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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스터 ─ 아즈마 히로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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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21 May 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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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선유민



들어가며


아즈마 히로키가 오타쿠 컬쳐, 그리고 포스트모던을 논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 출간되고 나서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은 오타쿠 컬쳐를 논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저서로 손꼽히고 있죠. 사사키 아츠시는 『현대 일본 사상』에서 2000년대 일본 사상계의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로 아즈마 히로키를 지목하였고, 현재도 일본 사상계는 아즈마 히로키가 만들어놓은 판 위에서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아즈마 히로키가 펼친 논설이 다름아닌 '데이터베이스 소비 이론'입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데이터베이스 소비 이론을 통해, 70년대 이후의 포스트모던에서는 표층의 이야기가 아니라 심층의 모에 요소(구성 요소)가 소비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죠.


따라서 〈디지캐럿〉을 소비하는 것은 단순히 작품(작은 이야기)이나 그 배후에 있는 세계관(커다란 이야기), 나아가서는 설정이나 캐릭터(커다란 비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심층에 있는 보다 광대한 오타쿠계 문화 전체의 데이터베이스를 소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필자는 앞으로 이와 같은 소비행동을 오쓰카의 '이야기 소비'와 대비하는 의미에서 '데이터베이스 소비'라고 부르고자 한다.  (p.96~97)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이은미, 문학동네.)


번역자 이은미가 이야기하듯,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은 오타쿠를 단서로 삼아 현대사회 자체를 논의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 사실은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사회'라는 부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기도 하죠. 그러나 아즈마가 사회학적인 관점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어는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선정적입니다. 이 문제는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보인 신중한 태도와 아즈마의 단정적인 태도가 대조적인 데서 잘 드러납니다. 먼저, 아즈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와 같은 오타쿠들의 행동원리는 굳이 연상하자면 냉정한 판단력에 입각한 지적인 감상자(의식적인 인간)와도 페티시에 탐닉하는 성적인 주체(무의식적인 인간)와도 다른, 보다 단순하고 즉물적인 약물의존자의 행동원리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캐릭터 디자인이나 어떤 성우의 목소리를 접한 이래 뇌의 배선이 변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그림과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아 마치 홀린 듯이 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오타쿠들이 실감을 담아 하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취미라기보다 약물의존에 가깝다.  (p.152)


또한 아즈마는 '커다란 이야기의 실조' 이후의 인간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질문을 던지고, 다음과 같이 답하죠.


근대의 인간은 이야기적 동물이었다. 그들은 인간 고유의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갈망을 인간 고유의 사교성을 통해 충족할 수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작은 이야기와 커다란 이야기를 서로 비슷하게 묶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의 인간은 '의미'에 대한 갈망을 사교성을 통해 충족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동물적인 욕구로 환원함으로써 고독하게 채우고 있다. 거기에서는 작은 이야기와 커다란 비이야기 사이에 어떠한 연계도 없고, 세계 전체는 단지 즉물적으로 누구의 삶에도 의미를 주지 않은 채 표류하고 있다.  (p.165)


아즈마 히로키는 여러 차례에 걸쳐, 근대에서 포스트모던으로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인간의 유형은 결정적으로 달라졌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데이비드 리스먼은 아즈마와 같이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진 인간의 유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즈마의 단정적인 태도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죠.


앞에서 밝혔듯이 대규모의 사회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유형학은 개인의 본성에 대해서는 잘 설명할 수가 없다. 개인의 본성을 논술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유형학에 따라 인간을 분류하는 것이 오히려 쉬울 것이다. 실제로 한 인간을 두고 그를 '구순적'이라든가 '수용형'이라든가 '사디 · 마조히즘적'이라든가 하는 등으로 분류하여 그 인간의 행위를 설명한다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책에서 채택하고 있는 내부지향형이나 타인지향형이라는 유형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라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략) 우리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미국인의 성격에 대한 잠정적인 사고 방식이다. 우리들 스스로 이러한 결론에 대해 확신이 부족하고, 우리의 사고 방식 자체가 항상 동요하고 있다.  (p.20)


(데이비드 리스먼, 『고독한 군중』, 권오석, 홍신문화사.)


시대에 따른 변화는 당연히 있기 마련이지만, 아즈마 히로키는 근대와 포스트모던의 차이를 지나치게 부각하는 감이 있습니다. 아즈마는 90년대의 시대상에 힘입어 오타쿠가 포스트모던 이전의 사람들과 달리 이야기 자체가 아닌 이야기의 구성 요소를 소비한다고 했지만, 그 주장은 정도가 지나친 소리였죠.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인간이란 종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소리였으니까요. 그렇다면 아즈마 히로키는 왜 그런 태도를 취해야 했을까요? 사사키 아츠시는 일본 사상계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그립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에 걸쳐 〈일본〉의 경제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다소의 부침은 있었지만 대체로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쨌든 많이 판 쪽이 이긴 것이라는 인식이 공유되었습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도 그러한데, 설사 팔리지 않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팔리는 것이 더 옳다는, 이른바 '올바름'을 재는 기준을 '팔리는가 팔리지 않는가'에서밖에 구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예전에 '명예'를 수여했던 '권위'는 이미 거의 기능하지 않게 되었고(예컨대 '아쿠타가와상'으로 대표되는 문학상이 오로지 경제적 효과와 정확한 '득표 수 예상' 이야기만 하게 된 것도 최근 10년의 일입니다.), 애초에 객관적인 시점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거대서사'가 끝나고, '역사'가 끝나고, '마르크스주의'가 끝나고, '우익과 좌익'이라는 이항 대립이 끝나고, 상대주의나 다원주의가 한도에 이르렀을 때, 확고한 척도로 남은 것은 이제 '가격'뿐인 것입니다.  (p.230~231)


(사사키 아츠시, 『현대 일본 사상』, 송태욱, 을유문화사.)


사사키 아츠시는 일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퍼포먼스'를 꼽습니다. 퍼포먼스에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내용에 비해 행위에 압도적인 중점이 놓여 있는 상태가 바로 일본 사상의 특색이라는 것이죠. 사사키는 때때로 내용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는데도, 또는 내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경우조차도 어떤 유효한 퍼포먼스에 의해 그 사상이 효력을 발휘하는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사사키는 일본 사상의 역사를 '행위=퍼포먼스'의 응수로 그리려 하면 그 변천의 양상도 내용을 좇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이게 된다고 지적하죠. 예컨대 어떤 사상이 새롭게 등장할 때 가장 효과적인 것은 그 이전의 사상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 적어도 타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는 것입니다. 다시 자세히 말하자면, 그때그때 참신한 사상으로 인식되고, 그로 인해 실제로 일정 이상의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사상의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은, 그 사상이 나타남으로써 기존의 사상이 '갱신된다/극복된다/종말을 맞이하게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독자로 하여금 그 시절에는 아직 주류라고 생각되던 누군가의 사상이 '이제 결정적으로 낡았다'는 기분이 들게 하면 대성공이란 것이죠.

사사키는 "그 사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상으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아니 그것을 그렇게 말함으로써 무엇을 어떻게 하(려하)고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사사키는 '현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인, 사회적인 성공을 밑천으로 하여 현 상황에 응해야 '심심풀이 놀이'가 되지 않을 수 있으며, 진지한 '경기'가 되어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단지 콘스타티브(constative, 사실 확인적)하게 뛰어난 '텍스트=작품=사상'을 쓰면 되는 시대는 지났으며, 퍼포머티브(performative, 행위 수행적)한 '효과'를 짜넣으면서, 그러나 콘스타티브이기도 하는 '텍스트'를 생산하고, 동시에 다양한 '퍼포먼스'도 행해야 한다는 것이죠.

아즈마 히로키라는 사상가는 누구보다도 여기에 의식적이었을 겁니다. 저는 사사키 아츠시가 '퍼포먼스'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기에, 아즈마 히로키의 퍼포머티브한 방향성을 문제 삼을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아즈마의 대단한 성취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사키는 다음과 같은 풍경을 그리기도 했죠.


아즈마 히로키와 기타다 아키히로가 책임 편집자로 2008년 4월에 창간한 잡지(정확히는 무크지) 『사상 지도(思想地圖)』는 초판 1만 부(이 시점에서 이런 종류의 책으로는 파격적인 수치입니다)가 금세 팔려 나가 발매한 지 몇 주만에 다시 5천 부를 더 찍었습니다. 잡지/출판의 불황을 부르짖는 작금의 현실에서 보면 분명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 판매 부수를 기록한 것입니다. 『사상 지도』는 2008년 12월에 제2호가, 2009년 5월에 제3호가 간행되었으며 앞으로도 속간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또한 아즈마 히로키가 『사상 지도』와 같은 시기에 시작한 비평가 양성 프로그램인 '아즈마 히로키의 제로아카(ゼロアカ) 도장'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약칭 '제로아카 도장'은 거기에 참가한 비평가 예비군들이 차례로 몇 개의 관문에 의해 걸러지고 최종 관문을 돌파한 사람은 단행본으로 초판 1만 부를 내며 데뷔하는 것입니다.

제로아카 도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필자가 실제로 목격한 광경을 예로 들어 말하고자 합니다. 제로아카의 제4회 관문은, 2008년 11월 9일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개최된 '제7회 문학 프리 마켓' 회장에서 2인 1조로 된 팀이 이날을 위해 일부러 제작한 각 5백 부의 비평 동인지를 스스로 판매하는데 그 판매 부수에다, 아즈마 히로키와 제로아카를 주최하는 '고단샤(講談社) BOX'의 오타 가쓰시 부장(당시* 현재는 세카이샤 부사장)이 매긴 점수를 더해 상위 세 팀 중 총 여섯 명을 통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문학 프리 마켓'이란 제5장에 등장하는 오쓰카 에이지가 제창하여 시작한 '소설과 비평 동인지/개인 잡지의 프리 마켓'인데, 이날은 일반 부스와는 별도로 제로아카 영역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제로아카' 부스의 정식 참가자는 다섯 팀이었는데, 이번의 특별 기획인 '도장 쳐부수기'로 참가한 세 팀을 더하면 총 여덟 팀이었습니다. 즉 제로아카 부스에서는 여덟 권의 비평 동인지가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 판매 방식이 굉장했습니다. 문학 프리 마켓은 하루에 한정하여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만 열립니다. 그런데 여덟 팀 중 무려 다섯 팀이 시간 안에(팀에 따라서는 일찌감치) 5백 부를 다 판매하였고, 최종적으로 여덟 팀의 판매부수를 합하면 3천8백 부가 넘었습니다(즉, 다 판매하지 못한 세 팀도 80퍼센트 이상은 팔았다고 합니다).

혹시 독자들 중에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수치는 『사상 지도』 제1호의 판매 부수와 마찬가지로 정말 경이적인 것입니다. 사실 필자도 그날 저의 사무소에서 부스를 열었기 때문에 제로아카의 무시무시함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혼란을 피하기 위해 제로아카 입구를 따로 만들었는데, 아침부터 장사진을 이루어 개장하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손님들이 밀려들었습니다. 제로아카 효과도 있어서 일반 문학 프리 마켓에 온 손님도 이전보다 많았던 것 같습니다(덕분에 필자의 부스에서도 꽤 많이 팔렸습니다). 보통 하나의 아이템이 1백 부가 넘게 팔리면 대성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로아카 부스에서는 그 다섯 배나 팔린 것입니다. 게다가 출품한 사람은, 이를테면 '아마추어 이상이지만 비평가는 아직 아닌', 저자로서의 지명도나 평가는 아직 낮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실제 제로아카 부스에서는 차례로 "5백 부 완매!" 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고, 문학 프리 마켓 회장은 일종의 이상한 흥분에 휩싸였습니다. 어느새 제로아카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우리까지 함께 박수를 치며(웃음), 영광스러운 통과자들을 축복해 주었을 정도입니다.  (p.14~17)


(사사키 아츠시, 『현대 일본 사상』, 송태욱, 을유문화사.)


그러나 아즈마 히로키의 퍼포머티브한 방향의 성취와, 콘스타티브한 방향의 불성실함, 혹은 잘못은 따로 논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텍스트에 퍼포머티브한 효과를 짜넣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바탕에는 콘스타티브한 성실함이 깔려 있을 필요가 있는 것이죠. 하지만 아즈마 히로키가 오타쿠가 소비에 메타적이었던 시대에 부응하여 펼쳤던 논설에는 이러한 성실함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메타적인 90년대의 분위기 속에서 자유로워진, 비교적 최근인 2013년 하반기에 바로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죠. 평론가 야마카와 켄이치가 인터넷상에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대대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입니다. 야마카와는 현재 탈원전 운동가로 활동 중인 모리 텟페이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독서회를 가진 적이 있는데, 두 사람은 해당 저서에서 몇 가지 모순점을 찾아내고 석연치 않은 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분명히 모순점은 존재하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갈피를 못 잡게 되었고, 찾아낸 모순점이 논지의 큰 줄기와는 별로 관계없는 사소한 것인지, 아니면 논지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인지조차 모르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이 이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던 도중 대지진이 일어나 모리 텟페이는 사회 운동으로 관심을 돌렸고, 야마카와 켄이치는 평론가로 데뷔 이후에도 이 문제로 숙고를 거듭하다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구성타당성을 지키지 않고, 의도적으로 그라데이션 논법을 사용하여 독자에게 혼란을 가져오도록 논지를 펼쳤다는 것이죠.

그라데이션 논법은 그래픽에서 어떤 색상이 다른 색상으로 점진적으로 변해가듯, 논설을 펼치며 자신이 다루고 있는 개념에 점진적으로 변화를 줘, 독자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법입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당시 시대에 맞게 지극히 퍼포머티브한 방향의 이론을 만들었지만, 그 이론에는 존립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즈마는 문제점들을 가리기 위해 자각적으로 그라데이션 논법을 펼쳤고,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독자는 당초 정의되었던 개념이 변화함에 따라 뇌에 부하가 걸려, 책의 내용을 이해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더라도 정작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야마카와 켄이치는 철저한 독해만으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모순을 내파하고, 아즈마의 그라데이션 논법을 백일하에 노출시키는 데 이릅니다. 일각에서는 아즈마의 그라데이션 논법이 그의 데뷔작 『존재론적, 우편적 ─쟈크 데리다에 대하여』에서부터 표출되었던 문제의식의 발로라고 하나, 데리다적 문맥에서 아즈마의 논설을 이해하려 하더라도 그가 사용했던 여러 구성적, 언어적 트릭의 문제들은 여전히 남습니다. 따라서 아즈마 히로키가 어떤 트릭을 어떻게 구사하였나 하는 문제에 대하여 야마카와 켄이치를 참조하며 풀어가려 합니다.



《트릭스터 ─ 아즈마 히로키 (0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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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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