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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스터 ─ 아즈마 히로키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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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59 May 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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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선유민



야마카와 켄이치와 아라이 카츠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야마카와 켄이치와 아라이 카츠야는 서로 다른 필드 위에서 활동하는 평론가들입니다. 먼저, 평론가 야마카와 켄이치는 『물리적 우주 ─ H. G. 웰스』나 『H. G. 웰스 ─ 다위니즘의 시학』과 같은 SF평론으로 데뷔하여 현재는 『성숙이라는 새장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론』과 『M의 미궁 「돌아가는 펭귄드럼」론』 등의 저서를 출간하여 직접 대중과 대면하는 '저널리즘'의 장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와는 반면에 평론가 아라이 카츠야는 칸토가쿠인 대학의 문학부 현대 사회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종종 TV 출연을 하여 전문가로서 코멘트를 하는 정도의 미디어 활동은 펼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라이 카츠야는 미디어론, 문화사회학을 전문으로 하여 '정보화에 따르는 사회 행동 · 사회 의식의 변용', 말하자면 미디어와 개인의 상호 작용 속에서 사회가 어떻게 변해갈지를 연구 테마로 하여 대중이 아닌, 전문가 집단과 대면하는 '아카데미즘'의 장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야마카와 켄이치가 2013년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비판에서 아라이 카츠야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아라이 카츠야는 2009년 발표한 『우리나라에서의 〈이야기론〉의 수용 (わが国における〈物語論〉の受容)』이라는 이름의 논문에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비판하고 있었지만, 아라이와는 다른 필드 위에 서 있던 야마카와로서는 미처 참고하지 못했던 것이죠.

아라이 카츠야는 야마카와 켄이치의 비판과는 다른 포인트에서, 그러나 맥락이 맞닿아 있는 지점에서 아즈마 히로키가 구사한 트릭을 비판합니다. 아라이 카츠야에 따르면 현대 사상, 특히 포스트모던 철학에서는 〈이야기론〉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키워드로 취급됩니다. 일반적으로 〈커다란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라는 말로 알려진 것이 그것이죠.

이 개념은 J. F. 리오타르에 의해 86년의 일본에 처음 제시되었는데, 90년대 중반이 지나 일본 사상계에 로컬라이즈되면서 매우 독특한 전개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전개는 정상적이지 않은, '뒤틀림'을 품고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개념적인 혼란을 불러왔습니다. 아라이 카츠야는 이 혼란을 빚어낸 장본인으로 아즈마 히로키를 지적합니다. 아즈마의 트릭과 언설로 인해 일본 사상계의 '뒤틀림'이 발생하였고, 이는 현재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아라이 카츠야는 뒤틀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밝혀내기 위해 〈이야기론〉의 도입과 그 전개를 추적해갑니다. 



Ⅰ 리오타르의 〈이야기론〉과 포스트모던


〈1980년대 일본〉의 뉴아카데미즘 시대에 도입되어 한바탕 선전되었고 그 후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까지 다양한 변주를 거치는 포스트모던론의 계기는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들뢰즈나 데리다와 나란히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자인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1924~1997)의 『포스트모던의 조건』이라는 책이 번역되었던 일입니다. 이 책은 1979년에 출판되었고 1986년에 일본어로 번역되어 간행되었습니다. (p.124~125)


(사사키 아츠시, 『현대 일본 사상』, 송태욱, 을유문화사.)


아라이 카츠야는 먼저, 80년대 일본의 풍경을 그리는 데서 논의를 시작합니다. 80년대 중반의 일본에서는 당시 교토 대학 조수였던 아사다 아키라의 출현과 함께 뉴아카데미즘이란 운동이 유행했습니다. 뉴아카데미즘은 거품 경제의 호황이란 시대 상황 속에서, 연합 적군 사건으로 인해 비非 정치적인 차원에서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에 관심을 끌어모으게 된 운동입니다. 뉴아카데미즘은 한 시대를 풍미한 붐으로써, 당시에는 질 들뢰즈 · 자크 데리다 · 줄리아 크리스테바 · 미셀 푸코와 같은 현대 사상의 선두 주자들의 이론이 대중적인 주간지에서 해설될 정도였죠.

아라이 카츠야에 따르면 뉴아카데미즘은 포스트모던 철학 그 자체를 가리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포스트모던이란 이름 그대로 근대 다음에 오는 단계를 가리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근대에는 '트리 구조(=계층 구조)'가 존재하고 사회 구조는 계층 구조에 속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보의 다양화, 상대화에 따라 계층 구조는 붕괴하고 권위와 가치관이 균질화, 상대화합니다. 현대 사상에서는 일련의 시대 상황을 두고 건축학의 용어를 차용하여 '포스트모던'이라고 명명했죠.

당시 일본에서는 일반 대중이 쉽게 다룰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16비트 PC)와 TV-게임기(패미컴)의 본격적인 보급, 기존의 가치관을 상대화하는 패러디와 시장을 세분화하는 차별화 전략 광고의 유행, 욕망을 전면 긍정하고 기존의 권위와 상식을 무시하는 신인류의 출현 등이 사회적 현상으로 자주 거론되었고, 이러한 것들이 정보화 시대의 도래를 상징적, 혹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새로운 시대를 포스트모던이라 일컫는 당대의 언설이 동시대적인 공감을 얻어 빠르게 확산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프랑스 철학자 J. F. 리오타르의 저서 『포스트모던의 조건』이 일본에 소개됩니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가치관이 상대화하는 시대적 현상을 '커다란 이야기의 종언'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아라이는 이를 설명을 하기 위해 먼저 리오타르가 말한 〈이야기〉의 개념을 확인합니다. 리오타르는 〈이야기〉의 전형으로 계몽주의의 이야기(이성과 자유의 해방), 크리스트교 구제의 이야기(자기 희생의 사랑에 의한 인간의 구제) 마르크스주의 이야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되고 소외된 노동의 해방), 과학 기술의 발전 이야기(과학에 의한 인류의 풍요화) 등을 예로 들고 있지만, 아라이는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과학 기술 발전의 이야기를 다루어 리오타르의 〈이야기〉 개념을 설명합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단순히 우화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과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한, 과학은 자신의 게임 규칙을 정당화하는 배경이 필요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과학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진리를 추구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과학이라는 연구 방법이 옳다는 인식을 존재론적으로 증명하는 근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고 믿을 수 있게 만드는 메타적인 담론이 바로 리오타르가 지적한 〈이야기〉라는 개념이었습니다.

따라서 과학의 경우, 이는 ‘과학의 발전에 의해서 인류는 점진적으로 풍요롭게 되어간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 준거하여 과학이라는 존재가 뒷받침되고 사회 시스템에 받아들여진 시대, 즉, 〈이야기〉라는 기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을 리오타르는 〈근대(모던)〉라고 불렀습니다. 〈근대〉는 〈이야기〉에 의해 지(知)가 정당화되던 시대인 것이죠.

그런데 <포스트모던>에서는 <이데올로기>와 <이야기>, 즉, <과학>과 <인류의 풍요화>의 관계가 불안정해지고 이야기의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이는 과학의 발전이 초래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사회 일반에 제공하여 모든 분야의 상대화를 촉진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과학을 뒷받침하는 메타 담론인 <이야기>의 정당성조차 상대화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사회 전체적으로 유지되고 있던 <이데올로기>와 <이야기>의 관계가 해체됩니다. 이것이 바로 ‘커다란 이야기의 종언’, 바꿔 말하자면, 커다란 이야기에서 작은 이야기로의 이행이었습니다.

아라이 카츠야에 따르면, 리오타르의 ‘커다란 이야기의 종언’이라는 논의에 대해 사회학자 카타기리 마사타카는 두 가지 측면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전술한 것처럼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이야기>의 해체, 말하자면 계몽주의 · 크리스트교의 구제 ·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과학주의에 관련된 이야기가 점차 축소해가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이야기>가 역사적인 ‘객관적 사실’이나 법칙이 아니라 역사를 해석하는 하나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요컨대 이야기들 역시도 사회적으로 구축된 상대적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해져가는 측면입니다.

이를 다시 설명하자면, ‘커다란 이야기’의 종언은 인식론 레벨의 양적인 축소(규모의 축소)와 존재론 레벨의 질적인 축소(절대성의 붕괴)의 두 가지가 동시 진행하여, <이야기>가 사회의 복잡성을 감축하는 장치로써 기능 부전을 일으켜가는 과정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Ⅱ 오오츠카 에이지의〈이야기 소비론〉…… 또 하나의 이야기론


‘서사 소비’는 ‘빗쿠리만 실’에 어린이들이 혈안이 되는 것처럼 소비자에게 과도한 소비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동기가 되고 동시에 ‘상품’  자체를 소비자 자신이 만들어 내고 자신들이 멋대로 소비해 버리는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상품’의 송신자는 소비 시스템에서 배제되고 자신들이 만들어 낸 상품을 관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서사 소비’의 최종 단계란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과 소비하는 것이 일체화되는 사태를 가리킨다. 이미 생산자는 없다. 자신의 손으로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손으로 소비하는 무수한 소비자만 존재한다. 그것이 기호로서의 ‘물건’과 계속해서 놀아 온 소비 사회의 종말을 보여 주는 광경이라는 것만은 여기서 분명히 확인해 두자.


(오오츠카 에이지, 『정본 서사 소비론』, 『현대 일본 사상』에서 재인용.)


아라이 카츠야는 <이야기>가 일본에 도입되는 것은 극히 기묘한 모습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아라이는 시계열을 따라 추적하며 그 도입 과정을 확인합니다. 일본에서 <이야기>의 개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전개되는데, 먼저, 리오타르의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되는 형태로 도입된 것은 평론가 오오츠카 에이지의 『이야기 소비론』(89년)을 효시로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오오츠카가 사용한 ‘커다란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라는 용어는 리오타르가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습니다. 아라이는 단순히 명칭만 같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고 말하죠.

오오츠카는 리오타르가 아니라 오히려 J. 보드리야르의 소비기호론, 특히 사용 가치와 기호 가치의 개념에서 자신의 착상을 얻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라이는 본론에서 두 가지 이야기 개념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각각의 표기를 달리합니다. 그에 따라 리오타르의 용법에서는 <커다란 이야기(L)>와 <작은 이야기(L)>라고 표기하는 한편, 오오츠카의 용법에서는 「커다란 이야기(O)」와 「작은 이야기(O)」로 표기하고 논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오오츠카는 80년대, (주)글리코가 발매하여 대히트한 빅쿠리맨 초콜릿의 증정품인 빅쿠리맨 씰을 예로 들어 ‘이야기 소비’라는 개념을 설명합니다. 빅쿠리맨 초콜릿이 팔린 것은 아이들이 초콜릿(=사용 가치) 대신 빅쿠리맨 씰(=기호 가치)을 원해서 팔린 것입니다. 물론 증정품으로 본체를 사도록 만들어 파는 수법은 그 이전에도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어 (주)카루비가 70년대 초반에 발매한 가면라이더 스낵이 그러했는데, 가면라이더 스낵의 경우 아이들이 증정품인 ‘라이더 카드’를 갖기 위해 물건을 산 뒤 본체는 버려버리는 현상이 일어나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라이더 카드는 가면라이더나 괴인과 같은, 캐릭터의 도상이 그려져 있었을 뿐입니다. 반면에 빅쿠리맨 씰은 뒷면에 '마계의 소문'이라는 이름의 에피소드가 써져 있어, 772매의 씰을 모두 모으는 것으로 소문의 배후에 있는 장대한 이야기가 완결되는 구조로 되어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빅쿠리맨 씰의 구매자는 초콜릿이나 씰의 캐릭터가 아니라, 씰의 뒷면에 적힌 ‘에피소드=「작은 이야기(O)」’를 모아서 최종적으로 그 이야기가 포섭되고 있는 ‘세계=「커다란 이야기(O)」’를 알고 싶어했고 또 원했던 것입니다. 이때, 초콜릿과의 관계에서는 기호적 가치였던 빅쿠리맨 씰이, 배후에 상정된 세계=「커다란 이야기(O)」와의 관계에서는 사용 가치로 변하게 됩니다. 또한 세계=「커다란 이야기(O)」는 빅쿠리맨 씰에 의해 기호적 가치로써 조사(照射)하게 되죠.

오오츠카는 이렇게 「커다란 이야기(O)」를 목표로 해서 「작은 이야기(O)」를 수집하는 행위를 ‘이야기 소비’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아라이 카츠야는 오오츠카의 〈이야기〉는  리오타르의 〈이야기〉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고 재차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사사키 아츠시의 증언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즈마 히로키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오쓰카 에이지가 『서사 소비론』에서 깔아 놓은 것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목적은 이 ‘데이터베이스 소비=오타쿠론’을 리오타르 이후의 포스트모던론으로 연결하는 데 있습니다. 오쓰카는 ‘거대 서사/작은 서사’라는 용어를 이용하면서 의도적으로 『포스트모던의 조건』 이후의 ‘포스트모던’ 운운하는 것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즈마는 ‘오타쿠(おたく)’, ‘서사 소비’의 디지털 인프라를 통한 진화 버전인 ‘오타쿠(オタク)’의 ‘데이터베이스 소비’를 분명히 포스트모던적인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p.266)


오오츠카는 80년대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보드리야르와 같은 포스트모던 사상의 영향을 받았지만, 포스트모던론 자체와는 선을 긋습니다. 따라서 『이야기 소비론』에서는 역사적인 흐름을 검토하기보단, 80년대 당시 서브컬쳐 상황 분석에 집중하죠. 때문에 아즈마 히로키는 오오츠카가 『이야기 소비론』에서 했던 지적을 두고 “이 지적은 사실 서브컬쳐의 상황분석뿐 아니라 포스트모던의 원리론으로서도 시사적이다”라고 말하며 다시 읽어내고, 수정하여 읽어낼 필요가 있던 것입니다.



Ⅲ 오오사와 마사치의 이야기론 …… 일본의 <이야기론> 로컬라이즈


리오타르의 <이야기론>을 본격적인 형태로 일본에 도입한 사람은 사회학자 오오사와 마사치입니다. 오오사와는 『허구의 시대의 끝 ─ 오움과 세계최종전쟁」(96년)에서 『현대 일본의 감각과 사상』의 미타 무네스케의 논의를 정리하는 형태로 일본의 전후사는 <이상의 시대>에서 <허구의 시대>로 이행했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커다란 이야기>나 <작은 이야기> 같은 표현은 쓰이지 않았지만, 이상에서 허구로 이행한다는 오오사와의 논의는 실질적으로 <이야기>의 축소를 논하고 있는 것이라고 아라이 카츠야는 지적합니다.

먼저, <이상의 시대>는 1945년부터 70년까지(종전終戦에서 연합적군사건까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오사와에 따르면, 이상은 “미래에 있어 현실에 착지하는 것이 예기(기대)되고 있는 가능세계”입니다. 그래서 이상은 “현실의 인과적인 연장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를 부연하자면 <이상의 시대>는 ‘다가올 미래에 현실이 이상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었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리오타르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데올로기(=현실)가 이야기(=이상)에 의해서 정당화되는 단계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상의 시대>는 ‘현실과 이상(이데올로기와 이야기)’의 관계가 안정된 형태로 정합하고, 현실에 질서가 부여되었던 시기이며, 즉, 사회 전체적인 레벨에서 이상(=이야기)이 확신되고 있던 시대입니다. 오오사와는 <이상의 시대>의 황금기를 60년대 고도 성장기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 <허구의 시대>는 1970년부터 95년까지(연합적군 사건에서 오움진리교 사건까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허구는 “현실에 착지하는 것에 당면하여 무관련할 수 있는 가능세계”입니다. 따라서 결국 현실이 이상에 도달하는 것과의 연관성을 찾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구의 시대는 "정보화되어 기호화된 의사 현실(허구)을 구성하고, 차별화하고, 풍요화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을 통해 사람들의 행위가 방향 지을 수 있게 되는” 시대입니다.

즉, 이상적인 것을 아무리 지향해도 그것들은 모두 허구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상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 지향을 계속하는 단계가 바로 허구의 시대입니다. 다시 리오타르의 용어를 원용하면 이데올로기(=현실)을 뒷받침하는 <이야기>(=이상)에 대한 불신감이 증대하고, 그 정합성이 파탄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관계를 형식적으로 유지하는 시대인 것이죠. 

바꿔 말하자면, <허구의 시대>는 ‘현실과 이상(이데올로기와 이야기)’의 관계에 있어서 허구가 이상을 대체한 것입니다. 이상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고 그 정합성에 불신감을 품으면서도 ‘현실과 허구’라는 관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인 것이죠. 이러한 <허구의 시대>의 측면은 바로 카타기리가 지적한 '커다란 이야기의 종언'의 두 가지 측면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즉,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구축됨에 따라 상대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 명백해지고 이에 의해 이야기가 흩어져, 그 결과, 큰 규모의 <이야기>는 작은 규모의 <이야기>로 이행하는 것입니다.



Ⅳ 아즈마 히로키의 <데이터베이스 소비론> …… 두 <이야기>의 이상한 접합


여기서부터는 아즈마 히로키가 두 <이야기론>을 어떻게 접합하였나 하는 본격적인 논의가 됩니다. 그러나 아라이 카츠야는 두 이야기론이 기묘한 형태로 접합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음에도 아즈마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마지막 한걸음을 더 옮기지 못합니다. 이 점에 유의하여 아라이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A.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 …… 리오타르/오오사와의 문맥

아즈마 히로키는 2001년에 간행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리오타르/오오사와의 <이야기> 와 오오츠카의 「이야기」를 아크로바틱하게 접합하여 <데이터베이스 소비론>이라는 이원화된 이야기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즈마는 오타쿠의 출현에서 <커다란 이야기>의 종언을 비추어봅니다. 아즈마의 발언을 그대로 살펴봅시다.


오타쿠들이 사회적 현실보다도 허구를 택하는 것은 양자를 구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현실이 부여하는 가치규범과 허구가 부여하는 가치규범 중 어느 쪽이 그들의 인간관계에 유효한가 하는, 예를 들어 아사히 신문을 읽고 선거에 가는 것과 애니메이션 잡지를 한 손에 들고 판매전에 줄을 서는 것 중 어느 쪽이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원활하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그 유효성을 저울질한 결과이다. 그런 한에서 사회적 현실을 택하지 않은 그들의 판단이야말로 현재의 일본에서는 오히려 사회적으로 현실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오타쿠들이 취미의 공동체에 갇히는 것은 그들이 사회성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인 가치규범이 잘 기능하지 않아 다른 가치규범을 만들 필요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특징이 포스트모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사회적 규범이 유효성을 잃고 무수한 작은 규범의 밀림으로 교체되는 그 과정이 바로 프랑스의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가 처음으로 지적한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에 대응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근대국가에서는 성원들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한 여러 가지 시스템이 정비되고 그 작동을 전제로 사회가 운영되어왔다. 그 시스템은 예를 들어 사상적으로는 인간이나 이성의 이념으로, 정치적으로는 국민국가나 혁명 이데올로기로, 경제적으로는 생산의 우위로 표출되어왔다. '커다란 이야기'란 그 시스템들의 총칭이다.  (p.59~60)


여기서 아즈마 히로키가 말하는 ‘가치규범’은 곧 〈이야기〉입니다. 리오타르/오오사와가 이야기한, 양적 및 질적 측면에서 〈이야기〉가 축소한다는 논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아즈마는 커다란 이야기의 실조에 따라 오타쿠들은 그 공백을 서브컬쳐로 메우려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아즈마 본인은 언어적 트릭을 위하여 〈작은 이야기(L)〉라는 표현을 극구 삼가하지만, 여기서 서브컬쳐는 〈작은 이야기(L)〉 그 자체입니다.


B. <이야기(L)>와 「이야기(O)」의 관계

아즈마는 오오츠카의 『이야기 소비론』을 도입하고, 리오타르의 논의와 접합시킵니다. 두 가지 이야기론이 접합되는 것은 실제로 타당한 일입니다. 단, 아즈마 히로키의 문맥에서 이상한 형태로 접합되는 것이 문제일 뿐이죠. 여기서 먼저 논해져야 할 사실은, 〈커다란 이야기(L)〉 역시 〈작은 이야기(L)〉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공동환상이란 점은 같다는 점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8세기에 ‘미학’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중요합니다. aesthetics라는 것은 본래 감성론이라는 의미여서, 예를 들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하나같이 그런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그것은 감성 또는 감정에 대한 학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감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존재합니다. 이제까지 철학에서 감성, 감정은 인간적 능력으로서는 하위에 놓여왔습니다. 따라서 그로부터 벗어나 이성적이 되는 것이 바람직했습니다. 그런데 감성 · 감정이 지적 · 도덕적 능력(오성이나 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매개하는 것이 상상력이라는 사고가 등장한 것입니다. (중략)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이제까지 감성적 오락을 위한 단순한 읽을거리였던 ‘소설’에서, 철학이나 종교와는 다르지만, 보다 인식적이고 실로 도덕적인 가능성이 발견되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소설은 ‘공감’의 공동체, 즉 상상의 공동체인 네이션의 기반이 됩니다. 소설이 지식인과 대중 또는 다양한 사회적 계층의 ‘공감’을 통해 하나로 만들어 네이션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p.50~51)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 조영일, 도서출판b.)


크건 작건 〈이야기(L)〉는 상상력을 통하여 구축되는 것이었고, 그 상상력을 제공하는 매개체는 언제나 「이야기(O)」였습니다. 다만 포스트모던에 진입하며 달라진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L)〉에 대한 태도(믿음)였고, 그로 인하여 ‘이상의 시대’에서 ‘허구의 시대’로 이행했다는 것과 같은 지적이 나왔던 것이죠. 부정적인 표현을 쓰자면, 〈이야기(L)〉는 언제나 ‘날조’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O)」가 기능을 함에 따라서요.

따라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먼저 수정되어야 할 것은, 오오츠카의 「커다란 이야기(O)」를 마치 리오타르의 「커다란 이야기(L)」인 것처럼 아즈마 히로키가 언어적 트릭을 구사한 부분입니다. 아즈마는 ‘커다란 이야기의 날조’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상 오오츠카의 「커다란 이야기(O)」와 「작은 이야기(O)」가 기능한 것은 리오타르/오오사와가 말하는 〈작은 이야기(L)〉를 구축(날조)하는 데 있던 것입니다. 그에 따라 오타쿠 컬쳐라는 문화적인 상상의 공동체는 하나의 〈작은 이야기(L)〉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죠.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점은, 오타쿠 컬쳐가 공유하는 〈작은 이야기(L)〉, 혹은 데이터베이스를 외부의 누구도 공유하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아즈마 히로키의 말대로 ‘커다란 이야기의 날조’였더라면 커다란 이야기답게, 국민 모두가 그 이야기를,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했어야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죠. 이것은 아즈마 히로키 본인의 말에서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인데, 그는 스스로 오타쿠들이 작은 가치규범(작은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를 두고 "아사히 신문을 읽고 선거에 가는 것과 애니메이션 잡지를 한 손에 들고 판매전에 줄을 서는 것 중 어느 쪽이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원활하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그 유효성을 저울질한 결과"라고 말하기도 했죠.

아즈마 히로키 자신도 오타쿠 컬쳐의 이야기가 〈작은 이야기(L)〉라는 사실을 알면서 〈커다란 이야기(L)〉인 것처럼 취급하는 언어적 트릭을 쓴 것은 왜였을까요? 이 문제는 잠시 뒤에 풀어가겠지만, 아즈마 히로키의 문제점은 두 이야기론을 단순히 접합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겹쳐져 보이도록 포개어놓은 점에 있었다는 것이 일단 분명합니다. 또한 아라이 카츠야의 실수는 겹쳐져 있는 두 이야기론을 분리하여 보려고 했지만, 아즈마의 문맥에서 오오츠카의 이야기론이 재해석되어 접합되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죠. 두 사람에 따라 표를 그리면 각각 다음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됩니다.



table1.png


아라이 카츠야는 〈작은 이야기(L)〉는 곧 「커다란 이야기(O)」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의 지적은 분명히 올바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잊은 것은 아즈마 히로키의 다음과 같은 설명입니다.


오쓰카의 글을 다시 읽으면 거기에 기술된 이야기 소비의 구조가 바로 이 데이터베이스 모델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이야기’와 ‘설정’의 2층구조란 겉모습과 정보의 2층구조를 말한다.  (p.70~71)

그(*오오츠카)가 서브컬쳐를 지탱하는 설정이나 세계관의 집적을 ‘커다란 이야기’라고 부른 것은 아주 적절했다고도 할 수 있다. 80년대의 상황에서 그것은 확실히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p.73)


아즈마 히로키의 설명을 정리해봅시다. ① 아즈마에 따르면 오오츠카의 이야기 소비의 구조는 데이터베이스 소비의 구조와 똑같이 ‘데이터베이스 모델’을 품고 있습니다. 설정이 집적되는 바로 그 데이터베이스 말이죠. ② 아즈마에 따르면 이야기 소비와 데이터베이스 소비가 다른 점은 전자는 〈이야기(L)〉의 날조를 여전히 행하고 있는 반면에 후자는 〈이야기(L)〉의 날조를 포기했다는 점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아즈마의 말에 따라 아라이의 표에 수정을 가하면 다음과 같이 변하게 됩니다.



table3.png

위의 표에서 보듯, 결국 '데이터베이스 모델‘은 시대의 ’세계상‘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이야기(L)>를 날조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고, 「이야기(O)」와 데이터베이스의 세트가 <이야기론(L)>과의 접합면에서 떨어져나와 분리되어서야 알아볼 수 있는 사실이죠. 그리고 이 사실은 아즈마 히로키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내내 숨기려고 애써온 진상: 데이터베이스는 아즈마의 언설과 다르게, 단지 '장르적 관습'을 가리킬 뿐이란 진실을 드러냅니다.



《트릭스터 ─ 아즈마 히로키 (05)》에서 계속



Writer

선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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