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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노벨 제작의 사상 (2013, 未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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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 Jan 3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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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선유민


라이트노벨 제작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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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원안을 제시하다

이야기는 라이트노벨 작가 모리타 키세츠가 2013년의 최신작, 『열풍의 마찰사와 소환 전쟁』을 작업하며 라이트노벨의 제작부터 완성까지의 흐름을 증언한 데서 시작됩니다. 모리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선 이번 「카드를 사용하여 몬스터를 소환하거나 마법을 사용하거나 하는 이세계 판타지」란 기획입니다만, 막연한 아이디어는 편집자 분이 제안해주셨습니다. 카드 게임을 사용한다는 아이디어는 조금 새로운데 이걸로 뭔가 할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죠. 분명히 작년 11월초 무렵의 일입니다. 다행히 저는 꽤 오랫동안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으므로, 기획을 할 수 없지는 않아서 이 안건을 맡았습니다. 단지, 이 시점에서는 「카드 게임을 이용하는 소설」이라는 부분까지밖에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담당 편집자가 작가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관여하는 일은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격문고의 카리스마 편집자로 유명한 미키 카즈마가 자신의 담당 작가였던 후시미 츠카사에게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의 메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죠.

미키 카즈마는 후시미 츠카사가 일상을 묘사하는 데 뛰어난 재능(문체)을 가진 것을 눈여겨보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오빠가 자신의 일상과 다른 차원에 살던, 비범하기만 한 줄 알았던 여동생의 비밀을 알게 되어 그려지는 드라마라면 그의 재능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 예상은 적중하여 『내 여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는 독자들의 호평과 함께 베스트셀러의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이와 같은 협업 방식은 비단 라이트노벨 업계에 한정되는 방식은 아닙니다. 일본 출판 업계에서는 이런 방식을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라이트노벨 업계와 인접해 있는 만화 업계에서 이런 방식이 사용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키바야시 신, 나가사키 타카시 등이 해당 사례로 알려져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주로 평론가 직함으로 한국에 알려진 오오츠카 에이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화 편집자 일을 하며 만화가들에게 원안을 제공하곤 하던 오오츠카는 현재 《이야기 환경 개발(物語環境開発)》이라는 개인사무소까지 차려 콘텐츠 제작자들을 대상으로 원안과 원작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올 12월에 한국에서 선행 개봉하는 것이 확정된 유포테이블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꼬마마녀 요요와 네네』 역시 해당 사무소에서 원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작가, 출판사에 기획을 팔다

물론 편집자가 작가에게 원안을 제공하는 것은 라이트노벨 업계에서도 비교적 흔치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일부의 사례나마 이런 케이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라이트노벨 업계의 지배적인 사상인 《상업주의》를 증거합니다. 편집자가 작가에게 원안을 제공하고, 작가가 이를 채택하여 창작에 들어가는 것이 라이트노벨 제작 공정의 상업주의를 증거하는 전부는 아닙니다. 일반의 생각보다도 라이트노벨 제작 공정은 철저하게 상업적인 위치에 있죠. 그런 사실이 보다 잘 드러나는 대목을 모리타의 다음 증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순수하게 현대 일본에서 카드 게임을 하는 제안서를 만들었습니다. 단지, 제안서가 한 가지뿐이라면 취사 선택을 할 수 없으므로 판타지 요소가 강한 것(현재 출판되고 있는 것)도 기획으로써 제출했습니다. 편집부가 어느 제안서를 선택해줄까(혹은 양쪽 모두 반려될까) 기다립니다. 그 결과, 세계관의 확대를 생각한다면 판타지 세계에서 카드를 사용하는 편이 좋다고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Go싸인이 나왔으므로 본격적인 기획서를 만듭니다. 기획서 초고는 문고 환산으로 26 페이지 정도의 물건입니다. 1권의 플롯이 전체의 6할, 나라나 세계관의 설정이 4할 정도입니까. 이번 기획은 다행스럽게도, 대폭적인 수정이라고 할까 변경은 없었습니다. 다만, 빨리 원고 집필에 들어갔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아서, 기획이 OK가 될 때까지 5차례의 리테이크를 했습니다. 약 3개월 미만, 최종적인 OK가 나온 기획서는 100 페이지분 정도의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설정을 적당하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설정의 확인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인 이미지의 《작가》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는 증언입니다. 오히려 거래처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 샐러리맨 같은 느낌이 강하죠. 라이트노벨 작가의 개인사업자적인 측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계약의 형태만 달라질 뿐, 출판사를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외주를 맡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계는 이 부분에 있어 라이트노벨 업계와 가장 유사한 업계 중 하나입니다. 할리우드 시스템 하에서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팔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할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가 팔린 이후에도 프로듀서와 시나리오 내용에 대해 조율을 해나가야 하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들의 101가지 습관』에서 시나리오 작가 에드 솔러먼은 '시나리오 작가는 때때로 싸움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는 결코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시나리오 작가는 오직 자신의 고유한 영역만을 가지고 논쟁할 수 있을 뿐이다', 라고 시나리오 작가가 을의 위치에 있는 현실을 토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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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사상, 작가주의와 상업주의

저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예컨대 라이트노벨 업계의 창작자들이 제도권의 창작자들보다도 자신의 사업적 자질 혹은 비평적 자질을 발달시키지 못하고, 시장에 대응한 전략을 짜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합니다. 제도권에선 작가주의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선 상업주의가 그 중심되는 정서인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만, 그렇다면 양측의 정서가 지금과 같이 차이가 나게 된 연유는 어디서 기인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비상업적인 기믹을 잡는 제도권의 작가들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작가들에 비하여 더 전략적으로, 사업적으로 시장에서의 포지션을 설정하고 그에 걸맞는 포트폴리오를 쌓아가며 작가로서의 브랜드를 쌓아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말하자면 작가주의는 작가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서 취급하는 것이며, 상업주의는 개개의 작품을 상품으로서 취급하는 것입니다. 상업주의란 사상 아래에서의 창작자는 재능을 금세 고갈하고 역사 뒷편으로 물러나게 되기 마련이죠.

고정 관념과 다른 이야기에 당혹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도 두 사상이 갖는 이미지에는 큰 차이가 있죠.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어떻든, 본질적인 측면에서 작가주의와 상업주의는 그다지 다른 개념이 아닙니다. 예술이 곧 사업의 도구라는 면에서는요.


미학의 (뒤늦은) 종언

예술은 어쩌다가 사업의 도구가 된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선 우리가 예술에 갖는 관념을 지탱하던 개념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학이 바로 그것입니다. 『실천문학』 2013년 여름호, 「미학의 종언」에서 문학 평론가 이성민은 가라타니를 원용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이제 먼지가 쌓이기 시작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을 책장에서 다시 빼내보자. 거기서 우리는 가라타니가 처음부터 근대문학의 운명과 미학의 운명을 긴밀하게 연동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즉 소설이 진지하게 취급되기 시작한 것과 관련하여, 즉 근대문학의 등장과 관련하여 그는 “18세기에 ‘미학’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중요합니다”라고 말한다. 감성학을 뜻하기도 하는 미학에는 “감성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함축되어 있으며, 그리하여 이제 “그때까지만 해도 환상을 초래하는 것으로 부정적으로만 여겨졌”던 상상력은 “이 시기부터는 오히려 창조적인 능력으로서 평가받게” 되었다. 더불어서 소설은 지위가 상승하며 “상상의 공동체인 네이션의 기반”이 되었다. 


근대 미학은 18세기, 그러니까 1700년대에 바움가르텐에서 칸트를 거쳐 그 기틀이 마련됩니다. 이들은 그 전까지 이성(적 인식)에 비해 한 단계 낮게 평가되고 있던 감성(적 인식)에 독자적인 의의를 부여하여 이성적 인식의 학문인 논리학과 함께 감성적 인식의 학문도 철학의 한 부문으로 수립하는데, 그것이 곧 미학입니다. 미(美)란 곧 감성적 인식의 완전한 것을 의미하므로 감성적 인식의 학문은 동시에 미의 학문이라고 생각하였고, 여기에 따라 근대 미학의 방향이 설정된 것이죠.

그러나 근대 미학의 근본적인 토대 내지는 세계관은 20세기 초에 들어서며 무너지게 됩니다. 이 변화상을 금천예술공장의 매니져로 활동 중인 김희영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근대’란 모든 문화구조물- 예술, 과학, 법률 등-이 어디에선가 연역되었다고 믿던 시기이다. 근대 과학이 존재하던 이유는 세계의 원리를 해명하기 위함이었고, 예술이란 혼란한 자연의 세계에서 가장 근원적인, 심미적인 요소를 밝혀놓은 것이었다. 이러한 예술을 수행하는 예술가는 인간의 혼란한 감각인식을 뚫고 사물의 실체를 밝혀주는 ‘예언자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현대’는, 우리의 문화구조물이 실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다만 우연히 자리잡은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제 현대의 과학은 다만 ‘쓸모’를 위해서만 존재할 뿐이다. 쓸모만으로도 과학은 현대의 삶에 여전히 필요 불가결하지만, 지금의 예술은 이전의 예언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별다른 쓸모가 없는 것이 되었다. 왜냐면 실재에 근거하지 않는 예술은 내재하는 내용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함으로서만 생명을 얻는다. 이때 예술가는 실재에 대한 예언자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창조자의 입장에 선다. 


유용성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쓸모가 없는' 예술은, 역설적으로 현실세계에서 경제적 주체로 시장에서 자립해야만 했습니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진보하기 위한 도구였던 예술은 그 목적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해방과 동시에 도구로써 자신이 누울 자리를 다시 찾게 된 것이죠.

따라서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창조자의 기질과 사업가의 기질을 함께 요구받는 처지가 됩니다. 수행하는 작업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업가와 창조자의 스위치를 온오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진 것이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를 수 있어요. '그렇다면 문학의, 영화의 작가주의는 무엇인가?'하고요. 겉으로 보기에 이들은 금전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한 예술혼(魂)을 불태우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죠.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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