로 두 현상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는지는 확인해낼 수 없었죠. 관련 출판사들의 직접적인 관계자가 아닌 입장상의 한계였습니다. 때문에 이 글을 B급으로 분류하여 올립니다.


    *  *  *


사상적 배경


의외의 사실일 수 있지만, 한국 청소년 문학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면 1908년부터 그 흐름을 찾아볼 수 있죠. 1908년은 문예지 『소년』이 창간된 해였습니다. 국내 최초의 근대시인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된 것도 바로 『소년』의 지면을 통해서였죠. 하지만 『소년』은 한일합방 후 세 차례의 발행정지 처분을 당한 끝에 1911년 5월에 낸 통권 23호를 이후로 잠시 그 명맥이 끊기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1920년대부터는 소년문예운동이 일어나며 『학생계』(1920~25),『신소년』(1923~34), 『새벗』(1925~33) 등이 창간되어 청소년 문예지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이 흐름은 40년대까지 이어지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다시 그 흐름이 끊기게 되죠.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전란 와중인 1952년에 피난지 대구에서 『학원』이 '학생을 위한 교양 월간지'를 표방하며 창간된 겁니다. 읽을거리가 없던 당시였으니 학생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을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시작한 『학원』은 그 영향을 받은 '학원세대'를 만들어내며 문학청년들을 양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학생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기 시작하였고, 90년대 들어선 이미 청소년 대상의 문예지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요. 

명맥이 끊겼던 청소년 문예지는 2003년 『푸른작가』가, 2004년에서 2005년 사이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지원을 받은 8종의 문예지가 새롭게 창간되어 부활하게 되는데, 이는 과거 『학원』이 했던 역할을 하는 청소년 문예지가 필요하다는 문단의 공감대 형성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시장의 요청이 아닌 제도의 도움으로 청소년 문학이 다시 부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이 당연하겠죠. 당시의 기사에서도 그런 시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망이 그리 밝은 편은 아니다. 문예지당 연간 지원금 500만원은 책 제작비용으로도 빠듯한 수준. 원고료만 해도, 창간호 1,500부를 찍은 충북 ‘이다’의 경우 교사ㆍ학생에게는 한 푼도 못 줬고 일부 등단 문인에 한해 밝히기 민망한 수준의 고료를 지급했다. 이 잡지 편집 책임을 맡은 박기려(39ㆍ청주 상당고 교사)씨는 “문예지 창간 홍보를 위해 마련한 1박2일 청소년 문학캠프 비용 등 200만원은 전국국어교사모임이 지원해줬다”며 “청소년 문예지가 정착하려면 보다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몇몇 문예지 담당자들은, 교사ㆍ학생이 편집 주축이다 보니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점, 학생들이 문학적 감수성을 확인하고 발휘할 기회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청소년문예지 전성시대 오나] 2005.03.06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전환점이 찾아오게 됩니다.


상업적 배경


2007년 들어서 세계일보에서 5,000만원 상금의 세계청소년문학상을, 창비와 비룡소가 각기 2,000만원 상금의 창비청소년문학상과 블루픽션상을 제정하는 등, 출판사들이 앞다퉈 청소년 문학 시장에 뛰어든 것입니다. 청소년 문학이 충분히 돈이 될 수 있다는 시장성을 감지했기 때문이겠죠. 입시에서 논술이 강화되며 '권장 도서' 목록에 올라간다면 기본은 팔릴 것이란 계산이 먼저 작용했을 겁니다만,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존재합니다. 일본소설, 특히 라이트노벨의 부상이 특기할 만했던 것이죠. 이에 대한 시각 역시 당시의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형 서점의 일본 소설 코너를 가보면 알 수 있지만 독자층은 20~30대보다 훨씬 아래로 내려가 있다. 최종태 감독이 동명의 일본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이문식 이준기를 주연으로 영화화한다고 발표하며 <왕의 남자>의 히어로 이준기를 좋아하는 10대 여학생들이 앞 다퉈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도 독자 연령이 확대된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여기에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소설화한 2차 상품에 해당하는 캐릭터 소설까지 합세하며 본격적인 10대 독자가 창출되고 있다. 캐릭터 소설은 사실주의가 주류를 이룬 근대소설과 노선을 완전히 달리하는 장르로 문장보다는 인물 창조에 큰 비중을 두며 현실이 아닌 가공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판타지 소설에 익숙한 10대에게는 안성맞춤인 장르다. 21만 부 이상 팔려나간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로 대표되는 캐릭터 소설의 독자는 초등학교 4~5학년부터 시작된다.


[한국경제매거진: 진화하는 일본 소설] 2007.03.07


또한 경향신문의 '라이트 노블-지금 10대들이 열광한다'라는 기사에서는 "지난해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붐을 타고 ‘익스트림 노블’ ‘시드 노블’ ‘J노블’ 등의 레이블들이 속속 생겨났"으며 "2006년에는 라이트 노블 전문 잡지 '파우스트'도 생겼고, 라이트 노블 작가들에게 주는 ‘파우스트 문학상’도 제정됐"다며 당시 라이트노벨 시장의 지형도를 자세히 설명하기까지 합니다.

이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작품은 단연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였지만, 이외에도 '공의 경계'가 10만부 이상 판매되는 등 여러 작품들이 함께 인기를 끌었기에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죠. 언론과 출판시장은 그런 라이트노벨에 주목하며 청소년문학의 미래를 점쳤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라이트 노블 중 작년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작품은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다. 작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시작으로 국내에 소개된 이 시리즈는 8편까지 나왔다. “평범한 인간에겐 관심 없습니다. 이중에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으면 제게 오십시오. 이상”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독특한 미소녀 스즈미야 하루히와 하루히가 조직한 SOS단이 펼치는 특이한 사건을 다룬 이 시리즈는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면서 21만 권 이상이 팔렸다. 또다른 인기작인 ‘공의 경계’는 2004년 일본 출간 당시 큰 화제를 모은 라이트 노블 계열 작품으로, 2년 간의 혼수상태에서 눈을 뜬 후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죽음을 볼 수 있는 신비한 마안(魔眼)을 얻은 소녀 료우기 시키가 겪는 신기하고 괴이한 사건을 담았다. 이 외에도 ‘풀 메탈 패닉’, ‘반쪽 달이 떠오르는 하늘’, ‘작안의 샤나’ 등 여러 라이트 노블이 독자들을 만났다.


[헤럴드경제: 장르소설+애니 ‘라이트 노블’〈light novel〉을 아시나요?] 2007.03.29 


라이트 노블은 작가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재미있는 것을 쓴다는 기분으로 만들어진 소설인 것이다. 주요 독자인 청소년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무엇인가가 라이트 노블에 담겨 있고, 그래서 청소년들은 부모가 골라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서 읽게 되었다. (중략) 일본에서도 라이트 노블은 아직 주류가 아니라, 일부 독자가 선호하는 독특한 장르일 뿐이다. 다만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일본이니만큼, 애니메이션과 소설의 결합이라고 할 라이트 노블의 상상력과 이미지가 탁월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즉 한국 독자들도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겼다면, 쉽게 라이트 노블에도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노컷뉴스: 가벼운 소설 '라이트 노블'에 10대들이 열광한다] 2007.08.31


그렇지만 기대와 달리 청소년문학(라이트노벨)이 쉽게 자리 잡지는 못했지요.



이후 전개


무리하게 거액의 상금을 제시했던 세계일보는 제3회까지 문학상을 운영했지만 이후 공모를 포기합니다. 또한 청소년 문예지들은 여전히 지원금을 바탕으로 운영을 해나가고 있으며, 과거 『학원』 시절과 같은 청소년들의 호응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처지죠. 라이트노벨은 오타쿠들만이 향유하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실험적인 시도를 보이던 『파우스트』는 6호를 끝으로 소식이 없으며, 초기에는 남성 독자와 여성 독자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내놓던 시드노벨은 점차 러브코미디 편향적인 행보를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완득이』 같은 베스트셀러가 탄생하기도 하며 청소년 문학은 불안한 약진을 하고 있습니다. 몇몇 청소년 문학상이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다른 청소년 문학상이 채웠으며, 출판사들의 기대대로 일부 작품의 경우 '권장 도서' 목록에 올라 일정한 판매량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라이트노벨 역시 대중적인 영향력은 확보하지 못하였으나 마니아층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였기에 국내 창작 시장에 뛰어드는 출판사들은 계속하여 등장했습니다. 실패하는가 하면 성공하기도 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지요.

앞으로 청소년 문학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출판시장이 갈수록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으니 놓인 앞길이 탄탄대로가 아닐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요. 다만 제가 아는 것은 과거의 발자취입니다. 청소년 문학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며 그 존재는 시장의 요청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설사 명맥이 끊기더라도 시장의 요청이 있다면 언제든 부활의 날개를 펼칠 것이라는 것. 우리가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두 가지 사실입니다. (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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