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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스터 ─ 아즈마 히로키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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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9 May 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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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선유민


근대와 포스트모던의 세계상


아즈마 히로키가 '데이터베이스 소비'를 제기한 배경에는 평론가 오오츠카 에이지가 『이야기 소비론』에서 제기한 '이야기 소비'란 개념이 있었습니다. 오오츠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죠.


만화든 완구든 그 자체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품들을 그 부분으로 갖는 '커다란 이야기' 혹은 질서가 상품의 배후에 존재함으로써 개별 상품이 비로소 가치를 가지고 소비되는 것이다. (중략)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완구 같은 한정된 분야와 관련해서는 이것이 분명히 소비자의 공통감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여기에서 오늘날의 소비사회가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국면을 확인할 수 있다. 소비되고 있는 것은 하나하나의 '드라마'나 '물건'이 아니라 그 배후에 감추어져 있을 시스템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커다란 이야기) 자체를 팔 수는 없으므로 그 한 단면인 한 회분의 드라마나 한 단편으로서의 '물건'을 겉보기로 소비하게 한다. 이와 같은 사태를 나는 '이야기 소비'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오오츠카 에이지, 『이야기 소비론』,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재인용.)


1989년도에 출간된 『이야기 소비론』의 부제는 '빅쿠리맨의 신화학'입니다. 부제에서 보듯, 오오츠카는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였던 '빅쿠리맨 씰'을 예시로 삼아 자신의 이론을 설명합니다. 빅쿠리맨 씰은 초콜릿을 사면 덤으로 딸려오는 증정품으로, 한국에서 유행하였던 포켓몬스터 '띠부띠부씰'과 유사한 방식으로 소비되었죠.  다만 띠부띠부씰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가면라이더 스낵을 사면 주었던 70년대 전반의 '라이더 카드'이며, 빅쿠리맨 씰은 이들과는 다소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띠부띠부씰이나 라이더 카드의 경우는 픽션을 기초로 하여 캐릭터의 도상이 그려져 있었을 뿐입니다. 반면에 빅쿠리맨 씰은 픽션에 기초하지 않았을 뿐더러 뒷면에 '마계의 소문'이라는 이름의 에피소드가 써져 있어, 772매의 씰을 모두 모으는 것으로 소문의 배후에 있는 장대한 이야기가 완결되는 구조로 되어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오오츠카는 ⓐ 초콜릿 자체가 아니라 덤으로 주는 스티커가 구매 동기가 되었고, ⓑ 스티커에 그려진 캐릭터가 특정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기초로 하지 않은 원본이며, ⓒ 어린이들이 스티커를 사서 모음으로써 그 배후에 있는 빅쿠리맨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알 수 있었기에 폭발적으로 팔려나갈 수 있었다고 분석한 뒤, 거기에서 새로운 소비 행동의 모습을 찾아내어 '이야기 소비'라 명명했습니다.

그런데 오오츠카는 여기서 한 가지 문제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야기 소비'를 전제로 하는 상품은 극히 위험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즉 소비자가 '작은 이야기'의 소비를 계속한 끝에 '커다란 이야기' 즉 프로그램 전체를 손에 넣게 되면 그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작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케이스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인 제작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누군가가 '수퍼 제우스'로 시작하는 772장의 빗쿠리만 스티커 중 한 장을 그대로 복사한 스티커를 만든다면 이것은 범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티커는 '가짜'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얼마든지 있었던 사건이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빗쿠리만'의 '세계관'에 따라 이것과 정합성을 가지면서 772장의 스티커에 그려져 있지 않은 773명째의 캐릭터를 만들어내어 이것을 스티커로 판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772장의 오리지널 중 어느 것도 복사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는 '가짜'가 아니다. 더구나 773장째의 스티커로서 772장과의 정합성을 갖고 있는 셈이니 오리지널인 772장과도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이야기 소비'의 위상에서는 이와 같은 개별 상품의 '진짜' '가짜'의 구별이 불가능한 케이스가 발생하는 것이다.


(오오츠카 에이지, 『이야기 소비론』,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재인용.)


아즈마 히로키는 여기에서 오오츠카가 '작은 이야기'라는 말을 특정한 작품 속에 있는 특정한 이야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쓰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커다란 이야기'는 작은 이야기를 지탱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는 '설정'이나 '세계관'을 의미한다고 말하죠. 아즈마는 2차창작이라는 시뮬라크르의 범람은 '이야기 소비'의 당연한 결과에 지나지 않으며, 오오츠카의 지적은 서브컬쳐의 상황분석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던의 원리론으로써도 시사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아즈마는 기존의 포스트모던 담론과 오오츠카의 논의를 결부 지어 자신의 논의를 펼치는데, 아즈마가 전제로 하고 있는 기존 담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타쿠들이 사회적 현실보다도 허구를 택하는 것은 양자를 구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현실이 부여하는 가치규범과 허구가 부여하는 가치규범 중 어느 쪽이 그들의 인간관계에 유효한가 하는, 예를 들어 아사히 신문을 읽고 선거에 가는 것과 애니메이션 잡지를 한 손에 들고 판매전에 줄을 서는 것 중 어느 쪽이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원활하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그 유효성을 저울질한 결과이다. 그런 한에서 사회적 현실을 택하지 않은 그들의 판단이야말로 현재의 일본에서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현실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오타쿠들이 취미의 공동체에 갇히는 것은 그들이 사회성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인 가치규범이 잘 기능하지 않아 다른 가치규범을 만들 필요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특징이 포스트모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사회적 규범이 유효성을 잃고 무수한 작은 규범의 밀림으로 교체되는 그 과정이 바로 프랑스의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가 처음으로 지적한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에 대응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근대국가에서는 성원들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한 여러 가지 시스템이 정비되고 그 작동을 전제로 사회가 운영되어왔다. 그 시스템은 예를 들어 사상적으로는 인간이나 이성의 이념으로, 정치적으로는 국민국가나 혁명 이데올로기로, 경제적으로는 생산의 우위로 표출되어왔다. '커다란 이야기'란 그 시스템들의 총칭이다.  (p.59~60)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이은미, 문학동네.)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근대는 커다란 이야기가 지배한 시대였습니다. 그에 비해 포스트모던에서는 커다란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기능부전을 일으키고 사회 전체의 결속이 급속히 약화되죠. 일본에서 그 약화는 고도경제성장과 '정치의 계절'이 끝나고 석유 파동과 연합적군사건을 거친 70년대에 가속화되었는데, 오타쿠들이 출현한 것은 바로 그 시기입니다.

커다란 이야기의 '실조/실추/조락'에 따라 오타쿠들은 그 빈 자리를 보충하기 위하여 설정이나 세계관을 집적하여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사회학자 오오사와 마사치의 오타쿠론을 인용하며, 오타쿠들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타인의 세계(경험적 세계)와 그들을 초월한 신의 세계(초월적 세계)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고 말하죠. 그로 인해 오타쿠들은 서브컬쳐를 제재로 한 의사(擬似) 종교에 쉽게 걸려드는데, 그와 같은 실조는 근대사회에서는 개인이 미성숙한 탓이었겠지만,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자체가 커다란 이야기의 실조로 특징지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전통이 뒷받침된 '사회'나 '신'의 크기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그 공백을 가져온 서브컬쳐로 메우려고 하는 오타쿠들의 행동 양식은 포스트모던의 그와 같은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아즈마는 말합니다.

또한 아즈마 히로키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를 인용하며, 오타쿠 컬쳐의 '2차창작'의 존재는 포스트모던적 특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2차창작이란 원작이 되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다시 읽어내어 제작되고 매매되는 동인 소설, 동인 만화 , 동인 게임, 동인 피규어 등의 총칭입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동인 시장이 (해당 저서의 출간 시점에서) 최근 20년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오타쿠 컬쳐의 중핵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을 시야에 넣지 않으면 오타쿠 컬쳐의 동향은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특징이 포스트모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오타쿠들의 2차창작에 대한 높은 평가가 보드리야르가 예견한 문화산업의 미래에 매우 가깝기 때문입니다. 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작품이나 상품의 오리지널과 복제의 구별이 약해져 그 어느 쪽도 아닌 '시뮬라크르'라는 중간 형태가 지배적으로 된다고 예측했는데, 1차창작품과 2차창작품을 동등한 가치로 소비하는 오타쿠들의 가치판단은 확실히 오리지널도 복제도 없는 시뮬라크르의 수준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것이죠.

아즈마는 또한 이와 같은 사실에 덧붙여, 원래 오타쿠 컬쳐의 작품은 1차창작품들조차도 선행 작품의 모방이나 인용으로 만들어지는 일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현실세계를 참조하지 않고 처음부터 선행 작품의 시뮬라크르로써 원작이 만들어지고, 나아가 그 시뮬라크르의 시뮬라크르가 동인활동에 의해 증식되고 소비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 컬쳐의 작품은 근대적인 한 사람의 작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와 같은 무수한 모방과 참조의 연쇄 속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와 같이 시뮬라크르의 전면화와 커다란 이야기의 기능부전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오타쿠 컬쳐가 포스트모던한 사회구조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 둘을 전제로 삼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문을 실마리로 오타쿠 컬쳐의, 더 나아가서는 거기에 응축된 포스트모던 사회의 특징에 대하여 고찰해나가려 한다고 말합니다.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는 그 두 가지 의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포스트모던에서는 오리지널과 복제의 구별이 소멸하고 시뮬라크르가 증가한다. 그렇다면 그 시뮬라크르는 어떻게 증가하는 것일까? 근대에서 오리지널을 창출하는 것이 '작가'였더라면, 포스트모던에서 시뮬라크르를 창출하는 것은 무엇일까?

(2) 포스트모던에서는 커다란 이야기가 실조되고 '신'이나 '사회'도 쓰레기(junk) 같은 서브컬쳐에서 날조될 수밖에 없어진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근대에서는 신이나 사회가 인간성을 보증하며 구체적으로는 종교나 교육기관이 그 실현을 맡고 있었다면, 그 양자의 우위가 실추된 후에 인간의 인간성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p.62~63)


아즈마 히로키가 위와 같은 자신의 질문에 꺼내놓은 답이 바로 데이터베이스 모델입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오츠카의 이야기 소비 구조가 데이터베이스 모델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합니다(데이터베이스 소비 구조가 아닙니다). 아즈마에 따르면 근대는 그림 1a 같은 트리 모델(투사 모델)로 세계가 파악되고 있던 시대입니다. 한편에는 우리의 의식에 비치는 표층적인 세계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표층을 규정하고 있는 심층, 즉, 커다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포스트모던으로 이행하며 표층과 심층의 2층구조는 그림 1b와 같은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dong01.jpg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면, 포스트모던의 데이터베이스 모델의 알기 쉬운 예시는 바로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에는 중심이 없습니다. 인터넷의 심층에는 부호화된 데이터의 집적이 있고, 표층에는 유저의 읽어내기에 따라 만들어지는 개개의 웹 페이지가 있습니다. 데이터베이스 모델이 근대의 트리 모델과 크게 다른 것은 표층에 나타난 겉모습(각각의 유저가 보는 페이지)을 결정하는 심급이 심층이 아니라 표층에, 즉 감춰진 정보 자체가 아니라 읽어내는 유저 측에 있다는 점입니다. 근대의 트리형 세계에서는 표층이 심층에 의해 결정되었지만, 포스트모던의 데이터베이스형 세계에서 표층은 심층만으로는 결정되지 않고 그 읽어내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고 아즈마는 말합니다.

따라서 이야기 소비에 지배되는 오타쿠 컬쳐에서 작품은 더 이상 단독으로 평가되지 않고 그 배후에 있는 데이터베이스의 우열로 측정됩니다. 그리고 그 데이터베이스는 유저 측의 읽어내기에 의해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일단 '설정'에 손을 대기만 하면 소비자는 거기에서 원작과 다른 2차창작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죠. 즉, 오타쿠는 작품이라는 시뮬라크르가 깃드는 표층과 설정이라는 데이터베이스가 깃드는 심층을 명확히 구별한 채로 창작과 소비를 행하는 것입니다.



이야기 소비와 데이터베이스 소비


아즈마 히로키는 논의를 전개하면서 오오츠카의 논의에 한 가지 수정을 가합니다.


이러한 오쓰카의 지적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유효성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거기에 수정을 하나 가하고 싶다.  (p.72)


오오츠카는 설정이나 세계관을 '커다란 이야기'라고 불렀습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오츠카가 '커다란 이야기'라는 말을 쓴 것은 당시 유행하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뿐만 아니라 80년대 말에는 아직 오타쿠 컬쳐의 작품에서 하나의 세계관이나 역사관을 찾아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가령 '건담'의 경우 1979년에 방영된 최초의 TV 시리즈 이후 이어지는 시리즈 대부분이 같은 '가공의 역사(saga)'에 속하고 있죠. 따라서 건담의 팬들은 필연적으로 <사가(saga)>를 욕망하게 되는데, 사실 건담 관련 서적은 연대기적인 역사 연표와 계보도로 뒤덮여 있습니다.

따라서 아즈마는 오오츠카가 『이야기 소비론』에서 말한 '커다란 이야기'는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고 판단합니다. 80년대 상황에서 설정과 세계관의 집적은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란 거죠. 아즈마 히로키는 70년대 이후 일본 사회가 포스트모던에 진입하면서 커다란 이야기는 이미 생산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변동은 그 시기에 성장한 사람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는데, 그들은 세계가 데이터베이스적인 모델로 움직이기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교육기관이나 저작물을 통해 낡은 트리형 모델(커다란 이야기에 대한 욕망)을 이식받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 모순은 해당되는 특정한 세대로 하여금 잃어버린 커다란 이야기의 날조를 향해 강하게 구동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으로의 흐름이 보다 진행됨에 따라 그와 같은 날조의 필요성은 희박해집니다. 포스트모던의 세계상 속에서 자란 새로운 세대는 처음부터 세계를 데이터베이스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날조의 필요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따라서 아즈마 히로키는 80년대의 맹아적인 상태, 혹은 과도기적인 상태를 지나 90년대에 이르면 이야기 소비 역시 낡은 것이 되어 '데이터베이스 소비'라는 새로운 소비 스타일이 개화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당초 이야기 소비를 포스트모던적인 것으로 읽었던 것에 수정을 가하여 과도기적인 것으로 다시 읽어내는 것입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근대에서 포스트모던에 이르는 흐름 속에서 우리의 세계상은 이야기적이고 영화적인 세계시선에 의해 지탱되던 것에서 데이터베이스적이고 인터페이스적인 검색엔진에 의해 읽어내어지는 것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 속에서 일본의 오타쿠들은 70년대에는 커다란 이야기를 잃어버렸고, 80년대에는 그 잃어버린 커다란 이야기를 날조하는 단계(이야기 소비)에 이르렀으며, 계속되는 90년대에는 그 날조의 필요성조차 폐기하고 단순히 데이터베이스를 욕망하는 단계(데이터베이스 소비)를 맞이했다. 오쓰카의 평론과 필자의 관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이와 같은 흐름이다. 이야기 소비와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구조는 그림5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림5a와 그림5b 두 그림은 각각 앞에서 나온 그림1a와 그림1b에 대응한다.  (p.97)



dong05.jpg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즈마 히로키의 설명에 따르면 그림1에서는 그림 1b에 '이야기 소비'가 적용됩니다. 하지만 "이야기 소비와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구조는 그림5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그림5a와 그림5b 두 그림은 각각 앞에서 나온 그림1a와 그림1b에 대응한다"는 아즈마 히로키의 발언에 따르면, 이야기 소비의 그림 5a는 그림 1a에 대응하므로 그림 1b뿐만 아니라 그림 1a까지도 모두 다 '이야기 소비'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아즈마 히로키에 우호적으로 해석한다면, 80년대의 이야기 소비는 과도기적인 것이므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근대와 포스트모던 양측에 적용될 수 있기에 모순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즈마 히로키의 이러한 설명은 아무래도 이상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렵게 쓰여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즈마의 이론은 ① 근대 → ② 과도기(이야기 소비의 시대) → ③ 포스트모던(데이터베이스 소비의 시대)이라는 3단계의 사관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야기 소비론을 '수정'하여 과도기로 읽어낸 후에는, 2단계로 그림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3단계로 그림 설명을 하였더라면 훨씬 알기 쉬운 설명이 되지 않았을까요?

사실 좀 더 자세히 읽어본다면, 아즈마 히로키의 설명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즈마 히로키의 3단계 사관에 따르면 그림 1a는 1단계에 해당하는 근대이고, 그림 1b는 3단계에 해당하는 포스트모던입니다. 헌데 그림 5a는 2단계에 해당하는 과도기이며, 그림 5b는 3단계에 해당하는 포스트모던입니다. 즉, 그림1은 ① → ③ 의 2단계로 그려진 반면, 그림5는 ②  → ③ 의 2단계로 그려진 것입니다. 아즈마는 두 그림이 대응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전혀 대응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실수가 아닌 트릭이며, 데이터베이스 소비 이론의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입니다. 아즈마 히로키가 트릭을 써가며 숨겨야 했던 사실은 무엇일까, 바로 여기서 평론가 야마카와 켄이치의 문제 의식이 시작됩니다.



《트릭스터 ─ 아즈마 히로키 (03)》에서 계속



Writer

선유민

선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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