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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된 신화 – 버블경제의 아니메 제작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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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35 Mar 3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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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선유민



날조된 신화 – 버블경제의 아니메 제작 사정


버블 경제 시절에는 돈이 흘러넘쳐서 높은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이 쏟아져 나왔다더라, 《은하영웅전설》의 아니메판은 BGM 전체를 오케스트라 실황 녹음으로 만들었다더라, 이런 이야기─ 신화는 상당히 오랫동안 유포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그 대표로 꼽히는 은영전의 사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은영전은 제작비로 얼마나 소요되었을까? 이에 관한 내용을 은영전의 프로듀서였던 타하라 마사토시의 증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타하라는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비디오 시장의 구조를 아시지 못하면 이해하실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원래 비디오는 유통 비용이 비쌉니다. 당시 제작 인세의 시세가 15% 정도였습니다. 즉 시판 가격 10,000엔의 비디오가 있었다면, 그 안에서 제작비로 회수되는 것이 1,500엔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머지 8,500엔은 제조비와 유통 비용인 것입니다. 이걸로는 1만 개 팔려도 1,500만 엔밖에 되지 않습니다.(거기에 여러 가지 공제가 있으므로 실제로는 1,200만 엔 정도인가) 당시 TV 시리즈 1화의 제작비가 (비싼 것으로) 900만 엔 정도였으므로, 그것보다 약간 추가해 1화 1,000만 엔의 예산을 세웠습니다."  (타하라 마사토시, 99年의 회고록 中)


타하라에 따르면 본래 은영전은 그 방대한 분량을 고려하여 TV 시리즈로 계획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87년 시점으로는 소설이 애니메이션화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웠고, 타나카 요시키라는 이름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프롤로그의 벽에 막혀 다 읽지 못하고 포기하는 관련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TV 시리즈로의 제작 기획은 막다른 곳에 몰려있었다는 것이죠.

그때 신의 계시처럼 찾아온 것이 〈우루세이 야츠라〉 LD박스의 높은 매상이었다고 타하라는 말합니다. 당시에는 시리즈의 패키지 판매를 모두 농담처럼 여겼는데, 〈우루세이 야츠라〉가 의외의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죠. 비록 〈우루세이 야츠라〉는 TV 방송 후 2차 판매의 형태를 취했지만, ‘처음부터 시리즈를 비디오로 내놓는 수도 성립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생각을 실행에 옮겨, 《은하영웅전설》의 1기 26화는 화당 1,000만 엔의 예산을 설정하고, 패키지 박스와 배송비를 포함하여 2,500엔씩 가격을 책정하며, 화당 약 33,000개를 파는 것으로 제작비를 회수한다는 초기 방침이 세워졌습니다. 또한 여기에 통신 판매라는 새로운 수법을 도입하여 중간 비용을 배제함으로써 손익분기점을 화당 약 7,000개까지 끌어내리고, ‘위클리 비디오’라는 이름하에 제작과 배송을 매주 진행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직접 판매하기 위하여 TV 시리즈에 비해 높은 품질이 요구되던 은영전조차, 화당 1,000만 엔이라는 오늘날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예산이 매겨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의외성은 일본 경제가 지난 세월 동안 디플레이션 일로를 걸어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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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래프에서 보듯이, 일본 소비자 물가는 98년 외환위기의 영향과 근래의 아베노믹스의 영향을 제외한다면 2010년까지 내리막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물가가 가장 낮았던 2010년 당시 미디어개발종연의 조사에 의하면 TV 애니메이션 1화의 제작비는 평균 1,100만 엔에 달했습니다. 또한 2014년 출판된 〈아니메를 직업으로! 트리거류 애니메이션 제작진행 독본〉에 따르면, 화당 제작비는 1,200만~1,800만 엔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격심해지는 퀄리티 경쟁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것이겠죠.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의 제작비는 1980~90년대 중반까지 1화당 700만~800만 엔이라는 시세가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90년대 후반부터 애니메이션 관련 비즈니스가 성장했기 때문에 현재는 1000만~1300만 엔 정도의 수준이 되고 있다. 덧붙여서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 텔레비전 방영이나 극장 공개를 전제로 하지 않는, 미디어 판매만의 작품)의 시세는 2000만~3000만 엔, 애니메이션 영화는 1억~3억 엔 전후가 일반적. 지브리나 프로덕션 아이지(I.G)가 제작하는 고품질 작품이 되면, 10억~20억 엔을 들이는 케이스도 있다.  (애니메이션 비즈니스 포럼 2007, 나카무라 히토시)


상기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버블경제 당시 작품군이 오늘날 작품군에 비하여 제작비에 있어 큰 혜택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후일에 만들어진 ‘날조된 신화’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사태는 역으로, 2009년 AT-X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와타 케이스케 씨에 따르면, 버블이 꺼지며 갈 곳을 잃은 투자 자금의 상당 부분이 (아니메 제작시스템의 고도화와 맞물려) 90년대 후반 이후 애니메이션 업계 전반에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몇몇 작품은 버블경제 아래에서 예외적인 혜택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은하영웅전설》을 위시한 대부분의 작품은 그와 같은 수혜에서 벗어나 있었죠. 그렇다면 은영전의 신화는 무엇을 근거로 만들어진 걸까요?

먼저, 각본가 슈도 타케시에 따르면, 은영전의 배경 음악으로 쓰인 클래식의 대부분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핵심 기업이었던 토쿠마 쇼텐의 관계 음반사에서 저작권 프리의 곡들을 (‘제작비 절감’을 목적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시리즈 제작에 앞서 파일럿 필름으로 제작된 〈우리가 정벌하는 것은 별의 대해〉를 제작하는 와중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제작진 누구나 저작권 프리일 거라 생각한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가 저작권 프리에 해당하지 않았던 것이죠.


《은하영웅전설》의 〈우리가 정벌하는 것은 별의 대해〉에서 〈볼레로〉는 저작권의 처리를 클리어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쓴 각본의 〈우리가 정벌하는 것은 별의 대해〉의 클라이막스의 전투씬은 〈볼레로〉를 전곡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쓰여져 있다. 그림 콘티도, 그럴 생각으로 전투씬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볼레로〉를 사용할 수 없으면 작품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이건 큰일이다. 〈볼레로〉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하면, 대신 쓸 수 있는 클래식은 없는가? 타하라 씨한테서, 카세트 테이프에 넣은 저작권 프리의 클래식이 몇 개나 보내져 왔다. 하지만, 어느 것이든 〈볼레로〉의 대용으로 할 수 있는 곡은 아니었다. 나의 답은 하나였다.

“볼레로가 아니면 안 돼.”

그것은, 프로듀서 타하라 씨도 자각하고 있었다. “볼레로를 사용합니다”라고, 원작자와 함께 나의 작업장에서 〈볼레로〉를 듣고 〈우리가 정벌하는 것은 별의 대해〉에서 사용할 것을 결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면, 어떡할까?

타하라 씨로서는 물러서기 어려운 곤경이다. 이 때의 타하라 씨의 심경은, 예삿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하라 씨의 《은하영웅전설》에 대한 정열과 집념은, 보통이 아니었다. 어디의 누구를 설득해, 어떻게 프로듀서로서 움직였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온 타하라 씨의 연락은 “역시 볼레로를 씁니다”였다. 그리고 타하라 씨는 덧붙였다.

“어차피 〈볼레로〉를 사용할 거라면, 《은하영웅전설》용의 새로운 연주로 하겠습니다.”

놀랍게도, 도쿄 미타카의 공회당에서 신일본 필 오케스트라를 사용해 〈볼레로〉를 녹음한다고 한다. 그 비용이 얼마나 들었을지는, 나는 모른다. 제작 당초부터 고려하면 예정 외의 지출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シナリオえーだば創作術 제76회, 슈도 타케시)


〈우리가 정벌하는 것은 별의 대해〉는 본래 80년대에 자리잡던 OVA 형식을 취해, 은영전의 TV화를 위한 파일럿을 만들자는 기획하에 진행되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본 시리즈의 프로모션 수단으로써 극장에 공개하자는 말이 현장에서 나오게 됩니다. 타하라 프로듀서는 원래 OVA로써 제작한 것으로 도저히 극장판의 퀄리티는 바랄 수 없었다며, “극장 공개가 정해졌을 때의 기분은, 솔직히 말해 반 개 함대로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하고 오란 소릴 들은 양의 기분이었습니다. 어쨌든 극장용 반만큼의 예산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이것은 극장영화야' 란 얘길 들었으니까 말입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회고합니다.

모자란 예산 속에서도 오케스트라 녹음을 하게 되었으므로, 볼레로를 연주하는 김에 〈우리가 정벌하는 것은 별의 대해〉에 쓰일 예정이었던 ‘말러’나 ‘닐센’의 곡 몇 가지도 연주되었다고 슈도 타케시는 증언합니다. 그러나 원래 예정대로, 그 외의 삽입곡들은 저작권 프리의 음원을 사용한 것이었죠.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 성과를 거둔 것인지, 극장 공개 이후 《은하영웅전설》의 인지도는 올라가 〈우리가 정벌하는 것은 별의 대해〉는 시리즈화의 초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원작자 타나카 요시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애니화 논의를 위해 타하라 프로듀서를) 만나서 보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계시는구나”라는 것을 알았고, 열의에 밀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시니컬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로 실현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머지않아 전화(全話)를 애니화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셨을 때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그건 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소근소근 얘기한 것 같은 기억이 있습니다.  (타나카 요시키, 96年 인터뷰 中)


당시 타나카 요시키는 타하라 프로듀서의 제안이 농담은 아닐지 의심될 정도로 현실감이 없게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애니화 타진 시점에서 이미 제8권까지 출간된 대하소설 전체를 백여 화에 걸쳐 영상화하고 싶다는 제의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아닐까 생각되었던 것이겠죠. 그러나 타하라 프로듀서는 회의적인 태도의 원작자와 상층부를 설득해가며 여러 난관 속에서 제작을 진행한 끝에, 10여 년에 걸쳐 그 약속을 완수해냅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예산의 제약 아래에서, 예정 외의 지출을 제어해가며 약속대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타하라 프로듀서의 분투담은 지금도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감개 깊은 이 이야기를 시간의 저편에 묻어둔 채, 은영전을 비롯한 여러 고전들을 ‘풍요로웠던 시절이라 나올 수 있던 작품’이라는 거짓말로 덧칠하는 것은 당시 창작자들에게 큰 결례가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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