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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系 이론 ─ '라이트노벨은 이것이다'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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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49 Apr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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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선유민


라이트노벨은 무엇일까?


라이트노벨의 정의에 관한 논란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라이트노벨은 포맷이다, 라이트노벨은 장르다, 라이트노벨은 스스로를 가리키는 재귀적인 용어다, 이런 식의 주장들이 제각각 난립하여 서로 간에 부딪혀 왔죠.

라이트노벨이란 명칭을 처음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진 카미키타 케이타는 말했습니다. 깊은 생각 없이, 필요에 의해 일련의 작품군을 지칭할 수 있도록 라이트노벨이란 단어를 만들었다고요. 처음부터 임시방편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 일은 이미 예고되었던 것일지도 모르죠. 결국 라이트노벨은 현재에 와서도 엄밀한 합의 없이, 언중에 의해 감각적으로 쓰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뭔가 느끼지 못하셨나요? 일련의 작품군을 감각적으로 지칭하는 식으로 라이트노벨이란 단어가 쓰이고 있다는 부분에서 말이에요. 이 말은 어쩌면, 단순히 우리가 어떤 개념을 아직 포착하지 못해서 그 내용을 언어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저는 따라서, 라이트노벨의 정의를 두고 일었던 논란의 근본에는 라이트노벨이 무엇인지 포착해낼 수 있는 개념어가 부재했던 상황이 있었다고 봐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각각의 부분에 관해서만 산발적으로 자신이 아는 언어를 통해 말해질 뿐, 멀찍이 서서 총체적인 조망을 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거기에 대한 제 대답은, 라이트노벨은 하나의 특정한 창태계(創態系)를 부르는 명칭이란 것입니다.



장르와 창태계의 관계


창태계란 무엇일까요? 간략하게 대답하자면, 창태계는 하나의, 때로는 복수의 장르를 잉태하는 창작물의 '생태계≒환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의 창태계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창작-유통-소비'의 사이클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외적인 형식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외적인 특징은 창태계를 외부의 다른 창태계와 단절하게 만들고, 구분 짓게 만들죠. 라이트노벨의 경우는 책 자체의 포맷, 서점 가판대에서 책이 놓이는 위치, 출판사의 브랜드 등이 여기에 작용해요.

또한 한 번 창태계가 형성되면, 그 여명기에는 다양한 종(장르)의 책이 공존하는 양상을 띠어요. 마치 진화론에서 말하는 '대폭발'과도 같은 모습이죠. 하지만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종은 제한되어 있기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의 다양성은 급격히 사라지게 됩니다. ‘창작-유통-소비’의 사이클에 선택압이 작용하기에 일어나는 일인데, 라이트노벨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죠.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신죠 카즈마는 2006년, 『라이트노벨 「超」입문』에서 라이트노벨은 단순히 일반적인 장르의 분류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넘어서, 모든 종류의 장르를 포괄할 수 있는 장르라고 주창했습니다. 그는 라이트노벨의 이런 성질을 '제로 장르'라고 일컬었죠. 당시에는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던 개념이지만, 어딘가 정형화된 모습이 된 지금의 라이트노벨 시장을 보면 이 이론은 결과적으로 틀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이론이 틀렸다고 폐기할 것은 아닙니다. 비록 한 시기였지만, 이 이론이 여러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갔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따라서 이 내용을 '창태계'라는 개념에 비추어 다시 보게 되면, 신죠 카즈마가 라이트노벨의 특징으로 지적하였던 '제로 장르'는 '창태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초기에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란 사실이 드러납니다. 또한 창태계가 형성된 이후로 시간이 흐를수록 내용적인 면에서의 축소 재생산과 동질화, 혹은 체계화가 일어나는 현상 역시 모순되지 않게 설명할 수 있게 되죠. 이런 과정이 고도화되면 마침내 안정적인 형태의 '장르'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창태계가 형성됨에 따라 창발하여 그 정체성을 구성하는 내적인 코드(≒취향)는 어디서 비롯될까요? 창태계의 동질화를 주도하는 코드는 그 창태계를 형성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준 인접 문화 내지는 배경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문화적 콘텍스트에 달려 있는 것이죠. 라이트노벨의 경우는 두말할 필요 없이 오타쿠 컬쳐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창태계의 관여자들은 문화적 영향 아래에서, 바꾸어 말하자면 코드의 작용을 통해 창태계에 일정한 선택압을 가하게 됩니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코드는 창태계 자체가 아닌 라이트노벨을 둘러싼 생태계에서의 작용이란 사실인데, 창태계란 개념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 따위를 배제하고 온전히 창작물 그 자체에 집중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라이트노벨과 오타쿠 컬쳐의 관계


『베스트셀러 라이트노벨의 구조 - 캐릭터소설의 경쟁전략』의 저자 이이다 이치시는 라이트노벨과 오타쿠 컬쳐의 관계를 경제학적으로 접근하여 풀어보려 합니다. 카테고리/세그먼트의 계층구조로 보아 라이트노벨이란 상품은 '엔터테인먼트-오타쿠 콘텐츠-라이트노벨'의 계층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는 것이죠. 이이다 이치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른바 좀비물이란 것은, 가령 좀비영화를 예로 들자면, 유저의 심리적으로는 【엔터테인먼트─실사영화─호러(또는 코미디)─좀비】란 계층구조(카테고리 계층)으로 되어있을 것이다. 엔터테인먼트를 보고 싶은 사람 중에서도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이, 그 중에서도 호러나 패닉물 혹은 코미디를 보고 싶은 사람이, 그 중에서도 좀비를 보고 싶은 사람이 좀비 영화를 고른다. 하지만 라이트노벨은 【엔터테인먼트─오타쿠 콘텐츠─라이트노벨】이란 카테고리 구조로 되어있다. 엔터테인먼트 중에서도 오타쿠 콘텐츠를 선호하는 사람이, 오타쿠 콘텐츠 중에서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이 아닌 라이트노벨을 택한 사람이 읽는 것이다. 그래서 라이트노벨의 좀비물은 【엔터테인먼트─오타쿠 콘텐츠─라이트노벨─좀비】가 된다. 소위 좀비물과 라이트노벨은, 고객층이 입구 시점에서 다르다. 이 계층을 무시하고 【엔터테인먼트─호러─좀비 라이트노벨】이란 기세로 쓴 작품은 매상적으로 99% 폭사한다. 


(이이다 이치시, 『라이트노벨에 필요 없는 아이에 관해서』, insight critic. )


이이다는 "라이트노벨은 오타쿠 말고는 읽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타쿠가 아니면서 읽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수가 아니기 때문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죠. 또한 오타쿠적인 요소를 제외한 호러 라이트노벨은 독자한테 경원시되는데, 이것은 STP(세그멘테이션, 타게팅, 포지셔닝)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식의 구조적인 분석, 정태적인 분석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라이트노벨뿐만 아니라 어느 창태계이든, 지배적인 영향을 받고, 피드백이 이뤄지는 문화 콘텍스트가 있을지언정 구조적으로 종속된 관계는 아니기 때문이죠. 칼럼니스트 에후야마다는 스스로의 체험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최근,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세상에서 인기가 있는 작품과의 사이에 있는 괴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인기 작품일 텐데, 아무래도 나와는 맞지 않아서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곤란하게도 어디가 맞지 않는 것인지, 어째서 읽을 수 없는 것인지를 스스로도 잘 몰랐던 것이다. 내 취향은 대중 지향적이진 않기 때문에, 타 장르,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도 '맞지 않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어째서 괴리가 있는지 그 원인을 대개 스스로 분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라노베에 관해서만은 아무래도 스스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에후야마다, 『나는 어째서 라이트 노벨에 약했는가』, OTAPHYSICA.)


에후야마다는 어째서 자신이 라이트노벨에 대하여 괴리감을 느끼는지 스스로도 의아해합니다. 즐겁게 읽고 있는 작품도 많기 때문에 라노베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작품 레벨 문제도 아닌 것으로 스스로 파악하고 있었기에 괴리감의 정체는 더욱 오리무중에 빠져 있었죠.

그러던 때에, 에후야마다는 라노베의 위치 관계에 대해 지인으로부터 한 가지 조언을 듣게 됩니다.


라이트노벨은 겉보기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청춘 소설에 가깝다. 라노베는 소년 소녀를 위한 문예 소설인 것이다. 즉, 라노베의 저자는 진심으로 '무엇인가'를 전하려 하고 있고, 라노베의 독자도 진심으로 '무엇인가'를 받으려 하고 있다. 문학적・사상적・윤리적 메시지의 전달이, 라노베의 핵에는 존재한다. 문예적 실천이 서투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런 요소는 부속적인 것이라고 오인되기 십상이지만, 라노베는 본질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아니고, 포스트모던적인 새로운 문학도 아닌, 인생의 지침과 감동을 주는 고전적인 교양 문학의 한 장르인 것이다.


(에후야마다, 『나는 어째서 라이트 노벨에 약했는가』, OTAPHYSICA.)


에후야마다는 지인의 지적에 정곡을 찔렸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오타쿠 활동은 완전하게 오락을 위한 것이었고, 재미 이외의 가치는 스스로에게 없었던 반면에 라노베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는 스스로를 '오락일원론자'라고 정의내리며 그에게 있어 창작물의 윤리적 가치는 오락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해왔다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문제는, 자신이 이러한 오락 일원론적인 태도로 모든 라이트노벨을 읽으려고 했던 것에 있었다고 에후야마다는 판단합니다. 그런 태도로는 상당수 라노베에서 다뤄지고 있는 윤리적 가치가 너무 얌전한 범주의 것이라고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라노베의 전개는, 현대 일본의 소년 소녀가 평범하게 학생 생활을 보낼 때 기능하는 윤리적 가치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을 필두로 한 폭력적 행위에 대한 관용도가 낮은 것이나, 이상적인 인간 관계가 현대 일본의 학교 제도의 형식으로부터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죠. 에후야마다는 본래 학생과 다른 윤리적 가치관을 가진 캐릭터야 함에도 어딘가 동아리 활동적으로 되거나 유형적 묘사가 되는 점에 대해 '더 과격하게 하면 재밌을 텐데'하고 불만스럽게 생각했지만, 그건 사실 자신의 잘못이었을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70년대생)인데도, 라이트노벨을 두루 읽을 수 있는 오타쿠들을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들과 자신의 차이를 알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과 달리, 라노베를 그다지 가리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상상의 방법이 윤리적이지 않겠냐는 것이죠.

에후야마다는 다시, 오타쿠 컬쳐의 성숙과 함께, 심야 애니메이션처럼 오타쿠적으로 독해되는 것을 전제로 한 작품도 많아졌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오타쿠인 자신은, 이러한 작품군을 극히 자연스럽게, 거의 뇌를 사용하지 않고 향유할 수 있었고, 여기에 문제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라이트노벨만이 여기서 예외였는데, 오타쿠 장르임에도 어디가 재미가 있는지, 왜 재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그에게는 미스터리였죠. 그러나 이제 와서야 그 이유를 알고 보니, 지금까지 라노베가 오타쿠적인 장르의 전형이자 상징으로써 말해졌고, 자신도 그 흐름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 부분이 잘못이었다고 에후야마다는 지적합니다.


라노베가 오타쿠 컬쳐에 속한다는 사실, 그것은 거의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어떤 의미로는 실수가 아니다. 라노베가 오타쿠 컬쳐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요소를 적지 않게 포함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극단적인 오타쿠적 태도가 정착한 오락 일원론을 모든 라노베에 기대하는 것은 잘못인 것이다. 라노베는 복합적인 문화 장르로써 오타쿠 컬쳐에 속하면서 동시에 고전적인 교양 문예에도 속하고 있는 것이라, 후자의 계기를 짐작하지 않고서 적절한 이해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거참, 문화란 것도 복잡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타쿠 컬쳐의 성숙이라고 하는 사태에 대해서도 재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오타쿠 컬쳐가 광범위하게 수용되어 성숙했다는 것은, 한편에서는 물론 다양한 장르가 오타쿠적인 요소를 포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에서는, 오타쿠 컬쳐로 불리고 있지만 대부분이 순수하게 오타쿠적 요소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게 되어있다, 고 하는 것 역시 의미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모 국영 방송의 대형 가요 프로그램에서 미즈키 나나가 노래한 음악은, 그야말로 일반적인 J-POP이었다. 그러나, 그 무난한 음악이 오타쿠 컬쳐의 대표인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오타쿠 컬쳐를 구성하는 개개의 다른 장르에 관해서 그 방향을 제대로 확정해 가는 것이 우리의 다음 과제가 될 것이다.


(에후야마다, 『나는 어째서 라이트 노벨에 약했는가』, OTAPHYSICA.)


오오츠카 에이지 역시도 라이트노벨은 문학사와 만화사의 교차에서 태어났다고 지적한 바 있죠. 또한 일본의 원로 소설가, 하야미 유지의 회고에 따르면, 라이트노벨이라 불리는 쥬니어 소설(청소년 소설)의 상당수는 문고본으로 나와있는데, 그 시초는 1973년의 아키모토 문고라고 합니다. 본래 일본에서 문고본이라고 하면 '이와나미 문고'와 같이, 주로 고전이나 명작을 염가로 간단히 수중에 놓아둘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만, 70년대 초에 문고본 열풍이 불면서 쥬니어 소설에 해당하는 여러 출판 브랜드가 출판 포맷을 문고본으로 설정하였다는 것입니다.

현재도 일본에선 단행본으로 먼저 간행되었던 소설이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르면 해설(평론)을 붙여서 염가의 문고본으로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따라 발생하는 수요 중 청소년층의 수요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비교적 저렴한 문고본을 선호하기 때문이겠죠. 이는 애니메이션의 주된 수요층이 성인층인 것과는 대비되는데, 학생의 용돈으로는 값비싼 블루레이/DVD의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반면 문고본은 용돈으로도 손쉽게 살 수 있는 가격이기에 그럴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봤을 때 애니메이션과 라이트노벨 두 분야에 차이가 있음직하고, 후자의 경우는 오타쿠 컬쳐의 영향뿐만 아니라, 쥬니어 소설의 계보를 잇고 있는 면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장르와 창태계로


논의가 조금 벗어났습니다. 앞서 경제적인 '생산-유통-소비'의 사이클이 성숙되어 안정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면, 창태계의 내적으로 축소 재생산 혹은 동질화가 일어난다고 말했었죠. 여기서의 동질화는 바꿔 말하자면 '장르화'라 할 수 있습니다.

장르는 어떻게 태어날까요? 생물학적인 설명을 빌리자면, 장르는 애완견의 품종을 만드는 것과도 같이 근친교배를 통해 탄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친교배는 목표로 하는 형질(A)에 관하여 동형접합체(AA)의 출현율을 높여 집단 내의 형질을 균등화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데, 이를 통해 고기의 육질을 소비자들의 식감에 맞게 개량하거나 하죠.

말하자면 특정한 '취향≒코드'에 의한 이것은 장르의 미학과도 상통합니다. 저는 장르의 이런 면모를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어떤 공통적인 목표를 띤 개량을 통해서 더 나은 작품이 나올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이 과정에서 발견되어 발달하는 장르의 미학과 기법은 정말로 유용하고 소중한 것이고요. 하지만 유전자풀이 좁아진 상태다보니 유전자의 변형 없이는 시대(=환경)의 변화에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도태하기 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다시 말하자면 창태계라는 이름의 환경은 장르가 잉태되도록 하는 창작물의 생태계입니다. 우주에서 은하와 성단이 만들어지듯, 창태계 안의 창작물들은 자연스레 장르적 정체성을, 특정한 경향성을 띠며 몇 개의 무리를 짓습니다. 말하자면 복수의 장르 -그러나 많지는 않은 숫자의- 가 코드에 따라 공존하고 교류하게 되는 것인데, 이 각각의 무리들, 혹은 무리와 무리의 통합체가 장르가 되느냐 마느냐는 오직 독자적인 자의식을 갖추어, 자신들의 미학을 추구하게 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번역가 김상훈은 이에 관해 평론가 새뮤얼 R. 딜레이니를 원용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회적이긴 하지만 명쾌한 딜레이니의 프로토콜 개념을 확대해석한다면 SF가 장르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SF가 초보적이나마 자의식(=프로토콜)을 갖춘 시점, 즉 휴고 건즈백이 최초의 SF잡지인 『어메이징 스토리즈』를 발간하며 과학 계몽소설을 의미하는 '사이언티픽션'이라는 귀에 거슬리는 용어를 제시한 1928년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도 가능해진다. (중략) 그리고 "심각한" SF의 프로토콜은 전통적으로 인간 인식의 확산을 지향하는 인지적 앙가주망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판타지를 위시한 기타 장르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김상훈, 『현대 SF의 진화 - 포스트고딕에서 슬립스트림으로』, HAPPY SF 창간호)


이렇게 한 번 자의식을 갖추어 특정한 미학을 지향하게 된 장르는 당초 자신을 품어주었던 창태계를 벗어나서도 자생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다만 이어지는 것은 그 명칭과 역사뿐으로, 장르명이 바뀌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용적인 면에서는 변화가 심할 수밖에 없지요. 다른 환경, 다른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겠죠. 바다 건너 다른 국가의 문학 시장(≒창태계)으로 넘어갔을 때는 그 나라에 맞게 토착화가 이뤄지기도 하는 법이고요.

상술했듯이, 라이트노벨이란 이름의 창태계에서는 장르로써의 자의식을 갖춰야 이뤄지는 장르화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적인 특질을 구성하게 만드는 동질화는 일어났습니다. 학원 이능력 배틀물이나 모에 러브 코미디물 같은 것들의 성행이 그 작용의 하나인데, 흔히 '○○물'이라 불리는 몇 종류되지 않는 취향체(趣向體) 하나하나가 거대한 트렌드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 창태계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증거입니다.


《 계系 이론 ─ '라이트노벨은 이것이다' (中) 》 에서 계속



Writer

선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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